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특유의 만성적인 후반 페이스 망가짐 증후군이 언제 발현될지 몰라 조마조마했지만, 6권까지 이정도 전개해줬으면 안심… 이라고 판단하고 써버렸음. 물론 다음 권에서 당장 뒤집혀서 가토의 왼팔이 될지도 모르지만.
최강의 로봇은 가장 인간적 로봇 -『플루토』
김낙호(만화연구가)
한국에도 ‘우주소년 아톰’(원제: 철완 아톰)이라는 작품을 기억하는 분들은 많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종종 어린 날 재미있게 보았던 추억 속 무언가로 치부할 뿐, 그 작품이 얼마나 한 시대를 대표하고 이후의 만화는 물론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적다. 현대만화 문법의 상당 부분을 일거에 만들어내고 대중적 인기 또한 출중하여 일본에서 ‘만화의 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데즈카 오사무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작품에는, 인간과 피조물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성의 본질을 묻는 SF적 실존의 질문과 활극의 직선적인 재미가 동시에 묻어나온다. 그런데 단순한 추억상품이 아니라 세대를 초월한 파급력이 있는 고전은 종종, 그 영향을 받고 스스로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한 후대에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재해석이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림만 새로 입힌다거나 배경과 소품만 현대로 바꾸는 정도로는 부족하다(애석하게도 많은 경우 여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원작의 핵심 가치를 보존하고 큰 맥락을 유지하여 원작의 원형을 쉽게 연상시켜주는 동시에, 가장 현재적인 맥락에서 주제의식들을 구체화시켜서 리메이크 작업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리메이크를 하고 있는 작가 자신의 개성과 장기를 잔뜩 버무리는 것 역시 기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애초에 리메이크를 하는 의미가 없다.
『플루토』(우라사와 나오키 / 학산문화사 / 6권 발매중)는 리메이크의 왕도와도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톰 만화 시리즈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인 ‘지상최강의 로봇’ 편을 원작으로 삼아, 작가의 장기인 미스테리 스릴러 극화풍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SF모험활극과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장르도 그림체도 완전히 다르지만, 전체 줄거리의 기본틀은 동일하다. 로봇들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지만 인간들의 생활양식 자체는 현재와 크게 바뀌지 않은 근미래, 수수께끼의 뿔 달린 로봇 ‘플루토’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로봇 일곱 명을 하나씩 습격한다. 스위스의 산지기 몽블랑, 스코틀랜드의 집사 노스 2호, 일본의 아톰, 터키의 레슬링 로봇, 독일의 형사로봇 게지히트, 그리스의 레슬러 헤라클래스, 오스트렐리아의 보모 엡실론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인간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는 최강의 로봇들이 플루토에게 파괴당하는 과정 속에 플루토를 만들어낸 박사의 엇나간 집념이 바탕에 깔리고, 강함의 의미에 대한 교훈이 있다. 아톰의 여동생 로봇 우란과 플루토가 나누는 교감은 또다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이야기이자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다. 다만 로봇들이 날아다니면서 격투를 벌이는 활극의 달콤함에 묻어가다 보니 이런 주제들이 던져주는 울림이 상대적으로 덜 드러났을 뿐이다. 하지만 만약 활극 요소를 줄이고 로봇살인이라는 테마와 그것을 둘러싼 미스테리, 광기의 집념, 인간적인 삶에 대한 질문, 즉 그 쌉쌀한 맛을 즐기는 장르로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톰의 활극이 아닌 새 장르에 맞추기 위해, 이야기는 로봇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형사로봇 게지히트를 주인공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미래는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 있고, 점점 정교화되어 최신 기종 로봇들과 인간의 구분은 현재의 인종 구분에 가깝다. 아직 넘지 못한 차이는 상상력이나 감정이입 능력 정도인데, 그것조차 아톰에 이르러서는 경계가 허물어진 상태다. 인간 우월론자들은 비밀결사를 만들어 로봇을 린치하고, 일자리를 둘러싼 긴장도 존재한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발생시킨 중동의 전쟁이 있고, 그 와중에 동원되었던 세계최강의 로봇들은 대량 로봇 살상에 따른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다.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과정은 그 숨겨둔 기억과 다시 마주치는 과정이며, 인간의 광기와 로봇의 죄책감이 섞여들어간다.
하지만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작가의 핵심은 미스테리나 서스펜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몬스터』나 『20세기 소년』, 『마스터 키튼』 등에서 그런 재미를 위한 장치들을 넘어서 속내를 보면 항상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자 작가의 정성이 담긴 것은 등장인물들의 인간적인 일상성이다. 목표로 찍은 이가 커피에 타는 설탕의 양이 자신과 같다는 이유로 살인을 멈춘 암살자, 세계를 구하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편의점 점원으로서 저녁노을을 그리는 영웅이 바로 그의 매력이다. 그렇듯 『플루토』 역시 가장 효과적인 부분은 대결구도나 플루토의 정체를 캐는 과정이라기보다, 집사 로봇 ‘노스 2호’가 한 평생 함께한 주인에게 마지막 대접을 하고 평온하게 최후의 대결을 하러 날아가는 장면이다. 격투는 오히려 먼 거리에서 짧게 암시적으로 처리할 뿐이다. 남은 것은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사연과 여운이다. 원작의 주인공 아톰 역시 초월적인 히어로로서의 소년이라기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소년이다. 물론 하늘을 날기도 하고 다소간의 괴력도 발휘할 능력은 있지만, 인간과 지나치게 가깝기 때문에 겪어왔을 혼란과 현재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더 핵심에 놓인다. 독일의 형사로봇이 일본의 히어로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중년 형사가 달팽이를 관찰하는 호기심 많은 소년에게 말을 거는 식으로 처리한 아톰의 첫 등장이 바로 그런 정서를 압축한다.
원래 우라사와 나오키의 장편 스릴러 연재작은, 언제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지 판단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일본 잡지연재 시스템의 특성 속에 자리 잡은 작가의 성향상, 이전의 여러 작품들이 초반의 팽팽한 긴장감을 후반에 무리한 줄거리 연장 때문에 잃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키워놓은 서스펜스 설정 때문에, 원래 구상으로 돌아와서 마무리를 지을 때 오히려 역설적으로 용두사미의 느낌이 만들어지기는 폐단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플루토의 경우, 원작에 대한 충실도가 높아서인지 이례적으로 그런 늘어짐이 적다. 단적으로 최근 한국에서 발간된 6권에서, 자칫 중년 형사 주인공의 이야기로 무한정 다시 늘어질 수 있었을 이야기를 원작의 궤도로 돌려보내며 대부분의 미스테리를 해소했고 클라이막스의 대결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조차 거대한 활극보다는 사람과 로봇들이 각자의 소중한 일상성을 수호한다는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기에, 만약 페이스를 유지하며 2-3권 이내로 연재가 완결된다면 그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평가를 들어 마땅할 것이다.
굳이 아톰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SF를 빌어 인간적 일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으로서 볼 때 『플루토』의 매력은 극대화된다. 이 작품에서 지상 최강의 로봇들은, 가장 자신의 사소한 삶을 아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즐거워하고 소중한 이를 돌아보는, 무척 인간다운 것이 바로 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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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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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 Pluto 1 테츠카 오사무 지음, 우라사와 나오키 그림/서울문화사(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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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to (플루토)…
Pluto (플루토) 먼 옛날…이라고 해봤자 40년..아니 50년쯤 되려나?(검색하기 귀찮아서 안함… 수정하면서 찾아보니 50년전) 데즈카 오사무라는 아저씨가 전후(戰後) 일본에서 패배주의가 팽배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