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의 현대사 – 『타짜』[기획회의 070415]

!@#… 왠 뒷북 ‘타짜’냐고 한다면… 영화 덕분에 다시 한번 유명세도 타고, 신판본으로 완결까지 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제 때에 이 작품에 대해서는 사후분석이 아닌 ‘리뷰’를 할만한 타이밍을 잡기 힘들 듯 하여 4월 초에는 그냥 이걸로 갔다. 앞으로는 한동안 다시 신간다운 신간(?)으로 리뷰 대상을 스위치하고자 (지난호에는 푸른 알약이 들어갔고, 이번호에는 크로니클스 예정) 한다.

 

『타짜』 – 도박의 현대사

김낙호(만화연구가)

도박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는 확률과 보상의 크기를 놓고 서로의 판단력을 겨루는 대결이다. 성공의 확률이 낮을 수록 보상의 크기는 커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얻어냈을 때 일시적으로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그 성취감이 지극히 중독적이라는 것, 그리고 역시 크게 실패할 확률이 애초부터 훨씬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독된 사례라면 대부분, 재도전 자체가 불가능해질 때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붇고 산화하기까지 한다. 정말로 돈을 따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확률적으로 계산해서 차라리 적금을 붓고 투자 펀드에 드는 것이 나을 것이다. 도박은 어디까지나, 돈 자체의 문제 이전에 돈을 매개로 한 스릴에 대한 집착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하는 원래의 목적이든 생각이든 뇌리에서 증발하는 경우까지도 종종 발생한다. 이기는 것, 복수하는 것, 혹은 그냥 ‘손맛’ 그 자체에 힘을 쏟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극대화된 경쟁에 스스로 도취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자면 비단 도박이라는 극단적인(?) 놀이문화가 아니라도, 정치가 되었든 현대 자본주의가 되었든 한국사회에서 종종 나타난 공통된 패턴이기도 하다.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왜 잘 살아보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냥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룰도 없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이 한국의 현대사다. 성찰과 룰을 생략하고 입시경쟁과 취직시험 경쟁에 몰아넣고, 낮은 확률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 각종 족집게 과외와 꼼수들을 머리에 우겨넣는 것이 우리 생활이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야 말로 목적을 잃은 스릴 중독이고, 우리가 걸어온 길 자체가 도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화 『타짜』(허영만, 김세영/전4부 22권/랜덤하우스코리아)는 도박으로 세상사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도박기술자들의 애환을 그리는 것도, 도박을 매개로 하여 홍콩느와르식의 멋진 사나이 정서를 울리자는 작품도 아니다. 시대의 정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양상을 도박판을 통해서 표현해내는 작품이다. 스포츠조선에서 인기리에 완결된 후 같은 원고를 재연재까지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던 작품으로, 작년의 영화판 개봉에 타이밍을 맞추어 재출간된 바 있는 새 장정의 소장형 판본이 최근 4부까지 완간되었다. 이로써 오락성면에서나 대중적 인지도 면에서나 메시지의 완성도 면에서나 2000년대 초를 대표할만한 작품 한 편이 비로소 하나의 완성을 이루었다는 느낌이다.

전 4부로 구성되어 있는 『타짜』는, 각각 줄거리에 독립성이 있는 4편의 작품의 연작에 가깝다. 그 중 특히 1,2,3부의 시대읽기 통찰력이나 구심력 있는 완성도는 탁월하다. 1부는 6-70년대의 독재치하 억압적 혼란기를, 화투장 두 장으로 단순명쾌하게 승부를 보는 섯다로 풀어낸다. 이에 비해서 2부는 80년대를 풍미한 또다른 군사정권의 우중정치와 열혈과 벼락졸부의 세상을 고스톱으로 표현한다. 3부는 뭔가 ‘시대적 지향점’이 없어지고 대놓고 돈놓고 돈먹기 상황이 된 얄팍해진 90년대를 포커로 비추어 풀어나간다. 1부가 비록 서로 뜯고 뜯기는 아귀다툼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의리와 원칙이라는 무협 협객 전기의 틀에 맞추어져있는 반면, 2부는 고속성장의 열매들이 불균등하게 꽃피우던 80년대 시대의 야욕답게 원칙들이 사라져가고 단지 아주 가까운 애인 정도만이 유일한 의지처로 그려진다. 그리고 3부에 오면 패배와 수련, 그리고 고수로의 성장이라는 기본 뼈대는 같아도 돈과 섹스라는 물질적 재료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3부에서 앞선 1,2부의 모든 인연이 그랜드 피날레 마냥 한꺼번에 정리되어 대미를 장식한 것은 아니지만, 시대라는 재료를 도박의 풍경 속에 넣어서 요리해내는 솜씨는 이들 작가 콤비가 과연 80년대의 명작 『오!한강』 시리즈를 탄생시킨 바로 그들이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재주가 있는 자와 그 기술을 뛰어넘는 자, 사기치는 자와 사기당하는 자, 동료로 뭉치고 적으로 갈라서며 다시 동료로 뭉치는 이합집산의 모습들이 미묘하게 매 시대마다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서 카지노와 블랙잭을 다루는 4부는 다소 따로 노는 느낌인데, 실제로 당초 기획은 3부까지였는데 인기유지를 위해서 나중에서야 끼워 넣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4부는 연작으로 하나로 묶기 힘든, 스토리 전개방식은 물론 심지어 담긴 주제의식조차 다른 작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미묘한 시대적 정신보다는 단지 현대를 무대로 해서 화려한 복수극을 그려내고 있는데, 이것은 1-3부에서 이야기한 “도박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이합집산의 주제관과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극적인 재미는 좋지만, 가장 얄팍한 컨셉의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1-3부의 당찬 여성 캐릭터들의 매력을 이어가지 못하고, 수동적, 도구적인 여성상으로 일관한 안이함까지 겹친다. 남자주인공이 바람피우면 능력인데 그의 약혼자가 바람을 피운 것은 피의 복수를 해야 할 부도덕한 일로 묘사되는 대목에 이르면, 같은 타짜 연작으로 놓기가 싫어질 정도니까 말이다. 4부의 경우는 오히려 그 이후 스토리작가 김세영이 허영만과 결별하고 다른 작화팀을 고용하여 자신의 단독 이름으로 낸 『타짜의 타짜』 연작(이후 ‘갬블’)의 단선적인 오락성에 더 가깝다. 만약 하나의 완결성 있는 작품으로 구비하는 것이 목표라면, 3부까지만 박스세트로 묶어 구입하는 것이 내용상으로 합당할 것이다.

모든 창작 콤비가 그렇듯, 허영만/김세영 팀은 서로 합쳐서 작업하기에 각자가 지니는 능력 이상의 것을 내주었다. 굳이 억지로 나누자면, 시대성을 담아내는 줄거리나 오락성과 깊이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대사들은 스토리 작가 김세영의 공이 크다. 하지만 『타짜』를 완성도 높은 재미있는 만화작품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허영만 특유의 필치다. 아직도 거칠고 직선적인 선으로 비장함을 이야기하는 이현세와 달리, 허영만의 매끈하고 둥그러운 선은 그들을 어떤 강렬한 의지의 상징이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만든다. 때로는 약하고, 때로는 악한 그런 평범한 사람들 말이다. 도박이라는 소재, 그 도박의 전문가인 타짜라는 존재는 허영만의 필치 속에서만큼은 영웅이 아닌 기술자들일 뿐이다. 이입을 하게 하는 필치, 그 여우로운 화면이 허영만의 가장 큰 장점이자 이 작품 『타짜』를 단순한 도박기술자 경연대회가 아니라 세상사 희로애락 인간 드라마로 만들어주는 핵심요소다.

도박같이 걸어온 한국 현대사, 도박꾼들의 도박 이야기로 바라보는 것도 확실한 재미를 준다. 『타짜』의 미덕은,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아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아주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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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 중간에 김세영 작가의 역할 이야기가 나온김에… 인터뷰에서는 작품에서 자신의 이름이 제대로 안나가는 것을 문제삼아 놓고는, 정작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간 갬블(타짜의 타짜)는 무려 아예 ‘김세영 글/그림’으로 내놓는 자세는 참 뒷맛을 씁쓸하게 만든다.

타짜 1부 세트 – 전4권
허영만 그림, 김세영 글/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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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thoughts on “도박의 현대사 – 『타짜』[기획회의 070415]

Comments


  1.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타짜의 광팬으로서 감회가 새롭군요.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구요. 제가 타짜 3부 원아이드잭에 꽂혀서 한동안 온라인에서의 닉네임으로
    많이 밀었었죠.. 지금은 그 허명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자격이 될때까지 그 닉네임 사용을
    보류하고 있답니다. 타짜의 타짜를 보면서 든 생각은 참 구상할 수 있는 설정은 다 나온거
    같아도 끝없이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해 내는 김세영의 입심에 놀란다는거죠..^^

  2. ‘스릴’보다는 ‘대박’ 마인드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타짜’ 주인공들의 특징은 이전의 갬블러들처럼 ‘게이머’가 아닌 ‘구라꾼’을 표방한다는 점이고, 따라서 게임 자체의 스릴이 아니라 비합적으로 남의 돈을 (자기 자본은 대개 빌리거나 구라를 치죠) 한꺼번에 많이 따먹는 데 집착하니까요. 이건 재화 생산이 아니라 몰아주기, 로또공식이며 우리의 자본주의와 오히려 그 점에서 유사하다고 보았습니다. 우린 늘 몰아주기 대박을 지향해왔고, 우리의 자본주의에서 게임의 스릴은 오히려 사치에 가깝지 않았을까요. (‘타짜’의 구라꾼들한텐 심지어 승부도 없고, 사랑도 구라래잖아요)

  3. !@#… 쁘뉴마님/ 제 감상으로는, 타짜의 주인공들은 결코 돈 좀 벌었다고 도박판에서 물러나지 않습니다. 아귀의 말처럼 ‘죄는 맛’에 사는 인생들. 대박을 쳐서 큰 돈을 버는 것 자체는 큰 스릴을 위한 수단, 혹은 자기합리화에 가깝죠. 돈 자체가 목표라면 1부 주인공은 누나 돈 번 후 돌아갔고, 2부 주인공은 막판에 돈 따고 도망간 후에는 도박을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고, 3부는 주인공이 중간에 안정된 인생 시작하자마자 스토리 완결이죠(실제로 ‘타짜’가 아니라 돈 버는 것 자체가 목표였던 여자주인공들은 결국 돈 가로채고 도망가서 해피한 인생으로 끝나죠). 다만 그 스릴이란 고상한 유희성의 ‘게임’성 스릴이라기보다는, 경쟁과 승부의 압박 자체에 중독되어버리는 쪽입니다. 처음에는 물론 돈 벌자는 생각으로 시작하죠. 하지만 어느틈에, 그냥 그 올인과 압박의 자학적 쾌감에 중독되어버린다는…

  4. 저도 처음에는 살짝 볼려했는데, 무섭게 전권을 침삼키며 봤던 기억이 나네요. 다만 3부의 완결이 비장한 맛이 떨어져서 내심 아쉬운…

  5. !@#… nomodem님/ 오오, 뭔가 엄청난 표현이 되어버리고 말았군요 -_-;;; 지난 수년간의 허영만 만화는 이미지로 보자면 여우보다는 곰이 더 어울릴 듯 하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