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재본은 여기로. 원래 이번 회는 NL중2병사태에서 한겨레가 시전한 실드질의 문제점을 지목하는 내용을 쓰려했으나 더 어처구니 없는 저널리즘 문제 사안이 발생;;
그 신문, 투명한가
김낙호(미디어연구가)
현대적 관점에서, 언론은 명목상으로나마 ‘진실의 전달’이라는 역할을 요구받아왔으며 스스로도 자부했다. 하지만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방안인 세부 규범은, 매체 기술의 변화든 그저 실현 가능성에 대한 자각이든 여러 요인에 의하여 초점이 바뀌었다. 진실을 설파하기 위해 선명하게 이념을 드러내야 한다는 고전적 관점은, 언론 자신의 의견은 배제해야 한다는 객관성 규범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것 또한, 뉴스를 선별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이미 객관적일 수 없으니 여러 입장을 공정하게 반영하자는 공정성 규범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공정성 논리 역시, 시시비비가 비교적 뚜렷한 사안들이 기계적 균형을 명목으로 오히려 왜곡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겼다. 그렇기에, 보도가 작성된 맥락을 독자들이 감안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 현재 주목받는 규범인 ‘투명성’이다.
투명성은 출처가 되는 원자료의 개방, 기사 작성 과정의 공개, 이해 관계의 명시 등을 방법론으로 한다. 이것을 언론규범으로 내세우는 것은, 뉴스수용자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신뢰를 전제하고 있다. 맥락이 밝혀져 있다면 그것을 활용하여 내용을 소화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이들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다. 근거, 과정, 관계를 밝혀 독자들로 하여금 감시하게 만드는 것은 공정성, 객관성에 대해서도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든다. 나아가 구체적 맥락이 갖춰지면 참조 자료로서의 가치도 더 탄탄해져서, 오늘날 매체 환경의 격렬한 소식 경쟁 속에서도 상당한 강점이 되어준다. 즉 규범 중에서도 최강의 투명규범인 격이다.
공교롭게도, 정확하게 그 반대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더니 투명성이 추구하는 바와 비슷한 결과에 도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법 부수를 많이 찍는다는 어떤 종이일간지가, 검찰의 역할 수행을 둘러싼 권력싸움 속에서 무리한 보도를 휘두르며 특정 이해 당사자들에 대한 사실상의 행동대장 노릇을 했다. 배후가 국정원일 것이라니 청와대일 것이라니 하는 여러 설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신문이 현 검찰총장에 대한 공격적 추문 보도를 했고 그 보도를 구실 삼아 법무부장관이 공개적인 조사 발표를 하고(즉 사실상의 사퇴 종용) 곧바로 사퇴가 이어졌다는 사실은 확고하다.
그런데 당초 보도들은 정보 출처의 은폐는 물론이며, 여러 가능성의 교차검증을 과감하게 무시한 부실함으로 얼룩져 있고 심지어 기본적인 당사자 확인조차 없이 시작되었다. 정보 입수와 보도 타이밍 결정 등 과정에 대한 설명도 논리를 갖추어 제시된 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확언한 당신의 혐의가 사실이 아님을 당신이 증명해내라는 논리적 무리까지 저지르며 열심히 사운이라도 걸었듯 연일 강변했다. 이쯤 되면 웬만한 독자라면 누구나 인식할 수 있을 만큼 보도의 기본 맥락은 ‘투명하게’ 드러난다. 본 보도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확실하게 해코지하고 싶어서라고 말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투명성이 아니라 단순히 막 나가는 것이라서, 투명성 규범이 가져다주는 장점들이 따라오지 않는다. 신뢰성과 참조 가치로 독자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탄탄한 브랜드 구축을 통해 선진적 언론 산업 실험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특정 정파와 연결된 정치적 영향력과 해코지 실력 과시로 광고주들을 붙잡아두던 오래된 후진적 언론 사업모델을 연장할 뿐이다. 이런 방식이 여타 언론사들에게 일말의 부러움이 아닌, 확실한 반면교사 사례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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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2030 잠금해제] 필진 로테이션. 개인적으로는, 굵은 함의를 지녔되 망각되기 쉬운 사안을 살짝 발랄하게(…뭐 이왕 이런 코너로 배치받았으니) 다시 담론판에 꺼내놓는 방식을 추구하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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