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에 관하여 [싱크 15호]

!@#… 연재지면인 인문만화잡지 싱크의 휴간 소식에 맞추어 고른 소재. 인트로 부분의 내용은 이전에 구플에 적어놨던 메모의 요약판격인데, 사실은 요약이 아니라 본격 풀어서 발전시켜야할 부분이다.

 

‘지속’에 관하여

김낙호(만화연구가)

세상에서 무언가가 지속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늘 외부환경의 속 다른 무언가가 변하고 내부에서도 어떤 요인들이 바뀌는데, 오랫동안 무언가가 계속된다는 것은 그저 고정불변의 튼튼함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즈음 들어서 지속이라는 단어가 부쩍 많이 쓰이는 자연 생태적 개념만 생각해봐도, 고정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닫힌 계 안에 있는 양의 숫자와 늑대의 숫자, 풀의 생장 조건 등 생태계의 여러 요인들이 맞물리며, 늑대가 너무 많아지면 양이 줄어들고 늑대가 굶어 죽어 나름의 균형점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하나의 이상적 균형점에서 놀라운 합의가 일어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어나고 줄어들고 서로 억누르고 촉진한다. 그런 작용을 전제하고도 그 생태계가 망가지지 않는 것이 바로 ‘지속’이다.

당연하게도, 인간들의 사회도 비슷한 모습이 적지 않기에 지속, 또는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온갖 다른 분야에서도 지속가능한 경제, 지속가능한 시민 교육, 지속가능한 문화 창작 등, 때로는 느슨한 비유로서, 때로는 꽤 문자 그대로 적용되어 왔다. 그간 온갖 역사가들, 사회과학자들, 철학자들이 사회의 변동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왔는데, 그 중 루만이든 오스트롬이든 조직화와 지속성에 대해 특히 초점을 기울인 이들의 논의들을 거칠게 합쳐보면 이런 패턴이 있다. 처음에는 만인 대 만인의 혼란스러운 경쟁의 상태가 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조직화가 일어난다. 조직화를 바탕으로 힘의 우열이 강하게 갈리고 집단적 수탈이 일어난다. 그런데 수탈이 과도하여 사회 전체가 공멸할 위협이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공멸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협력적 평정점을 찾게 된다. 여기쯤에서 멈추면 해피 엔딩 같지만, 세상은 계속된다. 새로운 이해관계의 발생이든 규칙을 오남용한 새로운 권력집중의 발생이든, 평정을 이루는 규칙에 균열이 생긴다. 그래서 결국 다시 수탈의 상태가 만들어지고, 모순이 쌓여 공멸이 보일 때 다시 평정점을 모색하는 과정이 순환된다.

그런데 사회가 크고 복잡하게 연동될수록 필연적으로 규칙 균열과 수탈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가 커지고, 자칫하면 새 평정점을 찾기 전에 공멸해버리고 끝날 수도 있다. 혹은 거시적 사회체제는 결국 어떻게든 제자리를 찾지만, 그 안에 있는 나는 그동안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해버린다. 큰 흐름을 긍정하는 것과 세부 국면에서 저항적으로라도 대처하는 것 사이, 평정점으로 가기 위한 갈등을 인정하는 것과 갈등으로 인한 충격을 완충하는 것 사이에서 힘겨운 외줄타기를 하는 것이 바로 ‘지속’의 의미다.

지속이라는 과정의 큰 흐름과 과정에서의 크고 작은 피해들, 그 안에서 대처하는 모습들에 대해, 꼭 엄격하게 학문적으로만 접근할 필요는 없다. 큰 스케일의 상상력과 섬세한 시각으로 채워진 만화 작품들에서 기본적 모습들은 얻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미야자키 하야오)를 펼쳐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유명한 극장 애니메이션판이 종교적 구원의 비유로 가득하다면, 원작 만화는 대자연의 냉엄함, 어떻게든 살아야하는 인간의 의지 등이 주가 된다. ‘불의 7일’로 칭해지는 인간문명 멸망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고, 인류는 독으로 가득한 부해라는 숲으로 뒤덮인 세상에서 그나마 호흡이 가능한 구역을 중심을 살아남았으나, 다시금 서로 국가간 다툼과 종교적 믿음으로 갈라지며 분쟁을 거듭한다. 일종의 중립지대인 바람계곡의 주민인 나우시카가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오가며, 부해의 주인격인 거대생물 오무와 교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결국 모두가 화해하고 인류평화가 오며 나우시카가 새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일 리가 없다. 독으로 가득한 부해의 비밀은 다시 깨끗한 자연환경을 만들기 위한 해독작용이었는데, 문제는 그 새롤운 깨끗한 환경은 지금의 인류가 살아남을 수 없는 조건이다. 인류 문명이 적게나마 지속된 과정에서, 사실은 새 변화에 이미 적응한 상태였고 그것이 다시금 원래의 ‘깨끗함’으로 돌아가면 지금의 인류는 또다시 격변을 겪게 된다. 그 후에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는, 열린 엔딩으로 남겨놓을 따름이다.

지속에 관한 또다른 흥미로운 접근은 [샌드맨 연작](닐 게이먼 글, 다수 그림)에서 엿보인다. 이 작품에는 세계의 탄생과 함께 생겨나 영원히 지속되는 일곱 가지 개념들의 현신(‘영원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순서대로 생성된 운명, 죽음, 꿈, 파괴, 욕망, 절망, 분열이 그들이다. 그 중 꿈의 현신인 모피어스가 바로 아이들에게 잠을 오게 만든다고 일컫어지는 ‘샌드맨’인데, 꿈은 바로 모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양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각종 신화적 이야기들, 인간 세상의 초현실적 스릴러 등이 환상적으로 펼쳐진다. 그런데 영원자라는 이름이 드러내는 바와는 사뭇 역설적으로, 모피어스는 한 연작에서 무려 죽음을 맞이한다. 일련의 우연과 필연의 복잡한 거래에 의하여, 운명의 3여신이 꿈의 현신의 명줄을 가위로 끊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꿈을 죽일 수 있을까. 영원한 개념인데 어째서 죽을 수 있는가. 작가는 주인공의 죽음과 꿈이라는 개념의 지속을 절묘하게 공존시키는 방법을 제시한다. 죽은 것은 바로 꿈에 대한 하나의 ‘관점’인 것이다. 모피어스는 꿈의 현신으로서 영원자였지만, 그가 죽고 다른 존재가 꿈의 현신으로 새롭게 이어나간다. 하나의 관점은 사라지지만 다른 관점이 이어받아 영원한 개념이 계속 지속된다. 다만 달라졌을 뿐이다.

[에덴](엔도 히로키)은 전염병이 갑자기 세계적으로 발발하여 인류가 멸망할 위험 속에서, 밀폐 환경의 안전공간에서 살아남은 인류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두 아이들과 한 과학자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그러나 나중에 나와서 알고보니 인류는 살아남았고, 다만 전 인류의 10%가량이 죽고, 엄청난 수요 속에 사이버네틱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국제 관계가 적잖게 바뀌었다는 것 뿐이었다. 여전히 남미의 마약지대화와 아프리카의 내전은 마찬가지 또는 더 심각해졌으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와 수탈의 구조는 그대로다. 이런 세계에서 조금씩 밝혀지는 원래의 전염병의 전모는 바로, 모든 인간들의 정보 – 이 작품이 SF가 아니라 본격 판타지였다면 ‘영혼’에 해당될만한 – 를 모아내서 우주로 여행시키는 것이다. 멸망에 다다른 지구를 떠나가는 노아의 방주, 혹은 휴거의 모티브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멸망해갈 지구에 개별 인간들로 남아 서로에 대한 상처와 모순을 그대로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은 남게 된다.

좀 덜 환상적인 차원에서의 지속이라면, 사실 인류문명의 역사 그 자체만한 것이 없다. 이렇게 모순되고 욕심 많고 서로에게 잔인하며, 심지어 대량 살상에 있어서 대단히 효율적이기까지 한 인류라는 족속이, 용하게도 지금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이야기](래리 고닉)는 그 과정을 유려한 흐름으로 설명해내는 만화다. 무슨 일관된 유물론적 충돌이나 역사의 단계론 같은 것도 아니고, 특정 민족의 우월성을 중심으로 하는 영웅적 사관도 아니다. 이 작품에 있어서 인류문명의 역사는, 하다보니까 계속 굴러간 것이다. 세상에 다양한 문명들이 다양한 조건에서 어쨌든 서로 수탈하고 부딪히고 오해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다보니, 망할 뻔하기도 하고 여차저차 운 좋게 또 살아남기도 하고 그랬다. 싱거운 이야기 같지만, 그 과정이야말로 대단히 재미있는 이야기이자 궁극적 통찰이다.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였고 그게 상호작용했으며, 그 과정이 하나의 뚜렷한 거시적 흐름이라기보다는 여러 파편적 이해들의 총합이었다. 거대한 꿈을 가지고 무언가를 설계하는 역사의 의지를 상정하기보다, 눈 앞의 동기로 딱 자신들의 몫 만큼씩 움직여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따름이다. 이런 묘한 관조가 작품의 유머러스한 주조를 이뤄내며, 개별 에피소드들 속에서 인간 사회에서 지속의 조건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지속이란 어렵다. 혹은 지속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당초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져서, 과연 지속한 것 맞는지 의심스러워지는 자못 존재론적 이슈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원래의 역할과 목표를 계속 되새기며 새롭게 입지를 다지고 바꿔나가며 적응하고 발전하는 과정, 여러 행위자들과 평정점을 늘 새롭게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지속임을 상기할 때, 조금은 더 뚜렷하게 한걸음 한걸음을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
(인문 만화잡지 격월간 [싱크]. 이미지프레임 발간. 테마별 만화들을 소개하며 인문사회적 화두를 넌즈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칼럼.)

Copyleft 2012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부디 이것까지 같이 퍼가시길]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