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수년간의 젊은 정치 칼럼니스트들 가운데, capcold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최내현 씨. 딴지일보 농설위원 시절부터 보여준,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예를 들어, 진중권 칼럼의 최대약점) 스트레이트한 돌파력은 솔직히 질투가 날 정도다. 공감이 가는 좋은 칼럼이란 것은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잘 해서 들려줬을 때… 라고 보기에, 이것을 들려주고 싶다.
출처: 미디어몹 공식 신문 르지라시 정규기사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11가지 이야기]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김선일씨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뒤 범인의 철저한 색출과 응징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살인을 자행한 세력이 은신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팔루자 인근의 한 가옥을 미국이 공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공습에서는 적어도 3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고 한다. (그 바로 사흘 전에는 테러리스트가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팔루자 지역의 민가에 미사일 2발을 발사해 최소한 20명이 숨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아아 정말 아름다운 혈맹의 모습이 아닌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민간인 살인에는 민간인 살인. 죄없는 민간인이 살인되었다는 것에 철저한 응징을 다짐하는 사람들은, 이번 보복 공습에서 죽었을 이라크 민간인에게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논리라면 미국 살인자들도 철저하게 색출해야 되지 않을까?
세상에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 워낙 복잡한 세상이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많을 터이지만,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세계는 너무나 넓다…
1.
김선일씨가 살해되었으니 이제야말로 진짜로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테러에 굴하지 않는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야 국가의 자존심도 살고 앞으로 유사한 일 발생도 막을 것이라고 한다. 개중에는 특수부대를 보내서 범인을 색출, 본때를 보여줘서 대한민국의 기상을 드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대한민국의 기상, 본때, 의연함, 강인함, 곤조, 그런 거 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의 기상은 이라크에게만 보여주는 것인가보다. 왜 파병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이들은 “우리가 약소국이라서” “미국의 힘이 워낙 강해서”라고 답한다. 이라크에 큰소리친다는 게 꼭 약소국 컴플렉스 해소하려는 것 같다. 문밖에서는 비굴하게 굽신굽신하다가 집안에만 들어오면 마누라 두들겨패는 인간 비슷하다.
원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은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을 거부하면 한국인의 기상과 자존심은 몇십 배 더 보여줄 수 있을텐데 말이다. 하긴, 베트남 때도 ‘국위선양’ ‘남의 땅에 우리나라 군대 당당하게 진출’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한국은 비동맹국 회의에서 왕따를 당했다.뭐 그것도 국위선양이라면 선양이었겠지만.
2.
김선일씨는 잘못한 게 없었다. 미군 군납업체에 취직한 것이 죄라면 죄일까. 이라크 인을 칼로 위협해서 돈을 빼앗지도 않았고, 이라크 석유를 강제로 빼앗은 적도 없다. 그는 오히려 이라크에 가서 미군 만행을 알게 되었고 미국에 대해서 오히려 나쁜 감정을 가지게 된 그냥 보통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잔인하게 살해를 당했다. 파병을 결정한 한국인이라는 게 죄목이었다. 한국의 파병이 살해 동기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번엔 살해 때문에라도 더욱 더 파병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 상황에서 파병을 멈추면 오히려 손해라고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테러 때문에 파병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테러를 당하기 일년 전에 이미 파병했다는 사실이다. 파병 때문에 테러를 당했는데, 이번엔 테러에 맞서기 위해 파병한다고 한다. 그 순환적 논리 어디에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참 편리하다.
3.
정부는 한국군이 현지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한국인은 적대시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환영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파병에 따른 테러 위험 때문에 현지 교민들은 전부 철수시킬 방침이라 한다.
한국인 환영받으면 참 좋기도 하겠다. 이제 이라크에 한국사람 아무도 없을텐데…
환영 안 받고 그냥 살던대로 사는 건 안 될까?
4.
살해 사건이 있고 나서 당,정,청 협의 결과 이라크 파병 방침에 전혀 변함이 없다고 한다. 자이툰 부대가 평화 재건 활동을 열심히 하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같은 날, 정부는 이라크에 있는 한국군 부대에 의료 활동을 비롯한 모든 활동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새로운 부대가 간다면서 그나마 있는 부대는 활동을 중지했다.
5.
국방부는 몇 차례의 조사를 통해서 파병 예정 지역이 “안전하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안전하지 않다는 게 밝혀져서 이제는 쌀로 밥을 한다고 해도 믿기 어렵게 되긴 했지만, 설사 그게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정말 이상한 것은 따로 있다.
세상에 어느 나라 정부가, 전쟁터에 군대를 파병하는데 “안전하니까 파병한다”고 할까? 안전한데 뭐하러 군대가 가는가? 안전하면 민간 병원이나 민간 업체가 가면 된다. 안전하지 않으니까 화력으로 무장한 “군대”가 가는 것이다.
전쟁과 상관없는 쿠르드 지역에 가서 재건한다는 거나, 재건한다면서 특전사 병력이 반이라는 거나, 다 그렇다 치자. 그러나 안전하니까 군대가 가도 된다는 것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힘든 논리가 아닐 수 없다.
6.
24일, 22개 아랍 국가로 결성된 ‘아랍 연맹’의 아무르 무사 사무총장이 “외국 군대가 이라크 혼란의 주범”이라면서 외국 군대의 철수를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끝까지 “적대 행위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러 간다”고 강변하고 있다.
얼마나 이라크 민중에 대한 사랑이 철철 넘쳐나면 도움을 받는 사람이 싫다는데도 끝까지 쫓아가서 도와주려고 할까?
싫다는데도 끝까지 쫓아다니면서 사랑한다 고백하고 안아주겠다 키스하겠다 어루만져 주겠다 하면, 이를 일러 흔히들 미친놈 혹은 스토커 혹은 성추행범이라고 한다.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싫다는 사람과 성관계를 가지면, 그를 일러 세상 사람들은 흔히들 강간범이라고 부른다.
7.
마음속에서 우러나서였든 미국의 압력 때문에 할 수 없어서였든 어쨌거나 침략전쟁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이번 김선일씨 살해를 인권에 대한 테러라며 규탄하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열받으면 저 사람들 열받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그동안 1만명이 넘게 숨져간 이라크인들, 지난 10년간의 경제 제재로 인한 것까지 치면 백만 단위의 이라크인들이 숨져갔는데 그들이 눈이 뒤집혀 피의 복수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아니면 반대로, 이라크 민간인들이 죽은 것이 전쟁에서 있을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collateral damage라는 편리한 용어가 있다), 김선일씨의 죽음도 그들의 저항과정에서 있었던 어쩔 수 없는 사소한 일이 아닌가?
테러리즘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파병에 찬성했던 사람들 만큼은 김선일씨 살해 세력을 비난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까?
8.
과거엔 국익 때문에 파병하자던 사람들이, 이제는 파병하지 않으면 다가올 손해 때문에 파병해야 한다고 한다. 파병을 안하면 미국이 북한을 폭격해서 전쟁이 일어난다거나, 심지어 우리가 경제 제재를 당해서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라크에 파병한 나라이고, 그 파병과 상관없이 2억 6천만 달러의 재건 지원금을 부담하는 나라다. 이미 3억 달러를 넘게 미국을 위해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 퍼주기라고 그렇게 길길이 뛰었던 금액이 겨우(?) 3억 3천만 달러였다.
온갖 정성을 다해 평생토록 싹싹빌지 않으면 안 될만큼 우리가 미국에 큰 죄라도 진 모양이다. 우리는 이미 미국을 한참 돕고 있다. 여기서 더 돕지 않으면 미국한테 미움을 사서 나라가 망한다니 지금까지 도와준 건 다 뭐란 말인가? 이라크 편에 서서 후세인에게 미사일 공급을 해 준 것도 아닌데 미국이 분노한다니, 이런 비이성적이고 굴종적인 태도가 또 있을까?
후세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을까 두렵다. (미국이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는다면…)
9.
파병론자들은 국익을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국익의 실체를 모르겠다. 이라크 파병의 댓가로 석유라도 펑펑 우리 손에 쏟아진다면 ‘남의 목숨 죽여서 돈 벌다니 천박한 것들’이라는 욕은 먹을지 몰라도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부러 돈 들여서 국가 이미지 광고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돈 써가면서 세계의 3분의 1인 아랍권에 욕먹고, 사람은 사람대로 죽고, 테러 위험은 위험대로 남아 있고, 미국 부역자들이라고 욕은 욕대로 먹고, 무슨 국익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국익론자들은 말한다. 미국에 협조하지 않으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근거는 별로 없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혹은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서 경제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테러리스트와 이라크 민중이 서로 다르다는 그들의 논리를 똑같이 적용하면 경제논리로 움직이는 미국 중심 다국적 자본과 부시 일당은 서로 다른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럼 지금까지 미국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건사고 돈 투자한 것은 손해나는데 부시가 시켜서 해 준 것인가?
이 얼마나 막연하고도 감정적인 두려움인가?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죽어도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고 우방이란다.
거기까지면 뭐 그렇다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파병 반대론자들보고 오히려 감상적이고 감정적이라고 한다. 그것도 굉장히 자신에 차서 비웃듯이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그런 용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10.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전쟁에는 반대하지만 파병에는 찬성한다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파병에는 심정적으로는 반대하지만 이번 파병에는 찬성한다고.
미안하지만 그들은 침략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들이다. 전쟁이란 원래 그렇다. 잔인한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 친일파라고 낙인찍힌 사람들도 다 똑같은 말을 한다.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파병에 찬성할 수도 있다. 누구나 자기 의견이 있기 마련이고, 어떤 절대적 가치로 그것을 옳다 그르다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전쟁에 반대한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하는 전쟁에 군대보내는 것은 찬성이라니, 이런 이상한 이율배반도 있을까.
11.
노무현은 과거의 인습과 구태를 벗어버리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런 이유로 지지를 받았다. 미국에 대해서도 당당해지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파병을 찬성하고 있다.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지자 입장에서 노무현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헤아려줄 수야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을 이해하면서도 얼마든지 파병에는 반대할 수 있다. 아니 파병 반대 목소리가 들끓게 만들어주는 것이 어쩌면 노무현을 이심전심으로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노무현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아예 파병에 찬성해 버린다. 심지어는 미국에 복종하지 않으면 북한 문제 때문에 큰일난다고, 몇십년 들어온 얘기를 자기 입으로 말하고 있다.
노무현이 무언가를 바꿀 것이라는 이유로 노무현을 지지하고서는, 이제는 노무현을 지지했다는 그 이유로 파병론자가 된다. 정말 신비하고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세상은 어쨌거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가고, 나는 그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톱니일 수도, 혹은 그 세계의 방관자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거나, 나는 그 세계를 체득한 톱니이거나, 세계를 이해하는 방관자이고 싶다. 그러나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세계는 아직도 너무나 넓다…
[네이버 덧글 백업]
– 주안 – 파병, 힘의 기하에따른 부조리라 말하기엔 너무도 자각없는 주장들이로군요 2004/06/26 14:08
– M – 퍼갈께..너무 쏙쏙 이해됨.. 2004/06/27 19:11
– 고어즈미 – 후…나도 노대통령 찍었었는데…첫 투표부터 꽝당한 기분…. 2004/06/28 09:57
– 혀니 – 퍼갑니다… 2004/06/29 2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