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인간들의 이야기 – 기계 장치의 사랑 [기획회의 383호]

!@#… 현대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물에서,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그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 “기계 장치”다.

 

그저, 인간들의 이야기 – [기계 장치의 사랑]

감낙호(만화연구가)

물리적으로든 비유적으로는, 우리는 스스로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 머릿속에 스스로 그리는 우리 모습과는 달라진 현실의 부족하거나 과한 부분들을 알아차릴 수 있기에, 더 나아지기 위해서라면 거울을 필요로 한다. 그런 것이 바로 우리 세상의 이야기를 슬쩍 다른 존재로 치환하여 전달하는, 우화라는 형식의 힘이다.

[기계 장치의 사랑](고다 요시이에 / 안은별 옮김 / 세미콜론)은 우리의 일상 생활 환경 곳곳에 로봇들이 이미 자리잡은 어떤 미래의 이야기다. 작품이 그려내는 그 세계관에서 로봇은 온갖 역할을 도맡아 한다. 젊은 부모에게는 아이 역할에 특화된 로봇이 있고, 사랑이 필요한 이에게는 연인 역할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있다. 가게 점원, 지나가는 동물, 전투원, 택배원, 경찰관 등 다양한 위치에 다양한 기능의 로봇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인간형 로봇들은 그러나 온전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역할만을 수행하도록 전문화되어 있다.

책은 이런 세계의 로봇을 소재로 벌어지는 열 여덟 개의 이야기를 담아내는데, 공통된 테마는 감정 기능 없이 어떤 주어진 기능만을 하도록 되어있는 로봇들이 그 기능을 가장 기계적으로 수행해내자 오히려 가장 풍부한 인간적 정서를 자아낸다는 점이다. 아이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는 로봇에게 주어진 기능은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다. 그런 로봇이 버려지고 중고품 상점에서 대기하는 상황에 처하자 하는 일은, 바로 자신이 가장 사랑을 받았던 부모를 찾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한도에서, 그것이 가장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상충하는 목표가 공존할 경우, 더 근본적인 역할이 우선시된다. 그렇게 경찰관 로봇은 약자를 돕는 가장 근본적인 역할에 충실하고자 위조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연인 로봇은 자신과 사귄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된 인간 주인, 아니 연인을 위해 스스로 로봇 불륜의 죄를 뒤집어쓴다.

각 단편은 길지 않은 분량 안에서 로봇과 사람들의 그간 사연과 지금의 관계들, 그리고 필연적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의 귀결을 탄탄한 기승전결과 진한 정서적 페이소스, 그리고 종종 반전 가득한 기막힌 사연으로 엮어낸다. 작가의 대표작 [자학의 시]에서처럼 슬랩스틱 같은 직접적 유머 코드를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머러스한 느낌도 자주 구사한다. 시각적 형상의 섬세함보다는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강조하는 가벼운 그림체지만, 작품에서 가장 필요한 표정을 담아내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 로봇 특유의 무표정하거나 또는 기능적으로 부여된 표정이 있고, 이야기의 정서 속에서 독자들이 그 안에 감정을 채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테마의 방향성이나 이야기 솜씨 등으로 볼 때, 이 작품이 [철완 아톰], [블랙잭] 등으로 일가를 이룬 ‘만화의 신’의 이름을 딴 테즈카 오사무 문화상 단편부문을 수상한 것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기계 장치의 사랑]에 등장하는 기능에 충실한 로봇들은, 내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데 왜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없는가 괴로워하며 저항하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로이 배티가 아니다. 인간다운 감정을 품게 된 로봇을 보여주며 인간의 한심함을 비웃는 우화가 아니라, 인간다움이란 원래 무엇일까를 훨씬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그 답은 은근히 간명하다.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나눠주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다. 여력이 닿는 대로 약자를 돕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다. 죽은 자는 무덤을 만들어주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다. 가족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은 함께 가족을 이루며 사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서 남의 부족함을 필요로 하는 바보가 되지 않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다.

인간은 그런 것을 온갖 복잡한 사정과 감정을 핑계로 들면서 우회하고 회피한다. 하지만 바로 그 기능만을 수행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은 우직하게 수행한다. 작품 속에서 인간들은 로봇이 어떤 사건을 일으킬 때 왜 그런 이상한 행동을 했을까 궁금해 하거나 아예 고장으로 치부하곤 한다. 아니면 감정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인가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로봇들이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인간적인 가치를 수행하고, 그것을 기계적으로 끝까지 강행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쯤 되면 누구나 눈치를 챘겠지만, [기계 장치의 사랑]의 로봇들은 인간을 타자의 시선으로 객관화시켜서 지켜보는 관찰자가 아니다. 거울을 통해서 그대로 돌려 비춘,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그저 인간의 모습이다. 작품 속 로봇들처럼, 현실 속의 인간들 역시 사회 속의 어떤 위치와 역할로 맺어져 있다. 그들은 버려지는 어린이고, 외로운 도시인이고, 비인간적 대우 속에 소외된 노동자고, 노인이며, 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피난민이다. 저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바라보는 작품 속 인간들의 시선은, 작품을 읽는 우리들이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여러 약자들을 마치 전혀 다른 존재인양 무심하게 거리를 두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섬뜩하리만큼 비슷하다.

동시에, 우리들 또한 사회의 큰 틀 속에서는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는 작품 속 로봇과 다를 바 없다. 로봇들이 그저 자신의 기능만을 계속 추구하는데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 만들어지듯, 우리들 역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가장 인간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자주 애처롭거나 비참하고, 가끔 희망도 있고, 어쩌다가 웃기기도 한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 안에서도 사람으로서 사는 것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 즉 사람에 대한 애착,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배려와 존중 같은 것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이뤄질 때,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이런 생각들을 크거나 작게나,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으로나 슬쩍 유도해 내는 것이 바로 좋은 우화다.

작품을 마무리하는 단편은 지금껏 지구에서 이뤄진 이 모든 이야기들을 1200광년 떨어진 외계 행성에서, 자연재해로 모든 것을 잃은 누군가가 바라보는 내용이다. 행복한 이야기도, 기막히고 비참한 이야기도, 그 안에 인간적인 삶의 어떤 조각들이 들어 있는 만큼씩은 어딘가의 누구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계속 살아나갈 힘이 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성숙한 시선을 담아내는 작품을 선보이는 것 너머, 이런 작품을 만드는 것의 의미에 대한 성찰까지 녹여내는 완벽에 가까운 결말이다.

기계 장치의 사랑 1
고다 요시이에 지음, 안은별 옮김/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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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다음 회 예고: 기간토마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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