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단행본화가 오래 걸린 것이지 이해는 잘 안가는 것이, 한 권당 9회고 현재 잡지는 49호가 나오고 있으니 이런저런 펑크 좀 감안해도 거의 완결을 향하고 있어야 할 터. 뭐, 이제라도 나와준 것이 어딘가. 게다가 출판사가, 88만원세대 키워드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이 책에 대해서 노동자의 처지 이야기라는 토픽으로 적극적 마케팅을 펼치지 않는 것이 은근히 의아한데… 뭐 모를 일이다.
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 『태일이』
김낙호(만화연구가)
요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학 신입생들에게 입학과 동시에 손에 쥐어지던 책이 바로 『전태일 평전』이었다. 지배자들의 역사와 경쟁이나 승자독식 이데올로기에 찌들어 대학까지 온 신입생들에게, 이 사회가 어떤 이들의 무엇 위에 실제로 서 있는지 세상의 참가치를 보여주자는 학생회 선배들의 일종의 고정된 루틴이었던 것이다. 특출하게 잘난 것 없는 그저 노동자 출신이지만,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여서 노동현장의 참혹함을 알리고 한국에서 노동인권이라는 것이 사회적 의제는 물론 진보 운동의 의제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 선구자 중의 선구자. 바로 이런 이미지야말로 전태일 평전의 주인공 전태일을 민중주의적 진보의 아이콘으로 포장해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의도가 신입생들에게 실제로 도달하거나 실제로 공감되는 비율은 갈수록 형편없어지곤 했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선배들의 자의식과는 달리 정작 신입생들은 해방을 시키는 투사가 되고 싶어서 대학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해방이 되고 싶어서 들어온 것이니까. 방향이 좀 다를 뿐, 『전태일 평전』 역시 또 다른 “그들의 삶을 본받지 않겠는가”를 강요하는 위인전으로 취급되곤 했다.
『태일이』(최호철 그림, 박태옥 글/ 돌배게/ 2권 발간중/ 전5권 예정)는 전태일의 이야기다. 그나마 최소한의 교양이 있는 오늘날의 한국인이라면 이미 널리 알고 있을,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비장한 마지막까지 가는 줄거리가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당대 지성인들의 각성을 요구했던 『전태일 평전』이나 전태일의 역사적 의미를 되물었던 영화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과는 다른 또 다른 길을 선택했다. 사건이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독자들과 대화하는 방식이 다르다. 『태일이』는 노동운동 아이콘에 대한 비장한 해석을 털어내고, 83년 처음 『어느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 나왔을 당시의 원래 의도와는 별개로 점차 영웅화, 박제화 되어가고 있던 전태일의 생애를 다시 한 명의 인간의 이야기로 돌려놓고 있는 성장물이다. 소탈한 면도 있던 전설적인 누군가가 아니라, 힘든 시절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해나간 소년의 이야기가 펼쳐질 뿐이다. 물론 마지막 권 마지막 부분에 기다리고 있을 숭엄함은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태일이』의 1권을 펼쳐들 때 독자들은 그저 그 시대 풍경 속에 인간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한 소년과 그의 가족을 만날 뿐이다.
전설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작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의 구축이다. 개념적인 권력구도의 계급론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살아가는 그 시공간이 느껴져야 한다. 바로 그 부분에서 『태일이』는 큰 장점을 발휘한다. 이 작품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특징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동네를 그대로 재현한다든지 하는 디테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시끌법적하게 부대끼는 삶의 모습들이 시원시원하게 펼쳐진다. 하나의 큰 장면 속에, 모두 각자 나름의 사연과 이야기를 담고 있을 수많은 이들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있다. 작품 속의 그 세계는 전태일이라는 주인공을 위해서 만들어진 배경화면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다. 『을지로 순환선』이나 『와우산』 같은 작업을 통해서 하나의 큰 화폭 속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단면들을 동시에 잡아내는 능력을 마음껏 선보였던 작가의 장기가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 풍경 속에서, 소년 태일이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살아간다. 이 작품에는 전태일이 혼자 고뇌하며 마음을 정리하고 설명하는 것보다, 유독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장면들이 많다. 때로는 험한 관계, 때로는 즐거운 관계, 때로는 친하고 적대적이지만 항상 사람들끼리의 이야기다. 어떻게 소년 태일이가 노동운동의 불꽃이 되기까지 삶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키워나갔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성장물이라면, 그 성장의 핵심이 바로 사람들과의 관계다. 생활의 모습들이 담겨있는 풍광과 마찬가지로, 『태일이』의 줄거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주인공의 성장을 위해서 잠깐 동원된 도구가 아니다. 생생하게 각자의 삶을 살고 있고, 그 중 일부분에서 주인공과 서로 맞닿을 뿐이다. 이렇듯 시각적으로나 줄거리로나, 사람들의 세상 속에 있는 주인공을 보여줌으로써 숭고한 아름다운 영혼이 아니라 그저 한 명의 ‘사람’으로서의 전태일을 보여주는 효과를 만들어주고 있다.
『태일이』는 현재 『고래가 그랬어』라는 아동 교양잡지에 연재중이다. 즉 1차 독자층을 아동으로 하고 있지만, 부모가 골라주는 방향의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학선배들의 사례처럼, 정작 읽어주기를 바라는 독자층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애매한 구석이 있다. 현재의 아동들이 좋아하기에는 눈이 즐거운 미형 영웅 캐릭터도 없고, 화려한 대결과 승부의 구도도 없다. 게다가 주인공들의 삶에 이입하기에는 작품에서 보여주는 사람들끼리 가깝게 상호작용하는 세상과 오늘날 아이들 문화의 각박한 고립 사이에 간극이 너무 크다. 웬만큼 부모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실제 대상으로 하는 아동 독자층에게 큰 호응을 받기가 힘들다. 학습지라는 형식은 그런 부모동참을 어차피 의무적으로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지만, 단행본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 교재의 일환이 아니라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태일이』는 사실상 또 다른 독자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바로 그 부모 세대라든지 말이다. 사람 살아가는 모습,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공감할 바로 그 사람들이야 말로 진짜 독자들이 되어야 자연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아동 학습만화 스타일의 단행본이 아니라, 성인 취향으로 새로 채색하고 편집한 버전이 따로 만들어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전태일 평전』을 청소년/아동용으로 다시 구성하여 만들듯, 『태일이』는 오히려 성인용으로 재탄생시켜서 성인 독자들에게 독서의 기쁨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시 사람의 성장 이야기가 된 전태일의 성장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 속에는 험난한 시대였기에 있던 고민도 있고, 또 시대를 초월한 성장통도 있다. 선택의 갈등은 길목마다 기다리고 있으며, 사람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손을 내민다는 것의 아름다움이 있다. 스스로 희생하여 불사르는 불꽃의 뜨거움 이전에, 하나씩 세상을 배워가고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력이 있다. 이 기조를 더욱 갈고 닦아나가면서 무사히 5권까지 완결되면, 아무리 못해도 스테디셀러로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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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PS. 참고로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그 암울한 시대에도, 많은 자칭 ‘시민’들은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 성공 못한 것들은 게으른 패배자다, 사회정의고 권리고 뭐고 닥치고 성장이 최고다, 뭐 그런 논리로 살아오셨다. 그리고 명백하게 시대가 바뀐 후에도, 그 ‘단순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차마 못버린다… 심지어 그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 싸웠다는 세대의 사람들 조차도. 그 학습능력 부족한 천박함이 정치적 선택이 될 때, 사람들은 운하를 파며 주가 5000 거품을 꿈꾸며 대박 탈세 위장전입을 목표로 하며 살아가겠지. 천박함을 쪽팔려할 줄 아는 기질, 바로 자존심의 문화를 한국사회의 정신세계에 회복시킬 방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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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일이 1 – 최호철 그림, 박태옥 글, 고래가그랬어 편집부/돌베개 |
난 이제 누군가 말할때마다 쪽팔려요.정말 이건 지지계층의 문제를 이미 초월했음.
!@#… nomodem님/ 그 쪽팔림을 느낄 줄 아는 것이 바로 한국사회의 희망입니다. “우리모두 쪽팔려 합시다” 캠페인이라도 벌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