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미야자키 하야오 월드 [한겨레21 / 978호]

!@#… 어째선지 한겨레 통합사이트와 한겨레21으로 두번 올라옴. 게재본은 여기로. 어디에서 댓글 쓰레드가 펼쳐지든, 대부분 아주 가관인게 특징 OTL

 

굿바이 미야자키 하야오 월드

김낙호(만화연구가)

딱히 애니메이션 애호가가 아닌 이들도 널리 기억하는 소수의 애니메이션 창작자 가운데 한 명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72)이, 최근 개봉한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은퇴 의향을 밝혔다. 물론 그가 체력과 집중력을 들며 은퇴 의사를 꺼낸 것은 처음이 아니다. 86년 [천공의 성 라퓨타]로 스튜디오 지브리를 궤도에 올리고, 92년 [붉은 돼지]로 자기 이야기를 풀어보고, 97년의 대작 [원령공주]에 모든 것을 쏟은 후, 감독 교체로 인해 고생한 04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만든 후 늘 그랬다.

이번에는 자기 반영적인 내용을 2차대전 전투기 설계자를 통해 풀어낸 [바람이 분다]를 공개하고 장편 감독 은퇴 선언을 했는데, 나이나 차세대 감독 양성 성공 등이 맞물려 이번에는 사람들도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번 종착역을 맞이하여, 광활한 하늘을 날아오르는 시각적 쾌감이 넘치고, 다부진 소녀들의 모험을 즐기고, 파괴를 반대하는 주제의식이 넘치던 그 곳, 미야자키 월드를 재방문해본다.

신화가 되다

실력 있는 애니메이터로 명성을 쌓던 미야자키 하야오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78년작 TV시리즈 [미래소년 코난]부터다. 원작소설이 따로 있지만, 이상적인 공동체 생활에 대한 시각이나 각종 메카닉 등 표현적 측면까지 여러모로 이후 미야자키 월드의 시금석이 되어주었다.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전쟁으로 예전에 파괴되었다. 지금 문명의 어떤 이들이 그 길을 반복하고자 한다. 그리고 다부진 소년 소녀들의 모험 끝에, 당장의 파국을 막고 약간 다른 길의 희망이 비친다. 자신의 연재만화를 원작으로 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84년)는 이런 구도를 한층 발전시켰다. 독으로 가득 찬 미래 세계에서 국가간 무력 전쟁이 계속 되는데, 자연과 대화를 하고자 하는 소녀의 중재와 희생을 통해 잠시나마 싸움이 멈춘다. 그런 와중에서도 자연은 그저 묵묵히 스스로를 치유해나간다. 이런 선 굵은 디스토피아 서사는 [천공의 성 라퓨타](86년)까지 주욱 이어졌다.

그 후 감독한 [이웃의 토토로](88년)는 스케일 큰 활극과 반대로, 평범한 어린이들이 겪는 새롭고 이질적인 정령 세계와의 조우, 그것을 거치며 겪는 인간적 성장을 이야기했다. 이런 기조는 차기작 [마녀배달부 키키](89년)에서 아예 마녀견습 소녀의 사춘기와 첫사랑 비슷한 것을 거친 성장으로 한층 뚜렷해졌다. 여전히 소품의 기조가 이어지면서도, 차기작 [붉은 돼지](92년)은 살짝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1차대전 에이스 파일럿이었으나 전쟁에 환멸을 느끼고 느긋하게 현상금 사냥꾼으로 살아가는 돼지 얼굴의 포르코는, 다음 전쟁에 휘말리기 직전인 세간의 분위기를 보며 냉소에 빠져있는 아저씨다. 긍정 넘치는 소년 소녀에서 벗어나, 한층 감독 자신의 심경이 반영된 듯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한동안 단편과 제작자 역할에 집중하다가, 미야자키는 결국 [원령공주](97년)로 다시 대형 활극으로 돌아왔다. 중세 일본을 무대로, 인간들과 정령 및 신령들이 부딪힌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논하며, 모든 갈등을 덮을 수는 없으나 결국 어쨌든 살아가라는 성숙한 메시지를 던졌다. 명감독의 모든 것이 집대성된 모습에, 관객들 역시 화답했다. 전작의 35억엔 흥행은 193억엔으로 크게 뛰었고, 미야자키 감독은 이후에 작품도 천만 관객 이하가 없는 독보적인 호응을 얻는 브랜드로 도약했다.

신화 유지의 어려움

하지만 은퇴할 결심으로 만들었다는 [원령공주]는 은퇴작이 되지 못했다. 신화적으로 도약한 스튜디오 지브리였으나, 불운하게도 신화를 이어갈 차세대 감독군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런 와중에 미야자키는 결국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01년)으로 감독으로 복귀했다. 정령들의 목욕탕에서 알바를 하게 된 주인공 소녀의 기구한 사연, 각종 이질적 존재들이 활보하는 세계의 경이는 분명히 대단했지만, 다소 헐거운 개별 에피소드 방식에 의지한 전개가 불안요소였다. 이런 문제는 중간에 감독으로 교체되어 들어왔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04년)에서 한층 커졌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차세대 감독 발굴 노력이 06년 [게도전기 – 어스시의 마법사]의 실망스러운 완성도로 인해 벽에 부딪혔을 때, 또다시 그는 구원투수로 돌아왔다. [벼랑 위의 포뇨](08년)는 기본적으로 토토로의 경이감을 인어공주의 모티브로 느슨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그러나 환상과 대비되는 현실의 그림자, 모험 이후 이뤄낸 섬세한 인간적 성장 같은 매력은 살짝 퇴보하고, 시각적 쾌감만 한층 강조된 감이 있었다. 정도에 대한 이견은 있겠으나, 하향세는 명확해 보였다.

종착역이기에는 아쉬운 [바람이 분다]

은퇴작을 만들 기분이라면, 자기 가장 내밀한 모습을 끄집어내 선보일 만하다. 평화주의자이자 병기 매니아라는 자신의 양면성을 직면하고, 그것을 어떤 모순적 인물을 모티브로 해서, 이왕이면 비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파괴 반대의 테마로 가면 확실할 것이다.

올해 개봉한 [바람이 분다]는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었으나, 미묘해진 작품이다. 2차 대전 당시의 실제 전투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생애를 그려내면서도 전쟁의 허망함을 다루었기에, 일본 우익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반면, 지로를 그려내면서도 전쟁의 책임 관계에 관해서는 다루지 않아 일본 좌익 및 전쟁 피해국이었던 한국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사실 이것은 미야자키 감독이 우익으로 사상전향을 했다기보다는, 그의 작품에서 전쟁을 다뤄온 방식의 오랜 한계에 가깝다. 전쟁을 상호 파괴의 총아로 추상화하여 극렬히 반대하되, 그 안에서 평범한 개인들마저 함께 기여하는 구체적 모습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외면해온 것이다. 예를 들어 [붉은 돼지]에서 감독은 포르코의 입을 빌려 파시스트들을 비판하면서도 파시즘의 모습 자체, 즉 평범한 동네 사람들의 평범한 악의가 뭉쳐나가는 모습은 그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약점이 여전한 상태에서, 이번 작품은 실재했던 전쟁과 그 속에서 역할을 한 실존인물을 다룬다. 전쟁을 키워내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행동들을 그려놓고는 그 현실을 외면하고 꿈을 추구하는 모순적 주인공을 보여주면, 섬세한 작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을 그려내지 않는다면, 현실을 외면하고 꿈을 추구하는 모순적 인물은 주인공이 아니라 감독 자신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역시 여기에서 멈추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미야자키 감독이 또 한 번 은퇴선언을 번복하고, 차기 감독작은 [맨발의 겐]을 원작으로 하겠다고 발표하는 날이 멀지 않아 오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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