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행복, 삶의 의미: 고다 요시이에의 만화들 [IZE 150107]

!@#… 게재본은 여기로: [신 이야기] 고다 요시이에, 바닥에서 찾아낸 최소한의 행복

 

최소한의 행복, 삶의 의미: 고다 요시이에의 만화들

김낙호(만화연구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행복을 얻고 싶어 한다. 그러다보니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없을 때조차, 아니 그런 삶에 처해있을수록 필사적으로 그 안에서 나름의 행복을 찾는다. 고다 요시이에는, 바닥에서 찾아낸 최소한의 행복의 의미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만화가다.

그는 원래 80년대에 4칸 개그만화로 데뷔하고 정치풍자만화로 이목을 끌게 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4칸 개그의 과장된 화법과 세상을 직시하는 시선을 합쳐가며 그 위에 특유의 인간관을 얹는 작품세계로 변모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편인 [자학의 시]는, 망나니 남편이 주눅든 부인이 차려주는 밥상을 허구한 날 뒤엎는 4칸 개그만화다. 그런데 반복적 패턴의 블랙코미디라고 느껴질 무렵, 이야기는 그들의 과거를 비춰주기 시작한다. 지금의 모습은 더 많은 불행 속에서 두 사람이 찾아낸 그나마 작은 행복에 가까운 무엇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고 차별하는 세상사의 부조리를 직시하며, 가장 비루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인간적인 가치의 단초를 살펴보는 이런 테마는 최근 한국어판이 출간된 [신 이야기]에서 더욱 강화된다. 이야기는 한 누더기 바보 거지가 자신을 신이라고 자처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그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회개하라고 부르짖지도 않는 완전히 무능한 존재다. 하지만 공사판 막노동과 노숙촌을 전전하며 목격하는 도시 생활의 가혹한 밑바닥에서, 한 끼 밥을 얻어먹는 것으로도 세상에 아직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솔직하게 기뻐할 줄 안다. 알고 보니 그는 진짜로 창조주고, 천사들이 우주적 민폐가 된 지구인들을 멸망시키려는 것을 막기 위해 인간 세상이 그래도 계속될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러 온 것이었다. 그리고 신이 결국 보게 되는 것은 모든 인간은 속마음은 선하다는 식의 훈훈함이 아니라, 세상에 의미가 없는 삶이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은 용서하고 또 용서한다.

한국에 동시 출판된 [기계장치의 사랑] 역시 이런 테마를 한층 끌어올린다. 여기 수록된 옴니버스 단편들은 인간형 로봇들이 인간사회에 보편화되어 있는 미래를 무대로 하는데, 각 로봇들은 감정 없이 각각 하나씩 기능만을 수행하도록 특화되어 있다. 키워야 하는 아이나 연인 역할을 하거나, 점원이나 형사나 군인이 되며 그 외의 삶을 누리는 기능은 장착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기계적인 역할만을 하는 존재들이 비정한 인간사회의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가치를 표현해내고야 만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이라는 흔한 SF적 역설이 아니다. 로봇은 사람을 돕는다거나 애정을 나눠주거나 상대를 배려하라거나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존재다. 그런데 그들은 여느 인간들처럼 여러 사정을 들어 그런 인간적 행위를 추구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지극히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을 때도 정말로 해버리는 것이다. 가장 비루한 상황에서 기계적일지언정 그저 당연한 인간적 가치를 지속할 때, 삶은 의미를 얻게 된다.

고다의 만화에서 드러나는 정서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해결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수적 색채에 가깝다. 실제로 직접 정치현상에 대해 이야기한 작품들 가운데에는 극우인사로 알려진 고바야시 요시노리가 편집인이었던 만화계간지 <와시즘>에 연재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고다의 만화는 “그 정도면 사서 고생이라고 만족하라”라는 당의정을 허용하지 않는다. 누가 보더라도 가혹한 환경을 충분히 보여주고, 그 안에서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넌지시 논할 따름이다. 힘든 세상인 것은 사실이지만, 살아갈 의지로서의 행복, 아니 그저 삶에 어쨌든 의미가 있다는 사실 만큼은 간직하자는 것이다. 당신의 불행한 사연마저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영감과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 그렇게 다들 각자의 삶과 타인의 삶을 직시할 때, 조금은 더 인간적인 세상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천 번을 흔들리면 어른이 될 것이라는 식의 열정적 멘토링과 거리가 먼 이런 메시지야말로 오늘날 가장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그간 상식처럼 받아들여진 물질적 성취를 위한 경쟁을 거절한다는, 일본의 ‘득도(사토리) 세대’나 한국의 ‘삼포 세대’ 현상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고전적 안분지족 개념과 달리 선택에 의한 깨달음이 아니고,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없기에 욕망을 줄이고 줄여서 갑갑한 현실에 적응하는 모습이다. 이런 현실이기에, 밑바닥에서도 행복은 추구할 수 있고 어쨌든 삶의 의미는 있다는 지극히 싱겁고도 따뜻한 한 마디가 더욱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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