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은 것을 담아내기 위한, 무의미의 공간 [책내서평 / 해변의 거리]

!@#… 최근 한국어판이 출간된 [해변의 거리] 책내 해설. 뽐뿌용으로 일반 공개.

 

가장 많은 것을 담아내기 위한, 무의미의 공간
김낙호(만화연구가)

해변의 거리
사사키 마키 지음, 김난주 옮김/북스토리

‘넌센스’라는 말은 흔히 바보스럽거나 못된 장난 같은 것을 지칭하는 쪽으로 쓰이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좀 더 건조하다. 바로 일관된 의미나 구조가 결여되어, 이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논리적 인과에 의한 전개, 보편적 상징 활용의 지속 같은 것들과 반대말이다. 비슷하게 쓰이곤 하는 ‘부조리’가 합리적 논리에 어긋남을 칭한다면, 넌센스는 의미 자체가 없는 상태라서 그런 판별조차 가능하지 않다. 황당한 개그물이라는 의미가 아닌 바로 이런 뜻의 넌센스를 만화로 구현하여 일본 청년문화의 중요한 시각적 심상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한 작가가 바로 사사키 마키다.

모든 반문화, 지하문화에 대한 이해가 그렇듯, 사사키 마키의 넌센스 만화에 대해서도 시대적 배경을 슬쩍 감안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의 일본은 한쪽으로는 경제성장, 한쪽으로는 안보투쟁 등으로 대표되는 노동자와 학생들의 반정권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합리적 소통이 아니라 여러 기성 권력들의 이권 다툼으로 세상이 지배되는 모습에 대한 환멸은, 의미에 대한 냉소를 보여주는 방향으로 흘러 70년대에 이르러서는 점차 넌센스라는 키워드로 굳어나갔다. 세상에 대한 순수한 무관심이 아니라,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는 세상을 역설적으로 한탄하든 조롱하든 하는 접근법인 셈이다. 그리고 사사키 마키의 만화들은, 의미심장한 시각적 상징을 가득 모아내되 그것을 통해 펼치는 뚜렷한 이야기나 메시지라는 의미는 적극적으로 박탈해버리는 솜씨로 그 계열의 대가가 되었다.

사사키 마키가 구사하는 화풍은 다양한데, 보편적인 명랑만화풍부터 서유럽의 고전그림책, 실사풍에 더 가까운 그림이나 컬러링 실험 포함된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얼굴을 그려낸 만화가 로버트 크럼의 그림체에 대한 오마쥬마저 상당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동원하여, 쓰게 요시하루의 극화풍 부조리를 가볍게 넘어설 정도로 모든 논리를 적극적으로 해체한다. 그가 좋아했다는 스기우라 시게루의 분방함마저 마저 뛰어넘을 정도로, 매 칸 안에 담아내는 구성요소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진다. 만화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선으로 만들어진 그림을 담은 칸의 모음이라는 시각 요소 그 자체에 집중한다.

그의 개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은, 칸과 칸의 연속적 흐름이 만들어내는 사건 전개의 인과를 의도적으로 제거하고, 여러 종류의 시각적 모티브들을 자유롭게 흩뿌리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모티브들은 서로 하나의 줄거리로 맞물리는 일 없이 반복과 점층을 이루며 계속 충돌한다. 전달되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심상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불협과 리듬감이다. 자주 등장하는 그런 심상의 요소는 과밀한 도시, 미국대중문화 아이콘, 전쟁, 산업만능 물신화, 비인격화된 인간들 같은 일본 현대 사회에 대한 냉소가 많다.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또 다른 요소들로 반전의식, 자유로운 젊은이 문화 등이 등장한다. 다만 후자가 전자와 싸워 이기는 훈계가 아니라, 파편적으로 흩뿌려지며 섞여 있는 세상의 풍경을 그려낼 따름이다.

단편 [해변의 거리]에 이런 측면들이 잘 나타난다. 합창단 지휘자의 윤곽과 ‘해변의 거리에서 우리는 친구였나’라는 노랫말이 들린다. 도시를 살아가는 온갖 사람들의 허망하거나 퇴폐적인 골목 풍경이 있고, 미국문물의 과장된 화려함이 있고, 그 사이로 달려가는 벌거벗은 아기들이라는 모티브가 반복된다. 한편에서는 코끼리가 욱일기를 뒤로 한 채, 사슬을 묶고 어디론가 계속 걸어간다. 그 사이를 전쟁과 파괴의 이미지가 수놓고, 서커스와 도시와 박쥐의 모습이 스며든다. 점점 이미지들의 반복과 변주가 급박해지고, 좌절의 모습들이 점층된다. 그리고 다시 처음의 ‘해변의 거리에서 우리는 친구였나’라는 노랫말과 지휘자의 모습이 보이며 끝난다.

비유컨데 당대 대안만화의 주류였던 극화운동이 리얼리즘 소설에 가까웠다면, 사사키 마키의 작품은 분절된 구문의 가사들을 가득 나열하여 하나의 감성을 완성하는 싸이키델릭 락에 가까웠던 셈이다. 사건과 설명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로서 표현되어야 할 의미를 비워낸 대신, 그 자리에 온갖 분방한 풍경의 파편들을 그 이상으로 빽빽하게 채워 넣는다. 그런데 그 결과, 마치 우리 세상의 어떤 일면들을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삼상이 어렴풋이 합쳐져 전달된다. 그의 일러스트를 단행본 표지로 늘 애용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리자면, “표현해야만 하는 바가 없을 때, 사람은 무엇을 표현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되어주는 만화가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사사키 마키가 펼치는 세계는 한 시대의 대표적 청년문화의 얼굴이 되어갔다.

이 책은 사사키 마키가 60년대 <가로>, 70년대 <아사히저널> 등의 지면에서 발표한 작품들의 모음이다. 물론 이런 당대 맥락을 너무 자세히 감안하지는 않더라도, 정치와 사회에 대한 혼란과 실망, 대중문화의 범람 속에서 의미라는 것 자체를 냉소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정서는 지금 이곳에서도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확실하게 질주한 작품들, 좀 덜 질주했기에 부조리하기는 해도 이야기 비슷한 것이 읽힐 듯 말듯 한 작품들이 연작물부터 한 칸 짜리 일러스트까지 다양하게 섞여있다.

하지만 더 자세하게 논리를 가정하며 분류를 하려는 마음은, 단편 [분류학입문] 을 읽고 나서 사라졌다. 자유롭게 달리는 사람을 수많은 말풍선들이 붙잡고 가두어 결국 곤충 표본 보고서로 만들어버리는, 수록작 가운데 가장 의미 전달의 배제에 실패하며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작품 말이다. 기계적으로 분류를 하는 순간 원래의 생기를 잃은 박제가 되어버릴 것이라는 호소만큼은, 자유로운 연상에 맡기기보다는 훨씬 뚜렷하게 전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전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사키 마키가 그려내는 발랄함과 좌절, 냉소와 기대가 교차하는 풍경들의 무의미하되 가장 많은 것이 담긴 모자이크의 매혹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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