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와 교양의 균형 – 『고전만화해제』[기획회의 070701]

!@#… 좋은 출발. 아마 이번 소설편보다, 시편 정도에 들어가면 더욱 진가가 드러날 듯.

이야기와 교양의 균형 – 『곰선생의 고전만화해제』

김낙호(만화연구가)

‘고전’이라는 수식어는 작품에게 있어서 영광이자 커다란 짐이다. 영광인 것이야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짐이라니 무슨 말인가. 고전이라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대표적인 우수작이기에 부여되는 타이틀인데, 거꾸로 보자면 그만큼 일관된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범생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고전이라는 딱지는 재미없는 옛날 작품이라는 의미를 자동적으로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운 나쁘게도 의무교육 과정 속에서 교과서로 처음 접하는 불행한 사태라도 생긴다면, 그 작품의 재미는 영영 복권될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 이전에 당장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는 것은, 그 만큼 재미있는 구석이 있었기에, 끌렸기에 그랬다는 것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고전으로 인정받을 만큼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우수작들은 실제로는 재미있다. 인간사의 사연이 서정이나 이야기로 담겨있고,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통렬하게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미를 제거하는 엄숙주의 교육문화의 폐단일 뿐, 고전 작품들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최근 출간된 고전소설 교양 학습만화인『곰선생의 고전만화해제 – 소설편』(김경호 그림, 이정호 글 / 길찾기), 약칭 『고만해』는 다른 모든 이야기를 떠나서, 고전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쉽고 재미있다”는 뻔한 표현이 지겹더라도, 다른 표현을 찾기가 도저히 힘들 정도로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인위적으로 제거당한 고전의 이야기와 사회문화적 재미를 되찾으면서, 동시에 교양 학습만화로서의 목표인 고전문학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난해한 과제 앞에서, 오히려 그 고전들의 본질을 파고드는 정공법으로 돌파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시도를 가능하게 해준 매체적 우군은 해학과 진지한 이야기, 그림과 글을 동시에 유연하게 구사하는 힘을 지닌 만화다. 평이한 문체, 명쾌한 해설, 명료하면서도 지극히 해학적인 동양화풍의 그림체가 결합하면서 한국 문학사의 고전소설들이 주제별로 잘 분류되어 펼쳐진다.

『고만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앞서 말했듯, 이야기의 재미와 시대적 맥락을 동시에 추구하여 그 고전작품이 가졌던 본래의 재미를 복권시켜주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체택한 서술상의 특징은, 그저 마냥 줄거리만 풀어주는 것도 아니라 정말로 그 내용을 해제하는 것이다. 본 작품에서 각 고전소설의 이야기를 소개할 때마다 학습만화에서 종종 등장하곤 하는 ‘선생님’형 캐릭터가 나오는데, 특이하게도 그는 극을 설명해주기도 하거니와 극에 직접 개입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유연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신 주인공이 되어주지도 않는 미묘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이것은 바로 전통적인 고전소설이나 판소리 등에서 작가나 소리꾼이 견지했던 자세이기도 한데, 줄거리를 읊으면서도 사이사이에 군소리나 해설을 붙이면서 직접 개입하여 교훈을 넣고 당대 사회의 맥락과 연결지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가르치려는 투가 아니라 궁금한 부분, 이상한 부분에 대한 해설을 살짝 해주고 다시금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돕는 도우미의 자세가 중요한데, 자신의 얄팍한 지식을 드러내고자 혹은 다급하게 학습을 시키겠다고 긴장하는 뭇 유사 도서들과는 달리 정말로 그 균형을 유지하기까지 한다. 독자와 소통하는 호흡을 제대로 조절할 줄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의 가장 앞에 수록된 작품인 ‘만복사저포기’를 보자. 솔직히 제목을 만복/사저/포기라고 읽고, 줄거리 요약 두 줄로 대충 때우고 문학적 의의 1분 설명하고 넘어가기 일쑤인 작품이다. 암기카드의 한 줄짜리 노트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이야기’가 솜씨 좋은 재담 듣듯이 눈 앞에 펼쳐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만복사에 가서 저포 놀이를 매개로 해서 결국 영혼과 사랑을 나누다가 헤어진,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양생과 국어선생님이 나누는 짤막한 대화들의 만담스러움,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 속에 들어있는 만만치 않은 유익한 학습 내용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독자들을 작품에 몰입시킨다.

이런 성공적인 만화 서술을 가능하게 한 것은, 창작의 호흡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미스 에어백』 같은 세태풍자 개그만화로 데뷔하고, 현재는 동양화풍을 이용한 개그 카툰에 특화된 김경호가 그림을 맡았다. 그리고 현업 국어강사이자 김경호와 마찬가지로 ‘화끈’ 동인에서 만화가 활동을 해온 이정호가 글을 맡았다. 각자 자기 분야의 전문가들이자, 만화라는 코드를 충분히 이해하는 이들의 작업이기에 자연스러운 전문성이 확보가 된 셈이다. 단지 직능인으로서 동원되어 임의의 프로젝트에 협업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장점 분야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소재와 방법이다. 여기에 수개월의 추가 시간을 소요해가면서 수차례의 실제 독자 테스트 및 전문가 리뷰를 거쳤다는 출판사의 프로덕션 능력 또한 중요하게 기능하며, 이 정도 수준의 재미와 교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여기에 마케팅과 입소문 조성까지 제대로 붙어준다면, 모 베스트셀러들처럼 사실상 환타지 모험 활극으로 전이시키지 않고도 고전 학습만화가 히트할 수 있다는 중요한 선례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선생 캐릭터가 해설을 해주는 내용이 참조자료 출전이 따로 밝혀져 있지 않아, 책의 내용을 유일한 절대적 진리처럼 포장하곤 하는 일반적인 국정 교과서들의 폐단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유사한 내용의 다른 작품을 더 찾아보게 만드는 작품 소개 등에 따로 신경이 할애되어 있지 않다. 즉 이 두 요소 모두 다루고 있는 내용을 이 책 안에서 완결 짓고는, 여기에서 얻게 된 지식과 궁금증을 더 확장시켜보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쉬움의 영역이지 잘못은 아니다. 여하튼 그러한 부분들은 결국 책을 읽는, 혹은 누군가에게 읽혀주는 독자분들이 스스로 보충해야할 지점이다.

『고만해』는 중고등학교 표준 참조 도서로 자리매김해도 이상하지 않을, 우수한 작품이다. 이번 편에서 선보인 이야기와 해설의 균형을 이룬 재미가 이후에 출시 예정이라는 소설 이외의 다른 장르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불안함도 있지만, 이 정도의 창작력을 발휘하는 창작자 팀이라면 충분히 기대를 걸 만 하다. 적어도 이번에 출시된 『고만해』 시리즈의 첫 권은, 전국 중고등학교 학급 서가마다 하나씩 꼽혀있어야 할 물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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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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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선생의 고전 만화 해제
이정호.김경호 지음/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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