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terani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주간동아 488호(05년 6월 7일자) 커버스토리 기사, <만점논술비법> 가운데 한 꼭지, “학습만화에 빠지면 진지한 책 멀어진다“. 에에…우선 더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30초 동안 큰 소리로 웃어주고 시작하자.
(30초 경과)
…자, 웃느라 눈에 고인 눈물을 좀 닦아내고, 좀 이야기를 시작하자. 희대의 개그를 해주신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그리고 별로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은 담당 편집장님께 감사. 여러분들의 천박하고 시대착오적인 문화감각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우선 논술공부의 존재이유를 ‘만점’에서 찾는다는 그 엄청난 커버 스토리 컨셉 자체부터 이미 참 경악스럽지만, 굳이 말을 꺼내기도 귀찮으니까 생략. 전에도 말했듯이, 간판을 얻기 위한 입시경쟁을 무려 교육열로 포장하면서 자위를 하는 것이 수십년동안 일반화된 이 사회에서 뭘 더 바라겠나. 여기서는 그냥 편의상, 그 중 한 꼭지만 씹자. 긴 글 읽기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약간의 엑기스만 뽑아보자면 이런 거다(아니 사실 제목 자체가 엑기스다):
‘학습만화’를 경계하라
어린이 독서사이트 ‘오른발왼발’을 운영하는 오진원 씨는 “부모가 만화의 함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학습만화를 보고 나면 굉장히 유식해진 것처럼 보인다. 어른도 읽어내기 힘든 명심보감이니 목민심서니 하는 책들에 대해 줄줄 이야기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과 복잡한 가계도도 아주 쉽게 기억한다. 어려운 과학 상식을 풀어내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효과’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려운 건 뭐든지 쉽게, 조금이라도 일찍, 지식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빠지고 만다”는 설명이다. 글로 된 책, 진지한 책들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만화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저해하기도 한다. 만화로 ‘그리스로마신화’를 보고 ‘삼국지’를 익힌 아이들에게 책의 주인공과 배경은 ‘만화에서 본 그대로’일 뿐이다. 그런 만큼 부모가 나서 ‘만화가 아니어도 만화만큼 재미있는 책’을 골라 함께 읽고 독려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청소년이 되어 문자로 된 책과는 영 담을 쌓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 이 기사를 보고 확실하게 동의한 점이 있다면, 어릴때 교육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릴때 만화는 물론 책과 문화 전반에 대한 그릇된 편견만 잔뜩 주입받으니까, 커서 이딴 소리나 지껄이는 거다(그러면서 심지어 기자라고 월급도 받는다). 그런데 사실 이런 똑같은 말을, 꽤 똑똑하다는 어르신들의 입에서도 종종 듣곤 한다. 한마디로, 특별히 몇몇 개인들의 천치스러움이 아니라 사회적 지능과 문화적 수준의 문제인 듯 하니까 좀 심란하기는 하다.
그냥 솔직히 말하자. 만화가 마음에 안드는거다. 애들이 독서를 안한다, 큰일이다, 라고 나름대로 한탄하고 싶은데, 실제로 애들은 독서를 하고 있더란 말이지.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인 적을 상정해야 한다. 그래, 애들이 책을 읽기는 하는데 그게 만화책이다. 그러니까 만화책이 나쁘고 저급한 것이다, 라는 나름대로 명쾌한 논리. 그 기저에는 물론 ‘훌륭한 문자서적’과 ‘저급한 만화’라는 꽤 전형적인 이분법적인 인식이 깔려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애써 숨기려는 노력조차 안하고. 만화가 나빠서 싫은 것이 아니라, 만화가 싫기 때문에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사실 비단 만화 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회가 사실 해방후 50년이 넘도록 그런 방식으로 ‘적을 만들고 싫어해 줌으로써’ 작동해왔다고도 할 수 있지만.
만화가 상상력을 저해한다는 주장은 정말 너무나 아스트랄해서,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다. 구체적 형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엽기발랄한 아이디어는, 참 괴이하다. 아니 그럼 비비안리와 클락 게이블로 이미지가 고정되니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보면 다윗을 건장한 체격의 백인 누드 젊은이로 이미지를 고정하니까, 미술품 감상을 하지 말아야 할까? 맛있는 고등어조림을 먹으면 고등어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받게 되니까 고등어는 무조건 시장에서 사서 날로 먹어야만 할까?
…이런 상상력 제로인 인간들 같으니라고. 상상력은, 무정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들을 구현화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고, 그 이상으로 다양한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쉽게 말해주마. 오히려 더욱 많고 다양한 만화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다양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같이 서로 공상을 나누고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문자로 된 책과는 영 담을 쌓는다고, 문자로만 되어있어야 ‘진지한 책’이고 뭐고 장땡이라고? 저기, 만화책에는 문자가 안들어가나? 무언극인가? 아니면 당신들은 그림으로 된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가? 그 수많은 도표들로 가득한 전문서적들은 다 쓰레기인가? 교과서에 만화로 설명을 하는 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인가? 인터넷의 ‘웹’이 글과 그림, 기타 멀티미디어로 다양하게 융화되는 것은 진지하지 못하게 되는 건가? ‘주간동아’에서 사진과 그림들을 전부 빼버려야 하지 않을까?
오진원씨라는 분의 멘트도 압권이다. 무려, ‘만화의 함정’이란다. 저기, 이 기회에 엄청난 비밀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바로… 애들이 그저 단편적인 지식들(그리스로마 신들의 족보라든지)만 줄줄 왼다고 애가 유식해졌다고 착각하는 부모들이 바로 함정 그 자체다!!! 그건 글로만 된 책을 읽는다고 해소되는 게 아니다. 그걸 제대로 못하면, 아마도 주간동아 이나리 기자 같은 상상력 없는 어른으로 자라나고 말겠지.
!@#… 뭐,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가지고 비트 수를 낭비하고 있는 중이다. 만화는 그 자체로서 상상력을 키워주지도, 죽이지도 않는다. 만화를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뿐. 그런데 그것은 만화가 아닌 어떤 매체라도 마찬가지고. 근거없는 저급한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해악이다(그러니까, 바로 당신들이 해악이라는 말이다). 문자로만 된 책은 좋고 만화는 나쁘다… 좀 더 가면 실사영화는 좋고 애니메이션은 나쁘다… 좀 더 밀어붙이면 백인은 훌륭하고 검둥이는 더럽다, 자본주의 만세고 빨갱이는 죽여버려야 한다, 박정희 만세고 요즘 젊은 것들은 방종에 취해서 저 지랄인 것 뿐이다, 뭐 기타등등 기타등등. 저급한 이분법이 완전히 무르익어 버리면 또다른 해악을 자연스럽게 잉태하는데, 그것이 바로 양비론과 패배주의다. 뭐랄까, 너무나도 익숙한 패턴이라서 지겹디 지겹다 (하지만 그건 좀 다른 방향에서 길게 다룰법한 이야기니까 여기서는 대충 넘어가도록 하자).
!@#… 나는, 사실 굳이 만화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 속 여러 구성원들의 일상속에 뿌리 내린 한심한 문화적, 사회적 인식 수준을 즐겁게 비웃기 위해서 한 마디 건네는 것에 불과하다.
(2006.12.12. 추가: 위의 해당 기사에 인용되신 오진원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주간동아와 인터뷰한 적 없고 내용 역시 원래 주장하고 다니셨던 바와 크게 다르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학습만화의 장점을 많이 강조하고 다니신 분.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 정말, 야매스러운 기사내용은 야매스러운 취재방식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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