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처럼 살지 않기 위해 – 쓸개 [기획회의 382호]

!@#… 모범으로 삼기 좋은 시퀀스가 다량 출몰하는, 연출력의 힘.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 위해 – [쓸개]

김낙호(만화연구가)

출처가 의심스럽지만 귀중한 어떤 물건을 둘러싼, 법의 테두리를 살짝 넘어버리는 사람들이 벌이는 배신의 소용돌이라는 공식은 범죄스릴러의 단골이다. 물건이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어떤 가치 앞에,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삶 따위는 부수적인 방해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런 소재를 다루는 작품이 단순히 말초적 오락 요소의 덩어리에 머물기보다는 좀 더 세상사에 대한 시선을 담아내고자 할 때는, 결국 이야기는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과연 그 물건은 그렇게까지 해야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정말로 타인을 희생시키고 욕망을 불태워서 얻는 것의 성과는 무엇인가.

[쓸개](강형규 / 네오카툰 / 전 3권)은 가볍게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마치 현대판 허생전이라도 될 듯 시작한다. 건장한 청년인 쓸개는 20년도 넘게, 즉 꼬마 시절부터 평생동안 허름하고 외진 식당 건물 안에서만 살았다. 어쩌다가 찾아오는 손님도 거의 직접 마주치지 않고, 학교나 기타 사회생활도 없이, 그저 화면과 책으로 세상사에 대한 지식을 혼자 쌓아두었을 뿐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를 그렇게 세상과 단절시킨 것은, 밀입국한 조선족 어머니에게 태어나고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무적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날, 식당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수명이 다하면서, 사라진 어머니가 남겨두고 엄청난 양의 금괴를 남겨두고 갔다고 유언을 남긴다.

금괴라는 물건은 누구나 알 수 있듯 굉장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적절한 처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꼬리를 밟히지 않고 금괴를 돈으로 바꾸는 것은 제련이든 밀수든 권력자에게 넘기는 것이든 상당한 연줄이나 기술, 수완 등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부모 세대가 대부분 고이 묻어두고 있었던 금을, 세상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백지 상태의 청년 쓸개가 세상에 들고 나온다. 함께 움직이는 동료는 어릴 때 알고 지냈던 이복 여동생 한 명 뿐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금을 노리던 친아버지, 조선족 밀항업자 등 여러 사람들이 서로 꼬여들며 협력과 배신의 공방전을 거듭하게 된다.

이해관계의 엇갈림 속에, 쓸개와 아버지 길학수의 패거리, 그리고 주변인물들이 펼치는 공방전은 매우 뛰어난 긴장감을 선사한다. 쓸개는 대인 접촉 경험이 적어서 사회적 대처에 어눌하다. 하지만 그간 혼자 공부한 지식과 단련한 신체, 그리고 세상을 처음 둘러보는 신생아처럼 면밀한 관찰력을 발휘하며 순간의 판단과 장기적 계획들을 하나씩 실현시킨다. 그 반대편에는 산전수전 다 겪고 온갖 사회적 연줄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있는 길학수가 있다. 서로의 다음 행보를 예상하기, 폭력적 대치, 또 다른 사람들의 의외의 개입 등이 쉴 틈없는 페이스로 이어진다. 이것을 표현하는 긴장감 넘치는 연출 또한 일품인데, 조금씩 찢어지는 실밥을 교차한다든지, 두 개의 다른 시간이나 공간의 사건들 사이를 대사나 연상 같은 것을 징검다리 삼아서 슬쩍 전환하는 솜씨 등이 대단하다. 캐릭터의 양감이 뛰어나고 표정이 섬세한 그림체, 매 장면마다 꽉찬 구도도 이 작품이 오로지 이야기 솜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준다.

금괴를 둘러싸고 가장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사람은 쓸개와 길학수다. 둘 다 금의 금전적 가치를 추구하는 듯 시작하지만, 양쪽 모두 정말 추구하는 바는 다른 곳에 있다. 쓸개에게 있어서 금괴는 그간 자신이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와야 했던 사실의 근원에 놓인 무엇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 모두가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는가, 그리고 사라진 어머니는 어떻게 된 것인가 등 자신의 삶에 대한 모든 핵심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금괴와 맞물려있다. 그가 금괴를 온당하게 무언가로 바꾸겠다는 다짐은 처음에는 그저 현금으로 바꾼다는 것으로 들리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자기 자신과 주변을 되찾는 탐험임이 드러난다.

성공적인 무역상이자 중견 폭력배 길학수에게 금괴는 또 다른 의미다. 원래 그는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고 성실하게 일하며 인망도 쌓았던 포목 노동자였다. 하지만 큰 돈을 미끼로 연변 조선족과 연계된 금괴 밀수 사업에 끼어들게 되고, 금을 보고 만지게 되면서 점점 금 자체에 욕망을 불태우게 된다. 그리고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쓸개의 어머니가 아기와 금괴를 빼돌려 달아난 이래로, 한쪽으로는 사업을 번성시키고 한쪽으로는 계속 금괴를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그가 금을 쫒는 이유가 수백억원에 달하는 금전적 가치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쪽 역시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단지 돈이 문제라면 그렇게까지 집착할 이유가 성립되지 않음이 드러난다. 그에게도 역시 그 금괴는 자신의 지난 삶의 어떤 부분을 응축한, 해결하지 못한 응어리인 것이다. 그것이 삶의 실패의 순간을 한스러워하는 자존심인지, 폭주하는 탐욕인지, 그런 탐욕으로 다른 모든 소중한 것들을 팽개쳤던 자신에 대한 환멸인지 뚜렷하게 선을 그을 수가 없게 된다.

금괴를 금전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대답으로 추구하던 두 사람은 후반부에야 결국 직접 대면하게 된다. 그 전부터, 작품은 두 사람의 동선이나 행동을 계속 마치 [대부2]를 연상시킬 정도로 미묘하게 병렬시켜놓는다. 필요에 따라서 사람들을 보듬거나 이용하는 모습이든 폭력의 재능이든 사람의 미세한 표정에서 탐욕을 읽어내는 모습이든, 두 사람이 동원하는 거침없는 수법은 생각보다 닮아있다. 그리고 대면을 하면서부터, 두 사람은 수시로 서로에게서 서로의 모습을 본다. 쓸개가 무심결에 바라본 경멸해 마지않는 그 범죄자는 바로 나이든 자신의 얼굴이고, 길학수가 내려다보는 반항적인 천둥벌거숭이는 젊은날 자신의 얼굴이다. 갑자기 부자의 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닮고 싶지 않은, 혹은 덮어두고 싶은 어떤 모습이 거울처럼 비춰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금괴를 통해서 두 사람은 각자가 간절히 원하던 바를 채울 수 있는 것인가. 쓸개의 경우는 금괴 자체가 아니라 금괴를 둘러싼 사연을 알게 되는 것이 해소의 과정이며, 금괴가 더 이상 자기 주변의 삶에 끼어들지 않도록 떼어내는 것이 최종 목표지가 된다. 하지만 길학수의 경우는 금괴를 마침내 확보한다고 한들 무엇을 이뤄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저 확보하는 것 자체에 모든 것을 걸었고, 그 관성을 계속 실행해낼 뿐이다. 비슷한 대상을 통해서 목표를 실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새로 세상에 나와 무언가를 시도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로서의 쓸개와 그저 평생의 관성을 더욱 가열차게 추구하는 기성 세대로서의 길학수의 차이다. 길학수가 맞이하는 최후, 그리고 쓸개가 열어내는 새로운 시작의 차이는 바로 그 부분에서 생겨난다.

쓸개 1~3 세트 – 전3권
강형규 지음/네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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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기계장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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