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이런 류의 작품은, 아직 완결이 안났을 경우 보통 하나의 불안감이 남는다 – “설마 이러다가 해피엔딩이면 어쩌지?”. 여튼 잡지는 무기휴간에 들어갔으나, 온라인/오프라인의 단행본으로 무사히 마무리되어주길.
허무를 아는 느와르 – 『밝은 미래』
김낙호(만화연구가)
조직폭력에 투신하는 주인공을 다루는 작품들은 대체로, 무언가를 얻고자하는 욕망으로 가득하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조직 안에서 혹은 조직을 통해서 얻는 권력이고, 가끔 권력과 결부되어 돈이나 이성(애정의 표피를 씌웠으나 실제로는 정복욕에 가까운)이 그 자리에 들어온다. 하기야 사적 폭력이라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은 강압적 수단을 쓰고자 한다면 그만큼 간절하고 원초적인 욕구여야 말이 되고, 그것을 조직이라는 집단적 수단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실현한다는 것은 과장되었으나 그만큼 뚜렷한 성공신화를 쉽게 보여준다. 물론 대다수의 작품은 그런 욕망이 폭발해서 모든 것이 행복해진다느니 하는 황당한 거짓말보다는, 결국 그런 욕망과 권력이 결국 부질없다는 메시지로 적당히 마무리 지어 그간 폭력영웅담을 즐겨온 독자들이 다시 책장을 덮고 사회로 돌아갈 때 행여나 가책이라도 느끼지 않도록 해주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 한번씩, 조폭물을 권력다툼과 출세욕에 대한 우화가 아니라, 비열한 세상에 아직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실존적 허무를 다루는 작품이 있다. 딱히 출세를 하려고 조폭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른 세계로 가기에는 길이 좀 먼데 이쪽으로 재능이 있어서 하다 보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90년대의 『비트』가 그랬듯, 청춘의 고민까지 녹아들어간다면 안성맞춤이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욕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기보다 그 구렁텅이 안에서 둥둥 떠다니며 멍하게 흘러가는 대비 속에서 오히려 비열함의 지옥도는 더욱 뚜렷해지고, 느와르 특유의 즐거움이 오히려 더욱 배가된다. 다만 이런 접근은, 조폭 슈퍼히어로 스토리로 빠지지 않으려면 더욱 섬세한 설계가 필요하다. 현실적이고 비열한 세계관은 필수고, 주인공의 강함에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전혀 부럽지 않게 그려져야 한다. 즉 이야기는 스릴과 박진감이 있지만, 기본 정서는 정말로 허무해야 한다는 말이다.
『밝은 미래』(이영곤 그림/ 이우열, 진철수 글 / 팝툰 / 1권 발간중) 는 그런 의미의 허무함이 살아 있는 조폭물이다. 유사 무협 히어로물이나 무대만 현대 뒷골목으로 바꾼 전쟁물로 바뀐지 오래인 상황에서, 간만에 만나는 ‘느와르’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주인공 현태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은 교통사고 와중에 머리에 못이 박혀, 촉각을 상실했다. 즉 아픔을 못 느끼게 된 것이다.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탁월한 싸움꾼으로 성장한 그는 보험사기를 하는 최박사 수하를 거쳐, 고아원 동료와 함께 종로 보석시장에 자신의 조직을 만들어 들어온다. 비열한 암투와 거래가 오가는 어둠의 거리에서 묵묵히 폭력으로 자기 자리를 만드는 과정이 펼쳐진다. 여기에 현태의 상태를 예의주시하는 심리치료사 혜미, 같은 고아원 출신인 안자 등 주변 인물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아픔을 못 느끼는 싸움꾼이란 거의 초능력처럼 편리할 것 같지만, 사실은 복잡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크고 작은 승부에서 강하긴 하지만, 정말로 신체가 못 버틸 정도로 쓰러질 큰 상처를 입을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위태롭다. 나아가 싸움의 승패가 주는 좌절도 쾌감도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기계적으로, 때려도 통증이 없는 주먹으로 상대를 효과적으로 두들겨 패서 얻은 승리로 약간씩 운신의 폭을 넓힐 뿐이다. 게다가 보석으로 한 몫 잡겠다든지 하는 수준 이외에는 딱히 어떤 행복에 대한 비전도 없다. 너무나 별 볼 일 없는 상태에서 그저 주먹질을 하고, 보석 밀거래를 하고, 거의 정해져 있는 파멸의 비극적 결말을 향해 한 발작씩 움직일 뿐이다.
그것만으로는 허무한 비극의 정서가 부족했는지, 이야기 초중반부터 사실 현태의 통각이 없어진 것은 뇌를 물리적으로 다쳐서가 아니라 심리적인 것일 수 있다는 암시까지 계속 던져준다. 그런데 극심한 악몽을 꾸는 순간에 순간적으로 통각이 회복되어 격심한 통증에 괴로워하다가 다시 일어나 아무런 감각이 없어진 그의 모습을 볼 때 느껴지는 것마저도 연민이 아니라 허망함이다. 기억까지 가물가물한 주인공이, 단 하나의 정체성마저도 거짓이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살아가는 세계, 거래를 트고 물건을 빼내기 위한 협박으로 고문과 상해, 살인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다른 음모와 기지 없이 특이한 몸에서 오는 싸움실력으로 버티는 그가, 감각을 회복하여 온전히 인간의 감정을 되찾을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 곧바로 도태될 것임이 예고되어 있다.
『밝은 미래』는 뒷골목의 비열한 인간군상, 허무함의 현신 같은 주인공, 신파적인 설정 속에서도 감정과잉은 커녕 메마른 느낌을 주는 주변 인물들로 가득하다. 간결하고 힘 있는 선, 탁한 채색, 낭비가 없는 타이트한 칸 연출, 떠들썩함 없이 낮게 깔리는 대화 분위기 등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것은 신인이라고 보기 힘든 숙련도를 보여주는 이영곤 작가 그림이다. 그리고 보석밀매라는 전문적 소재를 끌고 오지만 그것을 어설프게 과시하기보다 느와르 장르의 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밀도 있는 이야기 전개를 유지하는 것은 시나리오작가 진철수, 영화감독 이우열 두 사람의 글이다. 원래 동명의 단편이 2005년 대한민국 창작만화공모전에 대상을 탄 후 약 1년간 현장 취재와 시나리오 전면 수정 등 재작업 후 만들어진 후 2008년 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 제작지원으로 만화잡지 ‘팝툰’에 연재된, 한국만화에서 흔치 않은 여러 사전 단계를 거쳐 탄생한 셈이다. 사전 제작 단계가 길다고 해서 반드시 뛰어난 작품이 나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밝은 미래』의 경우는 창작자들의 팀워크가 흔한 조폭영웅담으로 빠지지 않는 무거운 허무감을 겹겹이 입혀주는 것에 성공했다.
『밝은 미래』는 영화로 치자면 인간적 소심함과 치졸함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초록물고기’류보다는 스타일리쉬한 허무를 담아내는 ‘달콤한 인생’에 더 가까운 정서를 담아내기에, 전자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니다. 또한 직선 질주 스토리에 가까워서, 속고 속이는 스릴도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무게 잡는 허무함의 쾌감, 90년대 장현수 감독의 ‘한국형 느와르 영화’들이 00년대에 적응했다면 보였을 것 같은 모습들을 즐기고 싶을 때는 한번 반드시 펼쳐볼만 하다.
밝은미래 Vol. 1 이영곤 지음/팝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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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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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gback by Nakho Kim
[캡콜닷넷업뎃] 허무를 아는 느와르 – 『밝은 미래』[기획회의 265호] http://capcold.net/blog/5465 | 무기휴간 들어간 팝툰 연재작들 중 무사히 완간되기를 기원하게 되는 작품 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