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간만화 2004년 여름호 글. 에에… 까먹고 안올려놨었더라는. 실제 잡지에는 20매짜리 축약버젼으로 올라갔지만. 사실 계간만화의 특집은 항상 헤비한 편이라서, 개별 꼭지들을 집중해서 읽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희망적 비전을 듬뿍 넣은 글. 만화독자를 자청하지만 사실은 찌질이에 불과한 일련의 암적 생명체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른 기회에 다루어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긍정적 독자상만.
!@#… 글 말미에서 언급된 독만상 (http://www.comicreader.org)에서 요새 한참 올해 투표 진행중이다. 가서들 투표하시길. 아 물론 이 글을 그쪽으로 퍼가고 싶다면 흔쾌히 승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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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독자는 진화한다
김낙호 (계간만화 편집위원)
만화는 창작자의 손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만약 단지 표현으로서 예술적 기쁨을 누리고 싶은 것 뿐이라면 사실은 그 곳에서 끝나도 상관없다. 하지만 만화가 단지 골방에서 허무한 일생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세상과 서로 상관하며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소통경로가 되고자 한다면 중요한 파트너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독자라는 존재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비로소 만화가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예술으로든 문화로든 산업으로든 기능할 수 있다. 그런데 독자들은 사회문화적 분위기, 개별 작품들의 장르나 완성도, 만화산업의 판도 등 다양한 요소들에 영향받는 거울임과 동시에, 자신들의 주관과 취향에 따라서 움직이는 주체성을 동시에 발휘하기도 하는 복합적인 존재들이다. 따라서 독자들이 담당한 역할, 진화해온 모습이야말로 한국에서 만화가 하나의 ‘판’으로서 기능하고 현재 움직이고 있는 방식을 살펴보는 결정적인 단서라고 할 수 있다. 뭐, 아니면 적어도 ‘손님은 왕이다’라는 자본주의의 핵심격언에서, 그 손님이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지 파악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정도는 될 것이다.
1. 초창기: 소비 없는 소비자
식민지 해방과 함께 그동안 억눌렸던 한국어 출판물에 대한 붐이 일어났고, 그 속에서 1948년, 한국 최초의 만화 전문 잡지인 <만화행진>이 만들어졌다. 처음으로 신문의 한 코너가 아니라 자체적인 하나의 매체로서 만화를 보는 독자층이 태어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후 장르 오락만화의 보급도 본격화되었는데, 한국전쟁 말기부터 권당 20페이지 내외의 조악한 품질의 대중오락만화인 ‘떼기만화’들이 주로 SF나 모험활극 등의 장르를 다루고 있었다. 떼기만화는 길거리 좌판과 동네 가게에서 경품으로 쉽게 입수할 수 있었는데, 이들의 인기는 만화독자들의 존재와 잠재력을 증명해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에 힘입어 잡지 <만화세계>를 내던 출판사인 만화세계사에서 55년부터 200여 페이지짜리 고급 장정을 한 판본을 서점 판매용으로 출시했는데, 짧게나마 큰 인기를 끌었다. 동시에 떼기만화의 주 무대였던 길거리 좌판에서도 서봉재의 <밀림의 왕자>(일본만화 <소년 케니아>의 도작) 등의 히트가 겹치면서 만화에 돈을 쓰는 소비자로서의 독자 상이 확고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판도는 전후의 열악한 경제사정 때분에 이내 다른 길로 향했다. 독자들의 숫자는 늘어났지만 그들이 소비할 수 있는 몫은 적었고, 그럼에도 훌륭한 대중오락으로 떠오른 더욱 많은 만화를 보기를 원했다. 결국 서점용 고급판형들은 시장성을 잃어버리고 1958년에 대본소라는 유통구조가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것은 만화독자들의 사정에 따라서 만화판의 판도가 변한 첫 중요사건이었다.
초창기의 대본소는 독자들의 성원 속에서 순정체, 극화체, 만화체 등 다양한 기법과 장르를 도입해서 만화의 양적, 질적 발전을 구가할 듯이 보였다. 하지만 단순한 소비자, 특히 소비 자체가 적은 독자들의 권익이 제대로 존중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었다. 결국 합동출판사에 의한 1966년의 대본소 유통 독점화의 물결 속에서 독자들은 자신들의 의사에 반하여 ‘질적 수준과 관계없이, 단지 많은 만화를 읽어내는 독서기계’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독자들이 아동층의 비중이 컸던 관계로, 마음대로 가용한 소비의 폭은 더욱 적었다. 즉 안그래도 적은 개별적인 소비 지분을 만화 작품이 아닌 대본소 입장 시간에 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검열의 억압과 독점의 횡포와 맞물리면서 만화문화 전체를 질적 저하의 악순환으로 몰고 가게 되었다. 건전한 소비야 말로 독자의 힘의 근원이라는 교훈을 남긴 채로 말이다.
2. 주체적 소비의 시작
대본소 만화가 질적 암흑기로 빠져들면서 많은 만화독자들이 만화를 불신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70년대 들어서 대본소를 벗어난 만화 독서가 두 가지 장르에서 본격적으로 부활했다. 한 가지는 스포츠 신문의 연재만화로, 1972년 일간스포츠의 고우영의 <임꺽정>으로 인상적인 데뷔를 했다. 하드한 극화도, 재담으로 가득찬 속칭 ‘노가리’만화도, 일간이라는 빠른 페이스로 물흐르듯 이어지는 이야기로 독자들을 인도했다. 독자들은 특정 만화에 대한 선호를 신문에 대한 높은 구독률로 보답했는데(실제로 <임꺽정> 연재 시작 이후 일간스포츠의 판매부수가 이전의 3배 이상 성장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인용되고 있을 정도다),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서 소비할 수 있는 성인들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독자들의 이러한 소비성향 – 즉, 좋아하는 연재만화를 보기 위하여 지면을 구입한다는 사실에 힘입어 여러 스포츠 신문 지면 및 성인 대상 주간지들이 만화를 간판으로 내걸었으며, 선데이서울의 <고인돌> 등 많은 명작 성인만화들을 탄생시켰다. 다른 한가지의 장르는 명랑만화로, 64년 창간된 새소년 등의 어린이 대상 종합 교양잡지의 스타로 점차 떠올랐다. 길창덕의 <꺼벙이>, 윤승운의 <요철발명왕>등 수많는 명작들이 양산되었고, 어린이 종합 교양지라는 형식 덕분에 대본소에 출입하지 않는 많은 어린이들도 쉽게 부모들을 설득해서 구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다양한 잡지 가운데 한 종류만을 구독하는 집안이 대부분이었기에, 직접적인 독자인 아이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서 각 잡지의 간판스타격인 만화를 바탕으로 선택했다. 이런 식으로 아동층 독자들이 소비자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자, 70년대말에는 클로버문고 등 단행본 총서 시리즈가 서점용으로 발매되는 등 더욱 아동용 만화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만화 독자들의 취향에 기반한 주체적 소비가 만화판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준 셈이다.
3. 독자간 소통
잡지 만화의 발달(특히 보물섬 창간으로 더욱 불이 붙은 80년대 초반 이후의 판도) 속에서 독자들은 잡지의 운영방향에 독자로서 직접 목소리를 행사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바로 애독자 엽서라는 형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애독자 엽서는 연재 작품에 점수와 순위를 부여하여, 독자들의 취향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보다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하지만 애독자 엽서의 또다른 기능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독자들 간의 소통 기능이었다. 애독자엽서라는 도구를 통해서 단지 동네 친구들끼리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독자들이 자신들의 취향을 서로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솜씨자랑으로, 애독자엽서 시스템을 활용하여 잡지 말미의 전용 소개 코너에 자신이 직접 그린 ‘만화’ 그림을 개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실력자랑임과 동시에,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르와 그림체에 대한 독자들 간의 대화이기도 했다. 그림자랑을 위시하여 다양한 독자 의견 개진 코너가 정규 지면으로 편성되면서, 나중에는 아마투어 만화 창작 동호회의 정보교환(구인 등) 창구로 활용되는 사례도 등장했다.
이러한 경향의 첨단에 선 것은 순정만화의 영역이었다. 이미 여러 연구에서 지적된 바 있듯이,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70년대 말 이래로 한국에서 순정만화 분야는 독자들간의 연대의식이 높고 아마투어 창작활동이 전통적으로 활발했던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서열화된 문하생 제도를 통해서 데뷔가 엄격하게 제한되었던 ‘남성’ 만화들과는 달리, 보다 개인화된 작업이 가능했던 덕분에 아마투어와 프로의 장벽 역시 어느정도 극복 가능한 경계선이었다. 일례로, 88년에 창간되어 최초의 순정만화 전문 잡지로 꼽히는 르네상스의 뒷면에는 아마투어 순정만화 창작 동호회 소개 기사, 그리고 다양한 동호회 인력 모집 전언들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배치되어 있다. 또한 이강주, 이진경, 나예리 등 나중에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하게 될 사람들의 아마투어 자격의 독자 그림 자랑 응모 작품들을 심심치않게 발견할 수 있다.
즉, 80년대를 거치면서 독자들은 이제는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자의 기능에 한정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잡지와 단행본을 통해서 만화를 자연스럽게 계속 읽어온 세대의 독자들이 고등학생 및 그 이상으로 성장하면서, 실제 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능했다. 그들은 서로 소통하고 취향을 공유하며, 간접적인 방식으로 편집권에 개입했다. 그리고 아마투어 창작활동이 본격적으로 싹트고, 아마투어와 프로의 연결고리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4. ‘커뮤니티’의 부흥
88년에 순정만화의 르네상스와 소년만화의 아이큐점프가 창간된 이래로, 주류 만화의 판도는 이들이 대표하는 장르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정비되었다. 여러 젊은 작가들이 이전의 관례들을 무시하고 대거 중용되었는데, 판단기준은 바로 지금 독자들의 문화적 취향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명진이 당시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저녁>으로 등용되고 심지어 큰 히트를 기록한 ‘사건’은, 전적으로 당시 일본만화의 본격적인 유입과 함께 취향의 변화를 겪고 있던 소년 독자들의 수요와 코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장르의 선택적 발달에 있어서 독자들의 가시적인 취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며, 역으로 생각하자면 나중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상업장르의 과잉 확장에는 독자들이 이러한 힘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좁은 장르취향의 폭에 안주해버렸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90년대 초중반에 보다 중요한 현상들은 물리세계와는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이텔, 천리안 (94년부터는 나우누리 가세) 등 PC통신이 활성화되고 많은 이용자가 유입되어, 온라인 상에서 만화독자들의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활동의 가장 전형적인 방식은 커뮤니티 결성, 온라인 토론, 참조자료 공유, 오프라인 모임, 그리고 나아가 동호회 회지 제작 등이 있었다. PC통신의 가장 큰 장점은,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세부적 취향에 기반한 인력 모집이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반드시 창작과 회지 제작이라는 확고한 목표를 지향하지 않더라도, 단지 잡담을 나누거나 간단한 감상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무리없이 커뮤니티가 운영될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비창작 인력의 참여, 나아가 아예 비창작 동호회가 활성화되었으며, 만화를 중심으로 하는 대형 동호회와 그 속에 세부적 취향으로 갈리는 소모임들이 하나의 단위 내에서 공존하는 모습이 낮설지 않게 되었다. 그 속에서 독자들의 정보망은 촘촘하고 견고해졌으며, 의견의 전파속도와 범위 역시 확장되었다. 전국에 분산되어 있는 다양한 독자들이 온라인 상에서 벌이는 실시간과 비실시간의 토론 속에서 특정 만화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집단적인 의견형성이 이루어지면서 소위 해석공동체 개념이 꽃피었다.
여하튼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하여 상업적 장르만화의 급격한 부흥이 9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수년간 이어졌고, 밀리언셀러 시리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온라인이라는 환경의 등장과 함께 만화 독자들의 커뮤니티 활동이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출판사나 작가들의 기대 이상으로, 독자들의 눈과 활동력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5. 소비에서 향유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는 아마투어 창작 영역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ACA 등 창작 동호회 연합체의 운영은 한결 수월해졌으며, 규모 역시 불어났다. 아마투어 창작활동의 성격 또한 실력을 쌓아서 프로로 전향하기 위한 것보다는, 단지 해당 만화장르를 좋아하며 향유하는 하나의 적극적인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대표적인 예는 패러디로,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의 세계관과 캐릭터들을 가지고 이런 저런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마치 인형이나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과 비슷하게, 창작열보다는 향유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놀이에 가깝다. 그렇듯 향유로서의 창작인 패러디인데, 그 비중은 점점 더 커져서 동아리 연합 전시 행사를 하면 80% 혹은 그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만화를 즐기는 방식 역시 단지 책을 읽는 것으로 머물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올쏘나 두고보자 등 만화와 만화판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분석을 하고자 하는 독자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또한 즐김의 대상 역시 애니메이션, 캐릭터 용품, 피겨, 관련 참조도서, 동인지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확대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것들을 스스로 제작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물론 80년대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작품의 일러스트를 오려서 코팅하여 책받침을 만든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예 스스로 처음부터 제작해서 작게는 열쇠고리, 크게는 봉제인형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아예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되어보는 만화분장(코스프레)도 90년대말 이래로는 이미 일반적인 풍경이 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 시기에는 PC통신 서비스에서 인터넷으로 기반을 옮겨가면서 더욱 더 활성화되었고, 만화향유의 모든 단계와 방식에 촉진제로 작용하게 되었다(단적으로, 코스프레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불특정 다수 방문자들의 의견을 받는 것을 떠올려 보라).
6. 독자, 팔을 걷어붙이다
단순한 소비자에서 점차 적극적인 향유자로 변모해온 만화독자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 또 한번 진화를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90년대 내내 급격한 만화판의 변화 및 성장과정에서 누적되었던 문제들이 결국 폭발하게 되었다. 한국만화의 불황이니 위기니 하는 징조들이 도처에서 나오고 있는데, 출판사도 작가단체도 연구자들도 속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독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게 되었다. 자검댕, 만사, 만화인 및 수많은 자발적인 만화독자 커뮤니티들이 직접 시위와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나아가 구체적인 정책연구와 공공 사업 프로젝트의 기획에 만화독자 커뮤니티에 소속된 인력들의 투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등, 만화판에 대해서 독자들의 직접적 실력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로 만화판에서 활동의 폭을 넓힌 최근의 두 가지 중요한 성과가 바로 독자만화대상과 먹통X 복간사업이다. 독자만화대상은 독자 커뮤니티들이 주도하여 운영하고 일반 독자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는 등 온전히 독자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연간행사로서, 경직되어 있던 기존 만화 관련 시상제도에 대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먹통X 복간사업은 독자 주도 복간사업의 모범적 성공사례라는 점에 있어서 중요하다. 복간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게시판 토론이나 서명운동에 머물지 않고, 출판사와 미리 조건을 조율하여 출판에 필요한 사전 구매층을 개별적 홍보활동을 통해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평범한 한명의 독자가 주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접근으로 독자들의 힘을 실효성 있게 끌어낸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만화 독자들은 진화해왔다. 어쩌면 출판사나 작가들보다도 더욱 빠른 속도로 지금의 단계까지 성장했다. 어떻게 보자면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더욱 강하게 단결하고 판 전체에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더 진화할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확답은 내리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어느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내릴 수 있는 전망은 한 가지다: 독자는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아마도 앞으로도 더욱 포괄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더욱 세분화된 취향을 스스로 향유해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에 따라갈 수 있다면, 한국에서 만화라는 문화는 한 층 더 원숙한 모습을 뽐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필자의 작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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