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일병이, 자기 분대를 몰살시켰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결국 그 짓을 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일말의 정당성을 스스로 소멸시켜버리고 만,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더 큰 비극을 불러다준 멍청한 악행. 아마도 군법에 의거, 총살형 예정. 편의적인 근무수칙 위반, 수많은 상병들 사이에 둘러쌓인 일병, 인격모독, 내성적 어리버리 성격, 쌓이는 스트레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얼추 머리 속에서 시나리오가 그려질 법한 이야기. 그리고 항상 지겹도록 반복되는 이야기는 한국 군대의 비민주적/시대착오적 질서유지 방식에 대한 피상적인 질타. 순진한 인권론자들도 군기 강화를 부르짖는 이들도, 그 근본적 이유인 거대 조직 군대의 비효율성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댈 구체적인 경영 마인드는 드물다. 너무 거대해서 제대로 쳐다보기가 너무 힘드니까. 구조조정을 하자, 라고 한다면 많은 고민과 드넓은 시각, 보이지 않는 다양한 방해요소들과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 그래서, 많은 이들은 그것보다 훨씬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 바로, ‘보이는 적‘을 만드는 것이다. 그 것이 진짜 적인지, 문제의 근본 원인인지는 이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통해서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지 없을지 조차 이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눈 앞에 보이고, 지금 당장 때려줄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이것, 저것
!@#… 아, 그래. 컴퓨터 게임이 문제고, 만화가 문제라고 하는구나. 뉴스라는 미디어가, 게임이고 만화고 하는 다른 미디어를 악의 근원으로 몰고 간다니 참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이러한 것들이 선택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구체적으로 보이니까. 컴퓨터 게임에서 총쏘는 장면 많지? 만화에 환상적, 비현실적 싸움 장면 많지? 자 한번 봐라. 이번의 사건과 비슷해 보이지? 그래, 그러니까 이걸 보고 배운거다. 에잇, 게임 만화 나쁜놈들. 때려주자…. 뭐 그런거다. 존내 유치하고 치졸하고 말도 안되지만, 그게 세상 사람들에게 아직도 잘만 받아들여지는 논리다. 만화계가 어려우니까 대여점을 불태우자고 하고, 관동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니까 조센징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고 하고, 민심이 불안정하니까 후세인이 핵무기를 숨겼다고 하는 거다.
!@#… 어쩌면,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복합적이고 거시적인 이유, 바로 대자연의 규칙) 왕을 잡아죽였던(보이는 ‘적’을 퇴치) 수천년 전 그 당시의 정신수준에서 한 발짝도 진화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판을 넓게 보는’ 사회적 지성의 방향을 포기한 대가를 두고두고 치루는 셈이다. 앞으로도 더욱 많이 치루겠지. 자의식은 커가고 사회적 지능은 떨어져가는 어떤 시대의 단상이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 수정 영리 자유 —
Pingback by capcold
[네이버트랙백 백업]
– 군인은 군대에서 뭘 배울까 06/24 10:09 캡콜드(capcold)
– 바보들 06/21 00:07 쿠루쿠루(enter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