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난방의 매력 – 외천루 [기획회의 354호]

!@#… 왜 볼 때보다 보고난 뒤에 더 재밌었는지, 참 설명하기 쉽지 않은 작품.

 

중구난방의 매력 – [외천루]

김낙호(만화연구가)

단편집이라는 형식은 한 작가의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가는 상상력을 즐기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산만하다는 단점이 있다. 각 단편 작품 사이의 품질 차이는 들쑥날쑥하기 십상이고, 작가가 단편이라는 비교적 생산량의 압박에서 덜 부담스러운 형식에 고무되어 실험적 도전에 나섰다가 그렇게 되곤 한다. 물론 이런 문제는, 자기 색이 뚜렷한 작가라면 작가의 평소 작품 분위기가, 컨셉트 단편 모음이면 일관된 소재나 주제가 구심점을 제공해주어 단점 부분을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다. 아니면 독립된 단편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큰 이야기의 일부라서, 조각들을 합쳐보면 큰 그림이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매사가 그렇듯,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하기가 쉽다.

연작 단편집인 [외천루](이시구로 마사카즈 / 대원CI)는, 그런 방법들을 한껏 활용했음에도 여전히 산만한 책이다. 일반적 기준으로 잘라 말하자면, 거의 중구난방이라고 해도 좋다. 작가의 장기인 일상적 풍경과 시시한 미스테리는 구현이 되었다가 정반대의 진지함으로 말려들었다가 변덕이 넘친다. 단편마다 등장하는 외천루라는 동네 건물은 공통 소재로 어떤 의미가 있을 듯하면서도 중심에 들어오지 않는다. 각각의 단편들이 결국 어느 정도 이어지지만, 각각의 조각들이 워낙 분위기가 다른데 그렇다고 인간군상의 다양함에 주목하는 내용도 아니라서, 결국 그림을 완성해냈다는 만족감도 적다.

분위기의 일관성도 유려한 흐름도 미비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흥미롭다. 의미심장하게 시작했으나 계속 온갖 것들이 따로 노는 중구난방 난장판에서, 어쩌다보니 거의 끝에 도달할 때 즈음 하나의 큰 이야기가 결과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어떤 면에서는, 마치 관객과 평단에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일각에서는 해당 감독의 어떤 총체적 정수로 평가받곤 하는 영화 [스티브 지소우의 해저 생활]을 연상시킨다.

[외천루]의 첫 번째 단편은 에로 잡지를 읽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소년 아리오, 그의 친구들, 누나 키리에 등이 등장하여 어떻게 몰래 잡지를 공수해올 것인가, 누가 잡지를 건드렸는가에 관한 시시한 두뇌싸움과 추리극이 경쾌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두 번째 단편은, 주인공 캐릭터 일부가 이어지는데 갑자기 우주형사 TV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다. 촬영장 안에서의 수사극 해프닝인지 진짜로 우주형사 SF활극인지 모호하게 오가다가 다시금 엉뚱하게 시시한 결말로 향한다. 그런데 그 다음 단편들은 같은 세계관 위에서 계속 펼쳐지는 것 같은데 인간형 로봇 도우미가 등장하며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다시 말해, 현대를 배경으로 한 듯한 생활 코미디로 시작해서, 히어로물, 코믹 수사극, 정체성 문제를 담아내는 로봇 SF물, 나아가 인간 소외에 대한 사회파에 가까운 주제 의식까지 한 꺼풀씩 겹쳐진다. 그런데 이렇게 파편적으로 퍼진 이야기가, 마지막에 가서는 합쳐지며 무거운 결말로 향한다.

작품이 진행되며 점차 이 작품이 펼쳐지는 무대의 SF적 세계관이 명확해지는데,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로봇이 있고, 아직 기술적으로 미완성 단계인 인공생명체 개념이 있고, 기억의 내용을 통한 정체성 구성과 혼란이라는 요소가 있다. 인성을 지닌 로봇의 권리에 관한 사회적 인식 또한 관건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다르게 설명하자면, 그간 축적된 SF물에서 이미 활용할 만큼 활용한 설정들이라서 그 세계관 자체로 어떤 특출난 주제 의식을 전달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경우다. 또한 시각적 스타일 역시 기이한 미래 세계의 모습을 만들어내지도, 지나치게 일상적 풍경이라서 오히려 아련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집중하지도 않는다. 결국 독자에게 전달되어야할 매력의 알맹이는 이야기 자체에 있는데, 그 이야기가 일견 사방팔방으로 흩어진다.

그런데 간단히 내용을 설명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각 이야기들이 따로 퍼지는 종잡을 수 없음이, 이 작품에 있어서는 오히려 매력이다. 모든 요소들이 톱니바퀴 같이 맞물리는 방식의 천재성이 아니라, 헐렁하게 각각 돌아가는데 알고 보니 같은 기계의 다른 일부였고 어느 틈에 보니 모두 일렬로 맞아 떨어져있는 순간이 있었다는 식의 재미다. 작가의 출세작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에서 갈고 닦은 바 있는 특유의 헐렁한 미스테리, 느긋하고 시시함을 예찬하는 정서가, 그 정반대 지점에 놓인 진지한 범죄, 정체성 혼란, 애절한 인연 같은 것들과 아무렇게나 결합한다. 치밀한 결합과는 거리가 멀지만, 흩어져 있는 상태에서 대충 연결이 되어버린다.

그냥 난장판이 아니라 기묘하게 합쳐지는 난장판으로 만들어내는 일등공신은, 결국 2화짜리 마지막 단편이다. 그간 가벼운 일상 코미디로 지나친 내용도, SF적 상상력과 진지한 여운의 남은 내용도, 한 자리에 모여서 큰 파국을 향해 간다. 외천루라는 건물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가족의 진실, 인간의 경계, 정체성의 진실 같은 것들이 마구 뒤집히고 사람들의 생사가 한꺼번에 갈린다. 큰 틀에서 보자면 마치 잔혹한 추리소설처럼(작가의 탐정물에 대한 깊은 애착은, 소제목이나 여러 상황 등에 담긴 각종 오마쥬에서 역력하게 드러난다) 책의 마지막 단원에서 모든 것이 폭로되면서 동시에 파국이 오는 방식과 비슷하지만, 그 앞 내용들이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복선이었다는 자각을 거의 주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다.

즉 서서히 긴장이 쌓이며 터지는 것이 아닌, 갑자기 터졌는데 알고 보니 앞의 내용이 긴장을 쌓았어야할만한 요소들로 다시 읽힐 수도 있겠다 싶은 이상한 깨달음이 오는 것이다. 통쾌한 것은 딱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심심하거나 불쾌하지도 않은, 기묘한 뒷통수다. 읽을 때의 풍부한 느낌보다, 책장을 덮은 후의 뒷맛이 훨씬 강하게 남는다. 교훈적 주제가 울림을 주었다는 식이 아니라, 지금 내가 무엇을 본 것이었지 하는 질문이 맴돈다.

압도적으로 인상적인 시각적 표현으로 무장했거나 확실한 매력을 지닌 주제를 던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도 이 작품이 일본에서 발표된 2011년에 ‘오레만’이든 ‘오토나패미’든 각종 만화상의 순위권에 오른 것은, 이러한 뒷맛 덕분이 아닐까 한다. 단편집 특유의 실험적 도전이 꼭 대단한 전위성이나 가득 압축된 절묘함에서 나와야 할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것 일부, 잘 하는 것 일부, 한번쯤 해보고 싶었던 것 일부, 그리고 어떻게든 수습해서 합쳐 넣는 기발함 한 줌으로 [외천루]가 만들어졌듯 말이다.

외천루
이시구로 마사카즈 지음/미우(대원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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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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