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주의 제11화로 드라마 ‘히어로즈’ 시즌1 전반부 종료. 한달반쯤 쉬고, 1월 말에 방송 재개 예정. 중간기착점이자, 두번째 스토리 아크인 ‘치어리더를 구하라, 세계를 구하라’의 종료인 만큼 중요한 단서들과 새로운 전개의 예고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이것참, 드라마 보는 재미가 막강하다. ##이 벌써 장렬하게 죽어버린 것은 참 아쉬운 일이지만.
!@#… 그런데 뜯어보면 볼수록 이 드라마 대단히 잘 고안되어 있는데, 특히 초능력자 캐릭터들의 구도가 예술이다. 슈퍼히어로 만화장르 특유의 파워밸런스 개념에 어지간히 통달하지 않고는 도달하기 힘든 경지에다가, 심리학적 성향 구분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기까지 하다. 우선, 모든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단 한가지의 능력만을 가지고 있다. 해이션(The Haitian)은 남의 기억을 지우는 것과 남의 초능력을 봉쇄하는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 캐릭터의 능력은 바로 상대의 정신활동에 방해전파를 보내는 능력 한가지다. 그걸 응용함에 따라서 기억을 지울수도 있고, 두뇌의 활동에 방해파를 보내서 초능력을 봉쇄하기도 하는 것.
그런데 그 ‘한 가지 능력’으로 무한한 능력을 취할 수 있는 캐릭터가 딱 두 명 나오는데, 바로 연쇄살인마 시계공 사일라와 정의의 간호부 피터 페트렐리. 초능력자들의 두개골을 깨고 두뇌를 열어서 능력을 흡수하는 사일라, 그리고 초능력자가 곁에 있으면 그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같이 구사할 수 있게 되는 피터는 바로 동전의 양면이다. 사일라의 고유능력은 바로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고치는 능력”.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두뇌를 직접 꺼내서 초능력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유전자를 고침으로써 자기 능력으로 만든다. 그 절차를 위해서 상대 초능력자는 두개골이 열린채로 죽을 수 밖에. -_-; 한마디로, 사일라의 능력의 핵심은 바로 절대적인 ‘이성’이다. 부대적 피해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궁극의 이치를 위해서 끝없이 매진한다. 그와 정 반대 극단에 서있는 것이 바로 피터. 그의 고유능력은 바로 “상대의 모든 것을 공감하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꿈을 통해서 자기 형이나 죽어가는 자기 환자 등 타인의 경험과 연동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능력이 극단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 타인의 능력을 마치 거울처럼 그대로 반영해버리는 것. 바로 절대적인 ‘감성’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다. 물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 것이, 폭주하면 자칫 아예 자아가 망가질 수도 있는 위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즉, 시즌1의 핵심 축을 이루는 대결구도는 이성-감성의 구도인 만큼 팽팽한 파워 밸런스를 이루면서 달려나갈 수 밖에 없다 – 그리고 결국 둘이 결국은 어떻게 공멸 또는 융화할 것인지가 관건. 캐릭터 밸런스를 위해서 ‘알고보면 인간적인 슈퍼악당’이라는 (이제는 꽤 뻔해진) 코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속성’ 그 자체를 통해서 구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편집증처럼 묘사되는 초능력자 주소록 작성자, 노골적으로 커밍아웃 코드를 지니고 있는 무한 힐링 10대 소녀, 억압된 공격성과 이중인격으로 무장한 주부, 소년 같은 정신상태의 히어로 오타쿠 회사원,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세속적 정치가 등 히어로의 원형적 경이와 현대 도시인의 각종 정신상태가 접합된 캐릭터들이 한 다스 서로 얽혀 들어간다. 참 똑똑한 설정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 또다른 측면의 즐거움이라면 역시 ‘장르만화적’ 재미. 이미 4화에서 올백+수염+가죽코트+등에 검을 둘러매고 미래에서 온 히로를 통해서 만화적 슈퍼히어로 후까시를 보여주어 자신들의 ‘슈퍼히어로 장르만화적’ 근본을 보여준 제작팀, 갈수록 더 노골적이 되어가고 있다. 점점 더 캐릭터들이 슈퍼히어로적인 ‘이름'(별명)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것. ‘싸일라(Cylar)’, ‘더 해이션(The Haitian)’, ‘DL’은 원래부터 슈퍼히어로틱한 이름들이었다. 그런데 갈수록 스스로를 ‘스파-히로'(슈퍼히어로)라고 지칭하는 히로는 물론, 온갖 사람들에게 멀쩡한 이름 놔두고 그냥 ‘더 치어리더'(The Cheerleader)라고 불리우고 있는 클레어를 보라. 이거, 분명히 의도적이다! 울버린이나 사이클롭스 같은 멋진 히어로명이 있으면서도 뒤로 갈수록 더욱 더 로건이니 스콧으로 불러댔던 모 극장영화와는 정반대라니까. 또는 히로의 미래를 예지하는 아이삭의 그림이 그가 일본도 한자루로 티라노사우르스와 맞서는 장면인 것 역시 (낚시일 가능성도 다분하지만) 장르팬의 환호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이 정도로 ‘골수 진성’이라면, 근육과 타이즈가 안나오는 정도의 타협은 기꺼이 받아들여주리라.
PS. …그런데 와이프님은 아무래도 “각본 예측”이라는 초능력이 있는 듯 하다. 같이 보고 있노라면 어떤 장르의 드라마라도 10분 뒤에 벌어질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예측해낸다. -_-; 그런 류의 능력들만 잔뜩 모아서, 한국식의 ‘히어로즈’ 드라마를 만들면 대박일 듯.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완전히 낚여버렸지요. 어떻게 두달을 기다릴지..T.T/
그리고 근육과 타이즈는 여전히 아쉽긴합니다.
이거…
한국엔 안 올 까요? =3=;;
이 포스팅 보고나니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는군요.
..역시 P2P의 힘을빌려야하나
제가 얼마전에 heroes 관련 질문 드렸을때는 시큰둥이신것 같았는데..점점 불타시더니만~~
역시!
참..히어로즈 다 보셨으면 저의 개그감상문을 링크로. [클릭]
!@#… nomodem님/ 처음에 제가 히어로즈 추천받았을 때는, 자꾸 사람들이 ‘드라마판 엑스멘이다’라고 해서요. 저는 엑스멘 영화들이 장르만화 원작인 주제에 자꾸 슈퍼히어로 코드를 희석하고 부정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별로 안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히어로즈는 실제로 보니까 그와는 정 반대로, 그냥 드라마의 기반 위에 어떻게든 슈퍼히어로의 코드를 더욱 더 집어넣으려고 근성을 발휘하는 모습이 대단히 마음에 들더군요. 그러다보니 불탔습니다.
언럭키즈님/ P2P가 아니라도, NBC.com에서 드라마를 정식으로 스트리밍 방영합니다(물론 무자막…).
Comic book blogosphere에서도 Heroes를 X-Men에 비유하는 글이 많은 것으로 봐서, “드라마판 엑스멘”이라는 표현은 영화판이 아니라 Chris Claremont가 대본을 쓰던 당시의 엑스멘 만화책 시리즈에 비유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웬만한 만화책들이 한 이슈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완결되던 시절에, 개별 이슈의 재미를 보장하면서도 Superhero Soap Opera라고 불리울정도로 여러 이슈에 걸친 긴 이야기를 엮어내서 독자들이 계속 나오는 이슈들을 구입하지 않으면 못견디도록 중독시켜버렸던 클레어몬트의 엑스멘 만화책이, 개별 에피소드의 재미속에서도 시즌단위의 큰 줄거리를 진행시켜가는 Heroes에 비유되는것 같군요. 특히 기존에 나왔던 수퍼히어로 장르 시리즈들이 에피소드 단위의 줄거리에 중점을 뒀고, 그나마 예외라고 할수있는 Smallville 같은 경우에는 한명의 주인공에 집중한것에 반해서 Heroes에서는 여러명의 주인공들이 나오니까 엑스멘 같은 team book에 비유하는 것이 가장 적절했겠죠.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말에 만화가게들을 돌아다니며 TPB와 과월호를 사모으고 그후 계속 연재되는 것도 사모아서 Uncanny X-Men 시리즈를 1975년부터 1993년까지 나온 모든 이슈를 읽었는데, 십여년동안 연재되었던 분량을 몇달사이의 기간에 걸쳐 읽어보니까 여러 subplot들을 몇년동안 질질끌다가 제대로 결말도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 없애버리는등 클레어몬트가 쓰는 줄거리의 약점이 너무 확실히 보이더군요. 일부에서는 Heroes도 지금처럼 설정을 너무 과감하게 펼쳐놓았다가 나중에는 The X-Files처럼 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더군요.
정작 글의 주제인 Heroes는 늦게까지 일해야하는 직장때문에 한번도 본적이 없네요.
!@#… Dreamlord님/ 다행히도, 한 시즌 단위로 하나의 큰 사건을 완결짓는 방식으로 간다고 하는군요 (팀 크링의 TV가이드 인터뷰). 그나저나 히어로즈는 http://www.nbc.com/Video/rewind/full_episodes/heroes.shtml 에 가셔서 밤에라도 틈틈이 관람하시길 적극 권장합니다. :-)
!@#… PS. 본문에 피터 페트렐리의 능력을 이야기하면서 ‘카피’한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 와이프님의 지적에 따라서 약간 표현을 수정. 극중에서, 임상/상담 심리학에서 구사하는 기술인 ‘반영’ 혹은 ‘미러링’ 개념을 연상시키도록 묘사하고 있다는 의견.
사실 저도, 캡콜선생님과 같은 의견으로 ‘이 시리즈는 왠지 키치문화에 대한 정면돌파의식’과 상당히 상징적인 캐릭터-능력대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가 에이 그렇게 거창하게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어. 하고 고개를 흔들었었죠.
그런데 역시 캡콜선생님의 열혈장문을 읽고 든 생각은 그래, 역시 아이작 멘데스가 화가이면서 만화가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어. 대중문화인식에 대해서 만화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 자체야! 하는 결론이 다시 고개를 쳐들더군요.
혹자는 이 이야기들이 ‘너무 많이 벌려놔서 제대로 수습을 못할것’이라고 하지만, 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정말 적절하게 벌려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Heroes 는 여하튼 북미만화뿐 아니라, ‘허무맹랑하게 느껴지는 초인만화류의 대반발’ 이라는 취지로 한번 다뤄볼만한 정말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멋진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아.. 스트리밍으로라도 한번 보고 싶어 nbc.com을 방문하였지만
당신네 지역에는 스트리밍 해주지 않는다네요 ㅠㅠ
> 근육과 타이즈가 안나오는 정도의 타협
처음에 ‘평상복 시민 슈퍼히어로 드라마’라는 얘길 듣고 ‘슈퍼특공대Mispits of Science 같은 얘기를 만들려나’ 싶었는데 그것과는 또 다른 방향인 것 같군요.
여건이 안 돼서 좀처럼 못 보고 있지만 호기심이 물씬…T.T
> 여러 subplot들을 몇년동안 질질끌다가 제대로 결말도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 없애버리는등 클레어몬트가 쓰는 줄거리의 약점
섬나라에선 요즘 가면라이더 시리즈가 비슷한 짓을 하고 있죠. (근데 확실히 크게 벌려놓기만 하고 마무리가 허술한 경우가 많이 나와서 안습;;;T.T)
!@#… 잠본이님/ 사실, 히어로즈의 크리에이터인 팀 크링이 슈퍼특공대 각본썼던 사람이기도 하죠 뭐. 의외로 좁다니까요 이쪽 판도…
샤말란 감독의 [언브레이커블]을 보고 ‘히어로의 탄생편’이라고 하면서 매우 좋아했었는데… 히어로즈가 딱 그 느낌을 주네요. 좋은 작품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까지 정보로 미루어 내용 중 수정해야 할 부분이..
사일러가 능력을 흡수하는 게 유전자를 조작하는 게 아니라는 건 이미 확실해졌고, 현재까지 정보로 미루어, 뇌 자체를 염동력으로 조작해 변형시켜 초능력을 사용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의 초기설정은 뇌를 먹어 능력을 흡수한다 였다고 하던데.. 그래서 염동력이 유전자에 있는 건 설명이 안되고 있긴하죠..
!@#… 세임님/ 옙, 계속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서 그 전에 나온 이론들이 바뀌곤 하죠. 현재로서는 아직 사일라의 초능력 흡수 방법은 뇌를 물리적으로 입수한다는 조건 말고는 확정된 바는 없고, 제가 적어놓은 유전자 이론도 이 포스팅을 썼던 시기의 이론 – 즉 10화 ‘Fallout’에서 HRG(미스터 베넷)이 주장한 내용일 뿐이죠. 완전히 모든 설명이 다 주어진다는 보장은 물론 없지만, 나중에 시즌1이 끝나고 쓸 기념포스팅에서는 그런 식으로 중간에 밑밥을 깔다가 바뀐 이론들을 몇가지 살펴볼까 합니다. 설마 러프 아이디어 단계의 설정이었던 “뇌를 직접 체내로 흡수한다”는 안으로 가지는… 않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