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그렇듯 마음껏 무거운 지난 호 원고. 이전에 썼던 ‘편견을 논하는 만화들‘과 내용상 한 세트.
차별에 관하여
김낙호(만화연구가)
사회적 작용으로서 ‘차별’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냥 단순히 대우가 다른 것을 지칭하지 않는다. 먼저, 나는 사랑해주고 저 사람은 싫어한다 뭐 그런 것이 아닌 정치, 사회, 경제적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원래 동등한 기본 대우가 주어지도록 사회적 합의가 헌법이든 기타 형태든 이뤄진 것에 대한 부당한 대우 차이다. 부당하다는 것은, 평등하지 않은 대우의 기준이 “종교, 장애, 나이,신분, 학력, 이미 형(形)의 효력이 없어진 전과, 성별, 성적 지향, 인종, 신체 조건, 국적, 출신 지역, 이념 및 정견” 등일 때다(국가인권위법 기준). 이런 기준들은 크게 묶어보자면 사람이 자신에게 가능한 행동에 의해 뭘 어쩔 수 없는 조건이거나, 아니면 사회발전을 위해서라도 기본적 톨레랑스가 보장되어야 하는 정신적 요소들에 관한 것들이다. 한마디로 개인의 범위를 넘어서거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지극히 사회적인 당위에 의한 평등권이고, 그것을 무시할 때 바로 차별이라고 한다.
하지만 물론 규범이 아니라 현실의 상황들은 좀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업무 능력에 대한 차등화된 보상 지급 같은 것은 차별이 아니다. 그런데 업무 능력 평가를 학력 같은 요인들을 기반으로 해버린다면 차별이다. 그런데 학력이 더 높은 업무능력으로 나타나는 종류의 업무임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차별이 아니라 그냥 ‘자격’이 된다. 종교단체에서 종교를 바탕으로 구직자를 솎아낸다면, 일반 노무직이라면 차별이고 종교활동 관련 직에서는 차별이 아니게 된다.
그렇듯 판단은 종종 섬세한 문제라서, 하나의 절대적 기준에 기대며 절대론을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늘 치열하게 개별적으로 차별 여부를 따지고 기준을 재점검하되, 반드시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규범이어야만 겨우 차별을 줄여나갈 수 있다. 차별을 판단하기 위한 복잡 미묘함을 직시하기 위해 도움이 될 만화들을 몇 권 펼쳐보면서 생각을 가다듬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한쪽의 의지뿐이 아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이미 접해본 이들이라면 그리 낯선 생각이 아니겠지만, 어떤 사회적 기제는 권력을 쥐고 상대를 지배하는 자의 일방적인 의지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배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명시적 또는 암묵적 동의가 있기에 성립된다. 후자가 그런 상황을 좋아한다거나 주범이라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해서 기제가 유지되는 상황에 기여한다는 말이다. 차별 역시 종종 그렇다. 차별 대우를 하는 ‘갑’의 반대편에는, 차별대우를 받아들이는 ‘을’들의 모습이 있다.
우화집 [지금은 없는 이야기](최규석)은 개인의 미덕과 처세를 칭송하고 부추키는 여타 동화들과 달리, 사회적 허위와 집합적 이기심의 비극들을 꼬집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 중 한 에피소드인 ‘돼지의 왕’에는 지배자인 개들이 피지배자인 돼지들을 괴롭히고 살을 뜯어먹는다. 돼지들은 신에게 그 고통을 벗어나도록 빌었는데, 그들은 착취의 구조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뜯기면서도 미소를 짓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저항하지 않았으니 당신들은 동의했고 그러니까 차별 받는 것은 정당하다는 식의 억지에 동원되는 것은 지극히 곤란하다. 그보다는 차별이라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지 법으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을 가하는 자만 혼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간 차별이 유지된 사회관계 구석구석, 특히 차별 받아오며 그것을 내재화한 자들의 모습도 함께 훑어보며 청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차별을 없애기보다는 유능한 개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이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쉽다고 판단할 때에도 차별은 존속된다. [말콤엑스](앤드류 헬퍼)는 미국의 전투적 흑인 인권 운동가 말콤 엑스의 전기를 건조하고 강렬한 흑백의 필치로 그려낸다. 그런데 마틴 루터 킹의 평화주의와 대비되는 극렬한 투쟁을 선도한 그가, 사실은 젊은 나날에는 흑백 차별을 없애기보다는 자신이 흑인을 벗어나고자 하는 청년이었음을 보여준다. 비루한 하층 노동자 같은 일반적인 흑인의 모습이 아니라,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백인 여성과 춤추며 사귀는 젊고 잘 생긴 흑인이 되고자 하는 유행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일련의 사고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끼고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신이라는 개인이) 부자되세요 인생역전을 외칠 뿐 (우리들이 함께 처한) 열악한 노동대우라는 현재 상태를 함께 고치는 방향은 적극적으로 망각시키는 한국사회의 오늘날, 조금 다르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다층적이다
이런 지점이 중요한 것은 특히, 차별 받는 이들 사이에서 다시금 차별이 이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화 [에덴](엔도 히로키)은 기이한 전염병으로 세계질서가 뒤바뀌고 사이보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극단적 멸망도 유토피아도 아닌 비슷한 환경 속에서 빈부격차와 마약문제가 더 심각해지기만 한 근미래를 그려낸다. 인간이 정보체로서 하나가 되어 새로운 진화를 할 수 있을지 같은 철학적 화두의 다른 편에는, 인간들의 욕심에 대한 비관적이면서 현실적인 묘사들이 넘친다. 그 중 한 한국인 조연은 이렇게 말한다. “어린시절 나한테 김치냄새나는 녀석이라고 돌을 던진 건 모두 나처럼 가난한 집 애들이었어. 부잣집 아이들은 그 광경을 단지 웃으며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지.” 이렇듯, 약자를 밟는 건 또 다른 약자들이다. 약자이기에 더욱, 약자가 존재하는 부당한 구도에 분노할만한 여력이 없다.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더 약자를 찾아 괴롭힐 뿐이다. 차별 역시 그런 식이다. 동남아 출신 외국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욕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부자 기업가보다도, 바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 및 예비노동자들이다. 그쪽으로 에너지를 할애하는 만큼씩, 차별을 만드는 구조 자체에는 눈을 감게 되고 그것이 그 구조의 생명력을 연장시킨다.
그렇듯 차별은 특정한 사람들의 확고한 종특성이 아니라, 행위로 이뤄진 관계다. 하나의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차별을 받으면서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또 다른 이들을 차별할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관계와 사람을 규정지을 수 있는 특질들 만큼이나 같은 숫자의 차별이 존재할 수 있다.
[쥐](아트 스피글먼)은 차별 받는 것과 동시에 다른 것을 차별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던져놓는다. 2차대전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아버지 블라덱의 아우슈비츠 생존기를 취재하여 만화로 그려내는 만화인데, 취재의 내용과 취재의 과정을 함께 담아 복합적 느낌을 더욱 잘 살려내는 명작이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유태인에 대한 살인적 차별을 한 사회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사람인데도 오늘날 지나가는 흑인들에 대해서는 잠재적 도둑놈 취급을 한다. 차별의 비극을 겪었다고 해서 차별을 반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은 자신이 있는 것이고 자신의 차별은 그냥 자연스러운 판단인 것이다. 작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화도 내고 혼란스러워한다.
누구나 한다
그만큼, 차별은 너도 나도 누구나 하는 것이다. 그저 무엇에 대하여 차별하는가, 얼마나 그걸 스스로 인식하고 억제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치료가 아닌, 평생 발병만 억제하도록 관리해 나아갈 문제다. [S라인](꼬마비)은 어느날 갑자기 성행위를 한 모든 이들 사이에 빨간 줄이 보이게 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군상극이다. 특정 주인공의 모험을 쫒아가는 선형적 재미나 꽉찬 긴장감의 드라마는 사실상 전무하지만, 가장 큰 허위의 탈인 ‘성’이 까발려진 사회를 통해서 그 안에서 이뤄져온 온갖 차별들을 냉소적으로 펼쳐낸다.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 동정, 학력, 뭐 하나 일상화된 차별과 허위의식의 소재가 아닌 것이 없다. 차별이 본성이고 모든 것은 차별을 하기 위한 구실로 보일 지경이다.
이런 것은 차별의 복잡 미묘함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렇기에 차별의 해결은 인권에 대한 기본의식과 합리성에 대한 지향 등 두 가지 매우 어려운 사고 패턴을 동시에 장착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런 것을 사회적으로 다수가 장착해야 조금이나마 통제 가능하다. 어려운 일이니까, 다들 늘 조금씩 계속 훈련해둘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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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만화잡지 격월간 [싱크]. 이미지프레임 발간. 테마별 만화들을 소개하며 인문사회적 화두를 넌즈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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