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 낸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via Crete)를 읽었는데, 매우 적절하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니까 그 평가척도와 공식들이 널리 유용하게 활용되었으면 한다. Crete님의 요약을 빌자면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간 협력을 촉진하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무형자산’을 의미하는데 (보고서 요약부분에서 인용) 우리나라에선 저게 부족한 것“. 음… 그런데 여기에서 약간의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 보고서에 언급된 식의 ‘사회 자본’을 위해 필요한 상호신뢰는, 서로의 사람됨을 믿는 것이 아니다. 바로, 사회적으로 성립된 룰들을 각자 알고 또 지킬 것이라는 전제다. 여기서 룰은 단지 법으로 규정된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의 성공과 패망에 대한 ‘내러티브’들, 즉 사람들이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을 파악하는 패턴 전반을 나타낸다(예: “위장전입을 했더니 좋은 학군에 들어가서 자식 교육 성공”).
!@#… 룰이 학습되는 것은 보상과 처벌이라는 두가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보상, 즉 사회적 룰을 지키면 이득을 본다는 것을 학습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대다수가 지켜야 자체가 성립되는데, 그렇다고 대다수에게 보상을 주면 보상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룰을 지킨 성공이 룰을 지키지 않은 성공보다 우월하다고 증명하는 것도 힘들다 – 보통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율적인 것은 보상이 아니라 처벌, 즉 사회적 룰을 지키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방식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대부분의 법들이 처벌 위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처벌이 룰로서 학습되는 것은 최소한 3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것은 바로 룰을 어겼을 경우 위반자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의 1)중대성, 2)필연성, 3)일관성이다.
중대성은 불이익의 크기가 상당해서 그냥 감수하고 위반하기가 힘들어야 한다는 것이며, 필연성은 위반 행위가 있을 때 필연적으로 그것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한다는 것이고, 일관성은 특정한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은 행위자나 행위시기나 재판하는 자 등 외부요인에 의하여 바뀌지 않고 일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차원에서 보자면 중대성은 법을 만든다는 것이고, 필연성은 문제를 조사를 하는 것이고, 일관성은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보다시피 각각 입법/행정/사법에 대응된다). 그 중 불이익에 중대성이 없다면 그냥 감수하고 위반한다. 필연성이 없다면 우선 어긴 후 걸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게 된다. 일관성이 없다면 불이익은 룰이 아니라 그저 불운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이 3가지를 전부 갖추었다는 느낌을 줄 때 비로소 룰로서 학습되고, 나 뿐만 아니라 온 사회가 이 룰을 학습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때 비로소 사회적 신뢰가 생긴다.
만약 중대성과 필연성과 일관성 아예 3종세트로 모두 결여되어 있다면? 그 결여를 오히려 적극 방어하고 나선다면? 모든 종류의 성공을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런데 룰에 기반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사회 시스템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신뢰 네트워크들을 찾아나선다. 그것도 종종 분야를 착오하면서 말이다(예: 돈거래에 혈연, 공공사업에 지연, 인력채용에 학연… 뭐 끝도 없다).
!@#… 그럼 중요한 문제. 그 3가지를 장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치를 바로세우고 어쩌고 하는 소리라면 무려 각하마저 입에 바르고 다니는 소리며, 되먹지 못한 무능력자나 도덕불감증자 이중잣대 위선자들을 고위 공직자로 뽑지 말라고 법으로 정해둔 것은 아니니까. 당연히 각자의 역할이 있겠지만(그리고 각자 배를 째고 있지만) 우선 당장 개개인들의 일상적 실천을 위해서는, 담론을 뿌리는 이들 – 언론이든, 미디어를 이용해서 메시지를 뿌리는 개인이든 – 이 할 수 있는 것으로 환산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대성은 바로 문제점들을 문제점으로서 중요하게 기록 및 발언하는 것이다. 인구에 화자되고 주목을 끌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필연성은 그것을 반드시 제기하는 것이다. 한명이 세상 모든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수는 물론 없지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서는 중요한 사안일수록 더욱 널리 적극적으로 유통하는 정도는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일관성은 성역을 두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자기가 더 선호하는 진영, 집단에 대해서 무조건 가차없이 까는 것이 가능한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최소한 진영논리 운운하며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까일 일이 있을 때는 제대로 까이도록 하는 것이다.
… 그러니까, 일종의 “까댐의 철학”인 셈이다. 명랑사회를 위해 꼭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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