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를 직면하기 –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 [기획회의 321호]

!@#… 지나치게 뻔하게도, 푸코를 언급하고 말았다(…)

 

광기를 직면하기 –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

김낙호(만화연구가)

광기, 즉 인간사회에서 일반적이라고 여기는 건강한 정신 상태에서 크게 벗어난 인지와 행동방식은 그 일탈적 속성 때문에 늘 매혹적인 소재다. 그런데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주장하듯, 광기라는 현상 자체만큼이나 광기를 바라보는 사회의 해석이 더욱 흥미롭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광기는 이질적 혼령이 깃든 것으로 여겨졌기에, 악마가 낀 것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든 그냥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고 방치하든 했다. 하지만 근대와 함께 광기는 게으름 같은 도덕적 평가의 대상, 즉 정상적 노동과 사회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잣대로 평가되게 되었다고 한다. 즉 광기는 격리된 감금 관리를 통하여 치료로 갱생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좀 더 복합적인 접근으로 발전했다. 근대 흐름의 바탕 위에, 광기의 어떤 요인들은 우리 모두의 안에 내재된 어떤 성향들이기도 하며, 생물학적 요인도 있기에 한쪽으로는 약품에 의한 완화도 가능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원래 그런’ 인간들도 있다고 인정한다. 그렇기에 혼령을 쫒아내는 것도 개인의 게으름을 교정하는 것도 아닌, 미쳐버릴 조건들을 조금이라도 더 파악하고 방지하는 것이 좀 더 관심사가 되었다.

배트맨의 세계관과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하는 단독 작품에 대한 선호 목록을 만들면 거의 항상 꼽히곤 하는 작품이 바로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그랜트 모리슨, 데이브 맥킨 / 세미콜론)이다. 1989년에 코믹북 연재 없이 바로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 책은, 87년의 [다크나이트 리턴즈], 88년의 [킬링 조크]에 이어 거칠고 암울한 배트맨 스토리의 정점을 자랑한다. [다크나이트 리턴즈]가 탐정 느와르 설정을 재발굴하여 정의와 힘에 대한 폭력적 우화를 만들고 [킬링 조크]가 조커와의 대립을 통해 광기의 양면성과 탄생과정을 비극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은 아예 작품의 세계, 어쩌면 우리 세계가 이미 빠져나올 길 없는 정신병동과도 비슷하다고 강렬한 심상들을 통해서 역설한다. 90년대부터 늘 미대 앞 미술서점들의 단골손님이었던 이 작품이, 빽빽하고 복잡한 그래픽 스타일 때문에 결코 쉽지 않았을 성실한 한글화 작업을 거쳐서 국내 출간되었다.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평행적으로 흘러간다. 하나는 광기 넘치는 슈퍼범죄자들을 가득 가두어놓은 아캄 정신병동 겸 수용소에서 인질극이 발생하는데, 인질범들의 요구대로 배트맨이 병원 안에 들어가서 그들을 대면하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과거 어느 시점, 아마데우스 아캄이라는 남자가 비극적 개인사를 딛고 아캄 정신병동을 만들고 그 안에서 광기에 휩쌓인 범죄자와 대면했던 사연이다. 현재의 이야기에서 배트맨은 조커와 기타 광기어린 범죄자들과 대결하며 인질들을 구하면서도 자신을 배트맨으로 나서도록 만들었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자극받아 결국 광기에 빠지지 않기 위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과거의 이야기에서 아마데우스는 자신이 정신병동을 세운 이유와 목적을 잊지 않고 범죄자들을 ‘치료’하면서, 스스로도 개인적 원한에 휩싸여 잔인한 광기어린 복수를 하는 것을 참아야 하는 갈등에 빠져있다.

배트맨과 아마데우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각자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을 가지고, 그것을 사적 원한보다는 사회적 정의 구축을 통해 풀겠다고 개인적으로 나선 것이다. 배트맨은 그것은 어린 시절 눈 앞에서 부모가 범죄자들에게 살해당한 기억이고, 아마데우스에게는 심각한 정신병을 앓던 어머니를 자기 손으로 영면시킨 일이다. 배트맨은 어린 시절 공포의 이미지로 각인되었던 박쥐를 모티브로 해서 범죄자들을 개인적으로 체포하되 사법제도에 넘기는 파수꾼이 되었다. 아마데우스는 개인적으로 아캄 정신병동을 설립하여 범죄자들의 광기를 치료하고자 했다. 아마데우스의 결말은 어둡다. 자신의 아내와 딸이 처참한 범죄를 당하고 그 범인이 바로 자신이 치료하여 풀어준 범죄자였음이 드러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되자 그는 공적 정의감으로 시작한 활동을 사적 원한을 위해 악용하고, 그렇게 깨진 균형의 결과 스스로도 광기에 떨어져 자신의 수용소 안에 갇힌 채로 최후를 맞이한다. 그렇다면 배트맨은 어떨까. 사적 원한과 공적 정의감의 불안한 균형을 깨트리지 않고 범죄자들을 대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이들을 아캄에 불러 모음으로써 더욱 광기를 키워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이야기는 그 모든 것을 직면할 때 벌어지는 마지막 파국을 향해 흐른다.

광기를 직면하기보다는 억누르고 전이시켜서 악화시키는 모습은 아캄 수용소에 있는 악당 투페이스에 대한 치료 광경에서 잘 드러난다.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어 보며 동전을 던져서 운명의 우연에 모든 판단을 맡기는 그에 대한 치료법으로, 병원은 그에게 먼저 6면체인 주사위를 주었고 나아가 타로카드를 주었다. 더 많아진 선택지를 거치며 그런 식의 선택과정이 필요 없음을 학습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화장실을 가는 것 같은 간단한 선택조차 못 내리는 폐인으로 만들어갈 뿐이었다. 같이 감금되어 있는 조커, 매드해터, 클레이페이스 등 다른 어떤 이들도 더 광기가 넘치면 넘쳤지 ‘나아진’ 경우 따위는 없다. 마치 아마데우스가 과거에 범죄자 ‘매드독’을 치료했다고 자만했지만 그가 결국 전혀 나아진 바 없이 가족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비극을 저질렀듯, 순박한 희망 따위는 광기의 무게 앞에서 의미가 없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직면하며 짊어지고도 계속 자신의 균형과 역할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 마지막까지 배트맨에게 남겨진 숙명이다. 하필이면 그것은 마지막에서 투페이스가 던진 동전에서, 그리고 결과에 대한 그의 선택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미쳐버릴 조건들은 배트맨에게도 가득하며, 다른 범죄자들도 과거 아마데우스도 그런 것이 폭발했다. 배트맨은 더 오래 그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비록 대부분의 독자들은 박쥐 가면과 망토를 두르고 범죄자를 사냥하러 다니지는 않지만 말이다.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을 논하면서 시각적 스타일을 언급하지 않기란 힘들다. 판화, 유화부터 사진 꼴라쥬까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독특한 어둠의 환상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정평이 나있는 데이브 맥킨의 분방한 실험이 이 작품의 스토리와 함께 최적의 궁합을 이룬다. 그 속에서 거울, 달, 카드 같은 상징성 다분한 소재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반복된다. 덕분에 줄거리 진행 위주로 자연스럽게 흐르기보다 계속 악몽 같은 심상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데, 다른 내용의 이야기였으면 큰 단점이 되었겠지만 경계 없는 광기가 주제 그 자체인 작품이기에 오히려 잘 녹아들어가고 있다. 나아가 캐릭터마다 각자의 스타일을 자랑하는 식자도 일품인데, 한국어판에서도 그 질감을 거의 비슷하게 번안해내는 것에 성공했다(글꼴의 모양 때문에 어떤 인물들의 대사를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면이 있는데, 다분히 의도적이다).

배트맨 : 아캄 어사일럼
그랜트 모리슨.데이브 맥킨 지음, 박중서 옮김/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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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세인트영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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