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인터뷰 가로채기 사건, 공익은 손쉬운 간판이 아니다 [IZE 150426]

!@#… 좀 지난 글인데, 백업해놓는걸 깜빡. 게재본은 여기로.

성완종 인터뷰 가로채기 사건, 공익은 손쉬운 간판이 아니다

김낙호(미디어연구가)

JTBC의 경향신문 성완종 인터뷰 가로채기 사건이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사실 고유명사를 지우고 보면 사실 크게 복잡한 사안이 아니다. 한 신문사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터뷰를 작성했고, 수사에 필요해서 검찰에 자료를 협조해줬고, 내일 전문 공개를 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런데 제삼자가 그 자료를 빼돌려 다른 방송사에 넘겨줬고, 방송사는 입수의 문제점을 알고도 오늘 당장 내보냈다. 건조하게 바라볼 때, 남의 취재자료를 훔쳐낸 특종 가로채기다.

하지만 그런 건조한 시각을 어렵게 만든 것은, 하필 “손석희”의 뉴스라서다. 언론이 지녀야할 공정한 시각과 품위에 대한 일종의 모범으로 여겨지는 이가 전권을 가지고 만드는 뉴스이기 때문이다. 상황을 이해하는 건설적인 방식은, 원래 모범적인데 이번 건에서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편한 방식은, 정의의 우리 편이 잘못할 리가 없다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하나는 그 정도가 대수냐고 폄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할만한 중요한 사정이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경향신문이나 정보원의 개별적 권리를 넘어서는 더 큰 대의, 즉 ‘공익’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에서 시작한다.

공익은 뉴스보도의 경우 공공의 알 권리와 정보의 공공재적 속성이라는 개념으로 치환되곤 한다. 공익이란 바로 공공이 알아야만 할 사안을 알리는 것이고, 공익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면 정보에 대한 누군가의 소유권 행사나 피해 호소를 건너뛸 수 있다.

그러나 공익을 내걸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도 될 리는 없다. 당장 공익을 위해 정보를 활용한다고 해도 정보 자체가 공공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보도에서 출처 제대로 명시하고 분량 조절을 신경 쓰는 ‘공정한 이용’이 가능한 것일 따름이다. 또한 언론 윤리의 기본 범주 중 하나인 피해 최소화 원칙을 건너뛰는 것, 예를 들어 타인의 재산권이나 존엄을 침해하게 되더라도 보도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크게 어렵지 않은 판단 기준이 있다. 첫째, 단순히 다수의 사적 관심사가 아니라 확실한 공적 사안이어야 하며, 둘째, 침해가 일어나지 않는 방식으로는 전할 수 없는 새로운 정보라는 불가피성이 있어야 한다. 전자가 파파라치 매체들이 주로 어기는 부분이라면, 후자가 바로 진지한 매체들이 정의감 속에 어겨버리기 쉬운 부분이다.

그런데 손석희 사장이 직접 발표한 JTBC의 입장은, 이런 부분들을 두루 건드린다. 먼저 “이 파일이 검찰의 손에 넘어간 이상 공적 대상물이라고 판단하기도 했습니다”라는 대목에서는 경향신문과 인터뷰 대상의 독자적 저작물인 인터뷰 자료를 임의로 일종의 공공재로 취급하고 있다. 그렇기에 정당한 관행으로 인용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취재해서 발굴한 것으로 (“경향신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 입수했습니다”) 여기는 것이 가능했다.

피해 최소화 원칙을 건너뛸 근거로는 육성 전문 공개가 공익에 반드시 필요한 새로운 정보라고 주장하는데(“육성이 갖고 있는 현장성에 의해서 시청자가 사실을 넘어서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이 사안의 보도가 경향신문에서 이뤄졌던 경과를 되짚어보면 타당성이 없다. 세부 내용은 이미 상당한 취재와 함께 모두 기사화된 이후 시점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전문은 경향신문의 보도들이 원래 인터뷰의 맥락을 왜곡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기능뿐이. 나아가 이미 수사를 통한 증거 수집 단계로 들어간 사안 속성상, 육성으로만 전달되는 감정 기복의 설득력은 내용을 더 신뢰해야할지 또는 의심해야할지에 대한 아무런 추가 근거가 되어주지 않는다. 즉 공익을 위해 불가피한 부분이라는 당사자들의 의식과 달리, 문제 있는 자료 입수 방식과 가로채기 보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공익이라는 개념이 동원되었을 뿐이다.

언론 보도에 있어서 공익은 매우 중요하고 강력한 명분이고, 그렇기에 더욱 신중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남의 취재를 섣불리 공공재 취급하지 못하게 되고, 공익성을 내건 노골적인 자료 가로채기가 비판을 받아서, 결국 각 언론사들이 각자 정당한 취재를 통해서 공공 사안에 대한 독창적 기여를 하고자 열을 올리는 언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공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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