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재본은 여기로. 편집부에서 붙여준 게재 제목 ‘대학전쟁능력시험’이라는 말이 너무나 착착 달라붙는다.
[방과 후 전쟁활동] (하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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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재본은 여기로. 편집부에서 붙여준 게재 제목 ‘대학전쟁능력시험’이라는 말이 너무나 착착 달라붙는다.
[방과 후 전쟁활동] (하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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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신에 의한 집총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법제화 추진 발표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닭살 돋는 용어는 개인적으로 참 싫어한다). 이것 참, 은근히 쾌거다. 내용이야 이제 익히 알려졌듯, 현역 사병 복무 기한의 2배 기간을 봉사시설에서. 대략 이렇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의 대체복무는 현재 도입을 추진 중인 사회복무제도 틀 안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다만 ‘예외없는 병역이행’이라는 원칙과 병역 형평성 등을 고려해 일반 사회복무자보다 더 힘든 분야에서 합숙 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아… 이거 표현에 좀 문제가 있다. “형평성 등을 고려해 일반 사회복무자보다 더 힘든 분야”라니, 너도 한번 당해봐라 같은 뉘앙스가 되어버렸잖아. “형평성을 고려해서 결과적으로 일반 사병 복무의 어려움과 대등한 수준의 복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어야지. 군필/미필자들의 자존심도 세워주고, 형평성에 대해 고민했다는 자신들의 사려 깊음도 제시하고, 대체복무하는 사람들이 괜히 손해본 느낌이 들지 않도록 일타삼피를 했어야 한다고. 제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을 각계에서 중용해야 하는 세상이라니까 (핫핫).
!@#… 아 뭐 여하튼. 인권 존중이 들어가는 공적 봉사 개념이란 누구는 고생하고 누구는 무임승차하라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개성을 지닌 개인이 존중받고 싶은 부분을 존중받으면서도, 공적 의무를 충족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주는 것,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디어 인권도 좀 생각하는 사회라고 좀 고개를 들 체면이 생긴 듯 하니 이건 확실히 굿 뉴스다. 그런데… capcold는 약간 다른 곳에 관심을 기울인다. 바로, 이 정책의 제안자들도 그렇고 리플계의 반응들도 그렇고, 이 정도 거래조건이 꽤 괜찮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병 복무 1년 반 = 사병은 아니지만 고생스러운 강제 노가다 3년’이라는 거래조건이 나름대로 반응이 좋다는 것. capcold도 납득할 정도고. 이것 흥미롭다. 군 복무시 당하는 노동량과 기간을 넘어서는 가외 변인으로서의 손해를 생각하게 해주니 말이다. 즉,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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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밥이 쌓여가는 일상 -『짬』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에서, 세대를 초월해서 애용되어온 궁극의 격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군대 가면 사람 된다”라는 말이다. 사람도 아니었다가 사람이 되어 나온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분명히 아닐 것이고, 군인으로서 배웠다고 표방하는 각종 살인기술이 인간 본연의 조건이거니 하는 말도 물론 아닐 터이다. 물론 말이야 조국의 소중함을 알게 되며 책임감을 지니고 사회성을 기른다느니 하고 적당히 멋진 말들을 붙여놓고는 하지만, 굳이 맥락으로 보자면 군대 생활을 경험하고 나면 한국의 주류 아저씨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 나갈 만큼 닳고 닳은 생활 요령이 쌓인다는 정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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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병 사건, 여차저차 국방부 수사발표. 결론은, “그놈은 미쳤었다”(왠지 베스트셀러 예감). 하지만 이번 사건의 진짜 코미디는 역시 그동안 시대의 변화 속에서 되바라질대로 되바라진, 망가질 대로 망가진 우리네 언론들. 정말 미디어의 마인드가 이해가 안가는 것이, 무려 군.인.이. 철저한 살인 기술과 살인 감수성에 능통하다는 것이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고 “모두 폭력 게임에서 배웠다” 라고 경악할 일인 줄 처음 알았다. 군인이란 자고로, 군대에서 삽질을 배우고 나오는 건 줄 알고 있나 보다(물론, 삽질을 폄하할 의도는 없습니다아아;;; 라기보다, 삽질을 배우고 나오는 건 사실이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 한 일병이, 자기 분대를 몰살시켰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결국 그 짓을 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일말의 정당성을 스스로 소멸시켜버리고 만,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더 큰 비극을 불러다준 멍청한 악행. 아마도 군법에 의거, 총살형 예정. 편의적인 근무수칙 위반, 수많은 상병들 사이에 둘러쌓인 일병, 인격모독, 내성적 어리버리 성격, 쌓이는 스트레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얼추 머리 속에서 시나리오가 그려질 법한 이야기. 그리고 항상 지겹도록 반복되는 이야기는 한국 군대의 비민주적/시대착오적 질서유지 방식에 대한 피상적인 질타. 순진한 인권론자들도 군기 강화를 부르짖는 이들도, 그 근본적 이유인 거대 조직 군대의 비효율성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댈 구체적인 경영 마인드는 드물다. 너무 거대해서 제대로 쳐다보기가 너무 힘드니까. 구조조정을 하자, 라고 한다면 많은 고민과 드넓은 시각, 보이지 않는 다양한 방해요소들과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 그래서, 많은 이들은 그것보다 훨씬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 바로, ‘보이는 적‘을 만드는 것이다. 그 것이 진짜 적인지, 문제의 근본 원인인지는 이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통해서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지 없을지 조차 이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눈 앞에 보이고, 지금 당장 때려줄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이것, 저것
!@#… 아, 그래. 컴퓨터 게임이 문제고, 만화가 문제라고 하는구나. 뉴스라는 미디어가, 게임이고 만화고 하는 다른 미디어를 악의 근원으로 몰고 간다니 참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이러한 것들이 선택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구체적으로 보이니까. 컴퓨터 게임에서 총쏘는 장면 많지? 만화에 환상적, 비현실적 싸움 장면 많지? 자 한번 봐라. 이번의 사건과 비슷해 보이지? 그래, 그러니까 이걸 보고 배운거다. 에잇, 게임 만화 나쁜놈들. 때려주자…. 뭐 그런거다. 존내 유치하고 치졸하고 말도 안되지만, 그게 세상 사람들에게 아직도 잘만 받아들여지는 논리다. 만화계가 어려우니까 대여점을 불태우자고 하고, 관동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니까 조센징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고 하고, 민심이 불안정하니까 후세인이 핵무기를 숨겼다고 하는 거다.
!@#… 어쩌면,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복합적이고 거시적인 이유, 바로 대자연의 규칙) 왕을 잡아죽였던(보이는 ‘적’을 퇴치) 수천년 전 그 당시의 정신수준에서 한 발짝도 진화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판을 넓게 보는’ 사회적 지성의 방향을 포기한 대가를 두고두고 치루는 셈이다. 앞으로도 더욱 많이 치루겠지. 자의식은 커가고 사회적 지능은 떨어져가는 어떤 시대의 단상이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 수정 영리 자유 —
인간의 기억은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을, 그것도 지금 순간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방향으로 살짝 바꾸어서 기억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은 대체적으로 ‘미화’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과거는 현재의 고난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이상적인(즉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안식처로 활용되기 때문에 아름다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덕분에 쓰리디 쓰렸을 젊은날의 고뇌는 청춘의 열정으로, 가슴찢어지는 실연은 성숙을 위한 디딤돌로 재해석되곤 한다. 실제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억해두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뇌세포들을 엉뚱한 조합으로 새로 이어붙이는 것이다.
군대 생활, 일명 ‘한국 남자들의 궁극적인 집단적 공유기억’이라고도 부르는 것이 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병영생활은 뭐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당시의 가학/피학적인 고통은 최고의 안주거리로 즐거움의 대상이 되고, 심한 경우 심지어 전우애를 다질 수 있었던 뜻깊은 시절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마치 당연하다는듯이, 군대를 다루는 만화들 역시 대부분 과거의 턱없는 미화라는 함정에 깊숙이 빠져있다. <빤빠라 선착순>이나 <굳세월아 군바리> 같은 작품들이 묘사하는 인간적인 군대 생활의 이면에 담겨있는 원칙인 셈이다. 보다 흥미로운 경우는 마재권의 4칸 만화 <돌격! 앞으로>(잡지 <부킹>에서 99-02년까지 연재, 단행본 전 4권 발간)의 경우다. 이 작품은 처음 시작 부분에서는 군대에서 어처구니 없는 결정 때문에 이어지는 황당한 결과를 핵심으로 하는 짤막한 개그로 신선한 웃음을 선사했다. 즉 군대라는 기형적인 폐쇄사회의 모순을 제대로 웃음꺼리로 삼아주는 통렬한 블랙코미디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하지만 연재가 진행됨에 따라서 점차 이야기는 주인공들 – 즉 내무반 성원들끼리의 캐릭터 드라마로 변해갔다. 그리고 캐릭터 드라마로 변하면서 다시금 군대만화가 흔히 빠지는 그 함정 – 아름다운 전우애와 추억 – 속으로 급속하게 빨려들어갔다. 그것이 당시 통신 게시판에서 다수 올라왔던 “군대를 희화화하다니! 너 방위 출신이지?” 따위 독자 반응들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작가 스스로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한계 때문인지는 사실 알 길이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여전히 군대라는 기억을 ‘더럽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려는 미묘한 습성을 조금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현 풍속도 속으로 결국 돌아와버렸다는 점 뿐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9. 4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