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ㅍㅍㅅㅅ에 실렸던 글 백업(게재본은 여기로). 원래의 메모와 이 글을 냈던 이후 시점에 파트너사 간담회도 개최되었다는데, 여전히 사용자에게 메리트는 ‘좀 더 쉽게 사용하게 만들겠다’ 정도. 뭐랄까, 콘텐츠 사업 판에는 사업가적 조율의 기획력은 차고 넘치는 반면 향유자로서의 까다로움을 반영하는 기획력은 늘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
!@#… 진보넷의 정보운동 계간지 액트온 6호에 실린, 저작권제도 Q&A. (비록 공포 때문일지라도) 관심 좀 기울일 생각이 든 일반인들, 혹은 뭔가 방향이 보이지 않아서 좌절중인 온라인문화 전문가들에게 가벼운 자극을 줄만한 자료. 꽤 중요한 토픽들을 한 두릎으로 묶어내고, 진취적 방향과 구체적 수행과제를 곁들이려고 나름대로 용썼다. 즉 많은 분들이 널리 링크를 퍼트리시고 북마킹하셔서 두고두고 참조하실 것을 권장(or 구걸).
주: 첫 기고 버전이 아니라, 진보넷 활동가 laron님의 ‘부드러운 말투’ 편집을 거친 버전. 이쪽이 마음에 더 들어서.
김낙호(미디어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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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에서(아니 사실 오프라인에서도) 사회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질 때, 보수(를 자처하는 수구 내지 착란) 성향의 사람들이 상황을 마무리하겠다고 종종 동원하는 것이 바로 “현실드립”이다. 백날 여기서 이러고 있어봤자 현실은 냉엄하니 네놈들 앞가림이나 하라는, 가히 데우스 엑스 마키나스러운 꼰대질 말이다. 최근 그런 현실드립의 가히 모범적인 사례를 발견했는데(클릭), 꽤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한다. 바로 결론부의 “그러나 남들 하는 거 다하고 싶고 쳐먹고 싶은 거 즐기고 싶은 거 다하고자 하면서 정작 자신은 20대 초나 지금이나 항상 변함없는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면” 이라는 말. 본문 자체야 “입닥치고 네 스펙이나 올려” 정도니 굳이 뇌세포 할애해서 깔 가치도 없지만, 이건 꽤 재밌는 화두다.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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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회의’의 만화 리뷰 지면에 만화로 되어있지 않은 책을 소개한 첫 케이스이긴 하지만, ‘만화문화’와 떼어놓고는 도저히 성립이 되지 않는 책이다 보니 뭐…;;; 설정의 즐거움이라고 하니, 최근 히트중인 ‘스타트렉 (더 비기닝)’과도 한번 엮어서 생각해볼 구석이 있을 듯.
설정이라는 참여과정 -『기동전사 건담 1년전쟁사』
김낙호(만화연구가)
작품을 즐긴다는 것은 종종, 작품에 얼마만큼 참여하는가에 따라 달려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주인공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의 형태로 나타나곤 하지만, 때로는 작품 속에 구성된 세계 그 자체에 대한 몰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현실세계를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작품을 위해 하나의 독창적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환타지와 SF 장르의 작품들에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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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퀄리티에 비해 존재감이 바닥을 기는(…그러게 과월호용 웹사이트 만들라고 내가 몇 번을 제안했건만;;;) 타블로이드 판형 문화콘텐츠 잡지 ‘백도씨’의 이번 호의 특집은 무려 성인문화에서 미국 관련 꼭지. 어차피 다른 분들이 에로는 다 커버하겠지 해서 표현보다 내용, 그리고 향유자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봤다.
‘성인’의 즐김: 미국의 성인 대중문화
김낙호(만화연구가)
솔직히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자면, ‘성인’ 대중문화라는 용어는 별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대부분의 대중문화는 성인들이 만들어내고 성인들이 향유할 것을 전제로 되어 있고, 미성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의 세부적 취향에 좀 더 맞추어 들어간 청소년 문화, 아동 문화는 여기에 비하면 소수 영역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다만 격한 표현 수위에 있어서 성인에게만 허용된 것들을 어렴풋이 성인용이라고 흔히 일컫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다지 유의미한 구분이 아니라서, 표현만 ‘성인용’이지 정작 작품 속의 정서는 온가족용인 경우도 허다하다. 예를 들어 총질과 폭발과 피바다가 쏟아지는 R등급(미국의 ‘성년 보호자 동반시 관람가’ 등급) 액션 호러영화라고 해도, 사실 싸움질 속 성장과 영웅만세의 성장기 청소년 같은 감수성에 가까운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얼마나 많던가. 그런 의미에서 ‘성인용’에 제대로 접근하는 방식은 역시 내용의 측면이다. 성인 수용자들에게나 통할만한 복잡한 구도나 주제 의식 (예를 들어, “인생의 쓴 맛”) 같은 것이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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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툰 만화프리즘의 신년 첫 칼럼이었던 셈인데, 문화 관련 긍정/진취적 이야기로 좀 가보자는 것이 과해서 너무나 건전발랄한 메시지가 되어버렸다는… -_-;
향유능력의 부자 되세요
김낙호(만화연구가)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래로 주기적으로 만화나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작품들의 불법 복제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 이슈로 떠오르곤 한다. 항상 끌어안고 사는 화약고라서, 약간만 불을 붙일 사건이 터져주면 일시에 타오르는 것. 물론 불법 복제의 죄과는 그냥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 모든 것의 너머에 근본적으로 깔려 있는 문화적 문제라면 역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들이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서 구할 수 있는 그 정도에 만족하더라는 것이다. 정당하게 즐기든 불법으로 즐기든 별 차이를 느끼지 않고 즐긴다는 현상 말이다. 이것은 사실 비단 불법 복제뿐만 아니라 작품 품질과 상관없이 좋은 작품이 처절하게 묻혀버리고 반면에 수준미달임에도 국민적 호응을 얻어서 히트치는 이상한 사례들의 축적과도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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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예고했듯, 나름대로 소프트 노선(과연?)으로 돌아선 만화프리즘 칼럼의 제 1호. 사실은 2호에서는 다시 정치 이야기로 돌아갔지만. -_-;
동성연애, 취향문화의 미덕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진행되었던 차별금지법 개정 논의에 언급된 여러 차별 기준 가운데, 아주 반가운 손님이 하나 들어가 있었다. 바로 동성애가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해서, 시대가 그래도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나보다 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개신교 계열의 어떤 단체는 일어나 적극적인 반대를 하고 나섰다). 최종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정말 고무적인 것은 그만큼 동성연애가 무조건 말도 안 되는 혐오행위나 단순한 개그거리가 아니라, 계급이나 성차별 같은 여타 묵직한 주제들과 동급에서 논의되는 대상이 되어줄 만큼 담론적 위상이 올랐다는 것이다. 연예인이 아우팅 당하고 밥줄 끊겨가며 인권운동가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 얼마나 지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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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diohead 신보, 그냥 듣기에도 썩 좋은 앨범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음모론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어차피 누구나 다 두 눈에 쌍심지켜고 관심 기울이는 유통 혁신 측면 뭐 그런거 말고, 라디오헤드라는 그룹의 ‘작품’으로서 말이다. 링크된 기사에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는데, 이 내용과 이런저런 소문들을 종합 요약하면 이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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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호 문화저널 ‘백도씨’ 커버스토리인 장난감 특집의 도입글. 장난감 수집가 현태준씨의 장난감관이라든지 발랄하고 재미있는 꼭지들이 많은데, 어쩌다가 하필이면 도입글만 이 모양인가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고나. 덕분에 유일하게 사진 위주로 운영되는 ‘모형모형’ 카테고리에도 문자 압박의 습격이… -_-; 여튼, 이전의 키덜트 글에 이어, 토이 좋아하는 어른들이 주변의 열렬한 박해를 이겨내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나름대로 지적인 변명 되겠다. 여기 방문객 중 그런 종족의 분들이 많은 것 다 아니까, 알아서들 열심히 퍼트리고 써먹으세요.
장난감 열광: 이야기의 역습
김낙호(만화연구가)
사람들이 장난감에 (대놓고) 열광하는 모습이 최근 여러 지면에서 수년간 신기한 트렌드로 다루어지곤 한다. 그러면서 대부분 제기하는 질문이 바로 ‘왜’ 장난감에 열광할까, 라는 것. 하지만 질문이 잘못되었다. 왜 열광하는가라고 묻지 말고, 왜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원래는 열광하다가, 어느 특정 연령대에 들어서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만둘까라고 물어야 한다. 그렇게 놓고 봐야 비로소 장난감의 진짜 매력, 기능이 생각난다. 바로 각자의 가슴 속, 기억 속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난감을 가지고 어떻게 놀았을까. 우선 장난감의 범주를 살짝 설정하면서 가보자. 모형과 액션토이의 차이는 무얼까. 모형은 놓고 구경하는 것, 토이는 가지고 노는 것. 운동기구와 운동용 장난감의 차이는 무얼까. 운동기구는 진지하게 스포츠를 하는 도구, 운동용 장난감은 그 스포츠를 놀이 수준으로 흉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소꿉놀이 기구나 악기 장난감도 이쪽 범주다). 중간 과정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거두절미 결론을 말하자면, 장난감은 상상력을 개입시키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놀이 활동을 매개하는 도구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속에, 물건을 쓰는 사람 혹은 아예 물건 그 자체가 새로운 생명과 사연을 부여받는다. 즉 장난감은 상상력과 이야기가 응축된 집약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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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기준으로 풀리자마자, 방금 막 구입. 라디오헤드 밴드가 직접 운영하는 레이블, 온라인 거래업체만 중간에 끼고 직접 유통하는 방식으로 나오는 첫 신보, “In Rainb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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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유통기한 지난 디빠 놀려먹기지만 미국 개봉을 앞두고 끝물 개그가 나와주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있던 터, 포털사이트들을 오늘 수놓은 화려한 기사 덕분에 하루 일용할 폭소를 하고 말았다. 덤으로, 그냥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던 모 ‘취향논쟁’에 대해서도 한 마디 다시 해볼 계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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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칼럼은 없어졌지만, 여차저차 취향이 꽤 잘 맞는 관계로 즐겁게 원고 참여하고 있는 장르문학/문화 잡지 ‘판타스틱‘ 지난 호에 실린 것… 의 편집 전 탈고버전. 도판 들어가고 멋지게 편집된 완성본을 보고 싶은 분은 재고 떨어지기 전에 과월호 구입하시길. 여튼 탈고시점에서 두어 달 지난 현재는 시즌2가 성황리에 방영중이고 이미 시즌1의 만화책도 발간된 상태다. 재미있는 발상, 재미있는 팬덤.
슈퍼히어로는 무엇으로 만들어 지는가
– 리얼리티쑈 『누구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사람?』과 슈퍼히어로 컬쳐
김낙호(만화연구가)
누구나, 아니 적어도 소년 시절을 보낸 이들, 아니 최소한 TV, 만화, 게임, 영화 등을 보며 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한번쯤 즐겼을 놀이가 있다.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서, 서로 무언가 엄청난 능력을 지닌 영웅이 되어 서로 능력싸움을 벌이는 것. 한마디로 왕년에 가슴에서 브레스트 파이어 한번 안 쏴보고 눈에서 레이저빔쯤 안나가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때로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슈퍼영웅이나 로봇을 흉내 내기도 하고, 때로는 아예 새로 자신만의 새로운 초능력을 가진 영웅을 발명해내기도 한다. 그리고 서로의 능력으로 싸우면서 자기 능력만의 독특한 강점으로 상대를 누르려고 하고, 그리고 의외의 약점을 파고드는 적들에게 밀린다. 그 와중에 계속 설정에 설정을 덧붙이며 우기고 우겨서 결국 놀이터의 우승자가 되어보고 싶어 한다. 어린이 놀이가 아닌 실제 어른 생활에서도 다소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는 패턴이기는 하지만, 그 원형적인 초월적 능력과 순수한 정의의 승부의 즐거움은 항상 한번쯤 다시 꺼내보고 싶은 꿈이다.
미국의 케이블 방송국인 SCi-Fi 채널에서 2006년 여름에 방영한 리얼리티쑈 『누구 슈퍼히어로가 되고 싶은 사람?』(Who Wants to be a Superhero)은 기본적으로는 이런 슈퍼히어로 되어보기 놀이의 성인 버전이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 장르문학/문화잡지 월간 ‘판타스틱’의 창간 준비호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스케쥴상 창간준비호 없이 바로 창간호가 나오고 창간호용 원고가 다른 기사로 이미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붕 뜬 글 (사실 칼럼 코너 자체가 지면 개편으로 2호 만에 없어지기까지…). 그냥 다른 지면 찾을 때까지 고이 보관해둘까 했다가, 그것도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그냥 적당히 공개. 아름다운 도판들은, 알아서 구글이미지검색님에게 물어보세요. ‘헤비메탈’이라고 키워드를 넣으면 아마 긴 생머리와 각진 턱의 기타 청년들 사진이 난무할테지만.
김낙호의 판타스틱 코믹스월드:
만화잡지 ‘헤비메탈’ 이야기 — 다른 세계의 풍광과 반라의 여자들
김낙호(만화연구가)
진지한 문학도들에게 환상 문학을 감상한다는 것은, 다른 룰에 의해 움직이는 다른 세계 이야기를 통해 우리 세계에 대한 각종 성찰과 비유를 즐긴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 하면, 나에게는 끝내 주게 멋진/우울한 환상 세계, 또는 은하계 너머 어딘가에 있을 다른 세계의 풍광과 소품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먼저다. 그 신기한 세계 속에서 주인공들이 음모에 휘말리고 모험을 벌이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이다. 이왕이면 에로틱한 상상도 자극하면 더욱 좋겠지. 장르 문학은 무슨 철학적 사유이기 전에 펄프 픽션을 발판 삼아 자라 온 정진정명 대중 문화다. 그렇기에, 아드레날린의 상상력을 눈에 보이도록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이야말로 팬들의 근원적 염원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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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 애국이고 파시즘이고 찾고 있는데 난데없이 취향 이야기를 해버리는 바람에, 가끔 난독증을 일으키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 듯 하여 친절한 부록 설명. 희대의 걸작 ‘멋지다 마사루’의 진정한 현인, 마사루가 그랬다. “세상은 사실 삼겹살과도 같아! 저기 저 빌딩도!”. 그래, 삼겹살로 살짝 설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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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연구자로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항상 재미 있는 담론쌩쑈가 끊이지 않는 한국의 온라인. 현재의 핫이슈에 아프간 피랍사건이 돋보이는 것이야 당연한 귀결이지만, 흥미롭게도 그것과 거의 맞먹는 정도로 주목받는 토픽이 있으니 바로 영화 ‘디워’. 특별한 사회적 이슈거리가 들어있지 않은 순수한 장르 오락영화 한 편으로 이렇게 시끌법적한 것을 보고 있다보면 참… 역시 고온다습한 날씨가 고온안습한 쌈박질을 만들어낸다고나.
!@#… capcold는 바로 그 헐리웃식 한국 괴수영화(…) ‘디워’를 아직 보지도 않은 입장에서, 솔직히 사람들이 그 영화를 좋아하든 열광하든 싫어하든 혐오하든 별로 상관없다. 다만 기왕이면 근거있는 사회, 앞뒤 ‘말이 되는’ 대화를 선호하기는 하지만. 뭐 그래도 자기가 좋아서 본다는데, 자기가 싫어서 안본다는데 뭐가 문젠가. 영화적 완성도, 장르적 성취의 기준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무리 디워를 싫어하더라도, 당신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좋아했다면 당신의 영화표 값은 한 것이다.
!@#… capcold에게 정작 흥미로운 것은 그저 영화를 마음에 들어한 사람들이 아니다. 남들도 닥치고 마음에 들어해야 한다고 미친듯이 소리치며 설파를 하는 뉴스 리플러들, 블로거들 쪽이 더 관심이 간다.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이야 뭐 줄기세포 만들면 산업이 쑥쑥 성장하고 옆집 병자가 모두 벌떡 일어선다는 식의 직접적 이익의 느낌이라도 있었지만, 솔직히 장르오락영화 한 편이 잘된다고 해서 그들에게 어떤 이익이 떨어진다고 상상하고 있겠는가. 심지어 종교라 할지라도 선교를 함으로써 자신이 얻는 이익(천국행)이 있다. 즉 정말로 ‘취향’의 문제이고 자기만족 이외에는 별반 동기부여가 없는 것이 정상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열성을 다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귀찮은 짓을? 항상 그렇듯 뻘스럽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도달한 capcold의 가설은 이거다: 자신의 취향에 그저 한없이 자신감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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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결 기념으로 지난달에 다루어준, ‘현시연’. 한번쯤 다루어보려고 하다가 계속 타이밍을 못잡다가, 완결을 맞이하여 결국 붙잡았음. 이것이 진짜 오타쿠니 아니니 그런 것 보다, 현대 대중문화에서 매니아/오타쿠라는 것으로 드러나는 취향과 정체성, 삶의 방식에 대한 생각을 잡아보기에 좋은 텍스트… 라고 capcold는 생각하지만, 뭐 어떨지.
『현시연』- 취향이 정체성이 될 때
김낙호 (만화연구가)
대중문화의 ‘매니아’라는 것은 참 애매한 위치에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원래 대중문화라는 것은 누구나 대중적으로 쉽게 소비층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미디어로 동시 대량 접근 가능하며 동시에 취향의 진입장벽이 낮아야 한다. 하지만 매니아라는 것은 그 분야에 심취하여 확고부동 뚜렷한 취향과 전문적인 식견을 지니는 경지를 이야기한다. 즉 근본적으로 ‘얕도록’ 설계된 문화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깊어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장르가 바로 만화, 애니메이션, 비디오게임, 캐릭터 장난감 등이다. 이들 매체는 영화나 대중음악 같은 매체들보다도 더욱 더 대중문화의 본질에 가까운 만큼, 이 분야에 대한 매니아가 된다는 것은 더욱 큰 각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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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가 영화 원작으로 열심히 쓰여서 유명세를 타고 돈이 산업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야 물론 훌륭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만화는 영화를 위한 최고의 보고라느니 하는 식의 호들갑 오버로 흘러가지 않도록 조금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어서 쓴 글.
만화, 영화계의 안중에 들어오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수년간 영화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만화를 원작으로 쓰는 것의 화제성이다. 물론 영화계에서 만화를 원작으로 작품을 만든 것이 비단 어제 오늘일은 아니지만, 한국이든 헐리웃이든 만화에 대한 관심이 난데없을 정도로 지면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300』이라는 만화 그 자체를 화면으로 옮기는 것이 지상목표인 영화가 큰 흥행을 이루며 이런 현상은 한층 더 고무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만화는 희망적 관점의 기사들이 이야기하듯 영화계의 새로운 돌파구이자 활력소인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런 것인가. 한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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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독자만화대상 결과가 발표되었군요. 차점자 등을 포함한 전체 목록은 여기로.
대상 「타이밍」| 강풀 | 문학세계사
단편상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김규삼 | 대원씨아이
신인상 「짬」| 주호민 | 동방문고상상공방
온라인상 「26년」| 강풀
심사위원상 「그린빌에서 만나요」| 유시진 | 서울문화사
!@#… 상식적인 수준의 결과가 나온 듯 해서 다행+왠지 모를 아쉬움 약간. 그러고보니 이전 해의 결과들과 비교해서 유난히 출판 순정만화가 약세. 투표인단의 인적구성에 대한 통계까지 나와봐야 알겠지만, 포털들의 홍보 협력 결과 몇몇 편중이 감소한 것 아닐까 추측.
!@#… 올 10월 31일은 할로윈. 할로윈하면…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 그리고 개봉 13년(!)을 맞이하여, 이 걸작이 무려 3D 입체영화로 재탄생. 상영장비가 갖추어진 극장이 한정된 관계로 아직 이 동네에서는 못보고 있지만 (…혹시 나중에 스파이키즈3D 처럼 DVD라도 출시가 되어주면 좋겠지만, 생각해보면 같은 ‘디즈니 디지털 3D’ 기술을 적용한 치킨리틀도 일반 2D만 나왔지) 그 발상 하나만으로도 이미 감동의 도가니. 그도 그럴 것이, 가상의 렌더링을 거친 CG작업 정도도 아니라 아예 실물 퍼펫을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니까. 즉 입체로서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없다고나 할까. 게다가 영화의 높은 조형적 미학을 상기해볼때, 이 멋들어진 고딕 난장판 동화의 입체판이 얼마나 막강할지 훤히 상상이 간다. 리뷰들이 이제 하나씩 슬슬 올라오고 있는데, 뭐 다른 말이 있겠나. 한 부분 인용하자면, “…사실 지금껏 이 영화를 한번도 안봤던 분들이 부럽다. 이 작품을 3D로 처음 접한다는 건 최고의 영화 경험 중 하나일테니까”. 그래서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한마디로, 보고싶단 말이다… -_-; 하지만 가장 가까운 극장이 한 140마일쯤 나가야 있다니(시카고), 대략 좌절스러움.
!@#… 그리고 입체판 개봉에 맞추어, 사운드트랙도 재출시. 이번에는 원본 사운드트랙에 보너스판이 하나 더 들어갔는데, 주요 노래들의 리메이크 또는 제작 당시 데모 버젼. 그 중 역시 가장 돋보이는 것은… ‘This Is Halloween’, performed by Marilyn Manson. 너무 잘어울려!!! 제작사 사이트에서 일부분 미리듣기 가능.
!@#… 93년 처음 미국서 개봉했을때는 개봉주말 성적 20만불에 최종 총수입도 고작(?) 5천만불이었던 그저그런 수준의 흥행성적. 90년대 중반의 디즈니 르네상스 속에서도 비디오 전용 속편이나 기타 프랜차이즈 작품으로 거의 뻗어나가지 못했던 이질적 존재 (완구류마저 주로 일본의 외부 기업들이 만들었지, 디즈니 공식 제품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뚜렷한 스타일 덕에 강력한 팬층을 거느린 덕분에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덕에 결국 이런 식으로 프랜차이즈 재런칭까지 왔다. 그 팬층의 일원으로 보자면, 참 감격스러운 일이다. 역시 이노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충직한 시장성을 증명해주면 결국은 공급이 움직여주게 되어있다니까. 때로는 팬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정도로까지.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그림을 읽는다는 것의 주관성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낙호 (만화연구가)
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그 의미가 ‘아닌’ 것부터 하나씩 살펴보면서 시작해보도록 하자. 우선,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은 바로 감상에 대한 하나의 모범답안, 절대적인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단히 부실하게 꾸며진 공공교육 미술 교과서에 대한 참고서의 요점 정리마냥 달달 외우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 예술의 감상이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메시지와 감성과, 감상자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와 감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던 사회적 맥락과 개인적 경험 속에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것을 그대로 탐정마냥 추리해내는 것은 미술사적 연구의 의미는 있지만, 감상이 아니다. 감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감상자 자신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 맥락과 개인적 경험 속을 작품 속에 투영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간단한 사실은 작가의 작품이 권위의 무게를 뒤집어쓰면 쓸수록 점점 잊혀지곤 한다. 특히 모든 사회적 맥락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거의 권위만으로 사회적 입지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고전 미술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지나치게 권위로 포장한 나머지 오히려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면 모를까, 진정한 ‘감상’이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김치샐러드 / 학고재)은 바로 감상이라는 행위에 관한 만화다. 원래 블로그의 인기 연재물로 큰 인기를 누렸는데, 미술 전문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여져 나온 것이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손가락을 캐릭터화한 주인공들이 명화 한편을 놓고, 그 속에 담긴 여러 의미구조들에 대해서 분석해가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분석은 결코 교과서적이거나 작품의 무게에 눌린 일방성에 빠지지 않는다. 바로 감상자가 처해 있는 사회적 현실, 바로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깊은 집단적 우울함을 지니고도 여하튼 희망도 찾아보는 평범한 현대인들의 세계에 비추어 그림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필리어』그림들은 경직된 현대인들이 ‘미친년’의 내적 평온과 자연성을 갈구하는 매력적인 회귀본능이며, 밀레이의 『눈먼 소녀』속에서 현재의 절망과 미래의 무지개에 대한 희망을 읽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어떤 미술 교양 해설서보다 더 현대를 살고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 와닿을 수 있으며, 설명에 의한 이해가 아니라 예술의 가장 일차적인 향유 방식인 ‘감상’의 기능을 복귀시킨다.
이 만화의 형식과 서술 방식 역시 이러한 목표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 우선, 감상의 각 요소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명화를 조각내고 변형하며 말풍선을 달아가며 상황을 희화화하는 것에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 그림과 사진, 각종 아이콘들을 간단히 포토샵으로 합성한 것에서 오는 아마추어적인 취향 역시 지극히 실용적이다. 하지만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에 걸맞게 쉽게 복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기법 자체보다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인터넷 상의 여러 문화 현상들을 작품 감상의 과정에 깊숙이 개입시키는 것에 일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바로 이런 표현기법들이, 오늘날 인터넷 게시판과 커뮤니티들의 가볍고도 실용적인 시각문화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특히 감상자가 처한 사회적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서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위 ‘짤방’ 이미지를 직접 인용하여 엮어 넣는 자유로움 역시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고정된 시각 이미지의 연속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만화 특유의 속성 역시 바로 이런 보여주며 말하는 목표에 가장 적합하게 작용한다. 마치 명화를 자신의 방식으로 감상해내는 내용처럼, 이 작품 역시 독자들에게 자신의 사회적 맥락, 문화 속에서 읽혀지기 쉽도록 친근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소통으로서의 미술, 미술 감상하기의 자세가 과연 작가가 완전히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기술적 한계의 결과인가 의심을 가질만할 법도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가끔 발표하는 미술작업들(특히 재기발랄함이 살아있는 ‘녹차소년’은 압권이다)은 그런 의심을 말끔하게 제거해주고도 남는다.
하지만 인터넷 상의 만화와 책으로 나온 만화 사이에는 다소의 격차가 있기 마련이다. 비단 길다란 횡스크롤을 책의 형태로 잘라 붙임으로서 나오는 연출 상의 변화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세계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평범한 누리꾼들에게 공감을 자아내는 발표형식과 두꺼운 미술서적을 사서 읽고 싶은 사람들 사이의 격차라는 것이 있다. 특히 출판사가 원래 ‘무거운’ 미술 교재 전문 출판사라는 점은 책의 품질에는 플러스, 책의 수용 방식에 있어서는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양날의 칼이다.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미술 전문 서적이 아니라, 현대 문화 비평 에세이에 가깝다. 인터넷 상에서는 그런 감상을 자아낼 수 있는 작품이었으나, 미술 서적의 형식으로 나온 책 버전은 자동적으로 다른 맥락을 요구하게 되는 셈이다. 작가가 재구성한 듯 한 책의 흐름 역시 그런 점을 어느 정도 의식하여, 우울함의 바다에 빠지는 일화부터 시작하여 후반에는 보다 내밀한 고백과 결국 불안한 독백과 암전으로 끝나는 ‘닫힌 구조’를 취한다. 책으로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작품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이자 이 작품이 공감을 자아낼 수 있었던 기반인 열린 감상이라는 측면을 쇠퇴시킨 셈이다. 이 작품의 원래 인터넷 팬들은 한 명의 작가에 의해서 창조된 명화에 대한 한명의 미술전문가에 의한 구조적 해석을 바란 것이 아니라, 감상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즐거움을 원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화 해설이 아니라 현대 인터넷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이 돋보이는 ‘외전’격 작품이었던 ‘의기양양 조선 고양이’ 라든지, ‘21세기 풍속화첩’이 이번 책에서 제외된 것이 적잖이 섭섭하다. 책의 구성적 일관성 측면에서는 분명히 제외되는 것이 타당하지만, 작품의 진정한 매력에 있어서는 가장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도시문명과 인터넷 속에서 소통하며 살아가는 현대 문화에 대한 감성적이고 날카로운 통찰이, 단순히 약간 대중적인 그림 해설서처럼 보이기 쉽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즉 이 작품의 출판과 홍보의 컨셉 조절에 있어서 근본적인 발상의 재정비가 필요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대적 감수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 자신의 감성에 대한 솔직함,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만화적 의지, 이 모든 것에 인터넷 세대의 연결 지향성이 더해지자 명화의 감상이라는 행위는 이 작품 속에서 새로운 차원 –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원래의 차원 – 으로 이동했다. 뭉크도 쿠르베도 브뤼겔도, 결국 우리 자신을 읽어내기 위한 도구다. 우울해(海)를 떠도는 이상한 손가락들의 그림 읽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예술의 감상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약간 다시 생각할 자극을 주는 작품이라는 것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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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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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지음/학고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