밥 먹듯 읽는 만화 독서론 [무크지 밥/0605]

!@#… 만화무크지 ‘밥’에 기고한 글. 지난 5월에 나왔으니 꽤 되었으며, 다음 무크(‘에로’)도 목전에 있고, 게다가 온라인 버전도 없는데다가 어차피 어떤 잡지 품평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마이너(왠만하면 만화작품만 보지, 누가 칼럼까지 자세히 읽기나 하겠나)인 만큼 뭐 그냥 평소 그리 하듯 여기에 백업성 개제. 기본적으로는 ‘밥’이라는 컨셉에 맞추어, 만화독서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 당연히 게재 편집 버전이 아닌 미수정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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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이라서 대략 다행: 밥 먹듯 읽는 만화 독서론

김낙호(만화연구가)

모두 충분히 공감하겠지만 오늘날의 한국이란, 사람들이 책을 무척 안 읽는 곳이다.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책이라는 매체양식이 상대적으로 등한시될 뿐이지 전체 ‘정보 습득량’ 자체는 그 어느 곳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즉 문제는 얼마나 잘 정리된 정보와 사상들을 사회적 현실과 자신의 현실에 비추어 비판적이면서도 창조적으로 (헉헉…) 습득하는가라는 것이지, 결코 나무를 얇게 쪼개서 그 위에 탄소 잉크로 검은 자국들을 남긴 ‘매체양식’ 자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책을 읽을지, 더 나아가 ‘어떻게’ 책을 읽을지에 대한 이야기 없이 단순히 “한국 사람들은 선진국 사람들보다 책을 안읽어. 그러니까 선진조국을 위해서는 다들 책 좀 읽고 살아!”라고 외치는 것은 지극히 무의미할 따름이건만, 그것이 바로 지난 수 십년간 이곳에서 진행되어온 도서캠페인이라는 것의 전형적인 모습들이었다.

그런 캠페인의 일환으로, 종종 시적인 비유와 문구들이 등장하고는 한다. 표어와 구호 만들어서 되뇌이기 좋아하는 (무찌르자 공산당, 자나깨나 불조심 뭐 그런 것 말이다) 사회이다 보니, 독서도 아주 고전적인 비유 구호가 하나 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 독서는 밥 같은 것이라는 말 되겠다. 몸이 밥을 먹고 살을 찌우듯, 독서를 통해서 마음을 살찌워라, 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기형적인 다이어트 열풍과 독서 안하기 세태는 미묘하게 맞물려 있는 듯 하기도 한데, 여튼 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 처음에 이야기한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문제, 즉 독서론의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좋은 비유가 되어줄 수 있다. 마치 밥만 무진장 퍼먹는다고 건강해지지 않는 것처럼,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특히 독서만세 주의자들에게마저도 어째서인지 수십년간 제대로 된 ‘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슨 인스턴트 식품 같은 2류 식사 취급을 받아오다가 최근에서야 제대로 된 인정을 아주 조금씩 획득해 나아가고 있는 ‘만화’라는 식단에 있어서 이런 것은 더욱 더 중요하다. 어떤 만화를, 어떻게 읽어야 도움이 될까, 한번 밥스럽게 풀어나가 보자.

먹고 살기 위해

밥을 ‘제대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3가지를 방지하면서 지내야 한다. 바로 편식, 과식, 그리고 단식. 하나씩 가보자. 우선, 편식을 하면 왜 안 좋은가? 교과서적인 답변: 건강한 생활을 위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뭐 과일을 안먹었다가 비타민C 부족으로 잇몸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든지, 탄수화물만 섭취하고 단백질은 다이어트 한답시고 피했다가 성장 이상이 생긴다든지 하는 공포사례들 떠올리면 되겠다. 이 비유를 만화 독서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어떨까.

편식이란, 특정 장르만 파고, 다른 종류의 만화는 만화로 인식도 안 해버리는 경지다. 대본소 성인 극화만 세상의 모든 만화고, 순정만화는 계집들이나 보는 것이며 소년만화는 일빠 오타쿠들의 전유물. 혹은 소년만화에만 푹 빠져서 대본소 극화는 모두 유치한 그림의 3류 쓰레기로 취급하거나, 호리호리한 야오이만 보면서 근육질의 소년만화는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 여러 가지 패턴이 만들어질 수 있다. 모든 경우, 핵심 패턴은 내가 좋아하는 이것이 바로 나에게 ‘만화’의 정의 그 자체라는 것. 시야 좁아지기 알맞다.

두 번째는 과식을 하지 말자는 것. 과식을 하면 배터지고, 영양 과잉으로 각종 성인병에 걸린다. 만화로 보자면, 너무 만화를 무분별하게 많이 보기만 하다가 각 만화를 제대로 소화해내지도 못하고 그냥 소화불량에 걸리는 것 – 즉 지겨워 지는 것에 해당된다. 자신이 먹고 소화해낼 수 있는 ‘정량’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추어 현명하게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냥 산더미처럼 만화책들을 쌓아놓고 기계처럼 소비한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세 번째는 단식을 하지 말자는 것. 밥을 먹었다가 한 사흘 굶었다가 또 한번 먹고 하는 육식 동물 같은 생활은, 인체에 무척 해롭다. 소화기관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만화 독서로 치자면 꾸준히 만화를 일상 속에서 읽는 것이 아니라, 한번 읽었다가 수개월 수년 쯤 한 권도 안 읽었다가 다시 읽어보는 것 같은 패턴이다. 이 경우, 만화를 읽어내는 독해력이 망가진다. 극단적으로, 지난 수 십년간 만화를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신 적이 없는 어르신들이 만화책을 읽으려면 이상하게도 대단히 이해하는 것을 힘겨워 하시는 것 처럼 말이다.

먹고 즐기기 위해

그런데, 앞서 말한 내용들은 모두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죽지 않으려고, 아프지 않으려고 밥을 먹는다는 발상 말이다. 단지 생존을 위한 밥이라면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인류 문명이 재미있는 것은 바로 비실용적인 부분들, 바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세 때문이다. 양분을 취하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을 맛있는 음식 즐거운 취식행위라는 문명형식으로 진화시킨 것이 바로 ‘식사’의 개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몸의 양식과 마음의 양식은 한결 서로 다가선다.

앞의 세 가지를 다시 끄집어내서 한발짝 씩만 더 확장시켜보자. 우선 편식부터. 편식의 문제는, 특정한 것들만 가려먹음으로써 이 넓은 세상 더욱 많은 맛있는 음식들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자신이 지금 심취해있는 어떤 장르의 벽을 살짝 넘어가기만 하면, 어쩌면 사실 훨씬 더 강렬한 즐거움을 줄 수도 있는 다른 작품을 만날지도 모른다. 로맨스를 느끼고 싶다는 고정관념에 순정만화만 봤는데, 알고보니 유럽의 한 개그만화에서 더욱 강렬하고 마음에 남는 진정한 로맨스를 유머 속에 발견했다, 라면 어떨까. 물론 진입장벽은 있다. 유럽 독립작가들의 작가주의 만화들이 주는 낮선 문법은 아시아 주류 극화 문법에만 익숙한 이들에게는 첫발에 부담스럽다. 순정만화의 호리호리 뽀사시함에 거부감을 느끼고 거리를 두는 ‘선굵은 사극을 추구하는 남자 만화팬’들은 또 어떤가. 하지만 덕분에 그들은 <불의 검> 같은 한국만화사에 길이 남을 대하 사극을 놓치게 된다. 또한, 돌솥 비빕밥과 냄비우동과 짜장면을 돌아가며 폭넓게 먹어보다 보면, 비로소 그 차이점 속에서 각각의 매력을 더욱 더 깊게 즐길 수 있는 법이다. 즉 편식을 피해보자는 것은 더욱 자신이 원하는 즐거움을 찾아나서는 적극적인 길이다.

과식은 또 어떨까. 과식의 진짜 문제는, 양적으로 퍼먹는 것에만 신경쓰다보면 각각의 맛을 음미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탕수육은 4-5명이 모여서 큰 접시로 하나 시키고 서로 허겁지겁 집어먹은 후, 뭔가 좀 아쉬운 듯한 느낌을 음미하고 입맛을 쩝쩝 다시며 서비스 군만두를 남은 소스에 찍어 먹을때 가장 맛있다. 한 명당 큰 접시 하나씩 배터지게 먹으면 맛은 커녕, 물릴 뿐이다. 만화로 치자면, 쌓아놓고 무조건 많이 읽는 것에만 집중하며 정작 작품의 진짜 재미를 못본다는 것이다. 영화도 2-3편 이상 연달아 보다보면 이야기가 헷갈리고 즐거움보다는 오기만으로 버티게 되지 않던가(물론 사람마다 그 ‘한계치’는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만화 독서 한계량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이 보는 것은, 즐거움을 죽이는 독이다. 만화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하나의 목적이 되지 않고 단순히 시간 때우기로 전락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즐겁지 못한 일이다. 시간 때워야 할 때도 이왕이면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만화를 찾는다면 물론 다른 경우가 되겠지만 말이다.

단식은 좀 더 미묘하다. 만화를 정기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만화의 일상화를 의미한다. 만화가 바로 내가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이다. 앞서 단식의 문제는 독해력의 쇠퇴라고 했는데, 즐김의 차원에서 볼 때 그것은 단지 만화를 읽는 것 자체가 복잡해진다는 정도가 아니다. 만화를,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로써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몸의 양식이라면 아무리 잊어버리게 된다고 해도 배가 고파 쓰러지면 본능으로 다시 찾게 되지만, 마음의 양식은 다르다. 특히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마음이 굶어 죽어도 일상 생활에서는 당장은 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없다고 믿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만화 독서라는 즐거움이 사라져도 그냥 살게 된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만화책을 읽고 해피하게 살자

아주 구체적으로, 그렇다면 어떻게 만화책을 읽는 것이 좋을까. 하루 3번 거르지 말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상에 그런 규칙은 없고, 또 만들 수도 없다. 각자의 마음이 가지고 있는 용량과 형태, 즐거움을 추구할 능력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니까 말이다. 육체의 양식마냥 일일 성인 권장 영양 섭취량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굳이 추천하자면,

(1)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만화 잡지(정간지)를 하나 이상 정기적으로 읽기. 좀 더 마음의 여유가 되는 사람은 자신의 취향에 잘 안맞는 잡지도 하나쯤 붙잡기를. 잡지는 만화를 일상생활의 영역으로 한층 더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졌으며, 다른 방식으로는 굳이 신경써서 챙겨보지 않았을 여러 작품들을 한번 맛보기나마 접하게 해서 시야를 넓혀준다.
(2) 신간안내를 둘러보고, 아직 시도 안 해본 책에 손 대보기. 최소 한 달에 한번쯤은 이달의 신간안내를 둘러보라. 내가 읽던 시리즈의 신간이 나왔는지도 확인하고, 새로 보고 싶을지도 모르는 시리즈에 대해서 뽐뿌질을 받아주는 행위.
(3) 즐겨보던 연재물의 단행본이 나오면, 한번쯤 접해 보기. 웹연재든 신문이든 잡지든, 연재 당시 눈여겨 봤던 (꼭 매회 챙겨보지 않더라도!) 작품이 단행본화되어 나오면 관심을 가지고 한번 들춰보라. 그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니, 단행본이라는 형식으로 한번 더 강렬하게 즐겨보는 매력이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것은 기초적인 수준의 팁에 불과하다. 고수들을 위해서라면, 장르별로 묶어보기 작가 연대기별로 묶어보기 가나다순으로 끝장 보기 하루에 한 권 이상 소화하고 블로그에 리뷰 쓰기 등등 여러 가지 더 살벌한 팁들을 던져줄 수도 있겠지만, 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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