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장은 뽑기 어려워야 좋다 [한겨레 칼럼 1312109]

!@#… 게재본은 여기로.

 

언론사장은 뽑기 어려워야 좋다

김낙호(미디어연구가)

얼마 전에, 손석희의 ‘뉴스9’의 통진당 정당 해산심판 청구 보도가 여권이 사실상 지배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공정성 시비 공격을 받으며 화제에 올랐다. 시비의 내용이야 워낙 민망한 수준이니 차치하더라도, 문제 많은 입법 과정 속에서 탄생했으며 더욱 문제 많은 저널리즘 품질을 보여주었던 보수 일간지 기반 종편 채널임에도 보도 내용들이 손석희 체제 이전과 매우 달라졌다는 것은 손쉽게 체감할 수 있다. 그의 종편행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든 긍정적이든, 변화의 동력을 정치 처신에서 찾든 새로운 시장층 개척에서 찾든, 결과 자체는 뚜렷하다.

직원 전체가 물갈이된 것도 아닌 만큼, 변화된 모습은 결국 사장이 수행하는 역할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그런 뉴스룸들이 개별적인 전문기자들이 함께 활동하는 연대가 아니라, 일사불란한 위계의 회사라는 속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강력한 사장이 무언가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또 다른 성향의 다음 사장이 들어와서 망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저널리즘의 품질과 사회적 역할을 유일가치로 추구하는, 전문적이며 누구도 쉽게 뒤집을 수 없는 탄탄한 지배구조 장치들을 만드는 것이다(단어 몇 개만 바꾸면 사회 곳곳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특히 공영방송 뉴스 최고책임자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얽혀있는 이해관계가 한 두 가지도 아니고, 그 수준에 당장 도달하기란 어렵다. 그렇기에 첫 걸음마는, 우선 공영방송의 사장 선임이라도 까다롭게 하는 것이다. 당장 좋은 사람을 내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까다로운 선임 과정을 장착하는 것이다. 어떤 정치세력도 반대할 명분이 희박하지만 동시에 어느 쪽의 구미도 맞춰주지 않는 인물에 합의해 나아가야 한다. 누구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겠다는 듯 몸을 낮추고 지낼 사람 역시 배제해야 한다. 뉴스룸 내부 성원들의 신망, 저널리즘 윤리를 경시하지 않은 경력 등도 공개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이 충족되기 전에 서둘러 낙하산 인사를 꽂는다면, 얼마든지 ‘언론장악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워도 좋다.

이런 절차의 중요성에 비한다면, 적합한 사람이 바로 보이지 않아 아우성이고 사장 공백이 장기화된다거나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수적인 문제다. 엉터리 사장이 자기 이해 관계로 마음껏 재단하는 뉴스가 양산되는 것이 더 문제일지, 사장석이 비어있어서 의결이 좀 비효율적인 것이 더 문제일지, 수익 극대화가 아닌 사회적 기능 수행이 기준이라면 오래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판단이 아니다.

그러나 현 정권의 공영방송 지배체제 개선 공약에 의거하여 출범했고 열렬한 무관심 속에서 장대하게 짧은 일정을 거친 여야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 하다.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할 때 2/3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하여 여야 합의를 필수조건으로 만드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자는 안조차, 새누리당 의원들에 의하여 거부당하여 헛돌았다. 결국 앞으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계속 논의하겠다 말하고 특위는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엉터리 보도를 비웃는 것도, 공영방송의 추락한 뉴스 품질을 한탄하는 것도,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어떤 현실이 왜곡되는 모습에 분개하는 것도 모두 중요한 문제제기며 동기 유발이다. 그런데 그 동기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가 묻는다면, 당장 담당 국회의원들을 괴롭혀서 향후 의정활동에서 언론 사장 선임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도록 하시라고 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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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칼럼 [2030 잠금해제] 필진 로테이션. 개인적으로는, 굵은 함의를 지녔되 망각되기 쉬운 사안을 살짝 발랄하게(…뭐 이왕 이런 코너로 배치받았으니) 다시 담론판에 꺼내놓는 방식을 추구하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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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언론사장은 뽑기 어려워야 좋다 [한겨레 칼럼 131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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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리실/ 그 동네에 있으면서 대공감을 안하면 이상하겠지(핫핫) // 아무래도 좀 더 인기 있는 코너의 좀 더 인기 있는 글쟁이들이 함께 떠들어줘야할 이야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