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나믹 코리아, 또 한번 흔들리는구나. 이명박 후보 BBK 주가조작 경제사범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발표, 무혐의 잠정결론. 아니 검찰의 발표가 특별히 다이나믹하다는 것도 아니고, 주가조작 사건이 뭔가 대선 결과의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온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만약 이명박이 BBK의 실제 소유주로 드러났더라고 할지라도, 어차피 한국의 조폭보스류(즉 대부분 거대 조직들의 수장)들이 원래 쓰는 ‘내가 안시켰어, 난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보스일 뿐이야, 아래에서 알아서 한거야” 스킬 한방이면 유야무야 지나갔을테니까 – 법이나 당 규정에 의하여 물리적으로 후보사퇴를 시키지 않는 한.
다이나믹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유권자들 말이다. 발표 나오자마자 이명박 표가 무슨 6% 오르고 반대로 이회창 표가 7% 떨어졌단다(07.12.5. CBS 조사 기준). 이런 널뛰기가 과연 선거 2주일 앞두고 나올법한 수치인가. -_-; 이회창 이탈표가 고스란히 이명박에게 갔겠거니 하고 거칠게 해석하자면(물론 그렇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지만, 상식의 수준에서 추측하는 정도다), 반드시 소위 ‘보수’를 표방하는 주자가 승리하는 꼴을 보고 싶은데, 위장취업 탈세와 서울시 공금으로 마누라 호화 해외여행 보내는 것은 세이프지만 주가조작 사범은 좀 꺼림찍해할 정도의 윤리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략 7%라는 이야기 되겠다. 정말, 범상치 않게 미묘한 감각이라고 밖에는. 마치 신세계와 구세계의 중간 같은, 이베리아의 춤추는 여인 같은 미묘함이랄까.
그것을 나름대로 상쇄하면서 항상 동원되는 논리가 “도덕성은 좀 흠결이 있지만, 경제를 살리고 우리에게 일자리를 창출해줄 사람”이라는 것. 운하를 파면 토건 분야 비정규직 몸노동 자리는 확실히 늘기는 하겠다. 아니, 인권 신경 안써줘도 되는 불법입국 노동자들만 늘어날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도대체 희망만 있고 근거는 희박하기 짝이 없어서 굳이 언급하기도 귀찮다. 하지만 무한한 애정이 가져다주는 착시란 원래 위대한 법이다. 일종의 ‘박정희 착시™’랄까…
전제1: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
전제2: 그런데 나는 그를 지지하고 있다.
결론: 그러니까 경제만큼은 조낸 잘했을 것이다.
뭐 이런 공식. 게다가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의 사고를 원인 -> 결과라는 직선으로만 단순하게 파악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현대의 사회과학 이론들이라면 당연히 ‘역방향’과 ‘순환’을 강조한다. 즉, “결론: 경제만큼은 조낸 잘했을 것이다”가 다시 하나의 전제가 된다.
전제a: 경제만큼은 조낸 잘했을 것이다.
전제b: 그런데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
전제c: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를 지지하고 있다.
결론: 그러니까 도덕성의 흠결따위는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경제능력은 킹왕짱 우왕ㅋ굿ㅋ.
(이하 반복. 한 바퀴 돌 때마다 경제능력에 대한 상상력은 점점 더 상승한다)
42개 대학 학생회장들의 이명박 지지선언(아 물론 이것도 거짓 동원이 군데군데 섞여있는 전형적인 쌈마이 야매짓거리였지만, 지지자들에게는 전혀 타격이 되지 않았다) 발표문에 담긴 그 희망찬 문장들을 보면, 무슨 이명박 대통령이 되면 한국이 사회주의 체제로 바꿔서 국가차원으로 1인 1직장 시대를 열어주는 줄 알겠더라. 하기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달에 공연을 몇시간이나 한다고 그러냐” 같은 인식수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무려 대중문화계에 복지증대와 사회보장을 해줄 후보라며 지지선언을 한 연예인 단체도 있지. 그러면서 무려 현실적 선택 운운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점점 악화된, “초등학교 교육 붕괴 현상”이 느껴진다.
!@#… 여튼 뭐랄까. 그나마 한 십수년 닦아온 나름대로 합리적 민주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기틀을 아주 민주적이고 자발적으로 스스로 반납하려고 용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무려 노태우가 당선되었을 때 제정신인 사람들이 느꼈을 좌절감이 약간 머리속에 그려진다. 혹자들은 심심하면 김대중, 김영삼이 서로의 욕심을 버리지 않고 통합하지 않아서 그리 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capcold가 보기에 더 중요한 것은 무려 36.6%가 군사정권 살인독재자 겸 수천억 횡령범의 친한 공범을 아주 자발적으로 선출해줬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이 되더라도 나름대로 한국사회에 있어서는 보수쪽으로의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사회적 경험을 한번 해보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고 자조적 위안을 찾는 분들도 있겠지만, 민주화항쟁으로 세상을 뒤집은 다음에도 수구 정권, 그것도 무려 군사독재정권을 자기 손으로 연장시켜준 특별한 사회적 경험이 이미 있다니까. 그런 식의 후진 경험 또 해봐서 뭐하게.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전체 유권자 집단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지 뭐. 선거를 구도로 파악하고, 구도를 바탕으로 대세를 추구하며 눈치지원작전을 벌이는 것을 당당하게 자랑하는 꼴을 보면 참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자기 지갑에 도움 될 사람, 자기가 생각하는 사회를 구축해줄 사람에게 자기 한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뭐가 그리 치열하게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한답시고 매일 발표되는 여론조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지. 사표심리라는 골때리는 현상은 또 뭔가. 안될 사람에게 찍었다가 내 표가 그냥 무의미하게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따지자면, 어차피 당선자 말고는 어떤 박빙 승부라고 할지라도 나머지 모든 표가 다 ‘사표’다. 당선가능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지지에 따라서 찍는 것이 상식적이겠지만, 대세니 구도니 너무나 많은 이들이 머릿속에는 내년이면 정계에 입문하고 2012년에는 대통령 선거에 나갈 듯한 기세다.
!@#… 사실 그 모든 것이, 워낙 한국의 주류 정당 정치가 노골적인 이념형 정당도 이익집단형 정당도 아닌 ‘그냥’ 정당 위주로 굴러와서 그런 면이 있다 (하다못해 조선시대의 당파들도 이념적 대립각을 바탕에 깔았건만). 물론 어렴풋하게 한나라당은 친재벌 강남부자들이니 하는 식의 큰 맥락 정도는 있지만, 당의 진짜 ‘정체성’이라고 할만 한 것, 특히 정확히 누구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겠다고 확실하게 표방하는 곳들이 좀 필요하다는 말이다. 두루뭉실 전국정당 서민을 생각한다드니 어쩌고 하지 말고, 진짜 특정 계급/계층, 특정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이익단체스러운 정당이 서고 그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을 보고 싶다. 꼭 그게 더 행복한 사회나 평화로운 세상이 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지만, 적어도 예측가능하고 서로 정책적 합종연횡도 해가면서 철저하게 목적지향적, 정책개발 위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다.
!@#… 그런 의미에서, capcold의 경우는 애시당초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왔다. 알아요 알아. 수구꼴통NL, 즉 주사파들이 득실거리는 동네라는 것. 심지어 그것들 때문에 무려 권영길 후보가 3수로 올라와서 모든 당선의 희망이고 자시고를 처절하게 밟아버렸다는 것. 방향은 옳지만 예산확보라든지 하는 구체적 방법론은 철딱서니 없는 정책들로 가끔 뻘타치기도 하고. 사실상의 모체인 민노총과의 관계 때문에 정작 사회 전체를 보는 정책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을 때도 적지 않고. 아름다운 진보니 뭐니를 입에 달고 살지만, 입만 산 구닥다리 사고방식이 넘치고.
그런데 하필이면 얍삽하고 현실주의/실용주의자의 극치인 capcold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좀 모순 아닌가. 그것도 창당 당시부터 무려 당원노릇을 하고 있다면 말이다. 혹시 좌파적 진보의 허울이라도 쓰고 싶다면 사회민주당이 더 낫지 않겠나 – 어차피 마이너하기라면 대동소이한데.
사실은 간단하고 쉬운 이유가 있다. 바로, 노동자가 정치세력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노조의 구성이 아름다운 사회를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권리보장과 균형을 위해서 필요하듯이 말이다. 노동자라는 구체적인 계층/집단/정체성을 놓고, 그들의 이권을 보장하는 정치적 참여를 한다는 것. 물론 노동자도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범주가 모호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서민 – 즉 그냥 소득수준, 문화생활 등에서의 하위성으로 포괄하는 것은 솔직히 쓸데없는 말장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정의 그 자체에 따라서, 서민의 생활은 나아질 수가 없다… 생활이 나아지면 서민이 아니게 된다). 하나의 이익층, 계급, 계층이 되는 것으로서의 그 낡디 낡은 노동자 개념이 결국 여전히 유효하다. 서민이라는 ‘수준’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행위’로 규정이 되니까. 구체적 지향층에 대한 이익이나 정책을 가지고 처음부터 정당을 설립하는 것, 노조 없는 회사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듯 이왕 정치판에도 노조 같은 역할을 할 플레이어를 넣는 것.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이익을 챙기는 곳, 이익을 중심 프레임으로 내세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인지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지만(특히 그놈의 꼴통 주사파들),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 정계에서 상당 지분을 차지하는 이익단체로 자리잡는 시스템이 성립하는 것 만큼은 현재로서는 확실한 진보다.
음. 정작, 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과는 좀 다른 것 같다고? 뭐 그렇다. 왜 그리 종합선물세트적인 ‘진보’ 개념에 매달리는지 참 짜증날 지경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실제 정책 제안들은 노동자 이익에 대한 것들이 더 많다는 것에서, 여전히 노조와의 연계가 강하다 못해 끌려다닐 정도라는 것에서 나름의 희망을 본다. 즉 capcold는 민주노동당을 그냥 자신이 생각하는 ‘역할’에 기반해서 지지하는 케이스다. 지속과 발전이 가능한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이니까. 사회과학을 하는 현실주의자로서, 사회의 구성과 운영을 통한 발전가능성을 지지하니까 나오는 입장이다. 개인적 이익이라면, 이것을 지지함으로써 사회과학도로서의 정체성에서 플러스. 하지만 종교도 아닌데 굳이 전파할 생각도 사실 별로 없다. 이런 식의 논리에 동의하면 당연히 이런 귀결로 오겠지 뭘 무려 감정적 호소를 하고 설득을 하겠나. 심지어 capcold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찍는다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기에 하는 것도 아니다. 미니멈 득표율 넘겨서 기탁금을 돌려받아서 당 재정 좀 챙기고 상근자들에게 월급이나 제대로 좀 지급해주었으면 하는 희망때문이랄까.
!@#… 뭐 생각은 그렇지만, 여전히 미국에 있으니까 투표 못한다. 해외 부재자 투표 관련 법안이 올해 또 좌절되었으니. 내 실로 겸손한 영향력을 성수기 비행기표와 여러 일에 걸친 시간 투자와 대비해서 계산해볼 때, 역시 견적이 안나와요. 뭐 그래도 대선 이야기를 하는 대세를 타서, 이런 식으로 ‘정치적 입장’을 정하는 방식들에 대한 넋두리를 살짝 꺼낼 수 있는 나름대로 절호의 기회 아니겠는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식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대한 반감에도 부딪힐 수 있지만(항상 정치적인 이야기로 촘촘히 수놓는 칼럼인데, 대선시즌인데 이명박이라는 키워드가 나오니까 아무래도 확 튀었나보다… 반성반성. 좀 더 교묘하고 집요해질 – 즉 설득력을 단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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