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적으로는 책내 서평의 확장형.
그래도 꿈은 꾸는 쪽이 낫다 – 『무한동력』
김낙호(만화연구가)
자신이 꿈꾸는 바를 실제로 이룬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꿈과 현실의 격차는, 지나치게 멀어도 가까워도 곤란하다. 꿈과 현실이 지나치게 가까우면 추구의 대상으로서 꿈을 꿀 이유가 없어진다. 반면 너무 멀면 꿈과 현실의 격차가 고스란히 아쉬움과 스트레스로 남는다. 그렇기에 현실 속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삶은 꿈과 현실의 거리를 적당히 조절하는 과정의 반복이다. 실제의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혹은 꿈을 더 키우거나 줄이면서 말이다. 꿈은 고작 낭만이 아니다. 실제와 공명하며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다. 하지만 눈 앞의 모습에만 몰두한 나머지 꿈이라는 측면을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그렇게 동력원을 잃은 상태에서 그저 관성으로만 살아가다가 그 관성이 다할 때 허무하게 정지하는 삶도 있다. 사회가 안정망보다는 근시안적인 격투 경기장이 될수록, 점점 더 늘어난다.
제목의 강렬한 SF스릴러적 향취와 달리, 『무한동력』(주호민/상상공방)은 21세기 초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일자리 잡고 사회활동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치열한 엘리트들의 두뇌경쟁이 아니라, 오늘날 20대들이 그렇게 살아가듯 적당히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자리를 잡고자 하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군대 제대 후 복학하며 졸업반으로 일자리 알아보는 주변 어디서나 쉽게 볼 법한 평범한 남자, 선재가 있다. 목표는 금융권이다. 금융에 무슨 목표나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연봉이 높은 ‘번듯한 직장’이기 때문이다. 그가 취직에 매진하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새로 하숙을 들어온 집에는, 너무나 주변 어디서나 쉽게 볼 법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있다. 대학 전공과 관계 없이 그러고 있으며, 행정인턴 기회를 잡아봤다가 그것이 사실상 쭉정이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그만둔다. 그리고 비슷한 연령대지만 네일아트점에서 직원으로 이미 사회생활 중인 솔이 있다. 가게는 친구가 만든 작은 자영업점이고, 물론 장사는 잘 되지 않는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일자리 상황들이라서, 그 현실성에 기가 막힐 지경이다. 적당히 희화화된 드라마 속 백수들도 아니고, 사실은 엄청난 재능을 지녔기에 언제라도 업계 최고봉으로 뛰어오를 잠재력을 지닌 천재들도 아니다. 이들은 신랄하고 파멸적인 고민으로 자학하여 독자를 즐겁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평범하기에 지극히 인간적인 동시대 젊은이들의 하루하루가 이어질 뿐이다.
하기야 오늘날 한국의 사회 현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뭔가 소재거리가 될 만도 하다. 일자리 수요공급이 어긋나고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취직 경쟁은 심해지고, 그렇다고 사회 안정망은 미진하기 짝이 없고 경쟁구도로 부채질하는 사회분위기는 더 없이 각박하기까지 하다. 그 한복판에 던져진 젊은 세대는 인생의 목표에 대한 혼란을 정리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런데 『무한동력』은 갑갑한 무력감에 짓눌리는 모습을 잔인하게 해부하기보다,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나름대로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준다. 이런 자세가 웹 연재만화 특유의 실시간적 공감대라는 요소와 만나자, 작품이 구사하는 동시대/동세대적 호흡은 놀라운 수준으로 올라섰다.
『무한동력』은 그냥 다들 사는 낮은 곳의 평범한 인간사를 바라보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가득하며, 동시대 젊은 세대들과 함께하는 마음이 가득 넘쳐나는 잔잔한 이야기다. 그림체나 연출마저 강렬한 필력이나 끝없이 과장된 귀여움으로 압도하기보다는, 퍽 잔잔하다. 강렬한 상황이나 꼬인 인간관계가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모습에서 진국으로 우러나는 감칠맛과 현실 속의 일상적인 장벽들을 섞어 넣어 만들어진 소소함의 현실성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치가 완성되는 것은 바로 그 현실성 속에 작은 환타지가 가미되는 순간이다. 녹록치 않은 현실 생활의 제약 속에서도 하숙집 주인아저씨가 묵묵하게 개발하고 있는 무한동력 엔진이 바로 그것이다. 달동네의 윤곽 사이에 우뚝 솟은 기이하되 묘하게 정감어린 이상한 고물탑의 이미지 속에 『무한동력』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현실을 벗어난 별세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 살아가고 있지만 약간 더 불가능해 보이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도록 만드는 ‘꿈’이다. 그 꿈에는 사람들과의 사연이 담겨있고, 작은 소망과 기억들이 엮여 있다. 게다가 꿈을 꾸는 마음은 은연중에 전염되기까지 한다. 적어도 주인집 아저씨에게서 하숙생 주인공들에게 전염되었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에게도 전염당할 것을 넌지시 권유한다. 가족들 살림을 고생시키면서도, 하지만 결국 그들의 이해를 얻어내고서 묵묵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무한동력 엔진을 만드는 아저씨가 먹고살자고 취직하려 한다는 주인공 선재에게 담담하게 이야기한 꿈에 관한 지론은 연재 당시 많은 독자들과 강력하게 공명했다.
“그런데 꿈이 밥을 주지는 않잖아요.”
“지금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 아니야.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무한동력』은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식의 순진한 낭만에 빠지기에는 현실의 갑갑함을 너무나 뚜렷하게 직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꿈을 꾸는 마음이 있는 것이 좋겠다고 살짝 말을 꺼낸다. 그리고 아주 약간씩 드러나는 정도지만 사실은 굉장히 근본적으로, 꿈의 힘을 얻은 주인공들에게 행복감을 부여한다.
최근의 잘 기획된 웹 연재만화 단행본들이 그렇듯, 이번에 출시된 책 역시 원래의 연재물을 칸 단위로 재편집한 방식이다. 페이지당 2*4를 기본 구도로 해서 칸들을 빼곡하게 배치했는데, 세부 디테일보다는 보편적 전달성에서 장점을 발휘하는 느슨한 그림체이기에 그다지 빽빽해 보이지 않는다. 일일단막극 같던 연재 방식에서 좀 더 여러 회를 모아 챕터를 만드는 방식으로 바꾸었고 소제목까지 달려있기에 “일상을 실시간으로 엿보는 듯한” 맛은 아쉽게도 줄어들었지만, 책으로서의 모양새는 잘 가꿔진 셈이다.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계급적 현실에 대한 각성과 저항의지는 오늘날 이 사회의 젊은 성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그런 상황을 그대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꿈을 꾸는 마음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현실도피로서의 꿈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무한동력으로서의 꿈 말이다. 한 손에 『88만원세대』를 들었다면, 다른 손에 『무한동력』을 들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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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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