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담: 내가 참 짜증나는 건, 이런 책들이 나와도 제대로 보도자료 한번 나한테 도달하는 경우가 없다는 거다. 나도 나름대로 만화판에서는 ‘이리저리 떠들고 다니는 사람’ 축에 속할텐데 말이다. 덕분에 나온지 한참 뒤에야 우연히 발간 사실을 알게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거름 출판사에서 낸 <자살토끼>의 경우… 기획단계 당시 담당 편집자분이 나에게 찾아와서 자문까지 받아갔으면서, 정작 책이 나왔을 때 나왔다는 최소한의 연락 한번 안하더란 말이지. 공짜로 책달라고 조르지 않을테니까 (일정량의 보도용 증정본 돌리는 것 마저도 무척 아까워하는 출판사들이 가끔 있다; 거꾸로, 뭔가 써줄 것도 아니면서 온 시리즈를 전질로 한부씩 더 달라고 요구하는 도둑놈 심보의 기자들 역시 있고), 제발 이런 좋은 책을 냈으면 냈다고 좀 사방에 알리고라도 다녀 보란 말이다! 난 좋은 책이 나와주면 소개시켜주려고 안달인데, 어째서인지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게 아닌가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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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풍경 – <난 널 좋아한 적 없어>
사춘기라는 시기가 있다. 그것은 급격한 육체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고, 정신 역시 그것을 헐레벌떡 뒤따라 가기 위해 휘둘리는 인생단계다. 더욱이 사춘기는 같은 사춘기에 돌입한 친구들과 사춘기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어른들 등과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더욱 더 복잡한 고민거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누구에게나 사춘기는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끝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그때는 격정과 혼돈, 절망과 희망으로 살았던 때”라고 열심히 기억속에서 미화(?)를 하기에 이른다. 마치 한국의 보통 예비군 남자가 누구나 다 술자리에서는 왕년의 특공대원이듯이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의도적인 허풍 또는 기억의 과장일 뿐이다. 실제로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그렇게 느꼈던 것 뿐이다. 딱 한 발짝만 뒤에 서서 가만히 살펴보면 그 전에는 안보였던 것, 즉 그 당시의 감정 가운데 격정과 불안함의 방패 밑으로 숨기고 싶어했던 것들 – 바로 외로움과 공허함이 드러난다.
캐나다 만화가 체스터 브라운의 <난 널 좋아한 적 없어>(열린책들)은 바로 그런 감수성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류의 작품들 가운데 삶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시각이 담긴 것들이 의례껏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 특별히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보통 마을. 엄청나게 불행한 환경은 아니지만 뭔가 살짝 어긋나 있는 부분이 있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이 속에는 극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성숙해지는 초월적인 성장담도, 과거의 충격적인 사건을 제시해서 현재의 내 모습을 정당화시키는 고백 수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변화과정을 낮게 읊조릴 뿐이다. 섬세하고 세부적인 작은 사건과 묘사들이 주는 커다란 여운 속에서, 그 사소한 일상이 쌓여나가서 성장이라는 커다란 모자이크가 되는 것이다. 평범한 대화가 이어진다면 그것은 뭇 탐정물 마냥 나중에 엄청난 단서가 되어 사태를 반전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조금씩 쌓여나가며 하나의 감수성을 가진 성장과정의 모태가 될 뿐이다. 이것은 주인공이 나중에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열린 결말로 끝나는 성장물들이 지니는 핵심적인 정서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성장은 단지 주인공의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증세가 있는 어머니, 어릴 때의 강박으로 욕지거리(보통은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자신의 성장을 증명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내세우고는 하는 것이다)를 스스로 봉인한 과거. 그러나 특별히 왕따인 것도, 엄청난 괴짜 천재 인기인도 아닌 그렇고 그런 삶이다.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 친구, 동생, 동생의 친구… 그냥 일상적인 인간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다. 유머로 과장하지도 않고, 신파로 치장하지도 않는 평범함이 이 만화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 무거운 평범함 속에서 점차 삶의 무게가 쌓여나간다. 별로 극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가슴 아파지는 어긋난 애정 관계, 패거리들의 우정과 결별, 그리고 어머니의 병세 악화… 이 속에서 주인공 소년은 미묘하게 조금씩 성장해 나아간다. “난 널 좋아한 적 없어”라는 대사 속에 담긴 자기 감정의 부정. 그 부정을 할 수 있다는 상황이 나타내주는 것은 바로 어느틈에 부쩍 다가 와버린 성장 그 자체다. 원래 우리들의 진짜 인생은 극적으로 확 변하기보다는 미묘하게 쌓여나간 부분이 대부분이니까.
이런 감성을 잡아낼 수 있는 것은 꽉찬 사건의 연속보다는, 바로 관조와 여백의 정서다. 이런 여백 넘치는 감수성을 전달하기 위해서 만화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이전에 <헤이 웨잇>(제이슨 작)에서 증명되었다시피, 단촐한 선화 위주이며 4등신화한 깡마른 사람들의 모습에서 풍겨나오는 쓸쓸함은 다른 어떤 이야기 장르에서도 이 정도까지 재현하기 힘들 정도로 일품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처럼 강제로 움직임을 강제하지도 않고, 소설이나 시처럼 머리 만으로 모든 것을 그려내라는 이성적 호소를 하지도 않는다. 그저 비지 않았으나 읽으면 읽을 수록 뭔가 비어보이는 그림판의 연속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페이지 가득한 역동적인 연출을 완전히 배제하고, 각각 그린 칸을 마치 앨범에 사진을 붙이듯 한 장 한 장 부착한 시도는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페이지당 6칸씩 같은 크기로 여백을 가지고 나열된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참을 수 없이 지리한 삶의 여백이 외로움의 정서가 되어 독자를 괴롭힌다. 아무도 특별히 외로워하지 않는 그 이야기 속에서, 사춘기와 성장의 외로움이 가득히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절대적으로 미덕만 있는 건 아니다. 외로움과 궁상은 때로는 위태로운 외줄타기니까 말이다. 특히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이, 한국의 일반적인 독자들이 살아온 성장과정은 작가의 그것보다 다른 의미에서 훨씬 더 극단적이고 역동적이기 때문이다(군대식 교육제도와 입시전쟁이라는 것만 놓고 보더라도 말이다). 즉 어떻게 보자면 ‘싱거운 명품녹차’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화라면 자고로 명쾌한 극적 전개와 결론을 원하는 사람들과도 확실한 상극이다. 그 반대로 정적인 만화라면 따듯한 메시지가 넘쳐흘러야 한다고 생각하며 최근의 속칭 ‘에세이툰’ 만을 떠올리는 사람들과도 상극이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한국의 대중적인 만화독자들 대다수의 취향에 어긋날 위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내준 출판사의 용기에 응원과 걱정을 동시에 보내고 싶다. 또한 이런 식의 독서에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는 새로운 만화독자들이 발견되는 계기가 되어주길 바란다.
성장물을 보고 즐기는 것은 그 성장기를 이미 다 건너버린 후, 안전한 곳에 서있는 ‘어른’들이다. 성장기 이전이라면 어차피 공감할 수 없고, 성장기 와중이라면 굳이 다른 작품 속에서 무언가를 찾을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다. <난 널 좋아한 적 없어> 같은 작품을 보면서 다시금 자신의 성장기를 돌아보며 새로이 발견한다… “나도 그때 외로웠던 것이구나”.
(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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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덧글 백업]
– 코믹도치 – 편집자들도 귀차니즘에 시달리는 건가… 2005/01/11 17:35
– 우기 – 이글 스크랩해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05/01/11 22:45
– drmlord – “Fuck”부터 나와버렸군요. (“I Never Liked You”는 컬렉션에 새로 붙인 제목이고, Yummy Fur에 연재할때에는 “Fuck”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었죠.) 이전작인 “The Playboy”를 읽고나서 읽어야 제대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한군데 있는데, 순서대로 나오지 못한게 좀 아쉽군요. (단편집 “The Little Man”도 함께 나왔군요. “Ed The Happy Clown”은 올해쯤에 “진짜 진짜 결정판”을 내놓는다고 하던데… 이번에 또 사면 4번째 사는셈.) 2005/01/12 14:23
– 캡콜드 – !@#… Dreamlord님 / 아마 원래 제목대로 갔으면 많은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고보니 I Never Liked You의 최근판은 테두리를 하얀색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이라면 참 뱀다리스러운 일이군요. 개인적으로는, 작년부터 모처에 “Luis Riel’을 내보라고 뽐뿌질 중입니다. 2005/01/12 15:19
– drmlord – “I Never Liked You”의 2002년판 (소위 “Definitive Edition”)은 하얀 테두리로 나온게 맞습니다. 작가의 의도대로 새로 디자인했다는게 공식적인 이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002년 당시 자금사정이 안좋던 D&Q가 잉크값을 아끼려고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 (“Fuck”으로 연재당시에 실렸던 패널 여러개를 “I Never Liked You”로 내놓을때에는 제외했으니까, 어쩌면 “Fuck”과 “I Never Liked You”는 서로 다른 버전이라고 볼수도 있겠죠.) 2005/01/13 06:16
– pseudo – 정말 조용하게 나왔군요. 알라딘에서 검색해보니 한겨레 신문 2004년 11월 26일자에 리뷰가 실리기는 했습니다. 출간 제목은 ‘너 좋아한 적 없어’인데,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리고, ‘the little man’도 ‘똑똑, 리틀 맨’이라는 제목으로 역시 열린 책에서 출간되었네요. 앞서의 한겨레 리뷰에서 같이 다루었고, 문화일보 12월 22일자에서도 다루었네요. 2005/01/13 11:30
– 메리 – 그렇군요. ‘너 좋아한 적 없어’ 제목 사람들이 꽤 좋아하던데;; 2005/01/13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