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 617호 별책부록 ‘여름사냥’에 게재된 글. 세대론 꼭지 하나와, 작품 추천 꼭지 하나. 쑥스럽게, 제작 크레딧에 무려 직함이 ‘기획’으로 나감. capcold가 기여한 바는 ‘작가 추천‘과 ‘컨셉 설정 협력‘이었지, 작가 작품 관리와 프로젝트 관철, 완수 등 기획 작업의 진짜 앙꼬는 어디까지나 구둘레 담당기자님(이전에 추리소설 별책부록 ‘비밀의 백화점’도 기획하신 바 있음). 여튼 글 자체는 2000년대 만화사를 통째로 쓰려는 것이 아니라, 본문에 언급한 그대로 ‘주목할 만한 경향들’을 묶어내는 서문 정도에 불과하다. 작품 추천글의 경우 종이만화와 온라인 만화를 고르게 배분했는데, 바로 그것이 만화 읽기의 현재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도서 전문 코너에서 리뷰를 써야할 때는 책으로 나온 것 만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단행본 이외의 만화들을 한껏 즐길 수 있는 현재의 상황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으니까.
!@#… 별책부록 책 자체에 대해서는… 여튼 다행히도 전체적 느낌은 꽤 한겨레틱하게 완성. 모음집이 보통 그렇듯 작품간 편차와 아쉬운 작품 몇 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중 이번 묶음의 개인적 베스트는 ‘납량특집'(장경섭). 여튼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이런 기획이 종종 관철되어 시사주간지가 자신들의 색이 반영된 만화책 부록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온라인 서비스를 안함으로써 부록, 나아가 잠재적 레어아이템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는 건 좋지만… 나중에 어떻게 back-order라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센스가 필요하기는 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원래 책은 예쁜 편집, 적절한 삽화가 삽입되어 있음. 궁금하면 알아서들 구하시길. 여튼 본문은 쫌 기니까 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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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 이곳의 만화들
– 2000년대, 한국만화의 주목할 만한 경향
김낙호 (만화연구가)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영화의 재미에 대하여 물어본다면, 아마 십중팔구는 최근 만들어져서 관람한 영화를 꼽아보면서 자신들의 감상을 풀어놓을 것이다. 물론 약간 시간이 지난 영화를 상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시민케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다소 피곤한 성격의 영화광도 있겠지만, 대중 문화예술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재형을 즐기는 것이 가장 즐겁다. 당연히 만화도 마찬가지다. 어릴 적 보았다는 70년대 명랑만화의 추억에 흠뻑 젖는 것도 좋고 80년대의 기업극화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현재의 만화를 읽고 그 속에서 자신의 취향과 즐거움을 공명시키는 것은 마치 제철 과일을 먹는 것과도 같은 싱싱한 울림을 준다. 현재의 만화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더 확실하게 반영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곳 이 사회의 맥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만화만큼 이곳 사회의 현실을 깊숙이 머금고 있는 것은 드물다. 아무리 일본의 체계적 제작시스템에서 만들어진 강력한 장르 오락물을 들고 오더라도, 그 작품들이 건드리지 못하는 이곳 특유의 사회적, 정서적 영역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난데없이 만화판 신토불이를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현재 이곳의 만화가 지니는 참맛을 소개하기 위한 약간의 서두일 따름이니까 말이다.
혼성 사실주의의 약진
90년대의 소년/순정 만화 전문지 위주로 발전해온 장르오락물이나, 대본소 극화 등 기존의 주류 장르들이 어떻게 현재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 굳이 설명하면서 지면을 낭비하는 것은 사양하자. 그보다는, 2000년대에 가장 두드러지는 새로운 재미를 주고 있는 한국만화의 흐름들을 보고자 한다. 물론 이런 구분은 항상 애매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떤 작품들은 이런 흐름을 모두 반영하기도 하고, 어떤 작품들은 충분히 주목할 만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에, 거친 실험주의로 폼 잡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힘쓰며, 동시에 만화 특유의 상상력과 시각적 표현력을 발휘하고자 머리를 쓰는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좀 소개하는 것은 나쁘지 않을 듯 하다.
그 중 한 가지는 새로운 사실주의 극화 스타일의 약진이다. 만화광장 등 강력한 잡지들의 폐간과 함께 맥이 끊기는 듯 했던 80년대의 선 굵고 사회성 짙은 극화의 흐름이, 일련의 젊은 만화가들을 중심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들은 스타일리쉬한 화풍을 구사하면서도 단순한 시각적 실험에 빠지지 않고 이야기의 서사성을 고집하며, 만화 특유의 시각적 비유를 애용하면서도 리얼리즘적 흐름을 놓치지 않으며, 신랄한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블랙코미디의 유희성을 버리지 않는다. 이 만화들은 이전 세대 리얼리즘 극화의 모습들을 단순반복하지 않고, 일본 장르만화들과 인터넷 만화들과 시각실험들이 난무했던 90년대 이후의 만화 유산들을 고스란히 흡수 및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리얼리즘 사조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감수성을 중심축으로 하되 그 방법에 있어서는 문자 그대로 혼합적인, “혼성 사실주의” 만화라고 감히 부를 수 있다.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차가움을 다루는 작품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고 시각적 실험이 이야기성과 겉돌았던 이전의 흐름들과 달라진, 완연한 혼합의 매력이 돋보인다. 명랑만화의 기억을 현실의 차가움과 충돌시킨 블랙코미디『공룡둘리』로 주목을 받은 후 『습지생태보고서』, 그리고 현재 한겨레21에서 『대한민국 원주민』을 연재중인 최규석이 그 경향성의 대표적인 주자 가운데 하나다. 단편집 『로또블루스』를 통해서 도망치는 사람들의 불안을 이야기한 변기현, 『프린세스 안나』, 『달려라 봉구야』 등 도시적 공간의 외로움을 다루는 변병준, 사실주의적 수채화풍의 그림으로 인간사를 이야기하는 『노르웨이의 숲』 등 여러 단편을 발표한 석정현, 그리고 이외에도 수많은 젊은 작가들과 지망생들이 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웹 장편극화
하지만 단지 진지하고 어두운 느낌만이 전부는 아니다. 보다 가볍고 발랄한 느낌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동시대적 재미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체환경의 속성상 주로 파스텔톤의 짧고 감상적이며 짤막한 농담조의 코미디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인터넷의 세계에서도 지난 수년간 굵직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연재물들이 만들어졌다. 따지고 보면 웹만화 자체가 아직은 충분히 젊고 새로운 물결이라면 물결이지만, 그 중에서도 동시대적인 사회적 감수성을 한껏 머금고 연속되는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독자들을 중독시키는 재미를 가진 작품들이 한층 돋보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연재로서의 매력을 살려내며 나아가 작가와 독자, 독자와 독자들 사이에 긴밀하게 반응을 주고받는 재미가 살아있다. 이런 웹 장편극화의 가장 대표적인 스타라면 역시 80년 광주항쟁이 오늘날 지니는 의미를 다시 묻고 있는『26년』을 현재 연재하고 있는 강풀이 있다. 강풀은 원래 각종 지면과 개인 사이트에서 짧은 호흡의 개그물 또는 일상 에세이를 그리다가, 웹의 쌍방향적 속성이라든지 열린 페이지의 연출 가능성을 한껏 흡수하여 소화해낸 작품이 바로 장편 데뷔작인 『순정만화』였다. 작품 속 인물들의 우연과 필연이 엇갈리는 복합적인 관계는 인터넷 시대의 네트워크적 사회상과 좋은 궁합을 이루며 진정한 의미에서 동시대적 만화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이쪽 흐름에는 비혼모 출산에 관한 이야기인『아이가 필요해』와 쌀농사를 다루는『돌아온 자청비』등의 작품을 진지한 드라마와 개그를 섞어가며 구사하는 김달님, 『위대한 캣츠비』,『로맨스 킬러』등 고전적인 청춘의 방황을 스타일리쉬하게 소화하는 강도하 등의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잡지출판의 불황과 함께 인터넷에 눈을 돌리는 수많은 다른 작가들과 지망생들이 줄을 서고 있는 중이다.
1인칭 사색, “그래도 내일이 오기는 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흐름은 바로 1인칭의 사색이다. 자전적 캐릭터가 풀어내는 애써 담담한 정서의 세상 읽기를, 만화적 비유와 표현 속에서 효과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쪽 흐름에서는 때로는 거칠지만, 지독하게도 진솔한 이야기들이 종종 태어나곤 한다. 이들 작품들은 극적인 과장보다는 공감에 의한 섬세한 전달력을 장점으로 지니고 있는데, 외로움, 비루함 등 어두운 정서를 바탕으로 할 때라고 할지라도 항상 그 속에서 일말의 희망이라든지 그리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일이 오기는 한다는 식의 마음을 종종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가상의 세계가 아닌 진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이기도 한데, 이들에게는 희망도 가능성도 완전히 포기한 끝 없는 암울함은 아니지만 세상의 막막함 역시 현존하는 조건이다. 다양한 방향과 층위에서 가치관은 충돌하기 마련이고, 여러 중층적 모순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현실에 찌든 실존적 외로움과 사회적 소외의 층위들을 인간 크기의 바퀴벌레와 동거하는 생활로 비유하여 풀어나가는 『그와의 짧은 동거』의 장경섭, 무일푼과 막노동의 경험 속에서 사람들을 끝없이 관찰하는 『아날로그맨』의 김수박 등이 이미 두각을 나타낸 작가들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 가운데 『앙꼬의 그림일기』의 앙꼬, 『영순씨 사랑해』의 권용득 등의 작가들도 아직 부족한 면도 더러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 중이라서 희망을 가지게 한다. 물론 극적인 부분을 한층 더 버리고, 사색자체에 한층 충실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우열의 『올드독』은 감성을 뿌리고 공감을 강요하는 에세이 만화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들에 대해서 한 번 다시 생각을 해보도록 직접 꼬집어 주기까지 하는 소심한 낙천주의가 돋보인다.
이외에도, 아예 직접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던져주는 방법 역시 만화의 방식을 한층 효과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새로운 흐름과 만나고 있다. 인권 이슈 홍보 만화의 단골 터줏대감인 유승하, 독특한 화풍과 섬세한 지식으로 반전 메시지를 설파한『십자군 이야기』의 김태권 등을 필두로, 서사형 시사만화의 흐름을 만들어낸 조남준, 박철권, 김한조 등의 작품 활동 역시 큰 재미를 주고 있다.
다양한 즐거움의 세계로
물론 이런 경향들이 주류 장르 오락만화에 대한 대안이 된다거나, 또는 대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장르 공식에 함몰되지 않고 좀 더 작가 자신의 개성을 한껏 발휘하며 대중과 호흡하는 약간 다른 방향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마치 만화가 아닌 일반 ‘문자 서적’의 경우에도 장편 모험활극이 주는 즐거움이 있고, 과학소설, 수필, 순수문학, 시집이 주는 즐거움들이 각각 따로 있듯 말이다. 각각의 흐름과 장르가 추구하는 대중과의 호흡 방법, 즉 대중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다양한 즐거움의 세계에 같이 빠져 들어가는 것, 즉 만화를 읽는 즐거움을 재발견하는 길이란 단지 하나밖에 없다. 우리의 지금 이곳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다양한 좋은 작품들을 열심히 추천받고 또 직접 찾아서 읽고 즐기는 것. 다양한 것을 즐겨보면서, 그 속에서 자신이 더 즐길 수 있는 것, 약간 덜 즐거운 것들을 골라나갈 수 있게 된다. 자, 바로 다음 페이지부터 한번 시도를 해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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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보조기사 ———————–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보라
– 지금 이곳을 이야기하는 만화 20선
단편의 향취
그와의 짧은 동거 / 장경섭 / 동명 단편집 수록작, 인디만화잡지『화끈』에서 연재 / 이런 점이 멋지다: 바퀴벌레와 함께 친구되기. 카프카와 하루키와 장모씨.
다르면서 같은 / 데릭 커크 킴 (김지훈) / 동명 단편집 수록작, 개인사이트에서 연재 / 이런 점이 멋지다: 이십대 중반, 성장의 지리함에 관하여. 아시안 아메리칸의 정체성.
로또블루스 / 변기현 / 동명 단편집 수록작 / 이런 점이 멋지다: 당첨 로또를 품에 안은 자의 불안과 행복이 섞인 표정, 그리고 도망.
사랑은 단백질 / 최규석 / 단편집 『공룡 둘리』수록작 / 이런 점이 멋지다: 치킨집 주인인 닭, 배째는 저금통 돼지… 나의 일상은 그들의 처절함.
신일맨션 202호 / 변병준 / 단편집 『미정』 수록작, 쇼각칸 빅코믹스피리츠 공모전 장려상 / 이런 점이 멋지다: 골방 속 지리한 일상 속에 생겨난 초능력과 망상적 유머
운수좋은 날 / 권용득 / 만화 웹진 『악진』 / 이런 점이 멋지다: 큰 운수와 작은 운수, 그리고 여하튼 어떻게든 운수좋은 그 날
긴 호흡, 연재의 재미
26년 / 강풀 / 미디어 다음 연재중 / 이런 점이 멋지다: 80년 광주를 바라보는 지금 우리들의 모습에 관한 거침없는 전개.
아날로그맨 / 김수박 / 작가 블로그, 누리코리아 웹진에서 연재 / 이런 점이 멋지다: 노가다판과 기차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 관찰하기.
아이가 필요해 / 김달님 / 미디어 다음 / 이런 점이 멋지다: 감동 방황극, 코미디와 찡함의 균형.
위대한 캣츠비 / 강도하 / 미디어 다음 / 이런 점이 멋지다: 청춘과 사랑의 엇갈림과 사람 사이 사는 방법에 대한 현대 우화.
짬 / 주호민 / 검지넷 연재 / 이런 점이 멋지다: 애국적 감정과잉이 없이 담백하게 군사생활 그대로를 그려내기.
사색의 시간
앙꼬의 그림일기 / 앙꼬 / 딴지일보 연재, 단행본 / 이런 점이 멋지다: 자유분방한 사고의 낙서체 잡담, 시시함과 동감 사이에 있는 것들.
점핑 / 아이완 / 작가 사이트 / 이런 점이 멋지다: 수직 무한 공간 세계 속 사람들이 펼치는 사색적 우화
올드독 / 정우열 / 단행본, 작가 사이트 연재중 / 이런 점이 멋지다: 소심한 낙천주의자의 세상읽기.
인권 연작 / 유승하 / 월간 『인권』 연재중 / 이런 점이 멋지다: 중층적 문제, 모순의 층위를 잡아내는 둥글둥글한 그림과 비유.
참 잘했어요 / 문흥미 / 경향신문 만화섹션 ‘펀’ , 일부 백업 / 이런 점이 멋지다: 우리 속의 ‘쪼잔함’을 가장 잘 그려내는 작품 가운데 하나.
교양의 재발견
십자군 이야기 / 김태권 / 단행본, 프레시안 연재 / 이런 점이 멋지다: 현대에도 이어지는 전쟁의 야만과 우매함을 만담 개그로 풀어나가기
남쪽손님 / 오영진 / 단행본 / 이런 점이 멋지다: 남한인이 북한에서 체류하며 겪는 미묘한 거리감과 뜨거운 동질감
조선왕조실록 / 박시백 / 단행본 / 이런 점이 멋지다: 가감없는 이식과 현대적 설명의 중요한 의미 연결.
삼국전투기 / 최훈 / 일간스포츠 온라인 연재중 / 이런 점이 멋지다: 주인공의 미화보다, 실제 전투 상황의 긴밀하고 명료한 설명력. 만화/애니 문화의 전방위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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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우에는 좀 불편하다. 이 정도 레벨의 물건을 정작 작년에는 한국만화 전반 추천이나, 그냥 개인 포스팅에서 밖에 다뤄주지 못했으니 원… 연재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