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부 매체의 칼럼으로 쓰기에는 1)정돈/증명되지 않은 거친 발상이며 2)딱히 전문적 식견을 녹여낼만한 구석도 적은데, 그렇다고 트윗 몇 개로 나누기에는 좀 길고, 구플에나 남기기에는 이왕 제목과 결론도 있으니… 간만에 순수 블로그 포스팅. 바로, 갑질에 관한 몇가지 생각들.
!@#… 거래를 하는 이상, 무언가를 요구하고 무언가를 제공하는 관계 자체는 늘 있고, 따라서 의뢰를 하고 댓가를 지불하는 ‘갑’과 의뢰에 맞춰 용역/재화를 제공하는 ‘을’의 관계는 생겨난다. 하지만 늘 문제가 되고 최근 몇몇 연타 에피소드로 인해 이슈화가 된 것은 흔히 ‘갑질’이라고 칭해지는, 갑의 과도한 권력화 쪽이다. 아주 간단하게 풀어보면, 돈 또는 그에 준하는 뚜렷하고 강력한 매개로 특정 행위를 계약하여 거래하는데, 당연하다는 듯 그 안에 상하/주종 관계를 설정하며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느슨하게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최소한 3가지가 갖춰진 종합 세트라고 본다. 물리적 수탈, 관계적 수탈, 강제력. 하나씩만 있어도 ‘광의의 갑질’에 들어갈 수는 있는데, 3가지가 갖춰질 때 바로 순도 100%의 ‘THE 갑질’이다.
– 덤 요구. 즉 A를 제공하기로 한 상대에게, ABC까지 강행시키는 것. / 강매. 가외 서비스 요구. (사실상) 뇌물 요구 등. 본점-대리점 관계에서의 수탈이 좋은 예. // “물리적 수탈.”
– 인격 종속 요구. 즉 거래의 내역을 행위 단위가 아닌, 사람 단위 관계로 치환하여 인격적 복종을 요구. / 상전 대접 요구, 알아서 더 내밀 것을 원하는 것 등. 식당이나 기타 서비스업 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 // “관계적 수탈.”
– 해코지 능력 과시. / 이런 과도한 권력 행사에 대해 거부할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해코지를 하거나, 그럴 수 있음을 강조. // “수탈의 강제력.”
굳이 요소들은 분리해본 이유는 당연히 1)피해의 폭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2)약한(?) 고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세 가지는 벤다이어그램식 교차점은 아니고, ‘해코지’ 위에 다른 두 축이 올라서는 형국이다. 강제력이 없으면 그냥 좀 (어떻게 잘 떼내야 할지) 곤란한 상황 유발 정도.
!@#… 그런데 이런 요소들은 갑을 계약 관계가 아니라 어느 장면에서라도 흔하게 과잉으로 나타나곤 하는 것들이다. 툭하면 끈끈한 관계 들먹이며 더 무리한 요구를 한다든지, 상대를 명시적 개별 행위 판단이 아니라 사람 전체, 인격 자체로 손쉽게 ‘추론’내린다든지, 사적 이득을 위해 으름짱을 놓는다든지… 이런저런 씨앗이다. 모든 경우에 거대한 독초로 자라나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좀 미리미리 성찰하고 제어하고 그럴 필요는 충분하다.
!@#… 물론 갑질이 성립되는 건 오로지 을이 호응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응하는 것은 무슨 M기질이 넘쳐서가 아니라, 호응하지 않으면 을에서조차 밀려나기 때문이고. 을에서 밀려나면 무엇이 있는가 하면, 병이 있다. 갑을관계에서 벗어나는게 아니라, 더 밑바닥의 갑을관계로 빠질 뿐이다. 아까의 을들도 아주 쉽게, 병을 대하며 그간 갑질을 당하며 쌓인 스트레스든 금전 손해든 병에게 유사한 ‘갑질’을 하며 해소하기 쉽다(예: 악성 하도급, 가게에서 행패부리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 즉 갑은 고유 속성이 아니라, 관계 위치다(하기야 올린-라이트 이후에는 맑스적 계급개념조차 그렇다). 그 과정이 돌고 돌며 갑질 자체는 빼도박도 못하게 정착했다.
그렇다면 갑질을 통제하는 방법은 (관계가 발생하는 한, ‘뿌리 뽑는’ 것이야 당연히 불가능하다) 무엇이 있는가. 갑질에 대한 저항이 무엇보다 쉬워져야 하고, 그것의 왕도는 바로 제도적 조직화다. 가끔 극단적으로 노골적인 을의 설움 사례에 분개는 해주는 느슨한 화제성 여론몰이를 넘어, 고정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제도적 조직화의 방식으로 이미 현존하는 것들이, 노조, 정당의 지역 조직, 공익 소송에 특화된 시민 단체 같은 것들이다. 을에 대한 에피소드적 동정이나 공분을 넘어, 제도적 조직화에 지지와 응원과 연대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바로 노조 조직화 일반에 대해(물론 노조의 관료화/부패에 대한 문제제기와 별도로), 정치 정당의 지역 커뮤니티 정착 일반에 대해(물론 지역 유지 결탁을 통한 봉건권력화에 대한 문제제기와 별도로), 시민 단체의 정치적 적극성 일반에 대해(물론 과학적/회계적 합리성 부족 같은 것에 대한 문제 제기와 별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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