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르게 살고 있는가 – 인천상륙작전 [기획회의 375호]

!@#… 국방태세에 만전을 가하자, 김일성 나쁜놈 말고도 지금 되새겨야할 교훈이 넘치는 어떤 전쟁에 관하여.

 

지금은 다르게 살고 있는가 – [인천상륙작전]

김낙호(만화연구가)

전쟁이라는 극적인 소재를 서사물로 다루고자 한다면, 한 가지 초점은 전황을 다루는 것이다. 누가 어떤 기발한 전략으로 진격했고 또 어떻게 방어했는지 전개하는 것이 중심에 놓인다. 혹은 이데올로기의 충돌을 다루는 초점도 있다. 전쟁을 하고 있는 세력에 속한 이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충돌하며 누가 옳고 그른가, 또는 어떻게 해서 둘 다 틀렸는가 자웅을 가리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다. 전쟁영웅담을 하려면 전황에 좀 더 강세를, 드라마적 긴장을 내세우려면 세계관 충돌에 강세를 둔다.

하지만 이런 흔한 두 가지 초점보다 훨씬 다루기 어렵고 자칫하면 재미도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가장 뼈저린 초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전쟁이라는 조건에서, 그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다루는 것이다. 이 초점을 강조할 때, 작품은 전쟁의 파괴적 모순을 직면시킨다. 인간애든 탐욕이든 사람들의 온갖 날 것의 모습들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전쟁에 도달하고 전쟁이 전개되는 과정이 그저 지도자 한 두 사람의 기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적 모순들이 불붙은 것임을 끄집어낸다.

[인천상륙작전](윤태호 / 한겨레출판사)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며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최대한 강세를 찍은 작품이다. 전쟁의 전황 부분은 다큐멘터리식으로 배경설명을 하고 넘어가는 내용일 따름이며, 세계관의 충돌로 대립하는 주체들은 넘치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이치의 대결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아니다. 전체를 압도하는 하나의 초점은 바로 일제 해방에서 미군정 도래와 한국전쟁 발발, 인천상륙작전과 평양 탈환 등의 극적인 역사의 순간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적응하고 살아가는 방식의 묘사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안상근, 안상배 형제다. 작품이 시작하는 일제 시대 말기, 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온 안상근은 공부에 재능이 있고 도덕주의자지만 생활력이 부족한 샌님이다. 그에게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억척스럽게 일하는 아내가 있고, 코흘리개 아들 철구가 있다. 반면 동생 안상배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적극적으로 출세를 노리며 동네 유지 영감의 폭력적 해결사 노릇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엮어 나아가는 현실은 결코 선명하게 규정되기를 거부한다. 상근은 비폭력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현실은 상배가 손을 더럽히며 연결해주는 일감과 수고비로 살아간다. 상배가 모시는 영감은 낮에는 친일파 노릇을 하고, 밤에는 독립운동을 후원하며 어떤 쪽으로든 살아남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줄을 대는 사람이고, 상배 역시 그런 생존 방식을 적극적으로 익힌다.

이 작품 전체의 줄거리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크고 혼란스러운 역사적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그런 사건들에 대처하며 살아나갔는지를 다양한 일화로 보여준다. 그런데 모든 그런 대처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적응이다. 그저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전부일 듯했던 상근의 부인 또한 상배의 더러운 돈을 받는 것을 거부하며 시작하지만 어느새 보수를 받고 밀고를 하는 역할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져있다. 이념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장렬하게 뛰쳐나가는 초인은 드물다. 어떤 세력이 권력을 잡은 상황이 오면 그 안에서 살 길을 궁리하고, 그런 상황이 뒤집히면 또 그 안에서 살 길을 궁리한다. 약간 더 영민한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뒤집힐지에 대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예측을 하지만, 그런 상황을 이념적 순수함과 강렬한 전투력으로 바꿔내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줄을 대야할 곳이 어디인지 저울질을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상황에 적응하며 자신과 가족들을 건사하고 나름의 출세를 하며 살아남고자 한다.

적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쨌든 내 이익은 얻어내고 보자는 이기심, 손해 볼 일에 나서지 않는 눈치, 뒤를 보장받을 만한 줄을 잡아두기다. 이것은 생활력, 생존본능, 계획성의 일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탐욕, 비겁함, 꼼수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런 가치에는 사회적 합의와 연대로 만들어가는 안정적 발전이 존재하지 않고, 일상화된 불신과 대결 속에 무지와 모순을 축적시킬 따름이라는 점이다. 일제시대의 수탈에도, 해방 후 혼란기와 미군정기의 복고에도 그런 문제들은 계속 쌓여나가며, 결국 전쟁 발발이라는 극단적인 폭력 상황을 맞이하고 만다.

물론 ‘먹고사니즘’과 ‘우리가 남이가’ 사고가 곧바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사회적 신뢰가 바닥을 드러내고 사회적 합의를 채우지 않은 공허한 구호 아래 맹목적으로 상호 적대만 커진 상황이기에, 여러 국제 정세가 하필이면 맞물릴 때 그런 거대한 참극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기에 주인공 가족들의 일상적인 다소 비겁하고 다소 비열하기도 한 적응과 욕심의 일화들은, 다큐멘터리처럼 병렬된 고위층 정치인들의 역사적 사실들을 다시 읽어보게 만든다. 그 역사적 거인들 역시 각자 혼란의 시대에 적응하고 업적을 남기려는 여러 계산 속에서 판단 착오와 큰 과오를 쌓아올렸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한국전쟁은 어떻게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김일성이 남침해 들어와서” 같은 전황으로서의 답변이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세계관 충돌” 같은 이념 층위의 답변을 암시하지 않는다. 그보다 넌지시 건네는 답변이란, 다들 적당히 한쪽으로는 억척스럽고 한쪽으로는 비열하게 살아오다가 제대로 민주적으로 합의된 사회 하나 못 만들어내고 부실해서, 결국 조건이 영 안 좋게 돌아갈 때 한 번 크게 무너져 내렸다는 쪽이다. 그리고 엄청난 희생으로 그 댓가를 치뤘다.

아쉽지만 [인천상륙작전]의 만화적 재미는 다소 애매한 편이다. 주인공들의 일화에서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전개 부분이 주는 재미는 일품이지만, 시대상황을 해설하는 다큐멘터리 부분은 시각 이미지의 밀도나 맥락 정보는 좋지만 매우 직설적이고 딱딱하다. 드라마 부분도 역사적 사실의 일부였던 ‘제5공화국’류 TV드라마와는 달리, 그런 두 가지 이질적 장르가 교차할 때 자주 이야기의 호흡이 끊어지는 느낌이 생긴다. 게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다큐가 등장하는 빈도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져서, 정작 전반부부터 쌓아올린 파국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터지는 후반 드라마의 임팩트를 억누르곤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시대가 시대인 만큼 충분히 극적인 대목들이 넘치지만 말이다.

진중한 작품일수록, 책장을 덮는 순간 하나의 질문을 독자에게 스스로 떠올리도록 만든다. 과연 지금 우리는 작품 속 그들의 모습보다 얼마나 더 나은가. 당시보다 당연히 덜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기본적인 적응 패턴에 그런 모습들의 잔재가 남아있는가, 아니면 정말 더 나은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인천 상륙 작전 1
윤태호 글.그림/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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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동네변호사 조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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