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내가 책임질 자유 [팝툰 17호]

!@#… 팝툰의 대대적 지면 개편에 발맞추기 위해, 만화프리즘 칼럼 다음 회부터는 하드한 시사 이야기보다는 좀 더 두루뭉실한 세태 이야기 위주로 살짝 방향전환을 할 예정인데(그래봤자…-_-), 그런 의미에서 ‘구’ 컨셉의 마지막회. 별로 의식한 것도 아닌데, 결국 정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OTL

내가 말하고 내가 책임질 자유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들이라면, 꽤 정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물론 정치 이야기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치 평론가가 아니고 모든 대화의 장소가 공개토론회가 아닌 만큼 근거 없는 낭설이나 패배주의적 단순화가 넘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다가 가끔 그 정치 구도에 자신이 속해있는 입장을 실제로 자신의 신분인 서민이나 노동자가 아니라, 무슨 국가를 걱정하는 고위 정치인이나 강남 사장사모님과 동일시하는 이상한 패턴도 있다. 하지만 전제해야 할 것은, 어떤 수준에서든지 간에 정치에 관한 관심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 무관심보다는 백배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관심과 소통이 있으면 인식이나 현실 자체의 문제점들을 수정해나갈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들이 없으면 세상은 멍청하고 고립된 개인 망상의 나락으로 급격하게 빨려 들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민주주의를 표방한 사회라면 항상 필요한 것은 우선 정치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형태와 내용의 발언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장치를 마련해서 문제가 생길 때 책임을 지우는 구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현행 선거법은 정반대의 접근을 하고 있다. 우선 선거와 관련된 모든 발언을 금지시킨 후, 특정 주체의 특정 형태의 발언만을 ‘언론보도’와 ‘선거운동’의 형식으로 허용하는 식이다. 그 결과, 개개인들이 오히려 수많은 정보와 의견을 교류하며 더욱 깊고 활발하게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선거철에 오히려 더 정치 논의를 공개적인 장에서 아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미디어의 발달로 정치에 관한 개개인의 담론 교류가 포장마차 토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나, 열린 공론장을 포기하고 다시 포장마차로 돌아가야 하는 애매한 세태인 것이다.

불과 몇 년전의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를 기억해보자. 탄핵을 막은 것 자체도 중요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후 이어진 대선에서 탄핵에 반대했던 여론을 실제 투표결과로서 정치권에 강제시킨 행위다. 당시 네티즌들의 큰 호응을 받았던 아마추어 만화 가운데 ‘병렬연결’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전기회로의 직렬/병렬연결에 비유해서 정치권의 오판을 신랄하고 재미있게 비판한 만화였다. 혹은 그 전에 프로만화가들이 주축이 되었던 ‘탄핵반대 릴레이 만화’ 역시 대선에서 심판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아끼지 않았다. 당연히 이런 발언들은 현행 선거법 위반이었고, ‘병렬연결’의 경우는 허위사실 유포 명목으로 조사 후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탄핵이라는 당대의 정치적 사건과 대선이라는 평가 기회의 연결고리를 효과적으로 홍보해주었고, 정작 정치 당사자들이 가끔 하는 저열한 수사보다 훨씬 품위 있게 어떤 정치적 입장을 시민들과 소통해주었다. 만약 정말로 한국의 민주주의 담론 문화의 발전을 바란다면 더욱 장려해도 부족할 판이다. “누구나 훌륭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훌륭한 정치적 발언은 누구에게서라도 나올 수 있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의 대사에서 살짝 변형). 그것을 알기에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고, 표현의 자유 보장이 항상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다.

물론 심지어 선관위도 수년째 선거기간 중 개인들의 온라인상의 정치적 의사표명을 허용해야 한다고 제기하는 등, 별로 새로운 문제제기는 아니다. 그저, 아직까지 그 문제를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위해서 뭉개고 넘어가는 세력들을 견제하지 못하는 것이 한심할 뿐이다. 부정이 난무하는 과열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지는 좋지만, 닥치고 원천봉쇄보다는 문제가 생길 때 사건 단위로 판단하고 충돌하고 합의하고 해결하는 정도의 세련됨을 목표로 하는 것은 어떨까. 사실 한국의 민주주의, 그 정도 시도를 해볼 수준은 도달했다. 물론 국회를 계속 보고 있노라면 별로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게 평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세상 일반은 그보다는 조금은 더 나아졌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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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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