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차저차 하다보니 백만년만의 새 포스트;;
파괴의 관계 – [기묘한 생물학]
김낙호(만화연구가)
프랑크푸르트 동물원의 맹수관에는 특이한 우리가 하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맹수”라는 표지판이 있고 두꺼운 창살이 붙어 있는데, 어째 우리가 전혀 깊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살 바로 뒤에 거울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맹수는 바로 인간이라는 메시지다. 동물원에서는 자연파괴 같은 측면을 주목한 것이겠지만, 사회 속 인간이 동종에게 하는 각종 행위들은 충분히 포악하기 그지없다. 자칫 도덕성의 브레이크가 느슨해질 때, 경쟁심과 소유욕, 그리고 우리가 딱히 무엇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어렴풋이 공감은 가는 기타 부정적 감정들이 주변인들을 파괴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그 기원은 무엇일까. 생물로서 지닌 본능이 그런 식인데 사회질서로 억누르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삶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데 생물의 당연한 속성인 것처럼 포장하여 인간 사회가 스스로를 변명하는 것인가.
[기묘한 생물학](한혜연 / 거북이북스)은 생물학 현상을 제목으로 하는 연작 단편들의 모음집이다. 수록작들은 각각 발표 지면과 시기가 큰 차이가 있는데도 상당히 통일된 테마를 보여준다. 매 단편은 인간이 다른 무언가를 파괴하는 사건을 중심에 놓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 과정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행동들에서 생물들의 어떤 생태 현상과 비슷한 점을 찾아내는 식이다. 여기에 작가 특유의 페미니즘적 메시지와 스릴러 코드가 합쳐지며 이야기의 층위는 한층 풍부해진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단편인 ‘한성유전’은 생물학에서는 남성 혹은 여성 어느 한쪽 성에만 전달되는 유전형질을 나타낸다. 이 형질을 모티브로 하여 이야기는 어느 명절날 가족의 남자들이 모두 죽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성들만 각종 일을 하고 음복은 남자만 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대가족의 명절 차례에서 벌어진 비극의 원인을 수사하며 사망자들이 쌓았던 악업, 유전에 대한 원한 등 사람이 사람을 죽일 악의를 품을 만한 동기들이 한꺼풀씩 벗겨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나는 가장 큰 원한은 결국 작품의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여운을 남긴다. 이후에도 개체발생과 계통발생을 예민한 소녀가 느끼는 인간의 환경파괴에 대한 단상으로 보여준다든지, 동기 감응을 낙태에 관한 호러물로 풀어나간다든지 하는 식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개인적 평가일수도 있지만, 한혜연 작가가 즐겨 쓰는 스릴러나 공포 코드와 그것을 연출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장편보다 단편 작품에 더 잘 어울린다. 하나씩 내막을 드러내는 전개방식이나 일견 명확하지 않은 관계를 반전효과처럼 캐내는 연출은 축적되어 곪고 얽히게 된 원한 자체를 보여주는 것에 효과적이다. 반면 작가의 다른 장편 작품인 [애총]에서 엿보이듯 그런 원한을 풀어내며 그 과정에서 캐릭터들이 성장을 하는 긴 호흡의 이야기에서는 충격효과 이상의 것을 끌어내지 못하곤 한다. 그렇기에 비슷한 테마로 묶이는 연작단편은 단편이라는 작가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장편이기에 가능한 묵직한 독서경험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단편들이 소개하는 파괴는 오랜 관계 속에 축적된 질투나 원한의 결과이며, 몇몇 작품에서는 아예 초자연적인 방식에 의해서라도 계속 특정한 공통점으로 엮이는 다수의 여러 사람을 거쳐 이어진다. 모두에게 퍼져나가고 싶다는 자기애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한 단편 [완전변태] 만 다소 겉돌 듯 다른 성향을 보일 뿐이다. 자매, 가족, 임의적 만남, 같은 동네, 인간 사회, 인간과 자연 등 사람들이 함께 엮여 있는 다양한 관계가 파괴적 원한이 퍼지기 위한 네트워크가 되어준다. 각 단편의 제목으로 삼은 생물학적 현상은 그런 섬뜩한 네트워크가 성립될 수 있을지도 모를 만큼 원래 세상에는 기묘한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하지만 그 기묘한 현상들이야말로 사람들이 누구나 품어보는 부정적 욕망을 드러내고, 그리고 그것에 혹하여 벌인 파괴적 행위가 결코 후환이 없을 리 없다는 인과응보의 기대(혹은 우려)를 표면화시키기 위한 가장 절묘한 소재가 된다. 기묘한 속성들을 통해서 오히려 가장 익숙하다 생각할 만한 이치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인간사회에서 충분히 기묘한 파괴적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기여하고 있다. 통신망으로 만난 이들의 동반자살은 누구나 사회면에서 여러 번 본 기억이 있을텐데, 그 처지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지극히 비논리적인 이상행동이다. 질투에 의한 존속살해, 일가족 몰살 등도 선정적으로 다루며 15분 동안 주목을 끌곤 하는 드물지 않은 사회 사건들이다. 한 동네에서 알고 보니 원한 많을 사연이 추정되는 시체가 발굴되는 것도, 환경호르몬이니 하는 식으로 인간이 자연생태계를 파괴한 것에 대해 반작용을 두려워하는 것도 친숙하되 언제든 접할만한 이야기들이다. 축적되는 부정적 감정, 그리고 그것이 온전히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러 관계를 타고 파괴로 이어지는 것은 어떻게 보자면 인간 사회의 기본적 속성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든 악행에 인과응보가 있기를 바라는 우리들의 마음이, 그런 속성이라도 존재하기를 바라며 생물학의 현상들을 끌어들이고 납득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상화된 여성차별 같은 광범위한 문화적 문제든 불법 낙태 같은 제도적 문제든 경쟁과 질투 같은 개별적 문제든, 이런 이야기의 소재로 다룰만한 현실의 문제들은 널려있다. 그런 현실에 대한 갑갑함과 일정 정도의 사회적 죄책감을 지닌 채로 책장을 덮을 때 독자는 서늘한 여운을 느끼게 된다. 생물의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란 그저 애정 어린 호기심에서 비롯될 수도 있지만, 그런 모습들을 이해하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려 할 때 더욱 의미가 있다. 픽션에서 작가적 상상으로 연관시킨 경우라고 할지라도, 섬뜩한 느낌이라는 공감이 생길 정도는 된다면 과학적 지침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들이 사람을 대하는 것에 대한 어렴풋한 영감은 받아도 될 듯하다.
제작 측면에서, 각 수록작품의 상징적 그림을 아이콘 삼아 편집한 깔끔한 챕터 구분과 겉표지는 생물도감 같은 차분함 혹은 차가움을 한껏 증폭시켜준다. 즉 독서경험의 일부로서 편집디자인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셈이다. 다만 같은 맥락에서, 말미에 수록된 작가후기 만화가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냥 작가와 생물학이라는 학문 자체의 인연만을 다루는 정도라서 여운을 깨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마치 각각의 노래인 개별 트랙들이 하나의 그룹으로 합쳐질 때 매력이 확실해지는, 잘 만든 음악 앨범을 연상시키는 이런 방식의 만화책 만들기가 앞으로도 더욱 흔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묘한 생물학 한혜연 글 그림/거북이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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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즉 현 발간호 게재중인 글): 에식스 카운티. 참 좋은데 반응이 조용한 작품은 기를 쓰고 c모가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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