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어둠 – 잔혹함을 모르는 잔혹한 세계의 동화 [책내서평]

!@#… 간만에 책내서평.

 

잔혹함을 모르는 잔혹한 세계의 동화

김낙호(만화연구가)

아름다운 어둠
파비앵 벨만, 케라스코에트 지음, 이세진 옮김/북스토리

잔혹함이란 인간들의 그리 오래 되지 않은 훌륭한 발명품이다. 원래 생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갑작스러운 죽음도 있고, 자신이라는 개체의 생존이나 번영, 혹은 그냥 욕심을 위해 다른 개체를 수탈하는 모습이 넘친다. 잡아먹든, 부려먹든, 아무 생각 없이 괴롭히든, 따로 그렇게 훈련받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를 파멸시키지 않고 힘을 합쳐 효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집단을 만들어 나아가다보니,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갈수록 강조하게 되었다. 고통을 주는 것은 집단의 도덕이나 규율을 지키겠다는 명분의 처벌, 또는 집단을 위해 타자들을 물리치는 것 같이 특수한 목적 아래에서만 용인되는 것이 되었다. 이런 방향 위에 있는 것이 바로 잔혹함으로, 정당화가 부족하며 과도한 고통을 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옳다는 발상을 담아내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정반대로, 사랑과 우정 같은 인간 사회의 여러 감정 표현, 친절과 우아한 예절 양식 같이 발전한 문명의 모습들은 분명히 있는데, 잔혹함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면 어떨까. [아름다운 어둠]는 바로 이런 부분을 극명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숲 속에 사는 인간 모습 자그마한 요정들의 집단이 온갖 동물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어울림의 모습이란, 아름다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모두가 행복하게 일하는 디즈니의 세계가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형 요정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동물들로부터 몸을 지키고자 분연히 전선에 나서는 개척자 활극도 아니다. 그저 잡아먹으면 잡아먹히고, 그저 놀이를 하다가 다른 생물의 다리를 잡아 뽑고, 어떻게 죽어도 주변에서는 그냥 죽었나보다 넘어간다. 사실 죽음은 그 세계의 자연스러운 일상에 불과해서, 요정들이 생활터전으로 삼아버린 곳은 바로 숲 속에서 어째서인지 죽어버린 자그마한 인간 소녀의 몸이다. 즉 이곳은 잔혹함의 개념이 없는 자연 상태와 같은 곳이고, 그런 세계에서 요정들은 마치 프랑스 귀족 사회처럼 예절을 찾고, 사랑과 우정을 꿈꾸고, 함께 뛰놀며, 결혼식도 올린다.

이야기의 정서를 돕는 것은 마치 어린이 동화 그림책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수채화풍 그림이다. 하지만 동시에, 경쾌한 요정 동화의 배경에는 어둡고 비정한 현실세계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엿보게 할 때는 세밀한 사실화체의 인간 형상과 숲의 풍광이 나온다. 장난스러운 열린 선으로 묘사된 귀여운 캐릭터들이, 우아하게 누군가를 생매장해서 죽인다. 바글바글 모여들어 노는 듯한 가벼움으로, 충직했던 동물을 우악스럽게 잡아먹어버린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가면서 점점 소녀의 시체는 부패해서 무너져간다. 진지한 소품부터 유서 깊은 주류 오락만화 시리즈 ‘스피루와 판타지오’의 새 담당을 맡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파비앙 벨만의 이야기 솜씨는, 2인조 작가팀 케라스코에의 이런 표현력을 만나며 진정한 빛을 발한다.

잔혹함을 모르기에 잔혹함이 철철 넘치는 세계를 엿보며,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아름다운 어둠]의 숲 속에서는 귀엽고 약해 보이는 것조차 생존 전략의 일부일 뿐이고, 충직하고 말없이 도움을 주는 이는 상황이 약간만 틀어지자 잡아먹히고 가죽이 벗겨진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인간적이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뒤통수를 치고, 폭력을 가하고, 죽음을 가져다준다. 사소한 질투로 죽이고, 사랑과 파괴적 집착 사이의 경계선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고, 우정으로 보이는 어떤 행동들은 그저 착각에 가까운 일시적 현상이다. 이런 모습이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딱 그만큼 사실은 문명의 겉모습 아래에서 잔혹함에 대한 경계라는 기본 전제를 망각하고 있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

문명의 겉모습 아래 사실은 잔혹하기 짝이 없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화려한 소녀 요정 젤리도 있다. 허영기 많고 주변을 끌어들이는 군림하는 여왕벌 같은 존재다. 남의 친절을 받는 것에 익숙하고, 예절을 지키는 듯하면서 자기 패거리를 만들고,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자신의 것으로 삼아버린다. 잔혹한 세상에서, 가장 적극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한 행보를 하는 셈이다.

한편으로는 가위날을 들고 도도하고 수완 좋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현명하고 프로페셔널한 누님, 제인도 있다. 그녀는 다른 이들의 예절놀이와 감정싸움의 생활과 거리감을 유지하되, 도움이 필요한 이를 내치지는 않지만, 그저 홀로 자신의 길을 간다.

그리고 여주인공 오로르가 있다. 그녀는 순진하고 올곧은 소녀처럼 적당한 호기심과 낙천성, 몸에 스며든 친절과 배려로 생활한다. 죽음의 일상성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고 딱히 타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의감이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남을 지배하려는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녀의 자세는,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길 때는 가차 없이 변해버릴 수 있다. 적에 대해서도, 주변의 피해에 대해서도 망설임 없이 단호하다.

여러 삶의 대처 방식 가운데 어떤 쪽을 딱히 최선의 방식이라고 손을 들어줄 수는 없다. 어떤 쪽도 자신이 속한 세상의 잔혹함을 줄여야 한다는 인식은 없고, 그저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고수할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정과 모험이 나오는 동화적 정서를 담아낸다고 해서 반드시 직접적 교훈을 담아내야할 필요는 물론 없다. 그저 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어둡고, 관조적이며, 깊숙하게 냉소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요정들을 구경하며 웃음과 충격을 느껴보는 것이면 좋다. 잘 만들어진 판타지가 응당 그렇듯 현실에 대한 비정한 거울상인 이 작품에 대한 여운을 발판 삼아, 우리는 우리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아주 잠깐 떠올려보는 것으로도 훌륭하다.

아니면 그냥 가위 누님 찬양만 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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