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독서의 이해 [만화정보/0609]

!@#… 가을이다 보니 독서론에 대한 글 의뢰가 들어왔었다. 사실 개인 감상이 아닌 프로 글쟁이로서 쓰는 글들이란 글쓰는 사람 본인에게는 대체로 퍽퍽하기 십상이다. 작품을 선별하고 추천하는 방식의 집필 작업은 보통은 철저하게 독자층의 수요와 목적에 맞추어 제공하는 글거리고, 만화’판’에 대한 진단과 방향제시는 철저하게 이상과 현실을 견주어가며 해야하는 것이고, 역사 연구나 미학 측면 분석은 매체에 대한 편집증적 집착의 산물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어느 쪽도 아닌 만화독서론 같은 것이야 말로 공식글임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재미있게 노가리까면서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즐거움을 전파하는 일, 즐기는 방법을 같이 나눠주는 일은의 재미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글은 부천만화정보센터의 소식지 ‘만화정보’에 기고했던 글. 만화에 관심있는 일반인(시 관계자나 시민)들이 독자로 많이 있을 듯 하여 아주 가볍게, 긴장풀고 쓰는 글. 하지만 아예 대놓고 만담으로 나가기에는 지면이 부족해서 아쉽… 심지어 지난번 무크지 밥에 쓴 독서론만큼 만이라도 재기를 부리기가 지면성격상 참 쉽지 않다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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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독서의 이해

김낙호(만화연구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밥 먹듯 읽는 만화 독서론 [무크지 밥/0605]

!@#… 만화무크지 ‘밥’에 기고한 글. 지난 5월에 나왔으니 꽤 되었으며, 다음 무크(‘에로’)도 목전에 있고, 게다가 온라인 버전도 없는데다가 어차피 어떤 잡지 품평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마이너(왠만하면 만화작품만 보지, 누가 칼럼까지 자세히 읽기나 하겠나)인 만큼 뭐 그냥 평소 그리 하듯 여기에 백업성 개제. 기본적으로는 ‘밥’이라는 컨셉에 맞추어, 만화독서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 당연히 게재 편집 버전이 아닌 미수정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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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라도 여전히, 만화를.

!@#… 쿠루쿠루님의 무더위 만화로 식히자!! 에서 트랙백.

연휴에는 종종, 만화 리스트를 써달라고 요구받곤 한다. 역시 만화는 방에서 즐기는 여가의 강자라는 기본 컨셉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해야할지도. 게다가 요즘은 무진장 덥기까지 하다. 무더위가 만화로 식을 리는 전혀 없지만, 적어도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에어컨 강하게 틀어놓은 공간 (카페, 은행, 사무실 기타등등) 에 찾아가서 쉽게 향유할 수 있는 지극히 포터블한 즐거움이니까 말이다. 이건 지난 주, 부산일보 기자분 통해서 부탁받은 리스트 + 재미있게 읽는 팁. 어차피 기사화되면 꽤 모양새가 달라질 것 같기는 하지만. 매니악하거나 장르만화에 대한 집착이 적은, 일반 일간신문 독자를 위한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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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읽어볼만한 만화 20선

– 여름이라면, 역시 공포

 아파트(강도영 / 문학세계사) : 다양한 사람들의 엇갈리는 시점이 매력적.
 두 사람이다(강경옥 / 시공사) : 진짜 정체를 놓고 벌이는 심리 서스펜스.
 드래곤헤드(미네타로 모치즈키 / 서울문화사) : 재앙물의 정점.
 펫숍 오브 호러스(마츠리 아키노/ 서울문화사) : 욕심의 인과응보를 그려내는 옴니버스.
 기생수 (이와아키 사토시 / 학산문화사) : 인간에게 포식자 천적이 생겨난다는 것.

– 선 굵은 드라마의 세계

 타짜 1-4부 (허영만, 김세영 / 도서출판 채널) : 도박은 인생의 축소판.
 바람의 파이터 (방학기 / 길찾기) : 최배달의 강함을 추구하는 직선 돌파 인생.
 불의 검 (김혜린 / 대원CI) : 굴곡 넘치는 드라마틱한 대하서사시.
 용주골 (김성모 / 도서출판 청솔) : 비장한 성인정서.
 리얼 (타케히코 이노우에 / 대원 CI) : 장애인 농구를 다루는 감동 드라마.

– 즐기면서, 교양도 좀 쌓아보자

 십자군 이야기 (김태권 / 길찾기) : 현대 문명과 전쟁의 진짜 이유를 찾아나선다.
 만화 십팔사략 (고우영 / 애니북스) : 고전 속에서 배우는 현대적 교훈들.
 마법천자문 (시리얼 / 아울북) : 어른들도 한자 교육에 만점.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 휴머니스트) : 충실함과 재미를 겸비한 조선사 읽기.
 식객 (허영만 / 김영사) : 식문화의 기본을 찾아서.

– 인터넷에서 찾은 보물들

 트라우마 (곽백수 / 애니북스) : 변박자 개그의 매력.
 한국일본 이야기 (정구미 / 안그라픽스) : 교포 2.5세대가 들려주는 두 나라 이야기.
 마린블루스 (정철연 / 학산문화사) : 20대의 또래 취향의 유쾌한 생활사.
 룸펜스타 (고리타 / 시공사) : 백수의 왕.
 순정만화 (강도영 / 문학세계사) : 신파는 아직도 감동적이다.

…덤으로, 여름 휴가철에 만화를 가장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몇가지 소개한다.

 첫째 만화의 내용에 따라서 읽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어떤 장르의 만화는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휘리릭 넘겨야 제 맛이고, 또 다른 만화들은 하루에 한권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야 진짜 감동이 오는 것도 있다. 만약 책을 몇 페이지 넘겼는데 빠르게 읽기에는 너무 복잡해 보인다고 한다면, 재미없다고 덮어버릴 것이 아니라 좀 더 천천히 즐기는 지혜가 필요하다(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이야기 정서에 몰입할 수 있을까 한번 따져보는 것이다. 다들 재미있다고 하는 어떤 작품이 잘 이해조차 안된다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만화의 장르법칙이나 문법이 너무 낯설어서 그럴 것이다. 마치 고전 서부극에 익숙한 이 땅의 중년들이 <매트릭스>를 즐기지 못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해결방법은? 그냥 그런 작품은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아니면 그 장르를 더욱 더 의식적으로 열심히 즐겨서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함께 읽는 것이다. 책이란 기본적으로 혼자 읽도록 만들어진 매체이기는 하지만, 독서의 즐거움 자체는 모일수록 재밌다. 가족이 모여서, 각각 좋아하는 만화를 읽자. 연인이 같이 읽자. 그리고 재미있는 부분에서는 킥킥대며 웃고, 감동받을 부분에서는 확 감동하는 표정을 지어서 옆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자. 가만히 앉아서 보는 영화와는 달리, 따로 또 함께 같이 읽어나가는 사이에 만화의 즐거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 자유/영리불허 —
 

상상력 없는 사람들, 만화를 상상력 없게 읽다

!@#… enterani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주간동아 488호(05년 6월 7일자) 커버스토리 기사, <만점논술비법> 가운데 한 꼭지, “학습만화에 빠지면 진지한 책 멀어진다“. 에에…우선 더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30초 동안 큰 소리로 웃어주고 시작하자.

(30초 경과)

…자, 웃느라 눈에 고인 눈물을 좀 닦아내고, 좀 이야기를 시작하자. 희대의 개그를 해주신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그리고 별로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은 담당 편집장님께 감사. 여러분들의 천박하고 시대착오적인 문화감각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우선 논술공부의 존재이유를 ‘만점’에서 찾는다는 그 엄청난 커버 스토리 컨셉 자체부터 이미 참 경악스럽지만, 굳이 말을 꺼내기도 귀찮으니까 생략. 전에도 말했듯이, 간판을 얻기 위한 입시경쟁을 무려 교육열로 포장하면서 자위를 하는 것이 수십년동안 일반화된 이 사회에서 뭘 더 바라겠나. 여기서는 그냥 편의상, 그 중 한 꼭지만 씹자. 긴 글 읽기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약간의 엑기스만 뽑아보자면 이런 거다(아니 사실 제목 자체가 엑기스다):

‘학습만화’를 경계하라

어린이 독서사이트 ‘오른발왼발’을 운영하는 오진원 씨는 “부모가 만화의 함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학습만화를 보고 나면 굉장히 유식해진 것처럼 보인다. 어른도 읽어내기 힘든 명심보감이니 목민심서니 하는 책들에 대해 줄줄 이야기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과 복잡한 가계도도 아주 쉽게 기억한다. 어려운 과학 상식을 풀어내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효과’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려운 건 뭐든지 쉽게, 조금이라도 일찍, 지식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빠지고 만다”는 설명이다. 글로 된 책, 진지한 책들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만화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저해하기도 한다. 만화로 ‘그리스로마신화’를 보고 ‘삼국지’를 익힌 아이들에게 책의 주인공과 배경은 ‘만화에서 본 그대로’일 뿐이다. 그런 만큼 부모가 나서 ‘만화가 아니어도 만화만큼 재미있는 책’을 골라 함께 읽고 독려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청소년이 되어 문자로 된 책과는 영 담을 쌓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 이 기사를 보고 확실하게 동의한 점이 있다면, 어릴때 교육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릴때 만화는 물론 책과 문화 전반에 대한 그릇된 편견만 잔뜩 주입받으니까, 커서 이딴 소리나 지껄이는 거다(그러면서 심지어 기자라고 월급도 받는다). 그런데 사실 이런 똑같은 말을, 꽤 똑똑하다는 어르신들의 입에서도 종종 듣곤 한다. 한마디로, 특별히 몇몇 개인들의 천치스러움이 아니라 사회적 지능과 문화적 수준의 문제인 듯 하니까 좀 심란하기는 하다.

그냥 솔직히 말하자. 만화가 마음에 안드는거다. 애들이 독서를 안한다, 큰일이다, 라고 나름대로 한탄하고 싶은데, 실제로 애들은 독서를 하고 있더란 말이지.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인 적을 상정해야 한다. 그래, 애들이 책을 읽기는 하는데 그게 만화책이다. 그러니까 만화책이 나쁘고 저급한 것이다, 라는 나름대로 명쾌한 논리. 그 기저에는 물론 ‘훌륭한 문자서적’과 ‘저급한 만화’라는 꽤 전형적인 이분법적인 인식이 깔려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애써 숨기려는 노력조차 안하고. 만화가 나빠서 싫은 것이 아니라, 만화가 싫기 때문에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사실 비단 만화 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회가 사실 해방후 50년이 넘도록 그런 방식으로 ‘적을 만들고 싫어해 줌으로써’ 작동해왔다고도 할 수 있지만.

만화가 상상력을 저해한다는 주장은 정말 너무나 아스트랄해서,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다. 구체적 형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엽기발랄한 아이디어는, 참 괴이하다. 아니 그럼 비비안리와 클락 게이블로 이미지가 고정되니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보면 다윗을 건장한 체격의 백인 누드 젊은이로 이미지를 고정하니까, 미술품 감상을 하지 말아야 할까? 맛있는 고등어조림을 먹으면 고등어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받게 되니까 고등어는 무조건 시장에서 사서 날로 먹어야만 할까?

…이런 상상력 제로인 인간들 같으니라고. 상상력은, 무정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들을 구현화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고, 그 이상으로 다양한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쉽게 말해주마. 오히려 더욱 많고 다양한 만화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다양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같이 서로 공상을 나누고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문자로 된 책과는 영 담을 쌓는다고, 문자로만 되어있어야 ‘진지한 책’이고 뭐고 장땡이라고? 저기, 만화책에는 문자가 안들어가나? 무언극인가? 아니면 당신들은 그림으로 된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가? 그 수많은 도표들로 가득한 전문서적들은 다 쓰레기인가? 교과서에 만화로 설명을 하는 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인가? 인터넷의 ‘웹’이 글과 그림, 기타 멀티미디어로 다양하게 융화되는 것은 진지하지 못하게 되는 건가? ‘주간동아’에서 사진과 그림들을 전부 빼버려야 하지 않을까?

오진원씨라는 분의 멘트도 압권이다. 무려, ‘만화의 함정’이란다. 저기, 이 기회에 엄청난 비밀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바로… 애들이 그저 단편적인 지식들(그리스로마 신들의 족보라든지)만 줄줄 왼다고 애가 유식해졌다고 착각하는 부모들이 바로 함정 그 자체다!!! 그건 글로만 된 책을 읽는다고 해소되는 게 아니다. 그걸 제대로 못하면, 아마도 주간동아 이나리 기자 같은 상상력 없는 어른으로 자라나고 말겠지.

!@#… 뭐,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가지고 비트 수를 낭비하고 있는 중이다. 만화는 그 자체로서 상상력을 키워주지도, 죽이지도 않는다. 만화를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뿐. 그런데 그것은 만화가 아닌 어떤 매체라도 마찬가지고. 근거없는 저급한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해악이다(그러니까, 바로 당신들이 해악이라는 말이다). 문자로만 된 책은 좋고 만화는 나쁘다… 좀 더 가면 실사영화는 좋고 애니메이션은 나쁘다… 좀 더 밀어붙이면 백인은 훌륭하고 검둥이는 더럽다, 자본주의 만세고 빨갱이는 죽여버려야 한다, 박정희 만세고 요즘 젊은 것들은 방종에 취해서 저 지랄인 것 뿐이다, 뭐 기타등등 기타등등. 저급한 이분법이 완전히 무르익어 버리면 또다른 해악을 자연스럽게 잉태하는데, 그것이 바로 양비론과 패배주의다. 뭐랄까, 너무나도 익숙한 패턴이라서 지겹디 지겹다 (하지만 그건 좀 다른 방향에서 길게 다룰법한 이야기니까 여기서는 대충 넘어가도록 하자).

!@#… 나는, 사실 굳이 만화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 속 여러 구성원들의 일상속에 뿌리 내린 한심한 문화적, 사회적 인식 수준을 즐겁게 비웃기 위해서 한 마디 건네는 것에 불과하다.
 
(2006.12.12. 추가: 위의 해당 기사에 인용되신 오진원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주간동아와 인터뷰한 적 없고 내용 역시 원래 주장하고 다니셨던 바와 크게 다르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학습만화의 장점을 많이 강조하고 다니신 분.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 정말, 야매스러운 기사내용은 야매스러운 취재방식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