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깜빡하고 서평의 제목을 달아놓지 않아서 우월한 편집진이 대신 붙여주셨음. 감사!
웰메이드 블록버스터 – 나이트런: 파더스데이
김낙호(만화연구가)
어떤 작품이 대형 오락물로서 큰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종종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줄거리의 극적 롤러코스터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있고, 등장 캐릭터의 매력이 공감과 동경을 사며 작품을 견인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장 스케일 크게 독자들을 작품의 장기적이며 적극적인 팬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세계관으로 빨아들일 때다. 물론 세계관을 통핸 매혹이란, 매력적 캐릭터와 좋은 줄거리도 갖춘 상태에서만 작동하는 기제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냥 재미있는 SF영화와 ‘스타워즈’를 구분짓는 것, 흥미로운 상상력을 담은 소설과 ‘반지의 제왕’을 갈라놓는 것은 세계관이다. 굳이 심오한 상징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장르오락의 관행들로 가득차있다 할지라도, 흥미로운 구도로 잘 갖춰놓은 세계관 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면 팬들은 단지 이야기를 소비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세계를 함께 가꾸어나가게 된다. 비단 팬픽션 같은 구체적 형태가 아닌 경우라도, 몰입의 폭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최근 장르오락만화 가운데 스케일 큰 재미있는 세계관 위에 매력적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펼치는 작품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네이버에 연재중인 [나이트런]이다. 그리고 최근, 그 중 하나의 에피소드격인 [나이트런 외전 – 파더스데이](김성민 / 전2권 / 길찾기)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인류가 각종 행성계로 활동범위를 넓힌 먼 미래, 언젠가부터 괴수라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이 인류 정착지들을 습격한다. 그들과 대등하게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초인적 능력을 타고난 인간들이 훈련을 받아 특수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검을 휘둘러야 하는데, 통칭 ‘기사’라고 불린다. [파더스데이]는 괴수가 습격하여 기지를 만들고 있기에 사람들은 피난을 나가는 어느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강인한 성격의 현지 소녀와, 이 행성에 막 도착했는데 오랜 기간 우주여행을 하느라 기억이 듬성듬성한 꼬마 소년이 겪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터전을 지키려는 인간과 그들을 습격하는 괴수의 승부가 오가는 사이, 주인공들 각각의 인생 사연들이 맞물리고 서로를 이해해나가게 된다. 그리고 몇가지 SF적 반전, 그리고 우주 함대전과 검술 승부를 넘나드는 강력한 액션 시퀀스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이트런 시리즈는 SF를 표방한 검술 환타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과 시간 배경 및 사람들의 생활과 사회상은 과학적 상상력을 차용하되, 실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주요 요소는 다분히 동양 무협 특유의 과장된 초인적 필살기술로 점철된 검술 대결을 통한 결투 승부다. 그렇기에 초광속 운동 속 시간의 상대적 흐름, 여러 행성을 워프로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 로봇병기 등 여러 SF 요소들이 바탕이 되면서도 괴수를 물리치는 기사단이라는 기본줄거리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필살기로 휘두르는 검술로 승부를 보도록 하기 위해, 상위 괴수는 원거리의 빔 공격을 막을 수 있다든지 하는 SF설정들이 추가되어 있다(건담 시리즈에서 인간 모양 로봇들이 우주에서 서로 총과 칼로 싸운다는 내용을 만들기 위해 가상의 입자와 관련 물리학을 만들어야 했던 것과 비슷하다). 이 작품이 다시금 증명해주는 바는, 대중서사 작품의 완성도에서 클리셰(‘누구나 익숙한 뻔한 소재, 전개방식’)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효과적으로 조합하고 일관되게 밀어붙이며 강력하게 증폭하면 바로 그것이 장르적 쾌감이 되어준다. 외계에서 온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수수께끼의 적은 수도 없이 우려낸 것이며, 특히 [건버스터]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인다. 사람들이 도약을 빙자하여 날아다니다시피 하고 기공을 빔처럼 발사하는 것은 무협물의 기본이자 ‘드래곤볼’ 이래 주류소년만화의 핵심코드다. 기사라는 특수한 능력자들이 전투의 향방을 좌우한다는 것은 [파이브스타스토리즈], 아니 그 이전에 스타워즈 시리즈의 기본 뼈대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충분히 잘 섞어내고 자체적으로 정교한 규칙을 묶어내며 매력적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을 때, 익숙함은 식상함의 굴레가 아니라 몰입의 조건이 된다. 그렇듯 이 작품은 기사들의 특수한 검인 AB소드들에게 각각의 번호와 개성을 부여하고, 기사단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설정, 괴수의 분류, 특징에 대한 단서와 복선들을 세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익숙하기에 입문하기 쉽지만, 더 많이 파고들수록 매력적인 세계관이 되어주는 것이다.
물론 세계관이 독자들을 매료시키려면 설정집이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 작품 속 세계의 존폐를 위협하는 그럴듯한 위기, 그것에 대처하는 공감 가능한 캐릭터들의 싸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펼쳐지는 방식 만큼은 독자의 재미 신경을 자극해야 한다. [파더스 데이]는 괴수와 인류의 결투, 사람들끼리의 인연이라는 비교적 평범한 내용 안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더욱 전개 방식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허세에 가까울 정도로 비장한 정서의 대사로 분위기를 잡는 순간과 헐렁한 농담성 대화로 티격태격하는 대목을 능란하게 교차시키며 이야기 전개 전반에 ‘쿨한’ 느낌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스타워즈로 치자면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한솔로인 격이고, 무협으로 치자면 소오강호의 영호충으로 인류가 가득한 식이다. 그리고 함대전이든 격투든 카툰화법 특유의 잔상효과를 최대한 활용한 화려한 동작과 큰 스케일의 액션으로 풀어낸다. 비장함과 쿨함, 화려한 액션이 디테일 풍부하고 스케일 큰 세계관과 합쳐지며 (들어간 비용이나 산업적 파급력 측면이 아니라, 내용의 스타일 측면으로) 웰메이드 블록버스터가 탄생한 셈이다. 그 결과 팬들로 하여금 커뮤니티화하도록 하여 세계관에 동참하게 만들 정도의 흡입력을 보여준 한국산 장르오락물이라는 드문 위업을 이뤄냈다. ‘작품성’ 평가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흔히 바라는 삶에 대한 통찰이나 문명의 성찰 같은 묵직한 주제에 딱히 신경 쓰는 작품이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의 신뢰나 희망 같은 감성적 소재도 상당히 잘 다뤄내고 있는 편이다.
[파더스데이] 단행본은 웹툰 연재 후 출간 만화책 단행본의 또 하나의 모범사례로 꼽을 수 있다. 우선, 정제되지 않은 스케치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많았던 연재 원고 전체를 완전히 재작업하여 선을 다듬고 메카닉과 배경을 재디자인했다. 책 형식에 맞도록 일부 칸을 재편집하고 새로운 연출의 칸을 넣은 것은 물론, 말미에 세계관에 대한 해설자료를 30페이지 가량이나 추가했다. 고전 SF영화 포스터와 밀리터리 설정집 표지 중간 즈음에 있는 느낌의 표지그림에서 연상할 수 있는 바 그대로인 책이 만들어진 셈이다. 반가운 완성도의 이런 출판 방식이 앞으로 다른 작품들의 경우에도 더 보편적인 관행이 되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나이트런 파더스데이 – 상 김성민 지음/이미지프레임(길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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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즉 현 발간호 게재중인 글): 프롬 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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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메이드 블록버스터 – 나이트런: 파더스데이 [기획회의 283호]: !@#… 깜빡하고 서평의 제목을 달아놓지 않아서 우월한 편집진이 대신 붙여주셨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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