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히어로, 사실은 민폐랍니다 [팝툰 19호]

!@#… 세태 중심으로 가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타이밍에 쓰는 칼럼에서 선거 이야기를 빼놓아서 되겠나. -_-; 물론 내용이야 계속 주장해왔던 바 대로, 제발 좀 당신 지갑 생각하면서 좀 찍으라는 것. 무척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 같은 사고방식으로 선거에 임하려는 뭇 자칭 ‘민주시민’들이, 마지막 며칠을 남겨두고서라도 좀 대세고 분노고 심판이고 자시고 하는 쌩쑈 말고, 그저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라는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판단을 해봤으면.

!@#… 참, 팝툰 홈페이지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새로 개편되어, 기사 전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따라서 이번 기사의 다듬어진 정식 버전은 여기로. 여튼 항상 그렇듯 캡콜닷넷 버전은 보통은 투고버전으로, 자체설정 홀드백 기간 이후 게재.

 

안티히어로, 사실은 민폐랍니다

김낙호(만화연구가)

너무나 도덕적으로 멋지고 능력도 출중한 히어로들의 향연이 지겨워지면, 장르문화의 팬들은 안티히어로를 찾곤 한다. 권선징악이라는 표어를 놓고 볼 때 히어로가 ‘권선’이라면, 안티 히어로가 바로 징악의 부분이다. 그다지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거나 수단이 옳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화끈하게 악을 징벌하는 것에만 신경 쓰기 때문에 히어로의 연장선상이자 반대말인 셈이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선’의 개념도 자꾸 어려워지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누구에게나 선한” 히어로를 상정하면 도대체 심심해진다(옵티머스 프라임의 일장연설을 들으며 비웃음을 터트린 바로 그런 사고방식들 말이다). 그래서 너무 과욕을 부리지 않고, 그냥 앞에 보이는 놈을 확실하게 패는 안티 히어로야말로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시대의 대세다. 도시의 뒷골목에서 경찰들이 어떻게 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을 단죄하는 『시티헌터』에 빠지든, 사채업자들을 잡아먹는 사채업자가 활약하는 『쩐의 전쟁』을 보든 말이다.

다만 선이 애매한 것과 마찬가지로 악이라는 것을 과연 어떻게 정의 내리느냐 역시 사실은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구나 보편적으로 나쁜 놈이라고 할 만한 확실한 미움을 받는 대상을 적으로 상정하곤 한다. 나름대로 사연 있고 사실 착한 면이 있는 상대라면 안티 히어로는 그냥 또 다른 악당에 불과해지니까. 예를 들자면, 아주 확실한 범죄자라면 된다. 양심의 가책에 벌벌 떠는 우발적 살인범이 아니라, 연쇄 살인마라든지 말이다. 혹은 실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악의 세력은 어떨까. 하지만 너무 멀리 갈 것 없이, ‘공감의 코드’만 확보해도 안티히어로가 처단해야할 악역이 만들어진다. 80년대의 대표적 안티히어로 오혜성이, 잘나고 개념 없기는 하지만 특별히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 마동탁을 죽일 듯이 괴롭히는 『공포의 외인구단』에 열광하던 것이 우리네들의 모습 아니던가. 닥치고 발전이라는 사회적 광풍 속에서 피로를 느끼던 그 시대의 대중들에게는, 마동탁으로 상징되는 “있는 것들”을 미워하는 것에 대한 공감의 코드가 확실히 성립되어 있던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라면 안티히어로만큼 민폐인 존재들이 또 어디 있을까. 논리와 이성, 사회적 규범과 약속 따위를 가볍게 건너뛰는 안티히어로들이 횡행하면, 사회는 아주 가뿐하게 망가진다. 안티히어로로서의 과감한 자유도가 높을수록, 주변의 부대 피해 역시 커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안티히어로에 대한 동경은 장르 오락물에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적용할 일이지, 현실 세계의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은 좀 자제해야 상식적인 명랑 세상이 온다.

어째서인지, 가장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이슈 가운데 하나인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정작 안티히어로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한 모습들이 종종 보인다. 현 정권을 마구 욕하며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공감의 코드’야 그렇다 치더라도, 현 정권과 그것이 (실제로는 어떻든 간에) 표방해온 방향성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일념과 힘이 있는 후보라면 탈세라는 중범죄를 저질렀든, 황당한 개발 공약을 내걸었든, 인권 차별적 발언을 밥 먹듯 하든 전혀 상관을 하지 않고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더라는 것이다. 정권을 뒤엎을 안티히어로에게 다른 룰은 필요 없다는 식의 과격한 애정 말이다. 장르 만화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아무리 안티히어로의 민폐가 주변에 펼쳐지더라도 책 페이지를 덮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고스란히 그 민폐가 계속된다. 그것도 하필이면 바로 나 자신에게 민폐다. 황당한 개발 사업에 세금이 낭비되는 것은 내 주머니에 대한 민폐며, 조세정의의 파괴 및 그것에 기반한 사회 공공성의 붕괴는 그 사회 속의 내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며, 인권 차별의 자세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내 건전한 정신을 좀먹는다.

현실에서 완전한 히어로를 찾는 것은 대체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안티 히어로를 동경하는 유치한 정신세계로 민주주의의 주인 노릇을 하면 무척 곤란한 세상이 펼쳐진다. 누구를 지지하고 표를 던지든 각자 개인의 소관이지만, 최소한 판단 기준 만큼은 안티 히어로적 가치보다는 기왕이면 건전한 상식을 따르는 것이 ‘현실적’인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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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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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thoughts on “안티히어로, 사실은 민폐랍니다 [팝툰 19호]

Comments


  1. 2007 대선이라는 만화에는 때려부수자는 적보다 더 악해 보이는 안티히어로가 등장하는군요. 그러니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가 나올리가 만무. ㄷㄷㄷ입니다.

  2. !@#… 노바님/ 처음에는 장르가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갈 수록 리얼리즘 호러가 되고 있죠.

    nomodem님/ 혹시 히어로즈라면, 볼륨2가 아닌 시즌2의 진정한 완결을 바라보며… 핫핫

  3. 정작 한나라당 싫어서 찍을 다른 후보들도 민폐거리이긴 마찬가지라는.. 이번 대선은 그냥 -_-;

  4. !@#… HHH님/ 싫어서 찍지 마시고, 그냥 가장 찍고 싶으신 후보를 찍으세요.12명이나 되니까, 민폐일지 아닐지 애초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후보들도 있을 정도로 선택권은 다양합니다.

  5. 안티히어로가 넘치는 한국의 정체는 Basin City였던 거군요…!
    …프랭크 밀러 그림체 이명박이 떠올라서 괴로워하는 중.

  6. !@#… 시바우치님/ 프랭크 밀러의 안티히어로들은 무조건 근육질이라서 무효.

  7. 지금 이 칼럼을 쓰신 분께서 말씀하신건 다크히어로입니다.

    구하지도 않을 생각이고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것을 파괴하길 원하는 이기적인 히어로가
    안티히어로입니다.

    캣우먼-자기 멋대로 살고 살다가 훔치고 살리고 욕하고. 아나키스트 적인 사람이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에 관심이 있을까요

    스폰-구하지도 못하고 그저 그 뒤에 결과만 처단하고 벌하고 자기 살기에 욕심이 크고 정작 세계를 살리는 일도 반대에 부딪혀 막히게 되는 인물이 정치적인 공작을 펼칠 칼럼 분의 ‘안티히어로’ 가 될 수 있을까요?

    코믹스에서 잠깐 테러리스트가 된 ‘다크’ 히어로 배트맨이 오히려 그 역활에 어울린다고 봅니다.

    말그대로 악의 원흉을 박살내고 복수를 갈망하는 복수자이니까요.

    영화가 나오고 부터 히어로들의 분관이 애매모호해지고 있지만

    고스트라이더가 한낱 액션 배우로 추락하고
    헬보이가 멍청한 근육질로 퇴락하고

    브이가 머저리가 되는 마당이라 한마디 날리고 갑니다.

  8. 영웅의 이야기에 정치가 끼어든 것은 시저를 죽인 일처럼 괴상한 겁니다.

    차라리 브이를 예로 드셨다면 참으로 좋았을 글이라 생각됩니다.

    “기억하라 11월 11일을”

  9. !@#… black님/ 안티히어로라는 말은 이해하고 계신 것보다, 그리고 제가 여기에서 칼럼의 목적을 위해서 동원한 것보다 원래 훨씬 넓은 문학 용어입니다 – ‘영웅’적(heroic) 가치가 여럿 빠져있는 ‘주인공'(hero)을 지칭하죠. 정의 내리신 방식의 ‘다크히어로’도 당연히 이 안에 포함됩니다. 다만 비평 용어로서 명확하게 정의되어 각종 레퍼런스로 등재된 쪽이 안티히어로라는 용어고, 제 글의 목적에 부합해서 썼습니다. // 영웅의 이야기에 정치에 끼어드는 것은 오히려 당연합니다. 가장 현실도피적인 슈퍼히어로물일수록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현실을 반영하곤 하죠.

  10. 잘 읽었습니다. 안티 히어로라는 게 뭔지, 어렴풋이 정의가 잡힐 것 같네요. 안티히어로든 악당이든, 절대로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진리’ 같은 것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아니다 싶은 방법으로 악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처단한다면, 결국에는 그들도 악이라고 생각되어질 수 있기 때문에요. 이거 뭐 제가 무슨 소리 지껄이는 건지-_-; 그저그저 무시해주세요ㅠㅠ;<

  11. !@#… Miro님/ 아니 뭐 그런 식으로 생각을 약간 더 복잡하게 만들어드리는 것이 딱 이 글의 취지인데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