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한국 만화 이슈와 동향 10선 [BOGO / 201501]

!@#… 우만연과 휴머니스트가 만드는 만화평론지 월간 BOGO 신년호에 기고했던 글. 게재본에는 편집부 요청으로 6.에서 작가/작품명이 익명 처리되었는데, 충분히 공론화된(그리고 그게 마땅한) 사안이라고 보기에 여기서는 다시 명시.

 

2014년 한국 만화 이슈와 동향 10선

김낙호(만화연구가)

한 해가 지나갈 때 즈음에 돌아보면, 항상 바로 그 해야말로 어떤 결정적인 전기로 가득했고 앞으로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계기로 가득했던 것만 같다. 그것이 의례적인 주관적 느낌에 불과한지 아니면 정말로 그러한지를 분간하는 것이야말로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인데, 그 첫 걸음은 바로 이런저런 사건들을 차분히 되짚어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한국만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 가운데, 나름대로 주목할 만한 10가지 모습을 선별해보고자 한다.

1. 레진코믹스의 성공적 정착

2014년은 성인지향 온라인 만화서비스 ‘레진코믹스’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며 언론의 주목, 지원기관의 관심, 테크 계열 자본의 투자 등을 가득 모으고 외형적 성장을 크게 이뤄낸 해다.

레진코믹스는 에로틱한 감성과 위트, 개성있는 아마추어 만화 소개 등으로 널리 알려졌던 블로거 Lezhin(레진)이 자신의 유명세를 브랜드화하여 2013년 6월에 출범시킨 온라인 만화 서비스다. 이들은 대형포털의 웹툰 서비스보다 후발주자라는 핸디캡을 선명한 과금 모델에 기반한 수익 배분 및 공격적 작품 영입으로 극복했다. 레진코믹스는 기존 포털서비스들의 사용시간 극대화 접근보다는, 다음 분량에 대한 포인트 과금 모델을 중심으로 움직였다(이것을 위해 필요한 결제 과정 간편화에서, 개발팀의 능력이 특히 빛을 발했다). 선명한 수익모델과 표현 수위에 대한 느긋한 허용치는 좀 더 개성적인 소재와 표현을 필요로 하는 작가들을 끌어들였고, 작품의 만듦새나 화제성에 대한 품질 관리 역시 상당히 엄격하게 이뤄졌다.

이런 준비는 결실을 발휘하여, 먼저 수익과 투자 측면에서 괄목할 성과를 보였다. 5월에 이미 가입자 100만명, 적극 사용자 월 40만명을 돌파했으며, 전체 사용자 대비 7% 가량이 유료결제를 하고 있다고 레진코믹스가 자체 발표했다. 개별 작품으로는 가장 뚜렷한 인기작인 [나쁜 상사](네온비)가 첫 1년 동안 작가에게 2.8억원의 수익을 안겨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엔씨소프트로부터 5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고, 미디어믹스 등의 사업 확장 계획도 표방한 상태다. 9월에는 1.5억원의 상금을 걸고 세계만화공모전을 주최하며 한일 동시게재를 약속한 것으로 볼 수 있듯, 해외 서비스 역시 가까운 시일 내에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성장과정 속에 레진코믹스는 만화서비스라는 분야 뿐만 아니라 콘텐츠 사업 스타트업 전체의 범주에서도 2014년의 가장 주목받는 업체가 되었다.

레진코믹스의 성공적 정착이 주는 교훈은, 단순히 만화로 사업을 한다는 목표 이상으로 스타트업으로서의 틀거리를 확고하게 갖추고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장성을 정확하게 사전 조사하여, 만화 문화 취향이 확고하되 성인 지향 표현수위를 원하는 이들을 명시적으로 노렸다. 그리고 플랫폼 구현력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처음부터 개발팀을 강력하게 갖추었다. 인력 모집과 대우 측면에서도 만화출판사보다는 IT 스타트업의 분방함을 강조했다. 특정한 표현기술보다는, 만화를 감상하는 인터페이스의 직관적 편의와 앱의 안정적 구현에 집중했다. 오히려 별점과 댓글 같은 의례적으로 존재하지만 작품의 실제 인기 측정과 입소문에는 오히려 역기능적인 기능들은 제거하여 깔끔한 단순성을 강조했다. 즉 서비스로서의 완성도가 기존 포털 만화섹션 또는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여타 서비스보다 단연 높았던 것이다.

반면 여전히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하나는 성인콘텐츠로서 겪는 표현검열 문제로, 초기에는 애플의 아이스토어에서, 가을에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각각 음란성으로 일방적 규제를 당했다. 만화 작품들에 있어서는 플랫폼이지만, 서비스로서는 앱 생태계라는 플랫폼에 좌우되는 격이다. 다른 하나는 규모를 키우면서도 화제성과 전체적 품질관리 수준을 이어갈만한 지속성으로, 개별 작품에 대한 홍보력 집중 측면에서 어떤 저력을 보여주느냐가 향후의 관건이다.

2. 웹툰서비스의 폭증과 흥망

2014년에는 다양한 웹툰 서비스들이 여러 방향에서 새로 출범했다. 통신사의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가 웹툰 코너를 2013년 하반기에 재정비한 경우인 KT올레마켓은, 누룩코믹스와 재담미디어 등의 에이전시를 중심으로 양질의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즐거우리 우리네 인생] 등 인기작들을 안정적으로 정착시켰다. 카카오페이지 역시 모호한 사용성으로 겪은 실패를 딛고 아예 e북 서비스로 개편하며 다시 적극적으로 웹툰에 도전했는데, 이 경우는 회사가 다음카카오로 합병되면서 웹툰 영역 역시 재편될 전망이다. 커피코믹스 같은 옛 만화의 재서비스에 집중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또한 디지털의 표현적 가능성을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움직임과 소리 같은 특수효과에 중점을 둔 곰툰도 출범했다. 한편 가장 두드러진 것은 레진코믹스의 성공사례에 고무된 모습이 역력한 후발주자들로, Z코믹스, 2013년말 출범한 사실상 에로만화 전문사이트 탑툰, 도전만화가 형식을 가져온 티테일과 판툰 등이 대표적 사례다.

다양한 사업자의 증가로 판이 커지는 것은 분명히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과열 마케팅 경쟁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탑툰이 경쟁업체인 곰툰으로 들어가는 검색 키워드를 가로채는 어뷰징 마케팅 및 각종 에로 메시지 스팸 공해로 물의를 빚었다. 또한 아쉽게도 판을 접는 사례 또한 빠르게 등장했다. Z코믹스가 3개월여를 버티지 못하고 바로 폐업했으며, 판툰 역시 작가들에게 고료 체불이라는 좋지 않은 소식 속에 결국 2014년을 넘기지 못했다. 문제는 충분한 사전 준비나 운영능력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인데, 독자들을 어떻게 공략하고 작품들의 섭외와 품질 관리, 읽기 경험의 특화와 편의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충분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엿보였다. 즉 사업 “모델”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실제로 쓸만한 웹툰 서비스로 발전시키는 것 사이에는 독자와의 취향 공유, 다루는 콘텐츠의 품질 관리 등 지극히 기본적인 만화매체 제작 과정이 있다는 평범한 교훈인 셈이다.

3. 한국 웹툰의 세계 진출 활성화

올 한해는 한국 작가의 웹툰 작품 또는 웹툰 서비스가 해외로 서비스를 확장하는 계기가 다양하게 집중되었다.

첫 발은 한국식 포털 웹툰 모델을 영미권 작가 작품으로 서비스하는 ‘타파스틱’(Tapastic)을 만든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인 타파스미디어가 한국의 미디어다음과 연초에 작품 제휴 계약을 한 것이다. 타파스미디어가 적극적인 작가 수익 배분 모델로 이미 국내 창작자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얻은 상태였으며, 번역 품질, 독자 성향 감지 등에 있어서 미국 현지 업체로서의 장점이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에 힘입어 다음은 20억원의 투자를 결정, 다음 웹툰 가운데 일부를 북미에 번역 소개하는 동시에 공동 기획도 들어갔다.

국내 웹툰의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네이버 역시, 최근의 해외 만화축제 홍보에 이어 2014년에는 본격적으로 해외 대상 서비스를 개장했다. 일본계 자회사인 주식회사 ‘라인’을 통해, 라인 메신저와 연동시켜 한국식 웹툰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름 시즌에 서비스 개장과 함께 50개 내외의 작품을 영어와 중국어로 거의 국내 연재와 시차 없이 제공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신의 탑] 등 이미 현지에서 해적판으로 큰 인기를 끌던 작품들을 전면배치했다. 나아가 연말에는 아마추어 작가들을 독자들이 공개오디션하는 ‘도전만화가’ 형식 또한 해당 해외서비스에 적용하는 등 본격적으로 페이스를 올리고 있다. 한편 ‘라인 웹툰’과 별개로 네이버-NHN플레이아트의 일본내 서비스인 ‘코미코’가 출범했는데, 코미코의 한국어 서비스를 하면서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금 일본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교류 역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렇듯 한국 만화 창작의 주류가 종이출판에서 웹툰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온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난 지금, 출판 너머 웹툰 자체의 모습으로 해외 독자들과 마침내 본격적으로 접촉면이 넓어지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번역 품질에 대한 공명심 때문이든 단 1시간이라도 더 빨리 보겠다는 투정이든 서비스 사이트 접속에 대한 귀찮음이든, 여전히 영어권과 중국어권에는 한국 웹툰의 불법 팬 번역 해적판이 적지 않게 돌아다니지만, 브랜드 마케팅의 성과에 따라서 차차 나아질 가능성이 보인다.

4. [미생] 2백만권 돌파와 드라마의 도움

2012년에 [미생]이 샐러리맨들의 큰 호응 속에 미디어다음에서 웹툰으로 연재되었을 때, 필자를 포함하여 만화계의 많은 분들은 오랜만에 학습만화가 아닌 만화 분야에서 밀리언셀러가 탄생하여 침체된 만화출판의 분위기에 활기를 넣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꿈꾼 적이 있다. 그러나 2013년 10월 9권으로 완간되고, 2014년 여름까지도 결국 90만부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 타이밍에, 두 가지 외부 요인이 겹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하나는 tvN 제작 드라마 [미생]이 전체 방송 프로그램 선호도에서 수위권을 다툴 정도로 큰 대중적 인기를 끌었고, 동시에 원작 재현도가 높다고 알려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간, 구간을 포함한 모든 도서의 할인율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온갖 할인 이벤트가 난무하며 충동적으로 책 구매가 일시적으로 활성화된 것이다. 그 결과 미생은 드라마 시작 수 주만에 결국 100만부를 돌파하고, 그 뒤 다시 한 달만에 200만부를 돌파했다. 나아가 더욱 많은 수요를 감안, 출판사측은 보급판을 새로 제작할 것임을 밝혔다.

도서정가제의 영향이 인기작 일반의 구매 의욕을 증폭시킨 것인데다가 교훈을 얻기에는 지나치게 일회적 사건이라면, 드라마의 성공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구석이 있다. 출판사의 말에 따르면, 드라마 방영 전에는 3-40대 남성 독자층이 주류를 이뤘고 방송 이후에는 20대와 4-50대, 여성독자의 비율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이런 현상의 함의는, 드라마 이전에는 아무리 큰 화제를 모으고 언론에서 자주 다루어줬다고 해도 결국 작품이 직접적으로 주인공으로 삼아 다루는 층에게만 인지도를 얻고 구매까지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드라마는 여전히 원작의 이야기와 주제에 충실하면서도 한층 보편적 호소력을 발휘한 것이다. 단지 방송이라는 매체의 본연적 장점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만화가 더 다양한 수용자층에 어떻게 각각 가깝게 다가가도록 더 층층이 설계된 마케팅을 할 수 있을지 치밀하게 분석에 들어가봐야할 사례다.

5. 한국 만화가 협회의 젊은 재탄생과 도전

업종에 대한 외부의 위협이 닥쳐 올 때, 조직화는 힘을 얻는다. 위협을 겪으며 조직화하여 체계적으로 대항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최근의 만화계에 있어서는, 2012년 조선일보가 일으킨 폭력 웹툰 마녀사냥 국면이 그런 계기였다.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에 속하는 웹툰 작가들이 대거 만화가 협회에 가입한 상황에서, 1월에 그간 만협의 일반적 분위기와 크게 다르게 치열한 차기 협회장 선거가 치워졌다. 세 명의 후보자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흑색선전 파문 같은 부정적인 일면도 발생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투표 결과 당선된 것은 그 중 가장 젊은, 90년대 [까꿍] 등으로 히트를 치고 10년대에 [무림수사대] 등으로 웹툰 환경에 성공적으로 재적응했던 이충호 작가였다. 이충호 작가는 회장으로 당선되기 전부터, 만협을 분과 체제로 구성하여 웹툰 분과를 만들고 웹툰 작가들을 만협의 우산으로 조직화하여 효과적으로 심의와 공정계약 등 여러 권리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창했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 만협은 냉정하게 논하자면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내내, 만화를 둘러싼 급격한 변화의 환경 속에서도 만화 창작자들의 창작 권리를 위한 조직행동에는 소극적이고, 친목활동이나 문화계 행사에 이름 빌려주기, <데일리줌> 같은 부실한 수익사업 협조 등으로 대부분의 활동을 채우며 전반적으로 무기력한 기간을 보냈다. 하지만 웹툰 탄압 국면을 전후로 사업적으로나 인력으로나 적극적 역할로 재편되었고, 그 형식적 완성이 이충호 작가의 회장 당선이었던 셈이다.

그런 새로운 만협이지만, 곧바로 시련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나는 한국만화연합과의 갈등과 탈퇴다. 한국만화연합은 원래 2012년 만화진흥법추진위원회의 제안으로 만화계 대정부 창구 단일화를 위해 만협, 우만연, 카툰협회, 만화스토리작가협회 등 개별 창작자 단체들이 합심하여 만든 곳이다. 하지만 한국만화연합이 논의체를 넘어 아예 자체 사단법인화를 추진하고자 하자, 만협은 의결방식과 운영의 비효율, 이사진의 문제, 사업상의 무책임 등 여러 이유로 결국 자신이 만든 단체에서 탈퇴를 결정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 과정에서 새 만협은 사실관계를 비교적 빠르고 깨끗하게 밝혀서 바로잡는 회장 성명서를 내어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대처가 축적되고 계속 적극적으로 조직화된 권익 개입을 한다면, 만협은 점차 명실상부한 대표 조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6. 스튜디오의 권력관계 문제, 두 개의 불미스러운 사건

올해, 두 개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만화 창작 작업 과정의 권력관계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나의 사건은 화려하고 박력 있는 그림으로 인기를 모은 [본초비담]의 정철 작가의 화실에서 발생한 성추행 및 임금 분쟁이다. 작업 과정에서, 정철 작가가 여성 어시스턴트에게 성적 모욕성 발언과 행동을 했고, 그 이전에 작업 수당을 약속한대로 지급하지 않고 반대로 일은 가혹하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법정으로 가서, 현재 1심으로 징역 8개월 판결이 나온 상태다.

다른 하나의 사건은 일본에서 [선켄락]으로 인기리에 활동중인 박무직 작가의 현지 화실의 문제점에 대해서 어시스턴트가 창작 지망생 온라인 커뮤니티에 폭로한 것이다. ’11개월만에 지옥에서 벗어났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묘사한 바는, 작가가 어시스턴트인 자신에게 과중한 노동을 시키면서 당초 약속한 수당을 주지 않고, 실수에 대해서 모욕과 폭력을 행사하며 작가 데뷔를 막겠다는 협박까지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박무직 작가가 해당 어시스턴트가 왜 혼나야 했으며 자신의 경제사정이 어떠했는지를 골자로 반론을 달며 여러 사실관계 다툼이 이어졌다.

외견상으로는 전자는 개인적 파렴치 사건, 후자는 사장이 직원을 막 대한 사건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건은 문하생과 어시스턴트 즉 제자 개념과 직원 개념 사이의 혼선 속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비극적 공통점이 있다. 정철과 박무직 작가는 둘 다 만화 창작자의 권리에 대해 열성적으로 활동을 해왔으며, 나아가 힘든 과제를 주고 엄격하지만 그만큼 체계적으로 잘 훈련시키는 좋은 교육자로 높은 평판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런 점이 오히려 취약점이 되어, 공사구분의 탈선과 권력남용의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당초에 제자든 어시스턴트든 무엇으로 모집했든, 친하든 아니든, 화실에서 직업으로서 작업을 할 때는 직업적인 관계임을 망각하는 것이다. 약속된 대가는 가족처럼 함께 상황을 이해해줄 것을 전제하고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대로 주어야하고, 작업시간은 준수해야하고, 직원의 작업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모욕적 채찍질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로 평가하고 처분해야할 사안이다. 직업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열정적 스승”이 아니라 “나쁘지 않은 사장”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노동 현장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기 위한 어시스턴트 직군의 조직화도 본격적으로 공론화해볼 필요가 있다.

7. 만화인들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운동 참여

8월, 한국만화가협회에서는 세월호 침몰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에 참여하기 위해 캐릭터 피켓 시위라는 운동을 펼쳤다. 정해진 피켓 형식으로 각 작가가 자신의 인기 캐릭터가 시위에 참여한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조직적으로 사회적 사안에 힘을 보태면서 동시에 만화라는 전문성을 십분 살리는 방식으로 좋은 선례를 남겼다.

8. 서울시 만화공간, ​재미랑과 재미로

서울시의 명동과 남산 일대를 잇는 길이 2013년 12월에 ‘재미로’라는 이름으로 만화의 거리로 조성되고, 전시 공간 ‘재미랑’까지 세워졌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가는 길목을 만화중심의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사업으로, 부스 배치를 통한 작가 전시, 포토존, 만화열람실 등으로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9. 무크지 풍년

올해는 각종 만화 관련 무크 출판이 한꺼번에 몰렸다. “월간희망무크지”에서 결국 월간지로 발돋움한 [보고], 단행본과 무크지 사이에서 결국 무크지로 나오게 된 만화소개 전문지 [그래픽노블], 만화가들의 창작 과정 인터뷰집인 [마나가], 소설과 문예 성향 짙은 만화를 배합하는 것이 목표인 [이미지 & 노블], 만화학원강사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했다는 창작집단 쾅의 실험적 만화 모음 [쾅], 오래전 만화문화연구원의 만화비평 문집 ‘코코리뷰’를 연상시키는 [엇지] 등 다양한 무크지가 등장했다. 이중 상당수는 지원사업을 통해 탄생했는데, 지속가능한 사업 입지를 다지는 것이 향후 관건이 될 듯하다.

10. [설희]와 [별에서 온 그대] 분쟁

2014년 초,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핵심 설정이 강경옥 작가의 [설희]의 표절이라는 분쟁이 발생했다. 법적 소송은 결국 7월에 3자 중재를 통해 해소되었으나, 중재의 조건에 대해서는 각 측이 따로 공개한 바 없이 마무리된 상태다. 이 사건은 만화 작품의 주요 설정이 드라마에서도 보이되, 직접적으로 작품 전체를 옮겨온 것은 아닌 수위였고, 예전에도 유사한 상황에서 결국 법적 판단은 “유사성은 인정되고 표절으로 판정되지는 않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바 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고 만화와 다른 매체가 상생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 차용에 대해서도 포괄적 원작 활용 계약을 사전에 맺는 관행이 자리잡도록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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