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학교성장초능력개그물 -『강특고 아이들』[기획회의 222호]

!@#… 풀의 꽃은 잠시의 슬럼프였을 뿐, 르브바하프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작품. 더 유명해져야 마땅하지만, 현재 한국의 종이만화잡지의 한정적인 파급력이 웬수지.

 

기숙학교성장초능력개그물 -『강특고 아이들』

김낙호(만화연구가)

한 세대를 규정지은 엄청난 히트작 『해리포터』 시리즈의 인기비결은, 특이한 인간들이 모여서 마법이 난무한다고는 해도 결국은 기숙 학원성장물이라는 탄탄한 검증된 근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에 대한 세계관을 체계화시키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 작가의 창작력을 조금이라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장르적 기반은 큰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기숙학교성장물의 전통은 원래 유럽의 청소년 문학에서 뚜렷하게 형성된 것인데, 생활의 모든 면모를 같이 하게 된다는 공동체 설정, 학교라는 배경이기 때문에 기본으로 깔리는 성장의 테마, 어른들이라는 더 강한 존재들이 현명한 조력자 역할도 문제적 역할도 일임하는 방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현재형이지만 결국 끝이 나고(예를 들어, 졸업) 그 후에 새로운 무언가가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있다. 현재 청소년이거나 한 때 청소년이었던 이들에게 정서적 공감대, 혹은 최소한 친숙함을 불러일으키기에도 좋다. 이런 건전무쌍하면서도 확실하게 폭넓은 호소력을 가지는 장르가 어디 있겠는가.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한국이라는 곳은 워낙 극악한 교육제도 덕분에 도저히 무려 기숙학교 생활에 낭만적 판타지의 요소를 넣기 힘들기는 하다. 왠지 합숙소 지옥훈련 스파르타 그런 생각부터 들곤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만약 그런 이미지들을 그냥 그대로 쓰면서, 적당히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유쾌한 기숙학교물을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물론 초자연적인 능력 같은 소재는 보너스. 해리포터에 대한 한국식 화답 정도 되겠다.

『강특고 아이들』(김민희/2권 발매중/서울문화사)는 개그만화다. 그것도 본연의 목적을 무척 훌륭하게 달성하고 있는, 즉 웃지 않고 넘어가기 힘든 대목들로 가득한 만화다. 그런데 그 근간은 은근히 탄탄한 기숙학원물에 있다. 이 작품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 남매 두 명이 한 학교에서 온 초대장을 받고 그곳에 입학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강원도 어느 깊은 산 속에 위치한 기숙형 특목고에서(!) 보내는 학교생활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그 백년 전통의 특수목적 고등학교는 하필이면 초능력 전문이다. 초월적 재능을 보유한 각종 학생들을 전문 육성 기관에서 발굴해서 입학시키는 것은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학교나 엑스멘의 제비어 학원을 연상시키지만, 강특고는 무척… 별 것 없다. 그냥 학생들이 초능력자들이고 선생들도 초능력이 있다 뿐이지, 특별히 초능력에 대해서 엄청난 공부를 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냥 국영수 선생들이 진도 나가는 것이다. 산골에 지어놓느라 안 그래도 낡은 학교 부대시설 건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티비나 인터넷 같은 문명의 이기와도 거리가 멀다. 문명의 이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재래식 화장실에 온수가 안 나온다. 물론 건물 사이의 거리가 멀어서 식당을 가려면 암벽등반을 해야 한다든지 기숙사는 흔들다리를 건넌다든지 하는 것도 기본이다. 이런 설정만으로도 이미 웃음을 유발시킬 만반의 준비가 갖춰졌다.

그런데 사실 이쪽 장르의 특징이라는 것은, 현실과 얼마나 교묘하게 균형추를 이루면서 공감과 환상을 오가느냐에 달려있다. 이런 부분에서 『강특고 아이들』은 무척 한국적이다. 명문이라고 간판을 내걸고는 실제로 군대 막사만도 못한 생활수준에 엉터리 커리큘럼을 학생들이 인터넷에 폭로해서 물의를 빚은 최근 모 고등학교 사건을 떠올려보자. 아니 사실 특목고 전설 자체가 고등학교 정식 인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닥치고 설립부터 해놓고는 편법으로 커리큘럼을 막 굴려서 입시 실적을 올리며 명망을 높인 어떤 학교들에서부터 시작한 것 아니던가. 겉모습 폼 나고 속내는 무척 부실한 상황, 그러나 분노보다 허탈함이 앞서는 그런 환경은 한국에서만큼은 환타지가 아니라 현실의 영역인 것이다. 그런 기묘한 현실일수록 현실비판으로 가는 것도 의미 있는 접근이겠지만, 아예 환타지의 소재로 포장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효과가 된다. 현실비판 개그만화가 아니라, 현실의 요소들이 미묘한 방식으로 섞여 들어가서 공감을 주되 그것을 환타지로 만들어서 유쾌한 배합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학원물이다.

하지만 이런 배경설정이 전부라면 섭섭하다.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등 전작들에서 정말 ‘깨는’ 인간 군상들을 창조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의 명랑한 명성이 어디 가겠는가. 우선 초능력 학교의 초능력자들의 능력 자체가 너무나도 막강하다. 주인공격인 소녀 세나의 경우는 동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데, 주로 신체의 일부만 변신 시킨다 (만화라는 표현방식이 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린다). 무척 징그럽고 거부감이 들 만한 능력이지만, 생선을 요리하기 귀찮을 때 그냥 머리만 새로 변신시켜서 날로 먹는다든지 하는 등 본인에게는 무척 편리하다. 그런 동생이 한없이 무섭지만, 동생이 이상한 취급 당할까봐 항상 노심초사 온 주변에 눈치보고 신경을 쓰며 따라다니는 태권도 사범인 오빠는 알고 보니 천리이(耳)다. 이외에도 감자를 정확하게 던지는 초능력을 지닌 농촌소년, 초장거리를 달리지만 대신 30인분을 먹고 배만 불룩 나온 채로 뛰어야만 하는 학생, 손이 쇠로 변하는 능력으로 교복 재봉질을 하는 선생, 틈만 나면 미소녀로 변신하는 중년 느끼남 교장 등 아주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교장은 학생들이 세상에서 따돌림 당하고 소외 받을 것이라는 명목으로 이들을 이 학교에 가둬 놓다시피 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의외로 능력 때문에 편하기만 했고 또한 교장 역시 사실은 그냥 심심해서 불러 모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진지하게 무슨 학생해방 반란이 일어날만한 억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모든 것이 무진장 후졌을 뿐이다. 이 대책 없고 지향점 없는 느슨함으로 무장한 인간들과 그들의 행동방식이야말로 이 작품의 독특한 개그 정서를 가장 잘 나타내준다.

『강특고 아이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덤덤한 표정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황당한 상황에 있는지 모르거나 아니면 알고서도 애써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 괴리는 곧바로 개그로 환산될 뿐만 아니라, 미묘하게 개그의 리듬감을 변박자로 이끈다. 그 결과물은 반전 개그만화들의 마지막 한 방에 뒤집으며 터트리기 식도 아니고, 장편 개그만화들에서 자주 구사하곤 하는 끝없이 가학적으로 몰아치기 방식도 아니고, 아예 만담식 허풍 개그도 아니고, 예전 명랑만화들의 슬랩스틱 연타도 아니다. 뭔가 차분하면서도, 웃을 타이밍을 살짝 놓쳤다고 생각할 때 큰 개그가 찾아오는 독특한 질감이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의 격하지만 계산된 스릴보다는, 돌 많고 구멍 많은 시골길에 소형차를 타고 질주할 때의 헐렁하면서도 사실은 더 식은 땀나는 스릴 같은 개그다.

작품이 아직 2권까지 밖에 진행되지 않았고, 학원물이 가지는 익숙함의 한계를 어떻게 끝까지 피해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게다가 거창한 드라마에 대한 유혹으로 작품의 가벼운 낙천성이 상하는 것과 사소한 이야기만 계속 하다가 소재가 떨어지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나가는 것도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것으로 판정할 수 있는 것은, 최근 보기 드물었던 신선함을 지닌 개그만화이자 은근히 멋들어진 한국형 기숙학교성장물이 나와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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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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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특고 아이들 1
김민희 지음/서울문화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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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 까날님/ 저는 제 온라인 명칭에 ‘캡’이 들어갑니다. 이거야말로 도대체 언제적 유행어인가!

  2. 김민희씨 신작이였습니까?! 우와아아앗! 우와아아아아앗!! 왜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거지??

  3. !@#… 네이탐님/ 그러니까, 잡지의 위상이 워낙 마이너해져서…;;; 그 출판사의 마케팅력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기대를 접는 쪽이 속편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