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정의 -『배트맨: 다크나이트 리턴즈』[기획회의 231호]

!@#… 기획회의에 배트맨 만화책 소개 연타(라고 해도 결국 애초에 썼던 책내서평용 원고를 재가공한 버전). 여담이지만, 사실 영화 ‘다크나이트’는 감독과 각본의 놀란 형제가 투페이스가 죽은 것으로 확정짓고자 했다고 알려진 순간 capcold의 개인적인 평가가 2단계쯤 하락… 다행히도 제작자의 입김으로 결국 생사여부가 모호하게 처리되었지만. 행여나 ‘감독판’을 만들어서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이런 경우는 감독으로부터 자신의 작품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ET, 스타워즈 등등). 여튼, 놀런 형제가 ‘다크나이트리턴즈’ 만화책을 다시 한번 일독하기를 권장할 따름이다.

 

거친 정의 -『배트맨: 다크나이트 리턴즈』

김낙호 (만화연구가)

2008년 여름은 유난히 양질의 대형 오락영화가 많았던 시즌이었다. 그 중 최고의 영화를 뽑으라면 각자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가장 큰 화제를 모았으며 흥행을 거둔 영화라면, 단연 ‘다크나이트’를 꼽을 수 있다. 배트맨이라는 슈퍼히어로 만화 캐릭터를 범죄드라마 풍으로 해석한 접근법이 악역인 조커의 카리스마(및 배우의 비극적 사망의 화제성)와 맞물리며 호평 일색이었다. 하지만 찬사의 물결 속에서도, 배트맨의 오랜 팬들에게는 다소 눈에 차지 않은 부분은 있다. 배트맨이 너무… 신사적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캐릭터는 무소불위의 대부호면서, 범죄를 자기 주먹으로 두들겨 부숴내는 행동력의 소유자다. 법질서의 바깥에서 움직인다는 도덕적 모호성의 문제를 영화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티해리가 아닌 신참 순경 같은 느낌이랄까, 법질서를 무시한 무력 개입을 자신의 업으로 선포한 자 치고는 너무나 악당들에게마저 얌전하다. 또 한 가지 단점은 바로 시민의식에 희망을 거는 것인데, 인간에 대한 성선설 느낌의 희망은 고담이라는 범죄도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우둔함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군상인데 그래도 지켜내려고 하는 거친 고집이 바로 배트맨의 세계관이 기반하고 있는 느와르적 설정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저항군이 아니라 시민들에게서 희망을 찾는 순간, 배트맨의 역할은 다한다. 얄궂게도 배트맨을 소재로 하는 유구한 작품세계 가운데에는 영화 ‘다크나이트’가 보여주었던 장점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앞서 제기한 단점들이 없는 좀 더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 있다. 그것도 20년 넘게 앞서 발표되었다. 그것이 바로 『배트맨: 다크나이트 리턴즈』(프랭크 밀러 / 김지선 옮김 / 세미콜론)다.

『배트맨: 다크나이트 리턴즈』는 원래 1986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환갑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중노년의 배트맨이 등장하는 일종의 후일담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작품은 그때까지 진행되던 배트맨 세계관에 강력한 활력을 불러 넣어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었다. 『다크나이트 리턴즈』가 당시 이미 수십년 동안 진행되어 동력을 잃었던 배트맨 시리즈를 재활시킨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바로 배트맨 시리즈의 가장 원천적인 매력으로 돌아가서 더욱 현대적 맥락으로 극대화시키는 식이다. 어둠의 정서, 기사의 거친 모험 활극, 그리고 항상 다시 돌아와서 일을 처리하는 고집. 전성기를 훌쩍 넘겨서 떨어지는 신체능력은 더욱 강렬한 의지로 극복하여 더욱 배트맨의 거친 방법과 완고한 성격이 강조되었다.

작품의 줄거리는 배트맨이 은퇴한지 오랜 시간이 지난 고담시에서, 다시 기승을 부리는 범죄를 보고 결국 중노년의 브루스 웨인이 다시 박쥐옷을 입고 거리로 나서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히어로의 존재 자체 때문에 더 강한 악의 세력 또한 일어난다는 모순도 제시되고, 슈퍼히어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 때문에 국가의 시스템 속에서 움직여야 할지 아니면 오히려 더욱 스스로 일어나는 초법적 자경단의 역할을 해야할지 딜레마도 드러난다. 조커라는 악의 화신이 사실은 배트맨 자신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라는 섬뜩함도 살아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수단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소재도 넘쳐나고, 그 모든 것이 극도로 거친 배트맨의 싸움 속에서 펼쳐진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면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이후 등장했던 수많은 ‘성숙한’ 슈퍼히어로물의 씨앗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대중문화에 끼친 이러한 영향만으로도, 이 작품은 만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전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작품은 배트맨 세계관의 본류가 아닌 별도 세계관의 외전(혹은 관점에 따라서는, 평행세계의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이런 영향력과 작품 자체의 훌륭한 완성도에 힘입어 항상 가장 대표적인 배트맨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사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속성 때문이다. 그는 엄밀하게 말해서 슈퍼히어로라기보다, 슈퍼히어로들과 맞먹는 능력을 발휘하는 그냥 히어로다. 처음 이 캐릭터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근원은 ‘탐정’, 즉 선한 의지의 상징체가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자였다. 즉 애초부터 하드보일드 탐정물 장르의 유행과 새로 부상하는 슈퍼히어로물 사이의 혼성으로 탄생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슈퍼히어로물의 전반적 흐름 속에서 계속 어둡고 성숙한 배경은 희미해지고 가면초인과 가면악인의 추격전만 남았던 바 있는데, 이 때 작가 프랭크 밀러가 다시 본질로 돌아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배트맨은 인간과 다른 종들과 어울려 시간을 허비하는 모험가가 아니라, 자신의 터전을 어지럽히는 악을 뿌리 뽑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자경단이다. 즉 숙명적인 거대한 선의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 고집스럽게 주먹을 휘두르는 자다. 심지어 지키는 대상이 지켜지고 싶어하든 말든 말이다. 인간 형상을 한 선 그 자체인 슈퍼맨과 정반대의 입장인데, 덕분에 이 작품에서는 정부 요원이 된 슈퍼맨과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슈퍼맨이 모든 초월적 힘을 내세울 때, 배트맨은 탐정답게 지략으로, 히어로답게 각종 장비와 주먹으로, 인간답게 고집으로 맞선다. 이것은 보편적 이상으로서의 ‘선’과는 거리가 멀고, 수단 방법을 총동원해서 다해서 악을 때려잡는 행위일 뿐이다. 장총 한 자루를 들고 자기 마을을 어지럽히는 무법자들을 처단하는 서부의 카우보이, 세계 경찰 같은 이상한 욕심으로 망가지기 이전의 미국식 정통 보수주의의 모습이다. 보수를 내세우고는 제국적 야심과 무력한 관료주의에 동시에 빠졌던 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사회상에 거칠게 한 방 날린 셈이었다.

20년 늦게 나온 한국어판은 작품 특유의 박력 넘치는 묘사와 거친 펜선, 중계화면과 사건 경과를 교차시키는 페이지를 자잘하게 분할하는 연출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넘쳐나는 분량의 대사들을 비교적 수월하게 옮겨내고 있다. 양질의 인쇄, 그림 속 음향효과에 대한 자잘한 번역 생략, 의미와 뉘앙스와 분량을 조율해내는 번역 등을 통해서 말이다. 물론 느와르적인 거친 대사 질감이 좀 더 잘 살아났으면 하는 욕심은 끝이 없지만, 같은 작가, 번역자와 출판사에서 낸 바 있는 또 다른 느와르 명작 『씬시티』시리즈 당시보다 한 층 자연스러워졌다. 반면, 배트맨 만화책 시리즈의 세계관이 아직 한국의 일반 독자에게 비교적 낯선 편인 만큼, 이 작품의 맥락이나 캐릭터 소개가 부록으로 첨부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알아본 바, 미국 출판사의 융통성 없는 방침 때문에 한국 측의 기획이 좌절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종합적으로 볼 때, 만족할 만한 품질로 나와 주어서 그저 고마운 작품이다. 저돌적 에너지로 저항적 히어로를 복권시키는 『다크나이트리턴즈』는 슈퍼히어로물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경지를 보여주었고, 그 틀은 이제는 하나의 장르적 표준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작품은 마음놓고 ‘고전’의 반열에 올려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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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 2
프랭크 밀러 외 지음, 김지선 옮김/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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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크나이트리턴즈 + 왓치맨. 작품 자체로서는 100점만점에 108점이고 이 분야의 고전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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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질문 / 1. 최근에 ‘출판저널’이 휴간을 가장한 폐간이 되어버렸죠. 신문에서는 ‘출판저널’이 유일한 서평지라고 하는데, 사실, ‘북새통’이나 ‘기획회의’ 도 서평지의 개념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본문과 전혀 상관없는 칭찬 / 2. 참고로 저는 ‘기획회의’를 정기 구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 ‘기획회의’에만 만화 서평이 유일하게 나와 있어요.
    캡콜드 님 덕분에 제가 이상한 세상을 유쾌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수고요.

  2. !@#… Skyjet님/ 한국의 언론 보도는 ‘유일’, ‘최초’ 같은 무척 민감한 단어들을 무척 무책임하게 남용하는 사례가 많은 편이죠. 뭐 저도 개인적으로도 기획회의가 특집의 기획력이나 방향성, 다루는 장르의 폭 등이 더 적성이 맞습니다(핫핫)… 만, 역시 출판저널급의 경력을 지닌 잡지가 중단되는 것은 언제봐도 아쉬운 소식.

  3. !@#… 잠본이님/ (사실 그 기획, 애초에 제가 잠본이님을 추천했었더라는… 아아 송구스러워라)

  4. !@#… Dreamlord님/ 핫핫! 옙, 다른 분께도 최근 추천받았습니다. 시작부터 뒤집어지다가, “She’s better than Dick”에서 결국 쓰러져버리고 말았다는…;;;

  5. !@#… 잠본이님/ 하지만 속편인 DKSA까지 이런 싱크로가 계속되면 세상이 참 난감해지겠죠;;;

  6. 배트맨: 이어 원을 다시 읽고 문득 캡콜드님의 배트맨 서평들이 생각나서 들러봤습니다.

    시민의 양심에 희망을 거는 배트맨은 물론 기존의 시리즈의 배트맨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저는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창조적 재해석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라는 이름이 그야말로 자경단원으로서의 배트맨의 위치를 상징한다면, 놀란의 ‘다크 나이트’라는 이름은 시종일관 ‘화이트 나이트’에 대비되는 역할로서의 배트맨을 부각시키고 있잖아요.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영웅,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기를 원하는 영웅이 영화 속 배트맨의 정체성 아닐까요? (덕분에 영화에서의 존재감도 사라지고 있지만…OTL) 캐릭터 차원에서는 이 새로운 배트맨이 예전의 배트맨보다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덕분에 전체적인 작품성은 한층 올라갔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

    그나저나 이어 원은 정말 명작이네요. 다크나이트 리턴즈는 처음 읽을 때는 흡인력이 대단했지만 다시 읽으려니 그 흘러넘치는 마초성 때문에 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데, 이어 원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이에요. :)

  7. !@#… 매애님/ 이어원 서평도 찾아보면 있습니다(핫핫). 이어원의 묵직한 절제, 좀 많이 훌륭하죠. / 영화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은 사회시스템에 대한 비유로서 훌륭한데, 캐릭터로서는 아무래도… 이건 뭐 돈도 많고 실력 좋고 잘 생긴게 못된 성격과 콤플렉스마저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