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논리라는 것

!@#… 고등학문, 특히 사회과학이란, 결국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증명하는 훈련이다. 생각하는 바는 어차피 먼저 정해져 있는데, 마치 그것이 체계적이고 훌륭한 과정에 의해서 탄생한 것처럼 나중에 얼버무리기 위해서 자료와 논리를 그 사이에 끼워넣게 된다. 즉 좋은 논증이란 단지 내적으로 훌륭한 것이 아니라, 아무리 막나가든 어쩌든 결국 원래 말하고 싶었던 그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음, 골치아픈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논증에 관한 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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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피쉬’는 작고, 노랗고, 거머리처럼 생긴데다가, 아마 전 우주에서 가장 괴상한 존재인 듯. 이것은 뇌파 에너지를 먹고 사는데, 모든 무의식 수준의 주파수를 흡수한 후, 의식 수준의 주파수 및 두뇌의 언어중추에서 잡아내는 신경 시그널로 이루어진 일종의 신호체계를 텔레파시적 과정을 통해서 발산한다. 그래서 실용적인 결과는, 이것을 귀에 쑤셔넣으면 누군가가 당신에게 건네는 말을 설령 어떤 언어라 할지라도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들으면서 뇌파의 신호체계를 해독하게 되는 셈이다.

뭐, 이런 정신 혼미해질 정도로 유용한 것이 단지 우연한 진화의 과정을 통해서 탄생했을 가능성은 무지막지하게 희박하다; 그래서 어떤 사상가들은 이것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궁극의 확고부동한 증거로 택하고 있다. 논증은 대략 이런 식이다:

  – “나는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를 거부할지니” 라고 신이 말한다. “증명은 믿음을 부정하고, 믿음이 없다면 나는 무(無)에 불과하도다.”

  – “하지만요,” 라고 인간이 말한다. “바벨피쉬가 결정적 증거잖아요, 안그래요? 이것이 당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인데, 그러니까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 거네요. 증명 끝!”

  – “어머나” 라고 신이 말한다. “그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그리고는 논리 속에서 펑하고 사라져버린다.
  – “뭐, 쉽구먼.” 인간이 말한다. 그리고 앵콜로 이번에는 검은색이 곧 흰색이라는 증명까지도 해내고, 다음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죽어버린다.

———- Douglas Adams,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 국내 출판본이 아니라, 그냥 김낙호 직접 번역문. 국내판은 극악하다고 소문난 옛날 판본도, 훨 나아졌다는 최근 판본도 사실 읽어본 적 자체가 없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애초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라는 제목 자체부터가 그리 해피한 번역이 아니지만. “The Hitchhiker’s Guide to ***” 라는 말은 원래 “*** 초급 안내서”라는 말이다. 뉘앙스로 따지자면 “***,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정도의 발랄한(?) 표현. 물론 이 책에서는 초반에 주인공들이 정말로 우주선에 히치하이킹을 하지만, 그건 오로지 만담개그를 넣기 위한 것이었을 뿐. -_-; 아니 사실 애초에 그냥 무단승차한 거지, 그게 어디가 히치하이킹인가. 게다가 나중에는 그 정도 개념마저도 다시 안나오다시피하고. 뭐…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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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네이버덧글 백업]
    – 유월 – 몰랐어요 히치하이커가 101 가이드 같은 뉘앙스로 쓰였다니…만담이었군. 2005/10/23 01:34

    – 마근엄 – *** for dummies 내지 Idiot’s Guide to *** 시리즈 같은 거로군요.
    hitchhiker’s guide가 그런 뜻인줄 몰랐습니다. 2005/10/24 2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