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만화, 만화와 여성 [부산대 문화제 강연0310]

(원 출처: 2003년 10월, 부산대학교 만화문화제 길거리 강연)

여성과 만화, 만화와 여성

김낙호 (만화연구자, 두고보자 편집위원)
여성 지향의 만화

  만화와 여성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100명 중 99명 정도는(실제로 물어본 적은 없지만) 꽃발 흩날리면서 등장하는 캐릭터들, 하늘하늘한 몸매의 나름대로 미남미녀라고 그린 등장인물들이 닭살스러운 대사를 읊어가면서 로맨스를 펼치는 내용의 만화책들을 상상할 것이다. 그것도, 대답하는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말이다. 하지만 꽤 구체적으로 ‘여자 만화’라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이 박혀있는 것에 비해서, 실제로는 여성과 만화의 관련맺음을 이야기하기란 결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몇가지 추가질문을 던져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맨날 그런 만화만 볼까?” “그런 만화들이 정말로 여성의 감수성을 대변해 줄 수 있는거냐?” “남자가 순정만화를 보면 이상하냐?”…등등.

  여성 만화라면, 몇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여성에 의한 만화라는 것을 들어보자. 단순히 여성작가가 그린다는 것에 한정짓는다면 사실 곤란하다. 일본의 히트 소년만화 <란마1/2>의 작가 타카하시 루미코는 여자고, 80년대를 풍미한 다작 순정작가 김영숙은 남자다. 따라서 여기서 ‘여성’이라는 말은 생물학적인 성별이 아닌, 여성적 관점에서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조금이라도 더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성적 관점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회가 부여해온 여성의 성역할, 소위 ‘바비인형-모델’에 충실한 것이 여성적 관점인가? 아니면 여성해방론 입장의 강력한 성별 대결구도(또는 최근의 진화형태인 양성 공존 구도)가 여성적 관점인가? 명백한 답은 물론 없지만, 적어도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능동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면 우선 여성에 의한 것이라는 말은 대략 성립이 될 수 있다.

  창작자 입장이 아닌 수용자 입장에서 보자면, 여성을 위한 만화라는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다. 여기서 ‘위한다’라는 말은 여성의 정당한 지위확보 같은 것이 아닌,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읽으면 큰일난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주요 타겟 독자층으로 하며 여성 커뮤니티의 코드들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어떤 내용들은 결국 기존의 남성 지배질서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 효과를 낳겠지만, 여하튼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비록 일시적인 최면효과라 할지라도) 나름의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앞의 것과 종합하자면,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만화” 라는 옛날 모 잡지의 광고문구가 만들어진다. 창작의 측면이든 수용의 측면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작품의 내용 아니겠는가, 라고 반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은 결국 창작과 수용이라는 맥락 속에서 방향이 정해지고, 같은 내용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가지의 교집합만이 여성만화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남자들을 대상으로 여성들이 받는 억압을 폭로하는 작품을 만들수도 있고, 별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훨씬 더 좋아하는 괴작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협의의 여성만화라면 물론 교집합이겠지만(또는 혹자는 더욱 더 좁게 잡아서, 여성운동적인 시각을 담은 것만을 여성만화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보다 포괄적인 여성만화를 이야기하려면 합집합 – 즉, 여성에 의한 만화 또는 여성을 위한 만화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만화라는 측면에서 보도록 하자. 만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여성만화는 다른 문화매체의 여성 파트들과는 사뭇 다른 위치에 있다. 예를 들어서 여성영화는 단순히 어떤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가까웠다면, 만화에서는 실체로서, 즉 순정만화라는 막강한 주류 장르의 하나로 완전히 자리매김되어 있다. 순정만화=여성만화는 아니고, 나아가 순정만화라는 분류 자체가 가지는 애매함도 간과할 수 없지만, 만화에서 순정만화가 점하고 있는 위치는 매우 확고하다(굳이 이야기하자면, 순정만화는 여성만화 가운데, 주류 오락장르화된 한 부분을 일컫는 말인 셈이다). 특정한 생산방식 특정한 내용 특정한 화법 특정한 독법 특정한 수용양태 등 자신만의 특성을 지니고 오랜 시간동안 만들어져왔다. 어쩌면 그것은 만화의 특성 자체에서 기인했을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독서’인 것이다; 게다가 규방문학의 전통이 살아숨쉬는 한국 아닌가.

  순정만화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남성 지향 만화에 비해서 캐릭터들의 심리적 상태와 감성을 중요시하며, 그 결과 로맨스라든지 하는 요소들이 더 비중있고 섬세하게 다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내용적인 것 이전에, 수많은 평범한 ‘남성’ 독자들 앞에 장벽으로 다가오는 것은 순정만화의 문법 그 자체다. 만화라는 것은 누구나 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완전히 재미를 느끼기에 수많은 사전학습이 필요하다. 순정만화의 화법과 문법들은 남성향의 소년만화 등과는 상당히 다르고, 그 결과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야기에 몰입하기는 커녕 캐릭터들의 얼굴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순정만화가 특히 90년대 들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창작의 측면으로, 순정만화 장르는 80년대 이래로 작가담론이 풍부했다. 당시의 대형 남성향 작가들이 프로덕션화되어 수많은 작품들을 당대의 유행에 따라서 공장제로 찍어냈다면, 순정 계열은 작가가 온전히 자기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상당부분 유지되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용의 측면으로, 한국 여성사회 특유의 커뮤니티성에 기반하여 여러 동호회들이 만들어지고, 동호회를 기반으로 의견교환과 새로운 작가발굴 등 지속적인 피드백과 경험축적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긍정적인 선순환 속에서 점차 순정만화는 그 지분을 만화계 전체에서 확대시켜 나간 것이다.

  여성들에게 순정만화는 과연 무엇일까. 80년대말 90년대 전반의 경우, 순정만화는 여성 커뮤니티에 있어서 대단히 강력한 오락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높은 품질의 잡지들, 그리고 개재작들의 단행본이 우후죽순 쏟아져나왔고, 여성의식 전반의 상승과 함께 화학작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만화의 오락적 기능이 전체적으로 침체한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자기 지분을 지키고 있는 분야 역시 순정만화의 영역이다. 하지만 여성만화로서의 뚜렷한 자의식이나 지향점은 점차 쇠퇴해왔고, 오락의 주류 장르로서의 코드들이 난무하는 조합형 스토리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우려에 귀기울일만 하다. 물론 여전히 여성만화로서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어필하는 작가와 작품들은 존재하지만, 더 이상 주류 인기장르의 틀에서가 아니라 개별적인 작가주의로서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해가는 상태인 것이다.
 
한국의 순정만화

 초기의 여성지향 만화는 주로 신파 정서의 ‘구박받는 고난 속에서도 꿋꿋이 가정을 꾸리는 소녀’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6-70년대에 민애니, 엄희자 등 일련의 작가들의 대본소용 순정만화에서부터 서구지향적 로맨스로 순정만화의 모습, 그리고 그 명칭을 형성해 나아갔다. 하지만 현재의 순정만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특징들은 79년 이후 <<캔디 캔디>>,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 일본 소녀만화의 유산들이 흡수되고 지분과 영향력이 확대된 다음에 나타났다. 80년대 들어서 소위 2세대 순정작가들인 황미나, 이진주, 김동화 등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대본소와 소녀잡지라는 두 가지 경로로 순정만화가 성장해나갔다. 보물섬의 <<달려라 하니>>, <<요정핑크>>, 대본소의 <<굳바이 미스터블랙>>, <<불새의 늪>> 등 80년대 초반부터 두 경로는 서로 다른 호흡과 스타일로 순정만화의 진화를 견인했다. 그리고 83-4년에 김진 김혜린 신일숙 등 대형 서사극 작가들이 데뷔하면서 순정만화가  소소하고 스케일 작은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편견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84년, 순정만화 동호회 PAC(초대회장 강경옥)이 결성되면서, 순정만화 특유의 커뮤니티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85년에는 현업작가들로 구성된 순정만화 동호회 <나인>이 결성되어, 동인지 <<아홉번째 신화>>를 발간해서 한국만화의 비평적, 창작적 측면에서 기념비적 돌파구로 정말로 신화가 되었다. 그리고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미라, 이은혜, 원수연, 등의 작가들이 등단하면서 순정만화의 저력이 준비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88년 순정만화 전문 잡지 <르네상스>가 창간되면서, 김진, 신일숙, 김혜린, 한승원, 이진주, 황미나 등 80년대 동안 내공을 쌓아온 인기작가들의 작품들과 함께, 신인공모전을 통한 신진작가들의 발굴에 나섬으로서 진정한 순정만화 르네상스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한 이로써 순정만화의 무게중심이 대본소에서 잡지시스템으로 서서히 옮겨오게 되었다. 문하를 통한 데뷔가 아닌 공모전을 통한 데뷔의 길이 본격화되면서 동호회 역시 한층 활성화되었다. 순정만화의 성공에 고무되어 수많은 잡지들이 명멸하였고, 90년대의 희망찬 빛이 밝아왔다.

  90년대에 들어서, 순정만화에서는 잡지는 흥하고 대본소는 망하는 구도로 재편이 이루어졌다. 또한 93년 <윙크> 잡지를 통해서 나예리, 박희정, 유시진 등이 데뷔, 강한 자의식으로 무장되어있으며 자기성찰적인 새로운 순정만화의 감수성을 대표하는 작품성향을 보여주었다. 94년도에 <르네상스>는 비록 폐간되었지만, 순정만화의 인기는 아직 현재진행형이었다. 특히 97년 <<리니지>> 온라인 게임, <> 가요음반 발표, 천계영의 <<오디션>> 대 히트 등 90년대적인 순정만화의 재정립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절정은 잡지 <나인>의 창간이었는데, 성인층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포부 그대로, 단순한 로맨스에서 벗어난 보다 성숙한 여성만화의 이야기들이 주류작가, 비주류작가들의 손을 통해서 펼쳐지고 있었다. 덕분에 한혜연, 이진경 등의 작가들이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자의식을 주장하며 “순정만화의 오락장르적 속성을 뛰어넘는 여성만화”를 추구할 수 있었으며, 이애림 최인선 등 여성적 감수성의 파격적인 방식의 표현들이 독자들과 만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2000년대에 들어서, 만화 전반의 침체와 함께 순정만화계에서도 여러 우려가 제기되었다. 2001년 <나인>의 폐간, 2002년 <케이크> 폐간 등 잡지 폐간이 이어지고, 작가와 편집부의 마찰 역시 격화되었다. 하지만 탄탄한 팬-작가 연계에 힘입어, 여러 복간 붐과 새로운 잡지창간 역시 이루어지고 있는 등 아직도 탄탄한 대로를 가고 있는 듯 하다.

세계의 여성지향 만화

  여성지향 만화의 흐름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각 시대의 각 사회의 여성의 위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에서 순정만화의 흐름이라는 것은 50년대의 순종적 여성상을 넘어, 6-70년대에는 현대화되어가면서도 가부장 가족의 틀을 못벗어나는, 따라서 그것을 선진 문화(이 경우는, 서구) 지향적인 로맨스 환타지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80년대의 문화적 풍요(?)와 사회내 여성지위 향상에 대한 욕구가 맞물리면서 작가주의 지향의 대작과 순정만화 커뮤니티들이 등장했다. 90년대는 이전의 이러한 기반 위에, 시대 특유의 개방성이 겹치면서 완전한 주류장르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명시적으로 여성 정체성과 지향점을 주장하는 만화들이 순정만화 장르 내에서, 또는 외곽에서 (페미니즘 잡지 ‘이프’의 연재작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탄생했다.

  일본의 경우는 한국과 비슷한 구석이 많으면서도, 여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장르화된 여성만화인 쇼조망가(소녀만화)는 한국 순정만화의 현재 모습에 대한 일종의 모델이었다. 일본의 쇼조망가는 소녀잡지 위주로 일본에서 발전을 해왔는데, 이미 1910-20년대부터 미형 그림체에 대한 기본 인식이 확립되어 있었다. 최초의 본격 쇼조망가로 꼽히는 데즈카 오사무의 <<리본의 기사>>를 필두로 64년 사토나카 마치코의 데뷔와 함께 소녀만화잡지 창간 붐을 이루며 서구지향적 모험 로맨스(종종, 서구 로맨스 스토리를 번안하는 경우도 많았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가, 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꽃의 24년조’ (모토 하기오, 다케미야 게이코 등 쇼우와24년 즉 1949년에 출생한 쇼조망가 작가들을 통칭하는 말) 들의 활약에 힘입어 쇼조망가의 세계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캔디캔디>>, <<에이스를 노려라>>, <<유리가면>> 등 대작 여성향 만화들은 단지 인기면에서뿐만 아니라, 연출법, 캐릭터들간의 인간관계 구도, 화풍 등 다양한 측면에서 장르 자체를 재발명해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일본 주류만화 특유의 엄격한 출판사 주도의 매니지먼트 시스템, 과잉 장르화된 흐름 속에서 쇼조망가 장르는 전반적인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단지 여성을 주요 대상층으로 하는 잡지에 연재되고 있을 뿐, 그다지 여성 중심의 정체성이나 코드를 강조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여성성의 강조는 오히려 언더그라운드, 비주류 계열에서 일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인디만화 잡지인 <가로>에서 활동하는 키리코 나나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는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우선 이 쪽에서는 한국의 순정만화나 일본의 쇼조망가같은, 주류화된 여성만화 장르 자체가 없다. 개별적인 여성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여성성을 나타내는 작품을 발표할 뿐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만화판은 완전히 남성지향적으로 짜여져 있으며, 여성 작가들은 숫적으로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독자들 역시 만화 전반에 대한 독자들일 뿐, 여성성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낸다든지 하는 움직임은 지극히 미미하다. 어째서일까?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여성해방담론이 일어나는 것과 문화장르로서의 만화의 발전이 동시대에 일어났기 때문에 두 가지가 상호작용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에 비해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여성해방 담론이 현대 장르만화의 발전보다 한참 전에 이미 일어났기 때문에 만화가 여성들에게 지니는 메리트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즉 여성이라는 층을 특별히 염두에 두고 발전한 장르가 나타나지 않고, 그냥 여성들이 그들이 원하는 오락을 다른 장르에서 충분히 찾아내버렸다는 말이다.

  우선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은 1930년대에 ‘코믹북’ 이라는 출판 양식이 히트를 치면서 만화의 기반이 크게 확대되었다. 코믹북 중심의 미국 만화계는 초창기부터 개인 작가보다는 프로덕션 위주의 생산이 강했는데, 특히 세계대전의 와중에 남성들이 군인으로 차출되면서 여성 만화작가들이 프로덕션에 들어가서 만화를 그리는 경우가 증가했다. 50년대로 접어들면서 슈퍼히어로 장르 이외의 것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로맨스 장르 및 여성 독자층이 성장하게 되는 듯 했다. 하지만 50년대에 계속 만화독자 전체의 숫자가 감소했고, 만화는 다른 오락미디어에 지분을 내주었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만화 산업에 종사했던 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혹은 타의에 의해서(가부장 사회에서는 어떤 산업이 축소되면, 여성 노동자들이 먼저 해고당하기 마련이다) 일을 그만두었다. 특히 워담으로부터 촉발된 만화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의 물결 속에서, 만화는 폭력적이고 거친 불량 오락물로 재규정되었고, 더더욱 여성들이 거리를 두어야할 물건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60년대에 마블 코믹스가 뛰어들면서 나타난 ‘실버 에이지’ 노선의 결과, 미국만화의 주류는 완전히 10대 소년 지향의 슈퍼히어로물로 통일되어버렸다. 여성의 위치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것이었다. 하지만 7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만화 붐과 함께, 여성들은 다시 등장했다. 비록 주류만화계에서의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트리나 로빈스, 로베르타 그레고리, 캐롤 레이 등 여성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작가들이 과감하게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이들은 <루루의 친구들>이라는 여성만화 동인 집단을 만들고 <> 잡지를 발간하는 등, 주류만화가 하나의 장르 하에서 점차 동어반복으로 빠지고 있을때 새롭고 정력적인 활력을 보여왔다. 유감스럽게도 직판시장(Direct Sales)의 유통망에서 큰 반향을 못일으키며 언더그라운드로서 머물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은 만화의 형식적/내용적 측면에서 큰 저력을 드러냈다. 현재까지도, <>가 TPB 시장(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단행본 시장)에서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등 그 명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만약 위와 같은 미국의 상황에서, 6-7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만화 흐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고 하지만, 아마도 <루루의 친구들> 같은 조직화 노력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의 경우가 그것을 반증해주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여성만화가 한번도 하나의 경향으로 조직화되거나 장르화되지 못했다. 브레테셰나 세스탁 등 여성의 정체성을 뚜렷이 가지고 사회풍자 이야기들을 그려내는 작가들은 물론 존재하고 있지만, 전체 만화계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고 있지는 못하다. 여성작가의 숫적인 비중 자체가 적은 것도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만화계에서 여성의 힘을 모아내야만 한다는 어떤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게 할 계기가 없었던 것이 더욱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일례로 플로렌스 세스탁의 경우, 여성정체성 짙은 작품활동 이외에도 72년에 진취적 성향의 만화출판사인 퓌튀로폴리스를 창업했고, 메탈 위를랑(영어명 ‘헤비메탈’) 등 남성향이 강한 SF/환타지 잡지에도 작품활동을 했다. 여성으로서 이전에 개별 작가로서 이미 충분한 활동과 운신의 폭을 지니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 정체성을 무기화할 필요가 제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여성들이 전반적으로 만화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남성향 만화들은 때로는 마초적 모험물로, 때로는 포르노그래피로 열심히 특화되고 있었으나 여성에게 특화된 주류장르는 없다보니,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과 영미권에는 여성들을 만화의 세게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흐름이 최근 발생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일본망가의 유입이다. 90년대 말 이래로 폭발적으로 서구에서 시장 지분을 늘려가고 있는 일본망가의 경우, 독자의 1/3에서 1/2 정도가 여성독자층으로 추산되고 있다. 쇼조망가 계열 작품은 물론, 일부 소년만화의 경우 마저도 서구 여성들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게 받아들여 것이다. 주류 장르만화에 여성의 자리가 생겨나고 있다는 이러한 현상이, 추후에 이들 서구 지역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발전해나갈지는,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여성만화 담론을 위하여

  한국에서 여성만화에 관한 담론은 아직까지도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몇몇 페미니즘 성향 지면에서 개별적인 작품평으로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경우들은 있지만, 여성과 만화의 관계나 발전적인 전략들에 대한 제시는 많지 않다. 물론 팬덤 입장에서의 순정만화 분석, 작가론, 일본 쇼조망가와의 비교연구 등, 만화 분야 전반을 놓고 보았을때 가장 활발하게 논의가 되어온 장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류장르로서의 순정만화가 아니라, 지향성으로서의 여성만화에 대한 논의로 가자면 그 양과 질이 대폭 줄어든다. 여성 정체성이라는 지향성이 과연 만화에 필요한 것인가, 만화를 여성성의 발전을 위하여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등 해석이 아닌 전략으로서의 담론이 부족한 형편이라는 것이다(사실,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중문화 담론 전반이 그러한 경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누가 담론화시킬 것인가? 국내에서 활동중인 한 줌의 만화평론가/연구자들에게 맡겨놓기에는 너무나 큰 덩어리다. 오히려, 여성 정체성에 대한 의식과 담론구성의 필요성을 느끼는 다양한 주체들이 만화를 하나의 소재로서, 도구로서 다루는 방식의 접근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만화연구자들의 임무는, 이들이 보다 확실하게 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화를 분석하고 읽어내는 방법론들과 모범사례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해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바로, 최대한 그 만화들을 즐기고자 하는 “의지”다. 나는 이 만화를 즐기고 싶다, 이 만화를 보면서 웃고 싶고, 눈물짓고 싶고, 감동하고, 환멸을 느끼고 싶다는 적극성 말이다. 순정만화는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초심자인 소년이도, 만화는 유치해서 안본다는 자칭 성숙한 어른들이도, 학원순정물이외에는 아무것도 안본다는 편식주의자들도 모두 그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우선은, 재미있는 작품들, 쉽게 입문할 수 있는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여성만화의 본질을 캐고 전략을 만들어내는 것까지는 아직 못가더라도, 우선 한두가지의 화두와 문제의식 정도는 싹이 돋아날 가능성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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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지면, 짧은 발표시간 상정하고 쓴 것에 이것저것 내용을 많이 쑤셔넣으려다 보니 일대혼란. 뭔가 수습이 잘 안되는 글이 된 듯하다고 자책했습니다… 여튼 부산대서 길거리 강연한 내용. 사실 현장에서는 이 발표부분보다 자유 질의응답이 훨씬 재밌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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