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만화: 출간을 촉구한다 + 명대사 [BRUT 9호]

!@#… KT&G 상상마당 문화잡지 BRUT 9호 특집 “성인의 만화”에 참여한 꼭지. 하나는 “이 만화 출간을 촉구한다”인데, 성인 취향 만화로 꼭 들여왔으면 하는 국내 미출간 만화 몇가지를 소개해달라는 코너. capcold에게 부여된 임무는 그 중에서도 미국/유럽권 만화인데, 아직 안나왔지만 계약섭외 진행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작품들은 미리 제외하고 골랐다. 다른 꼭지는 성인의 만화 명대사 추천인데, 실제 잡지에는 추천사유 없이 대사 자체만 들어갔다. 여튼 이렇게 썼다.

 

출간을 촉구한다

민중의 외침(Le cri du Peuple)

보트랭 원작, 따르디 만화 / 전4권. 파리코뮌의 뜨거운 이상과 처절한 좌절을, 그 속에 살아가던 민중들의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들로 그려내는 명작. 당대 파리의 풍경들을 시원시원한 가로 판형 속에 담긴 울퉁불퉁한 펜선과 섬세한 디테일로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에르제(‘땡땡’)와 김혜린(‘테르미도르’)의 만남. 프랑스에서는 전4권을 하나로 묶은 완전판으로도 출간되었는데, 일종의 OST 격으로 『꼬뮌의 노래, 1871』 음악시디가 부록으로 첨부되었다(당연히 ‘인터네셔널가’의 불어판 포함).

“야수” 4부작(혹은 하츠펠드 연작)

엥키 빌랄 / 전4권. 구 유고 출신 프랑스 만화가 엥키 빌랄의 00년대 작품. 사이버펑크적인 디스토피아 미래를 그려내는 특유의 그림체와 시적 연출이 거의 완성단계에 도달했으며, 그를 유명하게 만든 니코폴 연작과 달리 실제로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다. 한국에는 4부작 가운데 첫권인 ‘야수의 잠’이 현문코믹스에서 01년 출간된 바 있었으나, ‘12월 32일’, ‘파리의 랑데부’, ‘4?’ 는 전혀 소식이 없다. 얄궂게도, 영어권에서도 똑같이 출판사 사정으로 인하여 뒤의 두 권이 안나오고 있다(…)

피너츠 전집

찰스 슐츠. 미국의 유명한 대안만화/아트만화 출판사 판타그래픽스에서 수년째 연속해서 한 권에 2-3년 분량씩 내고 있는 프로젝트. 50년어치 연재를 25권으로 묶어서 12년동안 연속해서 내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밝히고 있다. 지금껏 주제별 발췌본은 수도 없이 나왔으나 이 건은 단 한 편도 빼놓지 않고 연대기 순으로 전부 낸다. 찰리브라운, 스누피와 그 친구들 팬이라면 듣기만 해도 설레지 않는가.

특별한 신사들의 리그 (The League of Extraordinary Gentlemen) 시리즈

앨런 무어 글, 케빈 오닐 그림. 빅토리아조 영국 문학의 주인공들이 결성한 슈퍼히어로팀의 대모험. 드라큘라의 연인 빌헬미나가 실질적 팀장 역할을 하며 인디아나 존스의 모태인 모험가 앨런 쿼터메인, 지킬과 하이드의 미스터 하이드, 네모 선장 외 수많은 쟁쟁한 캐릭터들이 푸만추, 화성인들의 침공 등에 맞서는 시대 활극이다. 문학적 품격, 성인적 유머감각, 시대적 통찰이 차고 넘친다. 최근 수년간은 더 다양한 시대의 장르문학도 포함시켜서 더욱 세계관이 폭넓어진 것이 특징이다. 숀 코네리 주연의 실사영화는 그냥 흑역사로 묻어두고, 격이 다른 이 만화를 출간해주시길.

 

 

‘잊을 수 없는 그 한마디’ : 어른의 만화, 최고의 명대사

“니는 신이 될라 캤나? 내는 인간이 될라 캤다! 요래 목 줄 딱 쥔 인간! 으떻노? 니도 인간 아이가?”
이끼(윤태호) 중. 세속적 권력자인 이장이 이상론적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모아온 류목에게 그를 이용해온 것임을 알리며. // 결국 땅에 발 딛고 있는 권력이 가장 무서운 권력이다.

“어린시절 나한테 김치냄새나는 녀석이라고 돌을 던진 건 모두 나처럼 가난한 집 애들이었어. 부잣집 아이들은 그 광경을 단지 웃으며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지.”
EDEN (엔도 히로키) 중. 일본의 한국계 갱단원 최광문이 자신의 동료에게 약육강식에 대해 이야기하며. // 약자는 더 약자를 괴롭히며 스스로 조그마한 강자의 지위를 누리고 싶어 한다.

“지금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 아니야.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무한동력(주호민) 중. 그냥 밥벌이 좋은 곳을 노린다는 취직준비생 주인공에게 하숙집 주인 아저씨가 건네는 말. // 밥을 못 먹어 죽는 경우가 아니라면, 꿈을 꿀 필요는 여전히 있다.

“’악마’라는 단어를 책에서 찾아봤는데 가장 그것에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인 것 같아”
기생수(이와아키 히토시) 중. 인체에 기생하며 인간을 잡아먹는 기생 생물인 ‘오른쪽이’가 인간세상의 지식을 배워가면서 이야기하는 의문. // 필요 이상의 소비를 하며 자신의 세상을 파괴해나가는 것에 대한 경각심.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대털(김성모) 중. 원래는 범죄과정의 디테일을 독자들이 읽고 모방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취지를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그런 디테일을 조사해서 묘사하는 수고를 덜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바 있다. // 그 단호한 비약의 매력이란, 실로 성인적이다!

“강하다는 것은 약함을 아는 것이고, 약하다는 것은 겁을 내는 것이지. 겁을 낸다는 것은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이고,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이지.”
20세기소년(우라사와 나오키) 중. 모든 것을 잃고 태국에서 방황하던 샐러리맨 오쵸가 선승을 만나서 강함에 대해 나눈 문답. // 어른은 보통 지킬 것이 있다.

“포기하면 바로 그 순간이 시합종료에요”
슬램덩크 (이노우에 타케히코) 중. 안감독이 종료 몇 초를 남기기전 절망한 정대만 선수에게 건낸 말. // 포기를 아예 모르는 것도 나름대로 좋지 않지만.

“끝내 그렇게 되었다고? 어떤 것도 끝나지 않았네, 에이드리언. 어떤 것도 결코 끝나는 일이 없지.”
왓치맨 (앨런무어/데이브 기본스) 중. 엄청난 인명피해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마침내 세계평화를 이루어냈다고 자축하는 에이드리언에게, 신에 가까운 초월적 능력을 지닌 닥터 맨하탄이 건네는 말. // “그 다음”과 “도돌임표”를 걱정할 수 있는 것이 어른이다.

“난 천잰데, 오해를 사버린 천재야.” “무슨 오해?” “아무도 나를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더라고.”
캘빈과 홉스 (빌 워터슨) 중. 자의식과 말썽꾼 기질이 넘치는 꼬마 캘빈의 대사. // 자뻑은 현대사회 성인생활의 필수요소.

“쓸모없지 않아요. 무언가에 열심일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재능이 있는 거니까요”
강철의 연금술사 (아라카와 히로무) 중. 신체를 잃고 혼만 강철갑옷에 정착하여 움직이면서 자기 몸을 되찾고자 모험중인 알폰스 에릭의 대사. // 이런 재능을 개발하지 않고 성인이 된 사람들 참 많다.

“노름판에 좋은 놈, 나쁜 놈 없다. 잃은 놈과 딴 놈이 있을 뿐.”
타짜(허영만/김세영) 중. 1부의 주인공 고니 외 여러 중심인물들이 이와 같은 취지의 대사를 돌아가면서 반복한다. // 사회생활의 태반이 노름판의 룰과 도덕으로 움직이는 것이 성인들의 사회니까, 엄청난 교훈이다.

“질투의 마음은 어버이의 마음”
돌격! 빠빠라대(마츠자와 나츠미) 중. 모든 커플들을 적극적으로 저주하며 테러를 가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비밀조직 ‘질투가면단’의 표어. //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Copyleft 2010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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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thoughts on “성인의 만화: 출간을 촉구한다 + 명대사 [BRUT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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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寒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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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Pingback by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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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Pingback by 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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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Pingback by gorekun's me2DAY

    고어핀드의 생각…

    “’악마’라는 단어를 책에서 찾아봤는데 가장 그것에 가까운 생물은 역시 인간인 것 같아” “기생수”의 명대사. 언제 들어도 맞는 말이다….

  6.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베스트오브2010: 캡콜닷넷

    […] 성인의 만화: 출간을 촉구한다 + 명대사 [BRUT 9호] : ‘성인만화’로 검색 유입. […]

Comments


  1. “등짝을 보자!” -베르세르크(해적판)

    ‘감비노…베르세르크 3, 4권에 걸쳐 잠시 등장하였을 뿐이지만 그가 작품 전체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의 근육질 육체, 전장을 휩쓰는 공격적인 성격을 고려하면 남성호르몬이 불균형하게 분비되며 일반인을 초월하는 성욕을 지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테니 냄새 나는 남정네들에게도 불끈불끈할 만큼 굶주렸던 그의 흑코브라분신이 가녀린 소년의 통통한 흰 엉덩이를 눈 앞에 두고 폭발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소년의 아버지에게 돈도 주고 죄책감을 모면하기 위해, 가능한 한 소년의 인생에 세길 상처를 덜하게 위해 “등짝을 보자”라고 속삭이며 욕망 찬 행위를 부정하는 등 비록 주체 못하는 성욕을 지니고 한 인간의 인생을 직접적으로 파괴하였음에도 괴물이 아니라 인간, 인간을 파멸시키는 악은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 내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악당이다.’

    ….문득 생각나서 동생놈들 옛날 포스팅(http://wihowife.egloos.com/4022860)에서 발췌.

    또한 문화사회적 맥락으로 보면 해적판 번역 케이스로써도 기구한 사례이자 특정 인터넷 은어의 확립과 유행에도 지대한 공헌을…(퍽퍽)

  2. – “나에게 빨간 신호는 ‘멈춰도 된다’야.”
    GO! 히로미 GO! (아소우 미코토) 중.

    – “악당이 되는 건 힘들어. 정의의 사도가 되는 게 훨씬 편하다고.”
    20세기 소년 (우라사와 나오키) 중.

    – “난 역시 모든 걸 버릴 각오 따윈 할 수 없을 것 같아. 하지만 아무것도 버리지 않을 각오라면 예전에 했어.”
    우에키의 법칙 (후쿠치 츠바사) 중.

    – “녹이 슬면 두 번 다시 세우지 못하고 제대로 쥐지 못하면 자기 몸을 찢는다. 그렇다. 긍지라는 것은 칼날과 비슷하다.”
    블리치 (쿠보 타이토) 중.

    – “때리면 정치가 아니다. 국민이 서로 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있는 거다 (…) 하지만 나는 거기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어. 국민이 서로 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치가들끼리 서로 때릴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쿠니미츠의 정치 (안도 유마/아사키 마사시) 중.

    –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해지고 싶다’는 물음에 응할 수 없는 그런 회사라면 이렇게 커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사람 (타카하시 신) 중.

    – “아프니까…. 맞으면 아프니까…. 그래서 그냥 참는 겁니다. 맞으면 아픈 줄 뻔히 아는데…. 남한테 그런 짓을 어떻게 해요?”
    엔젤전설 (야기 노리히로) 중.

    – “정의란 슬픔에서 배우는 것이죠.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방법을.”
    용오 (마카리 신지/아카나 슈) 중.

    –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어? ‘노력하지 않고 행복해지고 싶다!!’는 건 모든 인간의 바람이야.”
    그런게 아니야 (이즈미 카네요시) 중.

    우왕ㅋ

  3. 4개중에 본것은 신사 하나뿐이네요; 제가 보고 싶은것은 나니와 금융도. 이야기는 자주 들었는데 일본어도 못하고 구하기도 힘들어서 못보고 있거든요.

  4.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그야말로 명대사죠 명대사.

    성인만화에 어울리는 주옥같은 대사는 막상 잘 떠오르질 않네요.
    주로 소년만화를 보는지라 그런지…

    “키드갱”에 진짜 몇번씩 펼쳐본 대사가 있었는데
    이거도 뭐 하도 다음권이 안나오다보니 안보게 되고 안보다보니 잊어버렸어요

  5. !@#… 시바우치님/ 아니 왜 제가 그 대사를 추천하지 않았던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런데 해적판이 아니라 대원CI 정발판)

    neo님/ 벼르고 계셨군요(핫핫) 한보따리 감사!

    네이탐님/ 그러게요. 금융 피해자 많은 오늘날 한국에서라면 충분히 관심도 끌텐데.

    Kacew님/ 소년만화든 아동만화든, 성인의 심금을 울리면 그만이죠(…)

  6. 시바우치님/ 덕분에 “등짝을 보자”를 다시 검색해서 재확인했습니다. 정말 명대사…

    capcold님/ 무한동력의 그 대사는 정말 기억에 남습니다. 그 페이지 전체가 머리 속에 떠올랐네요.

  7. 사실 문제의 초반부는 [불멸의 용병]을 봐서…^^;
    그런데 정식 라이센스판에서도 그대로 썼던 겁니까; 역시 범접할 수 없는 등짝의 위용…

  8. 당대의 분위기를.. 쩝.ㅋㅋㅋㅋ
    그래서 등짝좀 보자같은 경우 마인 부우를 그린 작가분이었나요? 전상영씨인가?
    거기서 패러디 되었던게 생각나네요. 그거 보고 참 반갑고(?) \포복절도 했어요.

    무한 동력의 대사는 듣는 순간 아! 했습니다. 울컥하면서 가슴속에 불꽃이 솟아나더군요.

    와치맨의 경우는 계속 곱씹게 되더군요. 이것이 평화일까.
    얼마전에 읽었던 진중권씨의 익스 리버스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희생을 통한 공통된 적의 창출을 통한 공동체의 평화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보면서 분노하게 되더군요. 에이드리언에게 분노하고.. 맨하튼에게도 분노하게 되고.
    결국에는 내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한참 이야기했던게 생각나네요.
    정말 좋은 작품이죠.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캘빈과 홉스에서 캘빈의 대사는 제 동료중에 한 놈은 정말로 그런 사고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넌 재능이 없는 것 같아. 뭐랄까. 너나 나나 너무 평범해.” 라고 했더니.

    어이 없다는 얼굴과 분노를 드러내면서

    “어디서 감히 내가 너랑 같다고? 어디서 감히 그런 말을! 난 천재야. 천재!”

    라고 하더군요. 이거 뭐 갑자기 정색해서 죽자고 덤비길래.

    “몰라뵈서 죄송하네요. XX새퀴야.” 했더랬습니다. ㅋ

    한참을 그렇게 신나게 투닥투닥 싸웠는데, 이 친구가 생각이 나는군요.
    지금도 물론 잘 지내고 있습니다.ㅋㅋ

    언제나 좋은 글 감샤. 건필 건강 지키시길.

  9. 아. 그리고 깜빡했네요. ㅎㅎ
    민중의 외침은 마구 당기는데요. 어서 나오길. 나오면 바로 구입입니다.

  10. !@#… 망구스님/ 저도 민중의 외침 마구 당기는데, 딱 잡아주시는 출판사가 아직 없군요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