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 갈라파고스를 돌아보기 [슬로우뉴스 / 1304]

!@#… 수년 전에 썼던 갈라파고스론 관련글을, 그 후 몇년의 변화과정 등을 반영하여 업글하고 슬로우뉴스에 실었던 글(도판, 편집등은 summerz님의 혁혁한 도움). 발전한 구석도 있지만, 갈 길은 물론 멀다.

 

한국 웹 갈라파고스를 돌아보기

최근 한꺼번에 여러 차례의 대규모 보안 허점 사건과 새 미래부 장관의 액티브엑스/공인인증서에 대한 부정적 의견 피력 등이 겹치고 액티브엑스 폐지 서명 운동 등이 다시금 활성화되면서, 한국 웹 환경이 그간 처해왔던 한계에 대한 여러 논의가 오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적극적 움직임이 표면화된 것은 당연히 처음이 아니지만, 그간 좀 더 많은 사건·사고들이 이어졌고, 이번 정부가 토건보다는 ‘창조’를 표어로 내걸며 뭔가 관심을 할애할 듯한 눈치를 풍기고 있으니 아무래도 약간은 개선에 대한 희망을 품어볼 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IT 강국이라는 과거의 영광으로 현재를 착각하지 말고 환경 전반의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던 몇 년 전부터 대두된 ‘갈라파고스’론을 되새김해볼 필요가 있다. 상당 부분, 바로 당시의 문제 제기가 그대로 지연된 상태에서 다시 터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의 요소: 기술, 법, 시장, 규범

갈라파고스론은 2009년 무렵 몇 가지 기사들을 통해서 화두로 떠오른 용어인데, 원래는 일본이 자국 휴대폰 산업에 관해 규정하던 용어였다. 그리고 한국 웹에 적용한 것은, 한국의 웹이 갈라파고스 섬처럼 나머지 세계와 고립되어 동떨어진 상태로 움직인다는 의미가 되었다.

이 사안을 피상적으로 볼 때는 세계표준을 거부하는 쇄국정책으로 인한 패망, 뭐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것보다 좀 더 복합적이다. 인터넷법학자 로렌스 레식이 그의 저서 ‘코드’에서 이야기한 바에 따르자면, 특정한 미디어 이용 패턴을 형성해내는 4가지 요소는 바로 기술, 법, 시장, 문화적 규범이다. 한국 웹의 갈라파고스화라는 문제에 각각 기여하는 요소들을 적용해보자면, 기술 면에서는 액티브엑스에 대한 집중이나 기타 웹 표준 준수 부족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법은 인터넷 매체 속성에 맞지 않고 그 발전을 저해하는 구식 규제다. 저작권, 명예훼손, 정보검열 관련 법들에 대한 논란이 대표적이다. 시장은 폐쇄적 종합잡화점 모델, 배타적 내수시장 지향 등이다. 문화적 규범은 인터넷의 개방적 분산성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소스 생산자 무시, ‘반지성’ 반달리즘, 뿌리 깊은 토론 훈련 부족, 댓글 알바질 등이 있다.

  • 기술: 액티브엑스에 대한 집중, 웹 표준 준수 노력 부족
  • : 인터넷 매체 속성에 맞지 않는 구식 규제
  • 시장: 폐쇄적 종합잡화점 모델, 배타적 내수시장 지향
  • 문화: 원소스 생산자 무시, 반지성 반달리즘, 토론 훈련 부족, 댓글 알바질

이런 층위들은 어디에 더 중점이 있다 정도지, 어느 정도씩 각 요소가 중첩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법이 가장 주된 요인이지만 기술이 합쳐져서 생긴 것의 사례가 인터넷 뱅킹의 액티브엑스 공인 인증 문제다. 여기에는 다양한 플랫폼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 경제적 이익이라는 다소간의 시장논리도 개입되고, ‘설치하라면 설치한다’는 식의 문화적인 배경도 더해진다. 이런 틀을 느슨하게 염두에 두고, ‘한국식’ 갈라파고스의 몇몇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징 하나: 몰빵 발전

‘갈라파고스’ 화의 근원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빠른 발전이다. 빠른 발전을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한 가지 방향의 특정 기술에 모든 지원을 몰아주기, 속칭 ‘몰빵’하는 것이다. 그것도 민과 관의 힘을 합쳐 법적으로 강요하고 착착 진행하면 더욱 뭔가가 빠르게 이뤄진다. 다만 모든 몰빵이 그렇듯, 강하게 몰빵을 할수록 방향전환이 어렵다. 따라서 전후 한국 여러 산업이 취한 전략을 답습하여 고정된 판에서 빠르게 선두주자를 따라잡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내는 확실한 용가리 통뼈일 때나 효과적이다.

반면, 유동적인 방식으로 계속 진화하는 판에 속한 여러 플레이어 중 하나라면 몰빵으로 인한 빠른 판갈이보다는, 당대의 기성 기술(레거시)과 호환성을 중시하며 그 한도 내에서 최대한 창조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다음 혁신이 어디서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널리 경험적으로 알려졌듯, 인터넷은 유동적 진화의 표본이다. 아직 ‘표준’이 아닌 어떤 한 쪽에 몰빵하고 그것 전용으로만 특화했다가는, 당시 예상치 못했던 다른 쪽이 새로운 혁신의 주류가 될 때 모든 것을 갈아 엎어야 한다. 아니면 새로운 혁신의 이쪽 전용 카피 모델을 만들어서 어항 속에서 놀거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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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보호를 위해 관리자 급의 권한을 일반 사용자에게 요구하는 뒤틀린 국내의 보안 현실

당장의 IT 강국 자존심 실현을 더 중시하는 문화가, 몰빵식 기술발전 방향과 제도의 세트를 문화적으로 납득시켰다. 시장도 호환성이나 웹 표준을  무시하고 한쪽에 몰입해서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쪽이 개발 비용도 줄어서 좋다. 그런데 한국에서 몰빵으로 빠르게 진화했다가 진화의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는 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액티브엑스가 의무화된 인터넷 뱅킹이다. 한국에서 은행들은 대부분의 거래 기능들을 90년대 말에 일찌감치 인터넷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도입 당시의 웹 기술력이나 소프트웨어 판도를 놓고 보았을 때, 웹 표준 암호화 기술만으로는 보안 요구사항인 본인확인, 암호화, 해킹방지 등을 모두 충족시키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넷스케이프가 저물고, 윈도우-인터넷 익스플로러(이하 IE)로 웹 접속 방식이 사실상 통일되어 갈 듯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웹 비표준이지만 보안기술을 구현할 수 있고, 대부분의 이들이 사용한다고 파악한 IE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겠다 싶은 액티브엑스를 중심으로 개발을 강행했다. 여기에 그것을 하나의 표준으로 쓰도록 만들어 빨리 인터넷 뱅킹 환경을 완성하기 위해, 법으로 강제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덕분에 한국은 여타 다른 선진국보다 빠르게 인터넷 뱅킹에서 다양한 – 아니 사실상 모든 – 종류의 거래를 구현해냈다. 한동안은, IT 강국이라고 자부할만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약간 시간이 지나고 인터넷 전체의 혁신 트렌드가 여러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난감해졌다. 하필이면 액티브엑스가 윈도우 본연의 권한설정 문제 등으로 보안 위협이 거세져(필자 주: 엄밀하게 말해서 윈도우와 액티브엑스가 여타 플랫폼보다 특출나게 해킹에 취약한 기술이라기보다는, 개인 사용자가 관리자 권한으로 낯선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을 거의 없애놓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결제의 세계적 모델로 확산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맥의 중흥, 파이어폭스의 성장 등으로 액티브엑스를 쓰지 않는 브라우저들이 IE 이상의 성능으로 진화하고 사용자 반응도 좋아졌다. 나아가 웹 표준의 암호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서, 당초의 보안수요를 거의 채워줄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즉 혁신이 액티브엑스 바깥에서 날라왔다.

액티브X는 (한국MS도) 권장 안한다. MS 사람이 이렇게 말하니 좀 이상해 보이겠지만… 생태계를 건전하게 확보 안하면 회사가 죽는다. 그래서 기업들이 오픈소스로 푸는 것이다. 액티브X는 생태계 유지에 도움이 안 된다. 특히 다양한 배포에 사용하는 서비스에는 액티브X를 쓰면 안 된다. 공공성이 두드러지는 정부 서비스에서 쓰면 안 된다. 사기업들이 목적성을 가지고(뚜렷한 목적이 있다면) 쓰면 상관은 없다. 공공성을 바탕으로 생태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특히 보안 서비스의 경우 액티브X를 많이 쓰는데, 이는 당시 보안이 한국 업계에 일찍 도입될 때 그 기술을 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안 기술이 많다. 물론 당장에 돈이 안 되는 걸 (큰 돈을 들여) 바꾸라고 강요할 수 없겠지만, 아마도 다음 버전에서는 (액티브X의 대안 기술 도입이) 가능하지 않겠나.

2007년 마소 창간 25주년 세미나 RIA to RxA 세미나, 당시 한국마이크로소프트 김재우 부장의 발표 중에서

그런데 법적으로 액티브엑스 공인인증서 기반 시스템을 강요해놓은 상태라서 방향전환이 어려운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아예 윈도우-IE에서마저 액티브엑스가 사양 기술화되어 버렸다. 즉 액티브엑스 이외의 호환성에 대해서 과감하게 포기한 판단의 결과, 그 기반에 있는 인터넷의 표준체계 자체에 대한 대안적 플랜 부재로 현재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MS라는 일개 기업이 새 운영체제나 브라우저에서 액티브엑스를 버릴까 말까 할 때마다 국가단위의 금융시스템이 노심초사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윈도우-IE의 절대적 점유율을 제도적으로 장려해주다시피 하고, 각 쇼핑사이트 결제할 때마다 2-3개씩 프로그램을 새로 설치하여 PC 성능 저하부터 보안 구멍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문제 삼아 웹 호환성을 보장하도록 소송을 걸어도, 법체계가 애초에 그리 짜여있기에 패소가 이어졌을 뿐이다.

특징 둘: 일방향

한국 웹 갈라파고스화 문제의 양상은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일방향성이다. 즉 해외서비스는 그럭저럭 들어오고, 한국 웹은 좀처럼 쉽게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구조다. 2009년 4월에 있었던 유튜브의 실명인증 거부 사태를 기억해보자. “천하의 구글이 쥐고 있는 유튜브에 실명인증을 요구하다니 국제적 망신이야” 식으로 기억하고 끝내기에는 아쉬운 것이, 더 중요한 함의는 유튜브가 한국의 문제가 있는 법에 복종하지 않아도 다소의 불편 빼고는 서비스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거부할 수 없는 국내기업들이 그만큼 사업에서 불이익을 받음이 확인되었고, 결국 한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불리해지는 패턴이다. 혹자는 구글이 한국에서 검색점유율이 낮다는 점이나 페이스북 한국어서비스가 별 반응 없다든가 미투데이가 지드래곤 동원해서 트위터보다 많은 회원을 확보했다는 것을 들며 해외 서비스도 한국에서 맥을 못 춘다는 식으로 자부심 비슷한 무언가를 표명하기도 했으나, 맥을 추든 못 추든 언어나 편의에 따른 선호도 문제에 불과해서 사용하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뿐더러, 충분히 익숙해지고 또 약간만 다른 요소가 개입되면 얼마든지 그쪽을 선택할 수 있다. 검열을 피해 지메일로, 유튜브로 가는 모습들을 보면 말이다.

유튜브가 실명인증을 거부했음에도 정부는 조치를 취하기는 커녕 계속해서 청와대 홍보 비디오를 올렸다. 국민들은 규제를 따르고, 정부는 어겨도 되는 것일까?

유튜브가 실명인증을 거부했음에도 정부는 조치를 취하기는 커녕 계속해서 청와대 홍보 비디오를 올렸다. 국민들은 규제를 따르고, 정부는 어겨도 되는 것일까?

2000년대 후반, 싸이월드 미국판의 기억을 되살려보자. 그냥 싸이월드 자체에 영어 스킨 옵션을 넣고 우선 런칭해서 당장 사용자베이스부터 확보하고 봤더라면, 마이스페이스보다 비교우위를 차지하고, 이후 나타난 페이스북과도 비등한 경쟁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놈의 액티브엑스 음악플레이어, 금융결제 시스템상 한국 전용으로만 움직이는 도토리, 페이지 편집 문제와 개별 툴의 비호환성… 도저히 그대로 미국에서 서비스할 수가 없다. 그 결과 별도의 미국 사이트를 개발했는데, 이것은 한국과 데이터 호환이 전혀 안 된다. 즉 맨바닥에서 새로 시작, 그것도 너무 늦게 시작해서 이미 그간 마이스페이스가 지존이고 페이스북이 새로 기라성같이 성장하던 타이밍이었고, 결과는 대실패였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제도적인 측면 때문에 못 나가는 경우는 더욱 갑갑하다. 2012년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법상 실명인증제에 의거하여 네이버, 다음 등 한국 대형 포털에 계정을 만들려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했다. 그런 것이 없는 비한국인의 경우는 자동화되지 않은 불편한 개별 인증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사실상 배제되었다. 2012년의 인터넷상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위헌 판결로 인하여 현재는 상황이 그나마 더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선거법상 실명제, 명예훼손 항의 등에 대한 서비스업자의 사용자 콘텐츠 차폐 책임 등이 존속되며 해외 사용자들의 자유로운 활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런 식의 규제 속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 보니 여전히 네이버 등은 각국 서비스에 아예 별도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구식 사업 모델을 고수하고 있는데, 그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은 단일 플랫폼을 세계 각국에 여러 페이지 구성 및 언어 설정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지 오래다. 물론 한국의 포털들이 ‘인터’넷이 아닌 ‘한국’넷에 특화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율성 면에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유치하는 콘텐츠나 검색 결과가 한국어 자료, 그것도 한국 서비스업체들에서 뽑아낸 것에 제한되는 것은 매우 결과물의 양과 질이 빈곤하지만, 사업 비용과 수요 규모의 효율성 면에서 현실적인 구석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세계 서비스가 됨으로써 동영상이라는 단일 분야의 전문 서비스임에도 거대해진 유튜브 같은 식의 60억 세계인 대상 거대 전문점 모델을 구현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4,500만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포털 잡화점 모델로만 눈을 돌리도록 유도하는 상황인 셈이다. 발전을 시도할 수 있는 폭이 좁아지고, 그 빈자리는 그런 규제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다른 기업이 들어온다.

특징 셋: 인터넷의 사회적 가능성 실현의 저해

한국 웹 갈라파고스화의 근간에 있는 호환성 경시라는 잘못된 판단이나 산업적 한계라는 양상을 넘어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런 현상의 결과 인터넷이라는 미디어 소통망을 통해서 해볼 수 있을 법한 사회적 기능들이 제대로 실현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파이어폭스에서 뱅킹 안되고 크롬에서 페이지 레이아웃이 깨지는 것도 통탄할 일이기야 하지만, 한국 기업이 해외로 시장확장 못하는 것도 갑갑한 일이지만, 그 이상의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한국적’인 제도와 기술로 이루어져 한국 시장만을 대상으로 좁아져 있으면, 그만큼 통제하기도 쉽다. 통제를 벗어날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을 세계인들과 함께 궁리하기도 어렵고, 세계인들이 함께 쓰기 때문에 무리한 통제를 적용하기가 곤란하게 만들기도 힘들다. 그런데 통제하기가 쉬우면, 인터넷의 사회적 잠재력은 급감한다. 고작 TV를 좀 더 편하고 선명하게 볼 수 있거나 하는 단순한 디지털망에 불과하게 될 수 있다.

어처구니없게 쉽게 강행되는 통제 때문에 민주적 실험들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의 사례라면 넘쳐난다. 미네르바 체포 건 때문에, 익명성의 한도 내에서 진지한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즉 익명성 아래에서는 나름대로 진지한 도발적 제기가 힘들어지고, 그저 내용 없는 저열한 욕지거리용으로 전용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해버린 셈이다. 혹은 당사자 요구 시 게시물 차폐는 어떤가. 그렇지 않아도 점점 사회적 이슈의 떡밥 유효 한도가 짧아지고 있는데, 차폐는 즉각적이고 복구의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즉각적으로 퍼담고 통제 불능으로 뿌리는 패턴을 장려할 뿐이다. 심각한 위축 효과가 우려되는 ‘사이버 모욕죄’ 류의 포괄적 규제 법안은 호시탐탐 입법화 시도가 이어지고, 영장 없이 그냥 수사 협조만 요구해도 넘겨지는 개인정보는 여전히 경악할 수준이다.

통신자료 제공 관련 일지 (출처: 한겨레신문 - 수사기관에 고객정보 “더이상 제공 안해”)

통신자료 제공 관련 일지 (출처: 한겨레신문 – 수사기관에 고객정보 “더이상 제공 안해”)

물론 좋지 않은 기술적 선택도 문제를 한층 키운다. 토론의 적절한 축적을 힘들게 하고, 순간의 화제성만을 강조하여 결국 모든 이슈의 말초화와 연성화를 유도하는 뉴스 페이지 레이아웃과 토론방 인터페이스들을 – 즉 가장 전형적인 대형 포털들의 일상적 모습들 – 떠올리면 된다. 그런 방식이 바로 사용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이니까 원하는 대로 줄 뿐이라는 논리는, 마치 한국 맥주 소비자들이 상쾌한 목넘김을 선호하니까 그것에 맞춰준 것뿐이라고 맛에 대한 폭넓은 혹평을 변명하는 뭇 대형 맥주 기업들과 일부 통하는 바가 있다.

나아가야 할 방향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주민등록번호 수집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자 ‘아이핀’을 의무화하고자 하고, 호환성 문제를 들며 액티브엑스 폐지 목소리가 울리자 그 대신 여전히 새로운 윈도우 전용 추가 플러그인을 논하는 것이 현실이다. 2013년 현재에도 대한항공의 국내용 사이트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최적화되어 타 브라우저로 접속 시 일부 기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ActiveX 설치가 필요한 일부 메뉴를 제외한 부분은 현재 개선 작업 진행 중”이라고 나오는 반면, 국제 사이트에는 확인이고 예약이고 결재고 원활하게 어떤 플랫폼에서든 이뤄진다.

어떠한 추가 프로그램 설치 없이도 쉽게 결제가 이루어지는 대한항공 영문 홈페이지. 한국 기업의 한국인 역차별이 벌어지는 이 상황은 누구의 책임일까.

어떠한 추가 프로그램 설치 없이도 쉽게 결제가 이루어지는 대한항공 영문 홈페이지. 한국 기업의 한국인 역차별이 벌어지는 이 상황은 누구의 책임일까.

이런 상황을 단번에 간단하게 타개할 수 있으리라 과도한 기대를 가지는 것은 무리다. 한번 잘못 탄 루트를 힘껏 질주한 상태 즉 여러 관련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고, 공공기관 부처들의 업무가 고정되어 있으며 무언가를 바꾸려면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달려야 하는 상태에서 무엇을 고치는 것은 무척 종합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기에 쉽게 진행하기 어렵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기술, 법, 시장, 문화 규범 각 영역에서 모두 개혁을 진행시켜야 하는데, 항목별로 각각 따로 긴 글이 필요한 관계로 우선 몇 가지 가장 기본적인 지향점들을 키워드로 열거하는 선에서 마무리 지을까 한다.

  • 기술: 웹 표준의 적극적 혹은 공격적 장려. 비표준 기술 사용 시 크로스플랫폼 최우선 고려.
  • : 검열철폐, 개인정보보호 강화. 특정 기술에 대한 강요 방지.
  • 시장: 고정된 몰입방식을 장려하는 서비스를 넘어 개방성에 의한 사용 방식 확장이 필요하도록, 신상 정보가 아닌 행위 및 관계 정보의 산업적 활용에 중점.
  • 문화: 특정 서비스의 울타리를 넘어선 협업과 연동이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한 사용문화 일반의 장려. ‘펌보다 링크’, ‘토렌트보다 정식콘텐츠샵’, ‘ 문답 반복보다 정리페이지 작성’ 등 다양한 방안이 있다.
  • 기타: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다국어 지원의 전략적 확대다. 한국 웹 갈라파고스화의 완화를 위한 좋은 유도책은 비한국인 사용자들의 적극적 유입으로, 그들이 시장으로서 의미를 지닐 때 기업이든 정부 부처들이든 그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해가며 고립성이 완화된다. 즉 학습진화형 번역엔진 서비스, 염가의 웹페이지 번역업, 그리고 특히 고급 콘텐츠에 대한 고급스러운 품질의 번역에 더욱 많은 전략적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하나의 층위에서 커다란 변화가 다른 것들을 견인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세세한 변화들은 다른 층위가 불변하면 그대로 관성에 의하여 사장되기도 한다. 즉 일정 부분 동시에 움직여야 가장 효과적 변화가 올 수 있다. 정책입안자들, 시장의 기업들이 할 것이야 뻔하다. 그리고 평범한 인터넷 사용자들 역시 문화와 시장에 개입할 수 있고, 여론화로 법에 압박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특정한 기술에 대한 수요를 표명해서 유도하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껏 한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2009년에 남겼던 블로그 글 ‘한국웹 갈라파고스론, 약간 세부적인 생각들‘을 일부 보완한 것인데, 문제의 큰 틀은 아쉽게도 2013년 오늘날도 대체로 남아있지만, 업계와 정보운동과 개별 사용자들 등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분명히 조금씩 세부 양상들은 개선되어왔다. 앞으로도 기회가 무르익었을 때마다 계속 이슈화하며 되는대로 고쳐나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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