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재본은 여기로(언제부터 내가 ‘씨네21 취재팀’으로 합쳐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삶의 모습, 거주 공간 – 은주의 방
김낙호(만화연구가)
전문소재 만화를 어떻게 하면 성공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은, 많은 이들이 기본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필수적인 소재를 잡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기본 사항인 의식주 가운데 옷은 그럭저럭 만화에서 늘 눈요기감이 가득하고(코스프레 문화를 생각해보라), [드레스코드] 같은 작품이 이미 인기리에 연재중이다. 음식에 관한 만화는 따로 예를 들 필요도 없이 넘친다. 그렇다면 이제는 ‘거주’에 관한 작품이 나올 때가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만화계에서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돌아다녔다.
그런데 바로 그런 만화가 나왔고, 썩 좋은 모습이다. [은주의 방](노란구미 / 네이버)은 인테리어를 소재로 하는 만화다. 일련의 사정으로 일자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는 주인공 은주가, 인테리어업을 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자취방을 가꾸기 시작하고 그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인테리어란 단순히 살아가는 공간의 모습을 넘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 대한 자세다. 정돈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이 어지러운 집으로 나타나고, 그 어지러움이 다시금 마음의 어지러움으로 되물림 된다. 곰팡이를 제거하고 작은 소품을 자기 손으로 바꿔나가는 것은 곧 자신의 생활에서 다시 주도권을 쥐고 나아가는 모습의 일면이 된다.
인테리어 이야기답게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의 꽤 기술적인 내용도 많지만, [은주의 방]은 상당히 효과적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준다. 종종 너무 직접적으로 교훈을 극중인물의 대사로 훈계해버리는 지나친 친절은 아쉽지만, 재미를 딱히 해칠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부담 없는 무게감의 그림체 속에 풍부한 표정변화로 분위기 연출에 성공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 사이에서 성격차이로 부딪히는 모습들에 대한 세심한 묘사도 상당하다. 등장하는 인테리어 요소들의 실제 제작물에 기반한 디테일은, 수년전 사진 트레이싱 사건의 곤욕으로부터 한층 성장해서 돌아온 듯 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최고의 전문가가 누군가의 문제를 바람처럼 나타나서 해결해주는 식이 아니라 하나씩 스스로 배워가며 그것을 또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화려한 해결사 활극이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부딪힘도 도움도 깨달음도 있는 주인공의 생활드라마인데, 이왕이면 사는 공간을 조금씩 살아가는 공간답게 가꾸어 나갈 따름이다. 재산관리로서의 부동산 만화 말고, 살아가는 공간을 매개로 결국 살아가는 것 자체를 이야기하는 멋진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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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컬쳐하이웨이’. 주기적으로 특정 문화항목을 강조 편집하는데, 만화가 강조되는 주간에 로테이션으로 집필 참여. 가급적 진행중인 작품에 대한 열독 뽐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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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은주의방을 그리고 있는 정구미입니다.김낙호씨가 써주셨다고 페이스북을 본 남편한테 들었는데요. 글을 잘 쓰시는 분한테 리뷰를 받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제 블로그에다가 링크하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정구미님/ 예, 얼마든지요! 저야말로 흥미로운 작품 만들어주고 계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