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 보호와 “간첩 저널리즘”

!@#… 굵직하고 큰 사건들은, 보통 나름대로 잘 고안되어 있다. 그래서 내부자가 아니면 문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아니나 다를까, 대형 사건들은 내부 고발자가 던져주는 단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것이, 대의를 위해서 내 한 몸 희생하기를 좋아할 리가 없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어야 진실을 말하든 말든 하지. 그래서 군대라는 위계적 조직에서조차, 소원수리를 하는 과정에서는 익명성을 보장해준다… 뭐 적어도 겉모습으로 나마.

!@#… 그렇다면, 내부고발자에 대한 아주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자기검증능력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말인가. 이번 황랩 사건에서 증언자 K연구원을 둘러싼 이야기 전개가 바로 그렇다. 피디수첩에서 신원 보호를 해 줄 수 있는 것은 피디수첩 방송에서 그것을 밝히지 않겠다는 것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취재 활동 자체가 뚜렷한 자취를 남겨버리면 피디수첩이 밝히든 말든 내부 조직에서는 이미 알게 된다. 그리고 증언의 신빙성 시비에 대해서 피디수첩은 미국에 있는 어쩌고 하며 신원에 대한 단서를 일부나마 흘리지 않았던가. 신원보호를 제대로 못한 것이다. 아직 최초 제보자들에 대한 정보는 지키고 있다는 것은 박수칠만한 일이지만, 증언을 한 K연구원을 끝까지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한 피디수첩의 책임은 심각한 것이다. 취재과정의 협잡도 가볍지 않은 취재윤리 위반이었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정작 이쪽이라고 본다. 전자는 당사자들이 처벌받고 증거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으로 끝나는 정도지만, 후자의 경우 내부고발이라는 중요한 단서확보 방법을 향후까지도 망가트리기 때문이다. 즉 저널리즘 기능 자체에 지장을 주게 된다는 말이다. 취재원 보호는 저널리즘의 기본적인 룰이다. 여론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취재원을 보호하느라 25년 뉴욕타임즈 기자직에서도 잘리고 감옥에 들어간 미국 여기자는 심심해서 삽질한 것이 아니고, 워터게이트 사건의 내부고발자가 고작 몇년 전에야 처음 공개된 것 역시 이런 취지다.

!@#… 이번 황랩 건을 다루는 한국 메인스트림 언론 전반의 진짜 문제는,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서 증언자와 제보자의 신원을 밝혀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건 탐사보도도 뭣도 아니다. 그냥 언론으로서의 자살행위일 뿐. 어떤 내부고발자가 이제 용기를 내고 조선일보나 국민일보나 YTN에 제보를 하겠나. 아니 언론이라는 것 자체에 제보를 하겠나. 언론에 제보를 한다는 것은, 특정한 내부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또한 검증 시스템이 미비해서 도저히 다른 정상적인 해결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한마디로, 정상적으로 해결 절차를 밟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선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공표만이라도 먼저 하는 처절한 시도다. 물론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지만, 사람들이 무단횡단한다고 해서 신호등을 뽑아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이번 건에서, 여러 “언론을 자처하는” 신문들과 방송들이 최소한의 근거도 없는 추측들을 남발하면서 미친듯이 수색과정에 나섰다. 그렇게 ‘신의 젓가락질’ 박을순 연구원, 김선종 연구원 등이 실명으로 마구 거론되어 망가졌다. 즉 최소한의 가명 표기 원칙도 깨버린지 오래. 차라리 O양 비디오 사건때 당사자의 신원이 언론에서 더 오래 보호되었다. 

그런데 그 폭로의 패턴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보도들이 해외 파견 연구원들을 통한 ‘기술 유출’, 황랩의 ‘팀워크’ 등의 키워드와 대단히 적극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내부고발자라는 고발 행위와 그것의 진실성 자체로서 관심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부고발 행위가 조직에 가져다줄 영향에 대해서 집중하는 것이다. 그 영향이 뭐냐고? 제보자, 증언자들은 해외 파견 연구원들이다, 내부 고발 행위로 인하여 황랩은 팀워크가 깨졌다라는 주장들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한번 조합해보자. 그리고 황우석 교수, 나아가 줄기세포 연구가 지금껏 포장되어 차지해온 담론적 위치를 더해보자. 자 계산 끝. 해답은 “국익“. 즉, 내부고발자들은 국익에 저해되는 행위를 했다는 논리가 생겨난다. 그런데 국익이란 어떤 뉘앙스일까. 우리나라, 즉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거대한 커뮤니티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익을 저해하는 내부고발은, ‘우리들’에 대한 배신행위로 인식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틀거리에서, “내부고발자가 누군지 궁금하다”라는 질문은 자동적으로 꽤 한국 현대사에서 친숙한 다른 명제로 치환되어 버린다: “간첩을 색출하자“.

확실히, 특히 조선일보와 YTN 기자들의 당시 보도들은 더도덜도 아닌 “간첩을 색출하자” 딱 그 수준이다. 황랩(=국익)의 배신자가 있다, 그게 누굴까 내가 밝혀주마, 라는 접근. 나는 이딴 것들이 기자 직함 달고 다니는 것도 미스테리고, 이딴 것들이 포퓰리즘이 위험하니 어쩌니 하는 논지로 노무현 정부를 비난하는 위선도 전혀 이해가 안간다. 물론 좀 더 큰 틀에서 보자면, 이들에게는 피디수첩 역시 국익을 배신하고 내부 정보를 폭로한 간첩이다. 진위검증 문제 이전에, 이미 명백하게 사실로 드러난 난자기증 문제에 대해서 피디수첩이 방영된 것에 대한 이들의 반응이 그것을 강하게 웅변해주고 있다(특히 외국이 어쩌니 하는 프레임이 딱 그런 취지라고 할 수 있다).

!@#… “간첩 저널리즘“. 이것이 바로 이번 건을 통해서 드러난 한국 저널리즘의 커다란 폐해다(이왕 생각해낸 말이니, 나중에 정식 용어로 개념화해서 이론적 정립을 해봐야 겠다). 사회의 자정 시스템을 망가트리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영향력마저도 스스로 갉아 먹는 자멸적인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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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취재원 보호와 “간첩 저널리즘”

Comments


  1. [네이버덧글 백업]
    – 김태 – 이런 식으로 YTN과 조선일보가 발빼고 도망가게 놔둘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끝까지 쫓아가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뭔가 캠페인이라도 해야 합니다. 조선일보는 YS때도 이런식으로 치고빠지던 놈들인데, 아무튼 이번 기회에 방씨 일가를 길바닥에 내앉혀야 합니다. 2005/12/11 10:00

    – mirugi – 이거 아주 좋은 용어를 생각하셨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이걸로 논문 하나 쓰셔도 되겠습니다. 좋은 논문으로 완성시키시면, 분명히 차후에 저널리즘 관련 학문에 전문용어로 후세에 남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2005/12/11 19:54

    – 기린아 – 저도 이걸 논문으로 내시기를 적극 권장합니다. 이 기회에 못을 박읍시다.-_-; 2005/12/11 21:30

    – 김태 – 이걸로 논문내시면 제가 만화로 그리겠습니다. 2005/12/12 13:57

    – 캡콜드 – !@#… 김태님/ 그 말씀, 잘 기억해두고 있겠습니다;; 2005/12/12 14:06

    – akachan – 조선일보는 이미 오리발 저널리즘의 대가이기 때문에 책임을 물거나 할리는 없습니다. YTN은 아직 오리발 저널리즘을 확실히 익히지 못해서 어찌 될 지 모르겠군요. 2005/12/12 23:33

    – 김태 – 그래서그런지 와이티엔은 열심히 오락가락오락가락 하고 있네요~ 2005/12/13 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