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와 게임의 접목에 관하여 토론한 얼마전 블로터 행사를 정리한 미디어오늘 기사를 읽고 몇가지 단상. (“뉴스와 ‘게이미피케이션’은 상극인가“(미디어오늘) )
뉴스와 게임의 접목이라는 토픽은 오늘날의 뉴스매체 환경에서는 당연히 관심이 필요하지만, 위 기사에 소개된 논의의 방향성은 조금 아쉬운 부분을 남긴다. 단적으로, ‘재미 vs 유익함’ 같은 대립틀이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너무 협소해서 그렇다.
진지한 이야기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요소의 적절한 구분이다. 먼저 게임이란 무엇인가? 아주 편의적이며 기계적으로 규정하자면, 1)유희를 얻는 것을 일차 목적으로 한다는 전제 위에 2)일정한 룰에 기반하여 3)일정한 도전적 과업을 수행해냄으로써 4)일정한 성과를 피드백 받는 과정이다. (주: 허나 압락님의 지적처럼 “게임의 최소 규정이라기엔 조금 많고, 최대 규정이라기엔 조금 좁다”)
이런 과정을 뉴스에 어떻게 결합할 때 어떤 훌륭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인가. 1)을 강조하면 화두가 된 위 기사에 언급된 ‘재미 vs 유익함’ 문제에 부딪힌다. 반면 2)(룰)를 강조할 때 훌륭한 ‘뉴스로서의 게임'(game as news)을 만들어낼 수 있고, 4)(성과 피드백)를 강조하는 것이 바로 ‘뉴스의 게임화'(gamification)다. 둘 중 어느 쪽을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3)의 내용은 정해진다.
A. ‘게임화'(gamification)는 엄밀하게 설계되고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게임 특유의 보상 피드백을 다른 분야에 적용한다는 발상으로, 온갖 자잘한 성취에 스코어와 포인트, 뱃지 등을 부여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나아가 오늘날은 소셜망이 넘치는만큼, 온 주변에 그런 것을 자랑하도록 장려하는 것도 있다. 뉴스의 게임화란 뉴스의 습득에 대해 게임 방식의 피드백을 부여한다는 것이 되는데, 뉴스 내용에 대한 퀴즈를 흔하게 떠올릴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런 접근의 관건은 자신이 얻어낸 스코어가 얼마나 자신과 남들에게 자랑거리가 되는지에 있다. “당신은 몇 개 맞혔습니다”보다는 “당신은 한국인 87%보다 똑똑합니다”가 매력적인 피드백이고, 이왕이면 트위터 페북으로 점수 공유 버튼이 있는 것이 좋으며, 누적도 되면 더욱 좋다. 다만 이런 방식은 성공할 경우 사람을 불러모으거나 소소한 재미를 주는 것에는 좋지만 뉴스가 담아내는 내용의 깊이에 무언가 큰 도움이 될 구석은 많지 않다.
B. 하지만 훨씬 섬세하게 관심을 기울여봐야할 부분은 ‘뉴스로서의 게임'(game as news)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면 뉴스 내용를 숙지하게 되는 효과를 얻는 것이 애당초 뉴스와 게임을 접목시키는 것의 목적이라면, 단순 암기 너머 깊숙한 문제 인식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요소인 ‘룰 부여’가 바로 그 핵심이다. 재미있는 게임, 아니 제대로 된 게임이 되려면, 플레이어는 쭉쭉 달아버리는 마나든 점점 빨라지는 네모블록이든 어떤 제한된 조건 안에서 과업을 해결해야 한다. 숲 속의 몬스터든 상대 플레이어든 과업을 방해하는 요소들 역시 어떤 특정한 규칙에 입각하여 움직여야 한다. 이 요소가 뉴스의 무엇과 만나는가를 생각하면, 뉴스로서의 게임이 최고의 빛을 발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답이 아주 간단하게 나온다. 바로 사회 사안의 프로세스와 메커니즘의 설명이다. 이런 사례는 어떤가.
– 치열한 자본주의(Cutthroat Capitalism). 2007년 WIRED 작품. 플레이어는 소말리아 해적이 되어 열심히 번성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은 것이, 인력과 화기 수급은 제한되어 있고 연료는 많이 들고 성공적 인질협상은 시간이 걸린다(그동안 비용이 계속 나간다). 현대의 해적질 행위가 완연히 사업화되어 있고 그렇기에 해적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업규제의 논리를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직접 그 메커니즘을 체험시켜 인식시킨다.
– 예산 퍼즐(Budget Puzzle). 2010년 뉴욕타임즈 작품. 국가 부채 누적을 경계하면서도 필요한 사업은 다 하는 균형잡힌 예산 편성이라는 것이 과연 강경파들의 표어처럼 간단한 것인가. 보수 공화당이 벼랑끝 작전으로 나오며 미국(을 위시한 세계)경제를 말아먹을뻔했던 시기, 예산 들어가는 여러 정부사업에 대해 한번 그러면 독자가 직접 편성해보도록 만든 게임. 줄이면 무조건 좋거나 무작정 다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을 조율해야 하는 사안임을 제대로 전달한다.
– 프리 컬쳐 게임(Free Culture Game): 카피레프트로 지칭되는 ‘프리’ 문화를 강력한 저작권 체계 속에서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수동적으로 시장 영역에 만족하려는 시민들을 공유지로 이끌어내고, 공유된 지식을 사유화하려는 시장 세력을 방어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끝없이 하고 또 해야 한다. 그렇다고 시장 영역을 뿌리뽑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 바로 주어진 조건이다. 뉴스기관이 만든 게임은 아니지만 뉴스게임으로서의 효과 사례로 꼽기에는 나쁘지 않다.
반면, 미디어오늘 기사에도 언급된 NYT의 사진 속 축구공 위치를 알아맞춰 보라는 스팟더볼은, 숙지시키는 메커니즘이 없으니(사진 찍기가 힘들다는 점?) ‘뉴스로서의 게임’에는 한참 미달하고, 그렇다고 ‘게임화’가 잘 되었다고 볼 만큼 피드백이 매력적이지도 않다. “나는 공이 원래 어디쯤에 있는지 잘 맞추는 사람이다”라는 것이 자신에게든 남에게든 어떤 자랑이 되겠는가. 그래서 뉴스와 게임의 접목이 아주 망한 사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뭐 이런 이야기다: 어떤 사회적 사안이 이뤄지는 과정이 얼마나 절묘한지, 그것에 결부되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겉으로 보기보다 얼마나 난감한지, 그럼에도 대안의 폭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 등을 전할 때 ‘뉴스로서의 게임’이 효과적이다. 그럴때야말로 신기술로 잠시 이목을 끄는 기믹이 아닌, 뉴스 효과를 증폭시켜주는 가치가 생겨난다. 전문적 저널리즘이 지향해야할 바 또한 어차피 사안의 복합성을 캐주는 것에 있는 만큼(이와 관련, 예전에 ‘복잡계 저널리즘‘이라는 망한 키워드를 제시하고 마이너해서 묻힌 바 있다), 진지하게 더 깊게 파고들 이유는 충분하다. 어떻게 하면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사안의 전개과정과, 그 안에서 행위자들이 제한된 폭 안에서 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을 더 절묘하게 단순화시켜서 체험시켜줄 수 있을 것인가? 좋은 뉴스의 첫 질문이자, 동시에 좋은 게임을 만드는 첫 질문이다.
“말은 쓰레기니까 닥치고 뭐라도 만들어보자”도 좋지만, 이왕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좀 더 정밀한 이해를 추구하는게 아무래도 조금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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