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GO 8호 그래픽 노블 특집에 게재된 꼭지.
그래픽 노블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김낙호(만화연구가)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은, 근본적으로 부실한 명칭이다. 만화 양식을 정확하게 지칭하는 코믹스(comics)라는 명확한 명칭이 이미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자기 규정을 위해 “소설”이라는 다른 매체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그렇듯, 그래픽노블이라는 용어가 걸어온 길에는 만화에 어떤 그럴듯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하고자 하는 시도, 그런 시도를 위해 만화라는 본연의 틀을 숨기는 것에 대한 개탄, 그리고 만화 산업의 구조 변화 속에서 점점 의미가 넓고 모호해지는 과정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그래픽 노블이라는 개념의 정착과정을 되짚는 것은 곧, 만화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어떤 과정 자체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픽노블이라는 단어 자체는, 최소한 1964년에 리차드 카일이라는 동인지 작가가 사용했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용어가 어떤 고급스러운 만화 형식을 지칭하기 위한 전략적 용어로 가다듬어지고 실제로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된 것은 1978년 윌 아이스너가 [신과의 계약]을 출간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즉 이 용어는 기본적으로 반정립 개념으로 탄생한 것인데, 북미지역에서 만화가 대중문화로서 가장 일반적으로 소비되던 형식인 ‘코믹북’과 전혀 다른 것임을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북미지역에서는 오락성 대중 만화가 20-30페이지 내외의 간행물 양식으로 출간되는 것이 1920년대 이래로 완전히 보편화되어 있었다. 캐릭터 중심의 연속극이라고 해도, 각 간행물 안에서 기승전결을 마무리 짓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즉 코믹북(문자 그대로 ‘만화책’)이 만화의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였는데, 코믹북이라면 연상되는 것은 바로, 뛰어난 상상력이나 재미가 담겨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짧은 페이지 분량 안에서 급하게 줄거리를 훑고 지나가기 바쁜 얄팍한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재능 있는 만화가들은 그 정도의 편견에 만화의 가능성을 가두어두는 것을 거부했다. 가면 탐정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피릿] 시리즈로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실험적 표현을 늘려가던 작가 윌 아이스너 또한 그런 부류였다. 점점 히어로의 모험보다는 동시대 시민들의 사회적 현실과 고민을 더 다루어나가던 그는, 뉴욕의 유대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여러 단편을 모아 1978년에 [신과의 계약]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작품집 기획은, 당대 대중에게 만화 그 자체와 동의어였던 ‘코믹북’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인 구석이 많았다. 활극이나 유머가 아닌 드라마고, 줄거리 진도 빼기보다는 섬세한 연출에 집중하고, 무엇보다 두꺼웠다. 아이스너는 책 출간을 제안할 때 코믹북을 내자고 하면 편견으로 인해 곧바로 결렬될 것이라 생각하여 출판사 사람의 구미에 맞춘 조어를 만들어 냈는데, 바로 그것이 ‘도상으로 표현된 소설’, 즉 그래픽 노블이다.
[신과의 계약]은 비평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며, 그래픽 노블이라는 조어를 보급시켰다. 하나의 작품으로 끝났다면 잠시의 마케팅 용어로 끝났겠지만, 우연찮게도 1980년대 후반에 북미권에서 실제로 진지한 주제와 섬세한 연출, 긴 포맷을 지닌 단행본 작품들이 급격하게 붐을 이루면서 그래픽노블이라는 용어를 완전히 고착시켰다. 미국 내에서는 대항문화로서의 언더그라운드 만화에서 축적한 실력으로 진지한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 성공한 아트 스피글먼의 [쥐]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독립 코믹북의 전설적 작품인 [세레버스] 시리즈도 보급망의 한계로 코믹북으로 모으기 힘든 이들의 성원에 힘입어 단행본으로 묶이며 대하 장편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주류 업계인 슈퍼히어로 장르에서도, 닐 애덤스의 배트맨 작품 등 점점 사회파 재해석이 늘어나던 와중에 결국 프랭크 밀러의 [다크나이트 리턴즈]가 등장했다. 나아가 바다 건너 영국에서도 앨런 무어라는 천재 작가가 [브이 포 벤데타], [왓치맨] 등의 무게감 넘치는 장편을 내놓았다.
이렇듯 80년대 후반부터 북미지역에서 진지하고 섬세한 만화가 붐을 일으키자, 호사가들은 이것을 ‘다른’ 만화로 다루고 싶어 했고, 그런 목적에 그래픽 노블이라는 윌 아이스너의 조어는 대단히 유용했다. 주류 슈퍼히어로 만화 출판사인 DC코믹스가 성인향 레이블인 ‘버티고’를 만들면서 단행본을 염두에 둔 코믹북 미니시리즈에 특화하고, 이런 문화가 점차 정착하면서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다양한 작가들이 판타그래픽스, 드론앤쿼털리, 키친싱크프레스 등 출중한 독립출판사들을 통해서 성찰적 작품들을 대거 내놓게 되었다.
사실은 가장 기계적으로 규정할 때, 그래픽 노블이란 만화로 표현되었으며 정간물이 아닌 단행본 책으로 나온 작품을 칭한다. 노블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지만 반드시 문학적 의미에서의 소설, 즉 서사적 픽션일 필요도 없다. 특정 장르로 한정되는 것도 아니고, 이전에 코믹북 정간물 방식으로 출간된 것의 모음집일 수도 있다. 실제로 북미지역의 만화산업계에서 산업적 분류를 할 때는 이런 기계적 규정을 채택하기 때문에, 단행본 단위의 완결성을 갖춘다기보다는 초장편 스토리를 이루기에 사실상 정간물에 가까운 일본 주류 장르만화 단행본도 그냥 그래픽 노블로 분류해버리곤 한다. 유럽에서 흔한 60-80페이지 내외의 ‘알붐’ 포맷 역시 북미지역에서는 그래픽 노블이 되었다.
그래픽 노블이 별도의 개념처럼 자리잡을 수 있던 또 다른 배경은 바로 당시 미국 만화계의 유통방식이었다. 애초에 코믹북 양식은 서점 유통망이 아니라 신문, 잡지 등 정간지 유통망을 통해서 가판대로 배급되며 시작했다. 그런데 70년대를 거치며 아예 만화 전문점 위주의 유통망이 형성되고, 유통 형식으로는 직판시장 방식(direct sales)이 정착되었다. 즉 코믹북으로 대표된 만화는 일반 서점과는 분리된 별도의 유통망에 들어가 있었고, 더욱 더 만화는 서점에서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책’이라는 이미지와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래픽노블은 서점으로 들어오는 일반적 단행본을 만드는 출판사들이 진출하거나, 만화 출판사들이 서점 유통망에 배급하는 책이었다. 더욱 기존의 코믹북과는 다른 무언가로 위치짓기 쉬운 상황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들과 상당수 독자들에게 그래픽노블이란 여전히, 코믹북으로 대표되었던 이야기 양식에 대한 반정립의 의미가 있다. 그래픽노블은 장기 연속극이 아닌 단행본 단위로 완결성을 지니는 이야기거나, 장르 공식보다는 작품 내적인 테마를 추구하는 독립적 작품이거나, 혹은 그냥 흔한 만화와는 다른 좀 더 그럴싸한 만화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개념 분리 캠페인은 비단 북미지역만의 독특한 문화가 아니다. 당대 주류 만화가 연성화되고 대중에 각인되어 만화의 더 진지한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60년대 일본에서는 ‘극화’ 운동이 벌어졌고, 90년대 한국에서는 ‘인디’만화, ‘언더’만화 등이 만화에 작가주의를 강조했다. 물론 이런 운동들 이전에 진지함에 대한 시도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운동이 결집되었다는 것이고, 그 구심점에는 용어가 있었다. 80년대 이후 북미지역에서 그 구심점 용어가 바로 그래픽 노블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래픽 노블’이라는 개념이 한국에 도입되어 쓰이는 방식은, 좀 더 미묘하다. 이 용어가 제대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1999년경, 서구권 만화 출판의 새로운 붐과 함께 이루어졌다. 90년대를 수놓았던 문화연구 관심과 시네마테끄 유행 등의 연장선에서, 당시 B&B, 교보문고, 현실문화연구 등의 출판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서구권 만화를 국내 출간하는 현상이 벌어진 바 있다. 사실은 프랑스권 작가주의 만화들이 주목을 받았음에도, ‘방드 데씨네’라는 만화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또는 알붐이라는 출판 단위보다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영어 조어가 아무래도 전략적으로 부각되었다. 그리고 점차, 그래픽 노블은 점차 서구만화 전반에 대한 통칭으로 정착했다. 그러다보니, 흑백의 선으로 표현된 연속극 방식의 주류 연재 만화의 모습과 달리, 개성적 필치와 채색, 편집 기법의 만화가 등장할 때 그것을 다시금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르는 현상도 생겨났다(2000년대 후반 만화잡지 [팝툰]에서 개별 작품에 ‘한국형 그래픽 노블’이라는 홍보 명칭을 붙인 것이 좋은 예다).
이렇게 볼 때, 그래픽노블이라는 구분은 한국은 물론이고 북미지역에서도 딱히 대단히 유의미한 범주가 아닌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무엇이 그래픽 노블이고 무엇이 그래픽 노블이 아닌지 선을 긋는 것은 뚜렷하지도, 유용하지도 않다. 어차피 모두, 그냥 만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픽 노블이라는 호칭의 의의만큼은 커다란 교훈으로 남아 있다. 만화에 대한 주류의 편견을 넘어서고, 훨씬 다양한 가능성들을 사회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진지한 시도를 거쳤기에 지금의 상태까지 겨우 도달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남아있는 편견들을 적극적으로 고치고자 할 때도, 그 정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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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매우 마이너한 관계로, 여러분이 추천을 뿌리지 않으시면 딱 여러분만 읽고 끝납니다]
역시 명료한 정리에 눈여겨 볼만한 시사점.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ㅈㅁ님/ 그리고 역시 읽는 사람, 뿌리는 사람이 별로 없죠(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