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을 공유하는 꿈 – 『혜성을 닮은 방』[기획회의 227호]

!@#… 명심할 것은, 이 책은 ‘조금씩’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아니 뭐, 명심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지만. ‘재미있다’는 것과는 좀 다른 방향에서 매력 있는 작품.

 

혼잣말을 공유하는 꿈 – 『혜성을 닮은 방』

김낙호(만화연구가)

꿈은 거대한 생각의 덩어리다. 꿈을 꾸지 않는 동안에 축적된 수많은 느낌과 생각들이, 꿈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하나의 세계 속에 비선형적으로 펼쳐진다. 어떤 경우 구체적인 줄거리를 따라가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그저 심상과 단편적 언어가 맥락 없이 떠다니기도 한다. 현실적 희망과 비현실적 망상이 하나의 세계에서 교차하며,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묶는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혼잣말이라는 것이다. 꿈 속에서 벌어지는 타인과의 교류 역시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지고 재해석된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자신의 다른 일면들과의 대화다. 그렇기에 꿈은 독자적 언어이자, 일종의 메아리와도 같다. 만약 그 메아리를 붙잡아 기록하고 타인의 혼잣말을 같이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궁극의 소통이 될 것이다. 어느 수준까지 의식과 이성의 도구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혜성이 있는 방』(김한민 / 세미콜론 / 전3권)은 상념과 시각적 성찬이 가득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기본 속성 자체가 마치 꿈같은 작품이다. 비단 꿈을 꾸면서 타인의 꿈 속 세계 같은 것을 기록하는 소재 때문이 아니라, 작품의 전반적 느낌이 모두 꿈이라는 키워드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이 작품의 세계관의 중심에는 ‘책’이 있다. 한 사람이 하고 다니는 무수한 혼잣말과 스쳐가는 생각들은 그의 모든 것이며, 한 권의 책이 된다. 각자의 혼잣말인 에코어를 기록한 에코북을 모아놓은 것은 바로 에코도서관이고, 아즈하라는 나라에 있다. 책은 종이를 평평하게 묶어놓은 묶음이 아니라, 페이지들이 마치 털처럼 나선형으로 삐져나온 생물체의 모습에 가깝다. 앞뒤가 없고 문자가 아니라 내용 자체가 담긴 그 기록매체는 읽을 수도, 혹은 심지어 차로 끓여서 흡수할 수도 있다. 생각의 균형이 깨지면 책의 모양도 이그러지고, 혼잣말이 흐려지면 책도 사라진다.

작품의 줄거리는 ‘누나’라는 이가 꿈을 꾸면서, 그 꿈 속에서 일자리를 얻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일이란, 무이라는 소년의 행적을 꿈으로 공유하며 기록하는 것이다. 그 액자 구조의 이야기 속 주인공인 무이는 상담사인 어머니 대신 답장을 작성하는 일을 하며 수많은 이들의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혼잣말을 접하며 자란다. 그는 에코도서관을 애용하며 사실 그곳의 차기 도서관장으로 낙점되어 있다. 무이는 ‘혜성’이라고 부르는 네모난 틀 속에서 살면서 세상을 돌아다니고, 동반자로 화분 속 식물 ‘소우주’를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에코 도서관의 쇠락, 성장 지상주의의 세계 오렌지로커스의 접근, 이 세계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반란자들, 그리고 그렇듯 균형이 흔들리는 과정에서 소우주의 행방불명과 혜성의 이상 현상 등이 벌어지며 무이는 어쩔 수 없이 모험 아닌 모험을 나서게 된다. 어떻게 보자면 기본 얼개는 『어린 왕자』를 닮은 구석이 있는데, 자신만의 작은 공간에 머물며 식물 동료와 함께 여러 각자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공간을 방문하며 무언가를 겪는 구조가 그렇다. 또는 현실사회를 있는 그대로 혹은 알아보기 편하게 비유하기보다는 개념을 상징으로 치환하여 완전히 다른 느낌의 상상력으로 재창조하는 방식은 미하엘 엔데의 초현실적 단편들이나 남미 환상문학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혜성을 닮은 방』은 그런 작품들보다 더욱 혼잣말의 느낌이 강하며 비선형적인 구조 덕분에, 전혀 다른 독서경험을 준다.

사실 줄거리로 놓고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하기도 힘들뿐더러, 마치 책 많이 읽고 혼잣말 많이 하는 몽상 청년의 백일몽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상당 부분 그런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은 그 분방한 구조를 통해서 단순한 꿈 세계 기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확실한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기 때문이다. 바로 소통한다는 것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다만 그 질문은 사회학적인 의의로서 접근하는 것도, 개념과 논리로 접근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말로 혼잣말의 공유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이다. 혼잣말을 기록하는 에코북은 책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 자체의 방식과 닮았고, 의미있는 것 무의미한 것들이 구분 없이 섞인 혼란에 대한 이야기는 작품의 성격 그 자체이자 작품 속의 주요 화두로도 주어진다. 현상도 희망도 모두 꿈이며, 읽히는 것과 잊혀지는 것들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 중 어떤 하나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나머지는 다시 사라질 뿐이다. 작품 속의 화두를 빌려오자면, 기억의 고리가 만들어져서 타인에게 모든 메시지가 전달이 되면 심지어 그 메신저마저 사라진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혼잣말, 완전한 공유를 희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훔쳐보길 원하는 애매한 영역을 있는 그대로의 느낌으로 펼쳐 보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작가라는 존재가 작품을 책으로 낸다는 행위 그 자체인 것이다.

『혜성을 닮은 방』을 즐겁게 읽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몽롱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식과 논리의 차원에서 줄거리를 찾아가며 읽기에는, 의도적으로 모든 것의 경계선 사이에서 위태롭게 자극하는 이 작품이 삼키기 어렵다. 꿈과 꿈 속의 꿈의 경계, 일반적인 칸 만화와 에세이의 경계, 자신과 타인의 경계, 혜성이라는 방의 안과 바깥의 경계가 의도적으로 세워지고 또 쉽게 무너진다. 말풍선조차 없이, 서로 나눌 수 있는 혼잣말로 이야기하는 무이는 에코어와 일상어의 경계마저 흐리게 한다. 이런 작품 전개를 따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로 경계를 오가는 독서방식이다. 순간의 단상에 집중하며 작품의 흐름 자체를 비선형적으로 감상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다양한 사색의 모험 끝에 최종적으로 관계의 단절이자 구성체인 혜성이라는 공간과 무이라는 인격체가 하나임을 알게 되고 에코도서관의 차기 관장으로 들어간다는 하나의 덩어리만 기억한다면, 나머지는 느슨하게 연결되지만 기본적으로 흩어진 상념들이다. 때로 그 상념들은 오늘날의 한국 현실을 풍자할 때도 있고,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혼자만의 상상을 있는 그대로 벌여놓기도 한다. 명상과 컨셉의 흐름, 즉 줄거리가 아니라 컨셉에 대한 공감의 과정으로 읽을 때 이 작품의 매력이 드러난다. 앞서 연상했던 『어린왕자』의 에코어 버전인 셈이다.

『혜성을 닮은 방』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날것의 다양한 상념들이 오가는 깊이 있는 화려함과 함께, 다양한 시각적 표현의 매력이다. 『유리피데스에게』등 전작보다 진일보한 필력은 물론, 만화 칸의 은유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틀’)을 연상시키는 방인 ‘혜성’ 역시 뛰어난 시각적 개념화다. 반면에 작품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명확한 이야기 만화를 선호하는 현재의 독자들과 소통하는 것에는 서투른 것으로 판명될 여지가 높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아직 혼잣말을 기록하고 교류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꿈 속에서 만큼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뭐, 꼭 그래야만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읽기가 다소 불편하지만 한없이 매력적인 감성을 나눠주는 작품도 있는 쪽이 역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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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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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을 닮은 방 1
김한민 지음/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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